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 재 란 (서명 또는 인) | ||||
이장 |
노인회장 |
새마을지도자 |
개발위원장 |
부녀회장 |
육일시 사거리에서 산이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있는 마을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가시와 오촌동으로 나뉜다.
1. 마을기본현황
인 구 수(명) |
가 구 수(호수) |
토 지 면 적 (ha) |
일반작물 |
|||||||||
총 |
남 |
여 |
총 |
농가 |
비농가 |
총 |
전 |
답 |
임야 |
기타 |
특작물 |
배추, 고추, 참깨, 고구마 |
87 |
37 |
47 |
42 |
42 |
0 |
184 |
23 |
31 |
124 |
6 |
주소득원 |
벼 |
2. 마을 성씨분포
성 씨 |
세 대 수 |
성 씨 |
세 대 수 |
성 씨 |
세 대 수 |
여흥민씨 |
19 |
해남윤씨 |
2 |
풍양조씨 |
1 |
김해김씨 |
4 |
무안박씨 |
2 |
청송심씨 |
1 |
원주이씨 |
6 |
해주오씨 |
1 |
밀양박씨 |
4 |
동래정씨 |
1 |
공주이씨 |
1 |
3. 행정조직
이 장 |
민경석 |
새마을이지도자 |
민경을 |
개발위원장 |
이이근 |
부 녀 회 장 |
박정심 |
노 인 회 장 |
김경재 |
청 년 회 장 |
민홍준 |
4. 마을회관
• 위 치 : 마산면 오호길 85
• 설립일 : 1993.10.10
• 부지면적 : 337㎡
• 건축면적 : 99.0㎡ (1층 99.0㎡, 2층 15.0㎡)
• 사업비 지원(천원) : 1993. 회관신축 30,00 (보조 25,000 자담 5,000)
2007. 회관보수 19,680 (보조 15,000 자담 4,680)
<마을 회관>
5. 주요시설물
- 해당없음
6. 민간조직
구 분 |
조 직 연 도 |
계 원 수 |
중 요 내 용 |
비 고 |
동계 |
1870 |
120 |
마을총회 |
|
부녀회 |
1970 |
70 |
어른을 공경하자 |
|
노인회 |
1990 |
36 |
화합하는 마을 |
|
청년회 |
1982 |
37 |
최초 마을 표지석 세움 |
1994년까지 대동계가 유지되었으나 현재는 마을총회로 동계가 행해진다.
매월 어버이날 무렵 마을에서 경로잔치를 열며 자금은 동계자금에서 충당한다.
7. 역대이장
연 도 |
이 름 |
주 요 사 업 |
비 고 |
1900~1910 |
박치삼, 민한중 |
||
1910~1920 |
민한중, 박유선 |
||
1920~1930 |
박유선, 민용기 |
||
1930~1940 |
민청기, 박유진 |
||
1940~1950 |
박유진, 민준배 |
||
1950~1960 |
박상호, 민인식 |
||
1960~1970 |
민호배, 박상호 |
||
1970~1980 |
민호배 |
||
1980~1990 |
민경을, 민경만, 민경윤, 김점재 |
||
1990~2000 |
민경을, 민경석, 이이근 |
||
2000~2010 |
민경을, 민경석, 민옥기 |
||
2010~2012 |
민옥기, 민경석 |
8. 마을형성 및 입향
1800년경에 道康金氏 김도경이 오호에 선산이 있어 산이면에서 이주 정착하게 되었음. 현재는 여흥민씨가 많이 살고 있음. 1850년경 민치한(閔致翰)이 마을에 들어올 당시, 양반들의 기세를 말하는 것이었다고도 한다. 또는 이 마을을 스님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중터라고도 하며 맹씨들이 살았다고도 한다.
오호리 남쪽은 증바위(범바위)라고도 불리우는 산이 우뚝 솟아있고 동쪽은 마산의 대표산인 역마산이 아름답게 달리는 천리마처럼 차지하고 있어 떠오르는 찬란한 아침해를 바라보며 기상을 펴던 산이다.
