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 )를 지향하는 교회 = 공동체교회 목회론 =
Ⅰ. 공동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근래에 우리는 “공동체”, “공동체운동”, “공동체교회” 등의 표현을 교회 안밖에서 자주 듣게 된다. 그러나, 사회에서 사용하는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와 교회에서 사용하는 공동체의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교회안에서도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에서 말하는 기독교적인 공동체의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1. 공동체 : 교회의 본질을 추구한다
공동체라는 표현은 교회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 라는 관심에서 부터, 교회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인가 ?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 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포함하여, 교회를 어떻게 개혁 또는 갱신할 것인가 ? 라는 다짐에 이르까지 그 생각의 중심이 교회에 있다. 대개의 경우, 공동체를 말하는 개인이나 교회들은 교회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또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공동체라는 표현은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의미이다. 공동체라는 표현에는 교회에 대한 신학적인 정리보다,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처음 교회는 어떤 것인가 ? 역사에서 드러난 교회의 모습보다는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처음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 하는 교회본질에 대한관심과 이러한 것들을 찾아 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교회( έκκλησία )의 본질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보이는 모형(SAMPLE)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복음서 마가복음 1장 1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언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함을 모두 복음(εύαγγέλιον)이라 규정하고 있다.(막1:14-15)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복음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함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었다. 예를 들어, 교훈집이라고도 부르는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처음 메시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마4:7), 그 후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계속 가르치시며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신다.(마5:-7:, 13:,25: ) 그리고, 부활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행1:3) 그런데, 마태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계속 가르치시던 에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교회의 설립을 약속하셨다.(마16:18) 마태복음의 이 부분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복음서의 유일한 곳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계속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로 일관되게 표현하시던 예수님께서 중요한 싯점에서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 대신에 “교회”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의 모습으로 존재하도록 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배려로서,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보이는 견본이요, 교회의 본질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라는 표현은 교회에 대한 고백이다. 즉 교회를 단순히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교회를 고백하는 표현이다. 공동체를 말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터전이라고 믿는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어야 하는 것처럼(요151-10),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회적인 삶에 충실하면 그리시도의 생명을 공급 받아 믿음이 보호 받고,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나, 교회적인 삶에서 떠나면 줄기를 떠난 가지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이 끊어지는 영적인 삶의 터전으로 고백한다. 또, 교회는 세상의 역사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인 것을 믿는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그물을 치듯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교회를 두시고 그 교회안에 사람을 모으시고 교회를 확장하시며 구원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역사속에서 구원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이다.(엡1:9-10) 결국, 교회는 개인이나 사회, 인류적으로나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믿는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약속하시면서 그 교회에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16:19) 신약성경의 유일한 역사서인 사도행전의 메시지는 세상의 역사에서 박해와 순교를 받는 교회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비록 지하 공동묘지에서 모이는 교회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연합하여 사는 삶을 고백하는 성찬식이 있는 교회가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답이었다.
이상과 같이, 교회가 바로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공동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교회에 대한 교회론적인 생각,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입장, 그리고 교회에 대한 실제적인 고백의 특성들 때문이다.
2. 공동체 : 코이노니아를 의미한다
1) 교회의 본래적인 삶은 코이노니아이다.
교회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이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실제로 이루시고, 사람들이 경험하고 참여할 수있는 교회의 본래적인 삶은 어떤 것일까 ? 신약성경에는 교회를 지칭하고 소개하는 단어들이 여러 개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고, 또 정확한 대표적인 단어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이다. 신약성경에는 코이노니아라는 명사가 19회,다른 형태까지 합하면 모두 38회,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까지 합하면 100회 이상 사용되었다. 코이노니아는 본래 헬라어에서 단순히 친교,교제의 의미를 갖는 단어이었으나, 기독교에서 사용하면서 깊은 함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코이노니아는 신약성경에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한글 개역성경에도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서 사용한 코이노니아를 우리 말로 번역하기는 매우 어렵다. 신양성경에서 사용한 코이노니아를 모두 찾아 분석하면 크게 네가지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친교, 교제, 사귐의 의미. 둘째로, 소속과 참여의 의미. 셋째로, 화해,일치, 연합,그리고 하나의 의미. 넷째로, 공급과 나눔의 의미이다. 그러나, 그외에도 “동정한다” “경륜”, “교통” 등의 특별한 경우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모습을 나태내는 대표적인 단어라는 점과 코이노니아는 조직이나 건물을 의마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결과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삶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2) 코이노니아는 공동체적인 삶을 말한다. 신약성경의 코이노니아를 우리 말로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으나,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의미들을 종합하면, 코이노니아는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인 삶”을 의미한다. 여기에 “공동체”를 말하는 신학적인 근거가 있다. 기독교적인 공동체의 의미, 교회에서 말하는 “공동체”의 의미를 정확하게 말하면,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은 두 가지 삶의 내용, 혹은 삶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하나됨을 지향하는 삶과 삶을 나누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공식으로 정리하여 표현하면, 코이노니아 = 공동체적인 삶 ( 하나됨을 지향 + 삶을 나누는 과정 )이다. 하나됨을 지향하는 삶이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차이, 인종과 국가, 문화와 종교, 성별과 나이, 직업과 신분, 학력과 빈부, 신앙의 경력과 색갈 등, 그리고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담을 그리스도안에서 극복하여 마음과 삶이 하나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을 말한다. 삶을 나누는 과정이란, 하나되기 위해 그리스도안에서, 자리와 역활, 마음과 물질, 생각과 경험, 그리고 인격과 삶을 나누는 기회들을 갖는 삶의 과정을 말한다.
