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월간산 2007년 10월호 (고교산악부탐방1)

[neve]

[고교 동문산악회 탐방] 충남고 OB산악부

김기방 교사 지도로 오세걸 등이 68년 YB·72년 OB 창립
고소연구에 권위 있는 의사 윤건중은 가셔브룸1봉 첫 등정
2011년 개교 50주, 창립 40주 앞두고 에베레스트 원정 계획

▲ 71년 60km극복 등행대회 참가선수들

산악운동의 요람이 된 고교 동문 산악회 탐방 시리즈 여섯 번째로 대전의 충남고 OB산악부를 찾았다. 서울의 양정고, 대구의 계성고, 광주의 광주일고, 부산의 경남고, 전주의 성심여고에 이어 대전 충남지방을 대표하는 충남고 산악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매월 정기산행과 수시로 나서는 해외원정 등을 통해 탄탄한 조직과 활발한 OB모임을 과시하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지며, 구성원들은 누구이며, 무슨 활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 2006년 1월 충남고 OB산악부 회원들이 소백산에서 정기산행을 가졌다.

충남고는 학교 자체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62년에 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남녀공학으로 그 해부터 신입생을 받았다. 흔히들 말하는 전통 있는 명문은 아니지만 새로운 명문으로 자리 잡은 학교다. 한국의 명문 기준은 대입합격숫자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62년 설립된 학교에서 산악부가 68년에 창립됐다. 60년대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산악운동 붐이 충청지역엔 다소 늦게 도착한 감이 없지 않지만, 학교 설립 6년만에 산악부가 창립됐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악부가 학교의 전략종목으로 지정된 것도 아니다. 창립 때부터 학교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돼 온 종목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화학 담당 김기방 교사의 지도로 산악활동을 시작했다. 한 교사의 헌신적인 지도로 그 학교의 산악활동의 흥망이 좌지우지되는 경우를 우리는 전주의 성심여고 경우에서 이미 살펴봤다.

▲ 1)68년 계룡산 등산대회 2)70년 1기 산악부원 졸업식. 앞줄 중앙이 김기방 교사. 3)71년 60km극복 등행대회 준우승 시상식. 시상자는 이효상 전 국회의장. 4)73년 계룡산 남매탑에서 신입생 환영등반. 5)76년 설악산 하계등반. 6)86년 랑탕리룽 정상에서. 맨 왼쪽이 윤건중.

68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 김기방 교사는 호연지기를 키울 목적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계룡산 등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당시 산에 다녔던 멤버들이 8기(70년 졸업)인 김상돈, 유은식, 유승우, 유재홍, 오세걸 등이다. 오세걸은 68년 2학년 시절 대한산악연맹에서 주최한 제1회 하계산간학교 전 과정을 수료하고 받은 수료증이 제1호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산악활동에 열성적이었다. 이들이 주축을 이뤄 충남고 산악부를 탄생시킨다. 그 해 4월의 일이었다.

당시는 남녀공학이라 학교에서는 남녀가 같이 하는 모든 행사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김기방 선생의 요청으로 산악부 학생만큼은 여학생들의 안내등반을 학교에서 허락했다. 단연 화제를 모았고, 남학생들은 서로 산악부에 가입하려고 다퉜다. 산악부는 순풍에 돛 단 듯 순탄하게 흘러갔다.

창립 멤버인 8기들이 졸업하자, 9기들은 후배들을 이끌고 전국 단위의 등산대회에 출전하는 등 본격 산악활동에 나선다. 9기들은 윤건중, 유한성, 안종찬, 복명수, 오정택, 김홍섭 등이 주축을 이뤘다. 이들은 전국대회 첫 출전인 71년 팔공산 60km 극복 등행대회에서 준우승하는 쾌거를 이룬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전국의 쟁쟁한 팀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준우승한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어 충남연맹에서 독자적으로 주최한 계룡산 등산대회에서 72년부터 74년까지 3연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충남고 산악부의 명성을 전국에 각인시킨 쾌거였다. 3연패로 영원히 충남고 품에 안긴 우승기는 지금까지 교장실을 빛내고 있다. 당시 멤버들이 11기 민경일, 김찬모, 한성희, 김종관, 유창학, 12기 차용석, 김영민, 13기 우영순, 14기 서찬석, 박계훈, 김두현, 김세곤 등이다.

재학생 전성기는 이들이 활동하던 바로 그 시기였다. 창립 후 2년간 내공을 다지는 준비기를 거치고, 4년여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점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 산이 주는 교훈이고, 삶의 이치다. 충남고는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산악부 신입생은 계속 받기는 했지만, 많은 활동을 하지 못하고 명맥만 유지하다가 80년 들어 대입정책의 변화로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만 12년간 굵고 짧게 활동한 충남고 산악부였다. 한 번 핀 꽃이 다시 피우지 못하고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언젠가 다시 피울 날이 올까?