3) 신약성경의 증언
사도행전 2:42-48. 사도행전 2장에 소개되는 교회는 기독교 최초의 교회로 아직 때묻지 않고 순수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예루살렘 교회가 있으므로 오늘의 전 세계의 교회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많은 숫자가 모이는 교회도 아니었고, 크고 화려한 건물을 가지고 있는 교회도 아니었고, 체계를 갖춘 조직이 있는 교회도 아니었다. 다만 교회의 교회다운 모습, 코이노니아의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 2:42-48의 내용을 분석하여 보면 코이노니아=공동체적인 삶(하나됨을 지향+삶을 나누는 과정의 공식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내용이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하나됨을 지향하는 단어가 소개되고 이어 삶을 나누는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42절에서, “서로”라는 하나됨을 지향하는 단어에 이어 교제하며, 떡을 떼며,기도에 힘쓰는 삶을 나누는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43-45절에서는, 다 “함께”라는 말에 이어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는 내용이 소개된다. 46절에서는, 마음을 “같이”라는 단어에 이어 자리를 나누고, 떡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는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고린도후서 13:13. 고후13:13은 오늘날 교회에서 축도문으로 인용하는 내용이다. 물론, 바울이 처음부터 축도문으로 사용하도록 기록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축도문으로 쓰게 된 것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복을 기원하는 바울의 기원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는 최선의 방법, 그리고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는 아덴에서 낙심하여 고린도로 간 바울이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의 도움을 받아 어느곳에서 보다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가운데 세우게 된 교회이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고리도교회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교회였으며,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린도교회가 많은 문제를 갖게 되었고,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답을 교훈하는 편지, 고린도전서를 쓴다. 그리고, 많은 문제를 갖게 된 고린도교회는 지도자인 바울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겨 바울과 고린도교회는 매우 불편한 관계에 이른다. 바울에게는 매우 상처가 되고 마음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모든 문제가 정리되었을때,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위로의 편지, 고린도후서(후반부)를 쓰게 된다. 이 위로의 편지 끝에 바울은 붓을 놓기전에 최대의 복을 기원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이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하였다. 왜 바울은 성령 하나님의 복은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기원하였을까 ? “교통”의 원어는 코이노니아이다.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기원한 것이다. 그것은 성령이 충만한 고린도교회가 많은 문제를 갖게 된 것은, 성령의 충만이 개인의 은사에 머물렀고 교회적인 삶에 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이 이후에는 교회의 교회적인 삶인 코이노니아가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교회의 본래적인 삶이 성령의 코이노니아인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3. 공동체 : 이 시대의 메시지이다
1993년 8월 2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의 산디아고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제1분과에서 주최하는 제5차 세계대회가 열렸다. 이 모임은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었으나,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모이는 중요한 모임이었다. 당시의 세계는,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소련도 붕괴된 직후로, 사람들은 곧 세계평화가 이루어 질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념이라는 장치에 의해 유지되던 질서가 무너지고, 세계는 중심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지역과 인종간의 전쟁은 더 많아 지고, 지구촌의 기아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욱 심각해 졌으며,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무역마찰과 문화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교회는 이러한 상황을 맞으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가 ?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살아 계시다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향햬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런데, 그 모임의 주제가 “신앙과 생활과 증거로 부터 코이노니아를 지향하여”였다. 주제가 의미하는 것은, 이제 이 땅에있는 교회들이 자기 중심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으로 부터, 사회구원을 위해 행동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부터, 구원 받은 자로서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선교로 부터,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문제의 답으로 주신 교회, 그 교회의 본래 모습인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로 돌아서야 한다는 뜻이다. “공동체” 즉,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세계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주신 답을 우리가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교회가 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인 코이노니아의 삶을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 2:47의 후반에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었다. 나가서 전하는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 찾아 온 사람들이 코이노니아의 삶을 보고 복음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확인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사도행전 2장의 처음 교회처럼 산다면, 왜 사회와 세계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겠는가 ? 문제는 교회가 답을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얼마전까지 과학문명의 발달과 경제성장 등으로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으면서 그 어느때 보다, 인간의 비인간화, 인간상실, 그리고 인간소외의 문제에 부딪혔다. 또 최근에는 국제 통화기금시대를 맞아 실업과 좌절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념에 의한 민족의 분단과 아픔, 갈등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 여전히 남아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역의 큰 방향을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로 삼아, 교회를 개혁하고 갱신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답을 교회가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Ⅱ.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목회원리
지금까지 “공동체”의 기독교적인 의미를 정리하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교회사에 나타난 공동체운동들을 소개하였다. 이제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 즉 성령안에서 공동체적인 삶을 이루는 교회(공동체교회)가 되도록 하는 실제 문제를 다루면서 먼저, 큰 원칙으로서의 목회의 원리를 말하려고 한다.
1. 공동체교회의 큰 원칙
공동체교회를 지향하려면,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교회로서 삶의 세가지 큰 원칙을 지도자가 먼저 철저하게 인식하고, 교인들에게도 이 원칙을 깨우치고 지속적으로 확인 해야 한다.
1) 목표 : 하나됨을 지향하는 삶
바울의 서신들은 대개, 신앙과 원리, 그리고 교리의 내용을 교훈하는 전반부와 생활과 실천, 적용의 문제를 교훈하는 후반부로 되어 있는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교회론을 주제로 교훈하는 에베소서의 전반부(1장-3장)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이는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13-22>고 말하였다. 이것은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 서로의 갈등을 극복하고 “예수안에서 하나됨”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4장-6장)에서는 “예수안에서 하나됨”을 이루기 위한 생활과 실천, 적용의 문제를 교훈할때,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하였다.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교회생활이 하나된 것을 지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 바울은 이점을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4:4-6>고 힘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래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교회는 교회적인 삶의 큰 원칙으로 하나됨을 지향하는데 삶의 목표를 두어야 한다. 교회안에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으나, 모인 사람들은 각각 신앙의 색깔과 성격은 물론, 건강의 상태와 경제적인 수준, 나이와 성별, 성장과정과 환경,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 혈연관계와 출신지역이 다르고, 나아가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인종이 다를수 있다. 이러한 각자의 차이는 서로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미움과 다툼의 원인이 되는데, 교회는 바로 이러한 갈등을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를 근거로 하고, 또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극복하며 하나됨을 목표로 하여 사는 삶을 이루는 곳이다.
2) 방법 : 삶을 나누는 과정
바울은 올바른 교회생활의 실천으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교훈하고, 이어서 하나됨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을 7-16절에서 제시한다. 7-16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주셨다. 그래서 은사에 따라 교회안에는 혹은 사도, 혹은 선지자, 혹은 복음 전하는 자, 혹은 목사, 혹은 교사와 같은 서로 다른 직분들이 있다.<7-11>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은사, 서로 다른 직분을 두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성숙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12-15> 마지막으로, 그러므로 서로 다른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스스로 사랑안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16> 바울은, 교회가 하나됨을 지키고 성숙하려면, 각각의 지체들이 그 지체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마치 사람이 몸은 하나이나 그 지체는 수 없이 많고, 수 많은 지체들은 각각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이 있어서 각 지체들이 각각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몸은 건강하게 자라지만, 어느 한 지체라도 자신의 자리와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면 몸 전체가 자라지 못하고 병들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 바울이 말하는 이러한 방법을 지체의 원리 또는 나눔의 원리라고 한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교회가 하나됨을 지키고 성숙하려면, 이러한 나눔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나눔의 원리란 삶을 나누는 과정으로, 교회안에서의 자리와 역활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과 물질을 나누고,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그래서 인격과 삶을 나누는 과정을 말한다. 공동체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됨을 이루고, 그 하나됨을 성숙시키기 위해 이러한 삶을 나누는 과정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교회를 조직과 교회 생활구조의 개혁이 있어야 하며, 삶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의도로 공동체적인 삶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 제시되어야 한다.
3) 자세 : 섬기는 삶의 자세
코이노니아, 즉 공동체적인 삶의 기본 자세는 섬김이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다.<막10:45> 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종합적인 결론을 말씀하실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말씀하시면서 섬김의 삶을 말씀하셨다.<요13:1-1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섬김(διακονία)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섬김(διακονία)은 신약성경에서 세 가지 경우로 번역되었다. 첫째로, 하인<요 2:5,9> 또는 사환<마 22:13>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고 불평없이 주인에게 순종하는 종의 모습을 의미한다. 둘째로, 일꾼<롬 16:1> 또는 사역자<고전 3:5>으로 번역된 경우로, 이 경우는 하나님의 일을 맡아 몽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셋째로, 수종들다<마 4:11> 또는 공양하다<마 25:44>로 번역된 경우이다.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돌봐 주고 돕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섬김의 의미는, 종이 주인을 섬기듯 다른 사람을 높이고, 내 몸을 움직여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뜻한다. 교회의 본래 모습인 성령의 코이노니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나 공동체를 말하는 교회들이 마치 교회내에서 자기들끼리만 교제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하여는 무관심하고 폐쇠적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령안에서 이루어 지는 교회안으로 부터 시작하여 교회밖의 이웃에 까지 철저하게 섬김의 삶을 삶의 기본 자세이며, 라이프 스타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공동체교회는 이러한 섬김의 삶을 강조하고 추구하며, 실제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동생활이나 현장에서의 삶을 갖게 된다.
2. 공동체교회의 지체론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공동체를 말할때 집단성만을 추구하거나 또는 획일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공동체는 지체론이 중요하고, 공동체교회는 지체의 원리를 적용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 문제를 다루면서 지체론을 말하고 있는데, 바울의 지체론에는 지체의 다양성, 고유성, 신뢰성, 관계성, 일체성이 포함되어 있다. 공동체교회는 이러한 지체의 다섯 가지 특성을 전제로 한다.
1) 지체의 다양성
바울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하였고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12:14>라고 하였다. 지체의 다양성이란, 우리의 몸에 다양한 지체들이 있뜻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다양한 지체들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남자와 여자, 나이 어린 사람으로 부터 노인에 이르는 년령층, 가난한 사람과 부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전공과 전문, 활동분야의 다양성, 신앙이 보수적인 사람과 진보적인 사람, 믿음이 오래된 사람과 새로 믿는 사람, 인격이 원만한 사람과 모나고 거친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괴롭히는 사람 등. 그런데, 이러한 다양성이 조화를 이룰때 참으로 아름답고, 또 다이나믹한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세계는 본래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잣나무로 조림된 산은 처음에 볼때에는 잘 가꾸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 보게 되면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잡목이 우거진 산은 처음에는 복잡하게 보일지 모르나, 보면 볼 수록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다양한 지체들이 모인 공동체일수록 잠재젹인 힘을 갖게 된다. 공동체교회는 지체들의 다양성을 전제하고 이러한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교회이다.