대전·충남지방 산악운동의 요람·산파역할

재학생 산악부가 없어졌다고 해서 산악활동까지 멈춘 건 아니다. 충남고 산악부 창립 주축인 8기들과 이들 이후 전성기 시절의 멤버들이 졸업하자, 자연스럽게 OB 모임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8기 이후 산악부 졸업생 3기수가 모여 드디어 72년 충남고 OB산악부를 발족시켰다. 초기 회원 20여 명이 모여 조촐하게 출발했다. 고교 산악부에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에서 산악활동을 한 졸업생까지 문호를 넓혀 회원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이주찬(4기·66년 졸·61세)이 대학에서 동문들과 함께 산악활동한 경력으로 추대된 경우다. 

OB산악부는 재학생 때보다 더 활발하게 산악활동을 펼쳐나갔다. 매월 둘째 목요일 모임을 가지고, 그 주 토요일에 정기산행하는 패턴을 3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가 OB창립 35년째다.

지금은 다들 40~50대가 됐지만 당시 20대 시절엔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다. 완행버스를 타고, 20㎏에 달하는 무거운 군용 배낭을 멘 어깨에 굳은살이 박이며 걸어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방방곡곡의 산을 올랐다. 지난 74년엔 계룡산 황적봉 개척등반을 했다. 국내엔 거의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였다. 산행 횟수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500여 회가 넘는다. 부정기 산행모임까지 따지면 훨씬 더 된다. 산에 오른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 1)86년 랑탕리룽 남서릉 C3에서 정상을 향해서. 2)90년 가셔브룸1봉에서. 3)2005년 설악산 하계 등반 노적봉 리지에서.

국내 등반으로 내공을 쌓은 이들은 해외원정도 수차례 다녀왔다. 알피니즘 등반시대를 맞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74~76년 에베레스트 원정 훈련대에 9기인 오정택과 윤건중이 참여했다. 80년엔 일본 북알프스 원정대에 작고하신 에코클럽의 김근원 선생과 유창서, 서정학씨 등과 함께 12기인 차용학이 참여했다.

82년엔 대전쟈일클럽의 네팔 고줌바캉(7,806m) 원정에 윤건중이 동행했다. 85년엔 비록 실패했지만 전국 합동대로 조직된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17기인 최태수가 이름을 올렸다. 90년엔 대전연맹 주최로 파키스탄 가셔브롬Ⅰ봉(8,068m)에 9기 윤건중과 12기인 차용석이 참여해 한국인으로 첫 등정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특히 윤건중은 의사이면서 대장으로 참여하는 기염을 토했다. 윤건중은 이 뿐만 아니라 고산에서 고소에 관한 연구로 의학계에 상당한 권위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06년 5월 충남고 산악부 동문 처음으로 김영일(오른쪽)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91년엔 24기 송원빈, 25기 신형식, 26기 김형주 등이 일본 북알프스에 올랐다. 93년엔 차용석이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에, 94년엔 김홍섭이 네팔 캉첸중가(8,586m)에 각각 도전했다. 2004년엔 20기 한만영이 대한산악연맹 주최의 오지탐사대 원정 멤버로 참여했다. 2006년 대전연맹 주최로 떠난 히말라야 원정대에 9기 윤건중과 24기 김영일이 참여해, 김영일이 마침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충남고 산악부 창립 38년 만에, OB산악부 출범 34년만에 세계 최고봉에 우뚝 서는 금자탑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충남고 OB산악부 단독원정은 아직 없다. OB산악부들은 이에 2012년 개교 50주년, OB산악부 창립 4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르기 위해 마침내 2011년 충남고 주최로 에베레스트-로체 원정 계획을 세웠다. 벌써 원정계획서까지 만들어놓았다. 2011년 3월20일 출국해서 5월31일 귀국할 때까지 73일간의 모든 일정을 과정별로 짜놓았다. 성공하고 귀국하면 학교에서 다시 산악부 재건이라는 논의가 제기될지도 모른다. 모두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작년 동문 산악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

▲ 대산련 주최 하계산간학교 1호 수료증을 오세걸이 받았다.