2) 지체의 고유성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12:22-23> 사람들이 볼때에는 귀하게 보이지 않는 우리 몸의 지체가 실제로는 더 귀한 지체라는 것은 우리 몸의 모든 지체들이 각각 고유한 자리와 역활이 있다는 거을 말하는 것이다. 눈은 얼굴의 앞에서 보는 역할을 한다. 만일 눈이 얼굴 뒤에 있거나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 귀는 얼굴의 옆에 있어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한다. 귀가 머리 위에 있거나 귀가 듣지를 못한다면 또한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 그리고 눈이 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귀가 눈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에 불필요한 지체를 두지 않으셨으며, 사람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떼어 내는 부분이 때로는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약속된 고유한 삶의 길, 그리고 달란트를 허락받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사람을 교회에 지체로 보내지 않으셨고,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지체로서의 고유한 자리와 역할을 각각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대화하신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순교할 것을 예언하셨을때 섭섭한 베드로는 옆에 있는 요한의 앞날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이 장수하여 자연사 할찌라도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셨다. 즉 베드로는 베드로의 고유한 길이 있고, 요한은 요한의 고유한 길이 있다는 뜻이다. 때로는 목회자에게 짐이 되고, 목회자를 괴롭히는, 그래서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고유한 자리와 역할을 주셨다. 공동체교회는 이러한 지체의 고유성을 인정할 뿐만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각자의 고유한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훈련을 하는 교회이다.
3) 지체의 신뢰성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지 못하리라”<12:21> 이 말씀은 지체의 지체에 대한 인정, 신뢰를 의미한다. 우리의 몸은 지체들간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확고함으로 모든 생리적활동이 가능하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지체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데, 왜냐하면 다른 지체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자리도 나눌수 없고, 마음도 나눌수 없으며, 삶을 나눌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전도회의 회장이 총무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총무가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총무에게 맡기지 못하고 회장이 혼자 하게될 것이며, 담임목사가 부교역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부교역자에게 구역을 맡기거나 예배의 설교를 밑길 수 없을 것이고, 교인들이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결코 목회자의 지도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지체들간에 신뢰가 없어 분쟁과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다. 지체에 대한 신뢰란, 내가 귀한 것만큼 다른 지체들도 귀한 존재들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배려이다. 이러한 다른 지체에 대한 신뢰는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는데 꼭 필요한 요소로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교회는 이러한 신뢰를 경험하게 하고 또 회복하는 일에 힘을 쏟게 된다.
4) 지체의 관계성
바울은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15-16>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체의 상호 연결성을 말하고, 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26>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체의 상호 관련성을 말한다. 공동체안에서 지체들은 상호 연결성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체와 지체들이 함께 팀웤(Team work)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물건을 잡을 때 한 손가락으로 잡는 것보다는 다섯 손가락으로 잡는 것이 쉽고, 한 손으로 물건을 들기 보다는 두 손으로 드는것이 쉽고, 무거운 물건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릴 때는 허리와 두 발이 힘을 지탱해 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혼자 하면 한계에 부딪히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팀웤을 이루면 한 사람의 능력이라는 한계를 뒤어 넘어 몇배의 능력과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의 일을 한 두 사람이 도맡아 하는 데 익숙해 왔고, 그 결과, 한 사람의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다투고 분열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공동체교회는 그 특성상 팀웤을 필요로 한다. 교역자들이 팀웤(공동목회)을 이루고 교역자와 평신도가 함께 팀웤(평신도사역)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5) 지체의 일체성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역시 일체성이다. 바울은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4-6>라 하였으며,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27>이라 하여 모든 지체의 근원이 한 몸이요, 모든 지체의 목표가 또한 한 몸인 것을 말하고 있다. 다양하고 고유한 지체들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위의 하나됨을 지향하는 삶에서 자세하게 언급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공동체교회의 큰 원칙과 지체론은 코이노니아를 지향하는 교회, 즉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통한 교회개혁과 갱신의 기초가 되는 원리이며, 앞으로 다루게 될 교회의 조직과 생활구조, 교육과 훈련 그리고, 구체저인 라이프 스타일 등에 기초가 되기도 한다.
Ⅲ. 공동체적 삶을 위한 목회실천
지금까지 1부 공동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에서 공동체를 말하게 되는 배경과 의미, 그리고 시대적인 중요성을 말하였고, 2부 교회사에 나타난 공동체운동에서는 고대로 부터 종교개혁시대와 현대의 공동체운동을 간단히 보았으며, 3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목회원리에서는 공동체교회 목회에 필요한 큰 원칙과 지체론 관해 언급하였다. 이제부터는 코이노니아를 지햐아는 교회 즉,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목회의 실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려 한다. 1. 교회조직의 갱신
1) 조직갱신의 방향
관리 중심에서 삶 중심의 조직으로 : 대부분 교회의 조직들, 특히 교회생활을 위한 조직( 남.여선교회, 구역, 교회학교, 성가대 등 )이 사람이나 일 또는 그 조직 자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능에 치우쳐 있다는 느김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 본질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교회 본래의 모습이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코이노니아라는 삶이기 때문에 교회의 조직은 이러한 삶을 담는 그릇과 도구의 기능이어야 한다. 여전도회나 남선교회가 단순히 대상 년령층의 교인들을 관리하거나 교회의 일을 봉사하는 것으로 끝나고 코이노니아의 삶이 없다면, 여전도회나 남선교회원들의 교회생활에 여러 가지 문제의 요소를 갖는 불안한 교회생활이 될 것이다. 성가대가 찬양하는 일만 하고 교회적인 삶이 없거나, 교회학교가 교육적인 행위만 있고 공동체적인 삶이 없거나, 구역이 구역원들에 대한 관리는 철저하지만 구역 식구들간의 깊은 만남과 삶의 나눔이 없다면 모두가 같은 경우이다. 모든 조직은 교회의 한 부분이요 지체로서 교회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조직, 단일화된 조직으로 : 교회의 조직은 단순해야 한다. 교회의 조직이 복잡하면 교인들이 처음 부터 소속과 참여를 기피하거나, 아니면 열심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몇 개의 조직에 중복되어 소속하고 참여한다.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직이 그 역할을 할 수 없고, 중복되어 있는 사람들은 지쳐서 짜증스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결과는 개인의 신앙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교회생활에 손실을 가져 올 수 있다. 교회에서 많은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주일예배를 경건히 드릴수 없거나, 때로는 교회내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일들이 한 예가 된다. 교회의 조직은 단순해야 지체로서의 고유성이 분명해 지고 전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 모두가 소속하고 참여할 수 있는 조직으로 : 공동체적인 삶을 이루려면 교회의 조직이 모두가 소속하고 참여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 모두가 소속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사무적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본인들이 진심으로 소속감을 갖고 만족해 한다는 뜻이고, 모두가 참여한다는 의미는 주일예배, 성경공부, 성도의 교제, 봉사와 선교, 각 종 행사와 교회생활에 실제로 거의 모두가 참여하여 삶을 함께 하며 삶을 나누는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교회생활에서 소외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 원인이 일차적으로 조직의 문제에 있다. 가정을 보호하는 조직으로 :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이면서 교회의 기본단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앙공동체로서의 가정공동체가 건강해야 이러한 가정들이 모인 교회공동체도 건강할 수 있다. 교회의 조직은 가정을 보호할뿐 아니라 가정을 성숙시키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교회생활에서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 지게 하기 보다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예배와 행사, 교회생활이 되게 하고, 가정에서도 가족들의 시간을 빼앗지 않도록 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2) 소그룹을 활용하라
위에서 말한 조직갱신의 방향에 만족할 수있는 조직의 형태는 15-20명 규모의 소그룹을 활용하는 조직이다. 대부분의 교회조직은 종적관계를 강조하는 피라밋 형태의 조직이다. 피라밋 형태의 조직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이 끌려가는 조직으로 규모가 큰 집단을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효과적이나, 소수에 의해 다수가 소외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소그룹을 활용하는 조직은 횡적관계를 강조하는 점조직의 형태로 소속감과 참여의 기회를 주는 장점이 있고 작은 규모의 집단에 효과적이다. 소그룹은 큰 교회안의 작은 교회인 셈이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에서 : 우리 교단에 소속된 교회중에서 반 수 이상이 백명내외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작은 교회들은 피라밋 형태의 기존의 조직보다는 소그룹 형태의 조직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큰 규모의 교회에서는 기존의 조직과는 별도로 비공식조직(sub-group)으로 몇 개의 소그룹을 두거나 기존의 조직을 내부적으로 소그룹화하는 방법으로 소그룹을 활용할 수 있다. 소그룹의 전문화와 다양화 : 소그룹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은사를 따라 전문화하되, 이러한 고유한 소그룹들이 전문성을 따라 다양하도록 두는 것이 좋다. 에를 들면, 영적생활에 헌신하는 수도그룹, 각양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함께 사는 각 종 형태의 생활그룹, 교회의 각 종 일을 자원봉사하는 그룹, 교육을 연구하는 그룹, 의료선교를 위한 그룹, 독신자들의 그룹 등, 다양한 은사의 소그룹들이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잠재적인 힘을 갖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소그룹은 그 삶의 내용이 그 그룹이 존재하게 된 목적을 따라 명확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2. 교회생활 구조의 갱신
1) 교회생활 구조갱신의 방향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조화 : 모이는 교회를 교회 건물에 모이는 교회생활을 의미한다면, 흩어지는 교회는 교회 건물이 아닌 가정과 사회에서의 교회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건물에 모여 예배드리는 모습의 삶과 교회밖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 가지 모습의 삶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많은 모임보다 함께 하는 모임으로 : 교회에는 많은 모임들이 있고, 그 많은 모임에는 항상 참석하는 사람들만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 영적인 삶의 경험을 함께 나눈다는 것은 공동체적인 삶을 이루는데 중요한 내용이다. 따라서 모임에는 모든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많은 모임을 갖는 것보다는 한 번 모이더라도 모두가 참석하는 모임이 되도록 한다. 일이나 회의보다는 삶을 목적으로 :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이 나라이고 교회의 본래 모습은 성령의 코이노니아라는 삶이라고 하였다. 교회생활의 모든 목적은 성령의 코이노니아 즉,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체적인 삶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일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체가 아니며, 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공공기관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위해 존재하는 방송국도 아니다. 교회생활은 하늘나라의 삶으로 채워져야 한다. 교회생활의 조화와 균형 : 교회생활에 꼭 포함되어야 하는 필수 요소를 다섯 가지로 말한다. 다섯 가지 필수요소는 성도로서의 교제,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 성경과 생활을 배우는 교육, 교회 안밖을 향한 봉사,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점이다. 만약 어느 한 두 가지에 치우치는 교회생활이 된다면, 그 교회의 교인들은 편식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것처럼, 그르스도인으로서 건강하지 못한 개인생활과 교회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예배와 교육에 치우쳐 있고 교제와 봉사, 선교 특히 교제에 약하다. 2) 함께 하는 삶을 이루자
주일공동예배 : 주일예배를 온 가족이 그리고, 전 교인이 함께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자. 지금은 대부분의 교회가 어른들을 위한 예배와 별도로 교회학교 부서별로 예배를 드린다. 또 어른들을 위한 예배도 몇 부로 나누어 드리고 있다. 그러나 예배가 갖는 의미중의 하나는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회의 자기표현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어린이로 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어려우면, 일년에 몇 차례 뜻이 있는 주일(교회창립기념주일, 성령강림절, 종교개혁기념주일 등)에라도 함께 예배하도록 한다. 공동식사 : 음식을 나누는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으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처럼 삶을 나누는 구체적인 모습의 하나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애찬이 있었는데 이러한 애찬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된 교회의 특징중의 하나였다. 기독교를 가리켜 밥상공동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일예배후에 또는 모일때마다 함께 공동식사를 하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자기표현이 되도록 식사하는 시간을 간단하더라도 순서를 마련하여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체생활 : 공동체생활이란 수련회와 비슷하다. 그러나 수련회가 신앙에 초점을 두는 것에 비해 공동체생활은 교회생활을 훈련하는데 그 초점을 두는 것이다. 공동체생활은 교회 전체적으로 하기도 하고 혹은 소그룹별로 하기도 한다. 교회 전체적으로 할 때는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사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다듬는 시간들을 갖도록 하고, 소그룹별로 할 때는 함께 사는 삶을 위해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피드백(feed-back)을 집중적으로 한다. 