OB들의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매년 1명에게만 수여하는 계룡산악대상을 벌써 4명이나 차지했다. 이 상은 25년 이상 산행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단위산악회 회장을 역임하고 산악활동에 기여한 공로가 큰 전국적 인물에게 수여한다. 81년에 이주찬, 87년엔 윤건중, 99년에 오세걸, 2004년에 차용석 등이 받았다. 윤건중은 현재 대전산악연맹 회장을 맡고 있으며, 차용석은 대전등산학교 전 학감을, 서찬석은 현 교장을 맡고 있다. 사실상 대전 산악계에 관한 일은 충남고 산악부 OB들이 다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열성적인 활동은 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급기야 OB산악부 부인모임이 논의됐다. 80년대 초반 서너 명 모이던 부인들이 의기투합, “우리들끼리 모일 게 아니라 전체가 다 같이 모이자”고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족된 부인모임은 매월 한 차례 부인들끼리 산행도 하고, 때로는 남편들과 같이 모여 정을 나누기도 한다. 부부가 같이 모이니, 회원들의 애경사 때 일손을 드는 것은 물론 화합을 다지는 데에도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주찬 초대회장은 “회원들 간은 친형제 이상의 관계를 수십 년간 유지하고 있다. 충남고 OB산악부는 학교 사료관을 짓는 계기로 산악부 활동을 되짚어보고 역사성 있는 자료를 정리하고 한데 모아야 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며 “단독 히말라야 원정을 지원함과 동시에 다녀와서 모교에 다시 한번 산악운동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등산 시작 후 40년간 똑같은 몸무게 유지”
몸과 마음이 함께 산에 가야…고교생이 국토종주 3천리 참가

▲ 지난 9월5일 대전 성모병원앞 식당에서 충남고 산악회 OB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차용석, 박계훈, 윤건중, 한만영, 서찬석, 이주찬, 오세걸씨 등이 과거 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이 왜 산에 올라갈까라는 질문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영원한 화두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여태까지 나온 이유보다 앞으로 나올 이유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왜’에 접근하기 위해서 올라가게 된 계기를 분석해보면 조금 더 쉽게 원인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9월5일 저녁 대전 성모병원 앞 식당에서 어릴 때부터 산을 즐겨 찾은 충남고  OB산악부를 만났다. 이 날 회원들은 4기부터 20기까지 모두 7명이 참석했다. 이들도 역시 끈끈한 사나이들의 정을 30년 이상 맺어오고 있다. 이들에게 어떻게 산에 가게 됐는지 물어봤다.

“어릴 때부터 난 몸이 약했다. 운동으로 뭘 할까 고민하다 등산을 택했다. 처음엔 단순히 건강을 위해 선택한 등산이 나중에 나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좋은 공기 마셔 신체 튼튼해지고, 뜻 맞는 동료들과 함께 산에 오르니 정신까지 맑아져 너무 좋더라. 고교 당시 몸무게가 59㎏였는데, 한번도 늘지도 줄지도 않고 아직까지 그 몸무게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게 다 산이 주는 혜택이 아닐까 생각한다.”-이주찬(4기·61세)

“집에서 부모님이 산에 가기를 권했다. 싫으면 더 이상 가지 않았을 텐데, 가면 갈수록 끌리는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산에 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산에 가면서 몸만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몸과 마음이 함께 가야 한다. 몸만 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고, 나아가 산을 단순히 유희와 오락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일치돼야 일의 효율도 있고 성과가 높듯이, 몸과 마음이 같이 가면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좋아진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오세걸(8기·57세)

“산악부에 가입하고 등산하게 된 뚜렷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산악부에 들고나서 산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직까지 선명하다. 지금 산악계에 붐을 일으키고 있는 백두대간 종주의 원조격인 국토종주 3천리라는 행사가 70년대에 있었다. 제주 마라도에서 출발해서 향로봉까지 5개년 계획으로 전국 각 시도 산악인들이 릴레이로 마친 행사였다. 당시 충남 구간에 하기로 돼 있었던 대학생이 갑자기 불참하는 바람에 고교생인 내가 대타로 참석하게 됐다. 방학 시작 4일 전이었는데도, 학교에서 결석 처리 않고 도 대표로 뽑혀 산에 간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우쭐하게, 한편으로 뿌듯하게 했다. 그 뒤 의대에 진학했지만 한번도 산을 소홀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올랐다.”-윤건중(9기·56세)
“사람이 좋아 산까지 좋아하게 됐다. 특별한 의미나 계기도 없었다. 막연히 오른 산이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지겹거나 재미없었던 적이 전혀 없었다. 일본 북알프스, 낭가파르밧, 랑탕리룽 등 해외원정에 많이 다녀왔다. 그래도 아직 산의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 그만큼 산이 어렵다.”-차용석(12기·53세)

역시 산은 어렵다. 오르기도 어렵고, 주는 의미도 어렵다. 또한 인간이 산을 오르려는 의미를 파악하기는 더 어렵다. 어중이떠중이가 하는 정도의 의미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 그 의미는 신만이 알고 있을까? 아마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성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인간 본연의 자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글 박정원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