공동체생활은 짧게는 하룻 밤을 지내지만, 길게는 삼박 사일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함께 하는 행사들 : 공동체적인 삶을 이루려면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를 원칙적으로 모두가 함께 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예배를 드리되 온 가족이 자리만 함께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순서를 진행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가대의 찬양을 소그룹별로 돌아가며 하거나, 성경말씀을 함께 읽는 일, 또는 공동기도문을 작성하여 함께 읽으며 기도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말한다. 음악예배를 드리되 성가대가 준비한 순서를 성가대가 발표하고 회중은 듣는 방법이 아니라, 다함께 합창이나 교창을 하며 부르는 방법의 음악예배를 말한다. 교회에는 많은 행사들이 있는데, 한 두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서고 나머지는 관람하는 것과 같은 방법보다 모두가 함께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진행하는 방법이어야 한다. 물질의 나눔 : 물질의 나눔 즉, 돈을 나누는 것은 삶을 나누는 교회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물질의 나눔은 공동체적인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초대교회에서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연보로 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헌금제도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 교회생활 에서 헌금하는 일이 물질의 나눔을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헌금생활이 제도화 되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헌금중에 목적헌금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목적헌금은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물론 주고 받는 사람들을 밝히지 않으며, 개인을 드러내거나 개인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헌금중에 교회의 이름으로 주고 받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이다. 그밖의 예들 : 함께 하는 삶으로 교회생할의 구조를 바꾸면서 자연을 가까이 하는 생활, 찬양을 많이 하는 생활, 체육을 강조하는 생활을 권한다. 자연을 가까이 하는 생활이란, 자연에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삶을 갖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nature)은 본질(nature)적인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 공동체적인 삶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찬양생활은 천국생활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설때에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분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보이는 견본으로 믿는 공동체교회에서는 찬양생활에 힘쓰게 된다. 운동경기 특별히 팀을 이루어 하는 경기는 함께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팀웤(teamwork)을 이루고 함께 사는 것을 훈련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3. 교회운영 방법의 갱신
1) 운영방법의 갱신방향
사람과 삶에 우선적인 관심을 :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교회의 본래 모습이 선령에 의해 이루지는 코이노니아라는 삶이기 때문에 , 교회의 지도자와 교인 모두가 조직이나 건물보다는 사람과 삶에 관심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조직이나 건물을 위해 사람을 잃어 버리거나 사람들의 삶에 고통을 주어서는 안되며, 사람을 얻고 사람들의 삶에 기쁨을 주기 위해 조직이나 건물을 유보할 수도 있어야 한다. 경영이 아닌 믿음의 역사로 : 목회는 교회를 섬기는 것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운영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며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며 섬길뿐이다. 세상적인 방법과 인위적인 방법에 의한 경영은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맡겨 드림으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야 한다. 사람을 동원하거나 일을 맡길때,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시행할때,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운영할때, 세상의 경영방법을 참고할 수는 있으나 전적으로 그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교회의 본질적인 것에 손실이 올 수 밖에 없다. 세상의 경영에서는 경쟁의 원리를 적용하지만 믿음의 역사는 다함께 하는 것이며, 세상의 경영에서는 때로는 물리적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믿음의 역사는 희생적 사랑으로 해결해야 한다. 교회의 운영은 믿음의 역사이어야 한다. 혼자아닌 공동사역으로 : 공동체적 삶을 위한 목회는 그 특성상 한 사람에 의한 독주와 독선의 지도력보다는 공동목회(team-ministry)의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성령의 코이노니아는 매우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삶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지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공동목회란 여러 사람의 지도자가 함께 사역하는 경우와 지도자와 평신도가 함께 사역하는 경우 혹은 두 가지 경우를 혼합하는 경우를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목회는 교회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으며,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때 그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지도그룹 자체가 보여 주는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본 받게 되는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2) 교회의 체질을 바꾸라
연역적인 체질에서 귀납적인 체질로 : 연역적(deductive)인 체질이란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하고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교회생활 습관을 말하고, 귀납적(inductive)인 체질이란 지도자가 제시하는 큰 방향안에서 교인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만들어 가는 교회생활 습관을 말한다. 하나됨을 지향하는 삶, 삶을 나누는 과정, 섬김의 자세를 큰 원칙으로 하고 지체의 다양성, 고유성, 신뢰성, 관계성, 그리고 일치성을 전제로 하는 공동체목회는 귀납적인 체질이어야 한다. 교회가 귀납적인 체질로 되면 교인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임있게 참여하는 삶이 되며, 모든 것을 결정할때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결정하여 공동의 책임감을 강하게 갖게 된다. 이러한 귀납적인 교회체질은 귀납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훈련될 수 있다. 그리고 교회의 귀납적인 체질은 각종 회의와 교육시간에 꾸준히 적용함으로 유지할 수 있다. 자원봉사 제도의 활용 : 자원봉사는 교회의 일을 할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와 사랑 그리고 재능에 감사하며, 삶을 나누는 의미로 원칙적으로 댓가 즉,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자원봉사는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서 가능하며, 이러한 자원봉사자가 많으면 교회가 순수함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은 물론 행정직원과 가능하면 교역자에게 이르기 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고려해 볼만하다. 공동체훈련을 행하라 : 공동체훈련은 앞에서 언급한 공동체생활과는 다르다. 공동체훈련은 공동체적인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성경에 근거하여 전반적으로 체계있게 경험케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생활에 관한 것은 직접 실습을 통해 경험을 해야 후에 스스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생활도 실습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공동체훈련의 내용과 방법은 후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소개할 계획이다.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목회원리에 따라 먼저 실천해야 하는 몇 가지를 언급하였다. 교회의 조직이 피라밋 형태에서 소그룹의 점 조직형태로 되어야 하고, 교회생활의 구조가 삶을 함께 하는데 목표를 두는 구조여야 하며, 교회운영의 방법이 귀납적인 체질로 되어야 한다.
Ⅳ. 공동체목회 지도력
그동안 4회에 걸쳐서 공동체목회의 신학적인 기초, 교회사에 나타난 공동체운동,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목회원리, 공동체적인 삶을 위한 목회실천에 관해 소개하였다. 이제 마지막회로 공동체목회에 필요한 지도력에 관해 말하려 한다. 앞으로 공동체교회의 구조와 공동체목회의 설계, 공동체훈련의 내용과 실제 등을 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지도자에게 필요한 의식
1) 사람 중심의 가치의식
공동체목회의 지도자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분명해야 한다. 공동체적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목회는 일이나 형식보다 사람, 사람들과의 관계, 함께 하는 삶 등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방대하지만, 그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의 주제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간단하고 명확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과 본래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목회 지도자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2) 구원사 중심의 역사의식
공동체목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구원사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역사의식이 확고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세상의 역사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의 구원을 내용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함께 말한다. 물론 두 개의 역사는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는 것이지만, 편의상 구분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눈으로 보면 교회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는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본질을 추구하는 어려운 길을 중심을 잃지 않고 가려면, 하나님의 구원사와 교회의 역사, 그리고, 성도들의 믿음이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확고한 믿음과 역사의식이 지도자들에게 있어야 한다.
3) 교회에 대한 개혁의식
공동체목회는 교회의 본질과 본래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고,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목회 지도자는 교회의 본질과 본래적인 삶에 대해 신학적으로 정리된 교회론이 있어야 하고, 바로 그 교회론을 기초로 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대한 강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2. 교회의 방향을 제시한다
1) 교회상(象)을 제시한다.
교회가 나아 갈 방향과 이루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을 글로 정리하여 표현한 교회상(象)을 제정한다. 교회의 본래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추상적이고 막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상의 제정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교회생활의 방향과 교회 전체의 방향은 물론 지도자 자신에게도 목회방향에 큰 도움을 준다.
예) ___________교회가 이루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___________교회는 , 사람을 사랑하고 공동체안에서 삶의 감격을 나누는 교회, 성서연구에 힘쓰고 교육적으로 이끌어 가는 교회, 가정을 보호하고 생활속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교회,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에서 경건을 훈련하는 교회, 도심의 휴식처로 지도력훈련으로 봉사하는 교회, 말씀과 사랑이 조화를 이루는 교회이다.
2)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교회상은 이루고자 하는 교회의 전체 이미지를 서술한 것이므로 교회의 모습을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예) __________교회가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목표들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고 공동생활을 한다. 성서연구를 귀납적으로 하고 성서일기를 사용한다. 교회의 조직을 사랑방모임으로 소그룹화 한다. 교회의 터를 자연에 마련한다. 공동체운동을 확산하고 공동체 지도력을 훈련한다.
3) 라이프 스타일( Life style )을 제시한다.
사람마다 각각 개성이 있듯이 교회도 교회마다 그 특성이 있으며, 또한 교회의 특성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교인들의 삶의 모습이 다르다. 그리고, 성령의 코이노니아 즉,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교회는 당연히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교회로서의 삶의 모습들이 있다. 이렇게 내면적인 신앙이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을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것은 방법에서 있어서도 효과적이다.
예) 공동체적인 삶을 위해 아래와 같은 삶의 모습을 가꾼다. 하나됨을 지향하고 연합하는 생활. 인격과 삶을 함께 나누는 생활. 개체가 아닌 지체로서의 생활. 자신을 객관화하는 생활 섬김의 자세로 사는 생활. 신실한 약속생활. 규모있는 시간생활. 모일때마다 찬양생활. 부드러운 언어생활. 숨은 봉사생활. 약한 자를 기준으로 하는 건덕생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책임생활.
4) 교회의 약속을 채택한다.
교회의 설립배경(교회를 처음 시작할 경우), 교회상(象), 구체적인 실현 목표들, 교회생활규범(Life style), 교회의 조직(소그룹을 활용하는)에 관한 내용들, 그외에 공동생활에 관한 내용, 성경공부 방법에 관한 내용과 지도자들을 세우는 기준 등, 교회생활을 위한 중요한 내용들을 포함하는 교회의 약속을 채택한다. 물론 이러한 일은 기초단위의 조직으로부터 제직회와 공동의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 모두가 참여하고 교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결의되어야 한다. 이렇게 채택된 교회의 약속은 후에 교회의 방향을 혼란케 하는 어려움을 예방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교회의 방향을 바로 잡아 준다.
3. 공동체목회를 위한 구체적인 기술
1) 교회적인 삶의 구조와 체질이 귀납적이 되도록 한다. 지도자와 소수 중심에서 모든 사람의 참여로, 지도자와 소수의 일방적인 지도에서 많은 사람의 생각과 힘의 연합으로, 지도자 의존적인 자세에서 자율적인 자세로, 주어진 틀에 갇힘에서 열려진 세계로 바꾼다. 2) 공동 참여를 위해 독주하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 모든 사람이 갈등을 극복하고 함께 하는 삶을 이루고,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나누고, 그래서 한 공동체의 지체로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한 두 사람이 앞에 나서서 독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3) 모든 일의 결정 과정을 민주적으로 하고 문장화 한다. 교회에서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 원인이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의 과정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공동체교회는 특별히 결정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합의된 결정 사항은 문서화하여 함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다. 4) 물리적 환경과 영적 분위기를 위해 힘쓴다. 인간의 삶은 물리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공동체교회는 작은 공간들이 필요하고, 원형형태의 좌석형태가 바람직하며, 밝고 따뜻한 색깔의 사용, 아늑한 분위기, 모임의 내용에 따라 선택된 음악의 연주등을 고려한다. 5) 내가 교회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교회(하나님)가 나를 선택한 것을 깨우친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에서 교인들이 교회를 쉽게 옮기는 것은 공동체목회에 지장을 주고 교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러한 일들 방지하기 위해 내가 교회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이 교회로 부르셨다는 것을 가르친다.(요15: ) 6) 교회의 운영은 세상적인 방법의 경영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役事)인 것을 가르친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벗어나는 원인중의 하나는 교회가 세상의 경영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경영방법은 돈에 의존하거나 사람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일을 위해 사람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운영은 성령의 역사이며 믿음의 역사이다. 7) 성령의 역사(役事)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인위적으로, 억지로, 또 무리하게 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부자유하고 짜증스럽고 사람들에 대하여 불평하게 되고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바람이 부는 것처럼, 혹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며, 기쁨이 있고 자유하며 사람들이 함께 한 마음으로 참여한다. 8) 본질의 추구나 갱신의 과정에서는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본질적인 것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공동체교회는 움직이는 공야교회와 같다. 따라서 항상 꿈과 이상을 따라 나아 가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포장되는 형식들을 끊임없이 벗어야 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지치기 쉽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도자와 교인들은 때때로 안주하려는 마음이 들게 되는데, 이것은 공동체의 큰 장애이다. 9) 자율적 신앙인이 되도록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인이며 동시에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책임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장하되, 자신의 신앙적인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한다. 지도자나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한다. 10) 믿음과 인정을 구분하여 대하도록 교육한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특징은 정(情)이 많다는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때때로 믿음을 기준으로 하는 행동과 인정(人情)을 따라 행하는 행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무엇을 잘못하였을 때, 그 일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11) 정의를 동반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가 있는 사랑이고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을 전제로 하는 정의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안에서 정의가 없는 사랑을 행하거나, 사랑이 없는 정의를 부르짖는 경우를 본다.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을 징계할 수 있으며, 또 사랑함을 알기 때문에 그 징계를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12) 중심되는 인물들을 신중하게 세운다. 교회는 지도자만큼 자란다는 말처럼 교회의 성장 가능성은 그 교회의 중심멤버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들과 같이 중심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세우는 일은 특별히 공동체교회에서 신중해야 한다. 13) 세상적인 욕심, 인간적인 욕심이 없어야 한다. 공동체목회는 교회성장에 목표를 두지 않기 때문에 목회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하며, 명예와 물질적 풍요와 같은 세상적인 욕심이 없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본질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14) 공동체적인 지도력(공동사역)을 갖추어야 한다. 교회를 위한 지도력(leadership)은 본래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teamwork을 이루는 공동사역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동체목회는 더욱 공동목회여야 한다. 지도자들의 teamwork, 지도자와 평신도와의 teamwork이 이루어져야 한다. 15) 가정이 헌신하고 가정 공동체로서의 본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교회공동체보다 가정공동체가 앞서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교회에서 지도자의 권위는 삶의 본을 보이는데 있다. 따라서, 공동체교회의 지도자는 작은 교회로서의 가정공동체가 본이 되어야 하며, 지도자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정적인 헌신이 있어야 한다.
4. 공동체목회를 위한 지도력 준비
1) 공동체 성서연구
공동체목회에서 성서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개인의 신앙의 갱신과 교회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서연구에 있어서도 성서연구의 방법은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교회의 체질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공동체교회를 지향하는 공동체목회 지도자는 성서연구에 노력해야 하며 특별히 성서연구방법의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 공동체목회에 적합한 성서연구방법은 교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함께 삶을 나누는 귀납적 성서연구이다. 이러한 귀납적 성서연구를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있는 교회안의 작은 교회, 즉 소그룹을 장(場)으로 하도록 응용한 것이 공동체 성서연구이다. 공동체목회 지도자는 공동체성서연구에 익숙해야 한다.
2) 공동체훈련 경험
생활에 관한 교육은 실습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익숙하지 않아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교회란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회이기 때문에 올바른 교회생활( 성령에 의한 코이노니아의 삶 )을 경험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한 예가 공동체훈련이다. 공동체교회를 지향하려는 공동체목회 지도자는 올바른 교회생활을 이론적으로 전하고 체계적으로 경험시키는 공동체훈련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 자신이 먼저 공동체훈련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3) 개인적인 수련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목회 지도자에게도 지도자로서의 개인적인 수련이 중요하다. 첫째로, 자신의 내면적인 것으로는 공동체목회를 위해 공동체적 자아확립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활동이 활발한 공동체를 위해 영적으로 예민할 수 있도록 영적감각의 수련이 있어야 하고, 항상 자신을 공동체안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둘째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사소통의 기본 방법이 되는 언어생활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훈련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대화적이어야 하며, 인격적인 만남과 구체적인(감정, 신뢰, 사랑과 같은)교류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셋째로,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함께 일하는 방법(teamwork, 공동사역, 공동작업)에 대한 훈련이 있어야 하고, 종의 자세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절제에 대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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