북쪽엔 학의리 뒷산 뒷봉산과 산이면 주성산이 추운 겨울을 막아주어 따뜻하고 포근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서쪽엔 공룡화석지인 우황리가 한눈에 들어오며 주홍빛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면 저절로 한소절의 시구절이 생각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마을이다.
9. 지명유래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옛 지명)
오호는 마을의 지형이 새우처럼 보이고 저수지(모가시-방죽)안에 둥근산의 일부가 남아있어 새우가 구슬을 희롱하는 것 같은 형상이라고 하여 그 속명을 옥하시(玉河)로 불리웠다고 한다. 또 다른 지명유래는 오호리의 오 는 민씨가 이곳에 이거하여 거주할 때 양반들의 기세가 살아있어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한다. 그 양반들을 5개 가시에 비유하여 오자가 유래되었으며 호는 마을의 큰 저수지인 오가시 방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주 이씨가 이주로 1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1600~1700년경에는 아산맹씨 고불 맹사성의 후예가 잘못하여 귀향와 집성촌을 이루어 산일면(山一面) 옥화리(玉花里)로 불리우며 130호이상 번창하여 후동에 기와와 옹기를 구웠던 가마터가 지금도 남아 있고, 대홍샘이라는 들샘이 있어 공동우물이 1960~1970년대까지 나무백일홍이 활짝피며 존재했으나 농지 정리를 하면서 없어 졌다.
1700~1800년경은 산일면이 없어지면서 마산면 노하리 지명을 받게 되었다. 부촌이었던 옥화리에 옥(玉)자와 노하리의 하(下)자를 다서 옥하, 내천(川)자 개울이 있는 곳이란 뜻의 시내천(시)자가 붙어 [육일시],[옥하시] 이렇게 불리었다. 신마산 오호리란 지명은 금자재 1호지, 2호지, 용반 3호지, 학의 4호지(오호리), 오호지, 일제시대때 농토는 넓으나 물이 없어 천수답이었던 관계호, 황산면 청룡앞 북구지를 막아 간척사업을 함으로 오호지가 되었다 전해진다. 옥화마을에 맹씨 중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오호앞 산을 천리마산이라 불리는데 넘어에 있는 황산면 소래산 꼭대기가 보일락 말락 하는데 소래산 때문에 도적을 많이 맞는다고 지나가던 스님(중)이 들어와 이야기를 하자 천리마산에 돌무더기로 성을 쌓았으며 그후 역병이 돌아 동네가 몰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스님(중)의 묘지가 지금도 남아있어 농어촌 도로를 내면서 이장해 주었다.
◯ 가락골 : 오호 북쪽에 있는 골짜기
◯ 가잿골 : 오장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가재처럼 생김.
◯ 건촌고개 : 갓재, 오호 서북쪽, 산이면 노송리 건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 구시 둠벙 : 오호 동쪽에 있는 둠벙. 구시(구유) 모양으로 되었다.
◯ 구실섬 : 오호 남쪽에 있는 섬. 구실(구슬)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 당나드리 : 산막개 동쪽에 있는 개. 당집이 있었다.
◯ 땅재 : 오호 서남쪽. 황산면 일신리로 넘어가는 고개. 당집이 있었다.
◯ 메물소 : 오호 남쪽에 있는 작은 소. 저수지 축조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고깃배가 올라왔다.
◯ 멧둠벙 : 목디기둠벙 남쪽에 있는 둠벙. 여름에 아이들이 멕감았다.
◯ 바우배기 둠벙 : 버드나뭇벙 위쪽에 있는 둠벙.
◯ 버드나뭇 둠벙 : 멧둠벙 남쪽에 있는 둠벙. 버드나무가 있었다.
◯ 벙 바우 : 오호 동쪽에 있는 바위. 부엉이처럼 생겼다.
◯ 산너멧재 : 오가시 남쪽. 황산면 일신리로 넘어가는 고개.
◯ 산막개 : 산막개 가에 있는 마을.
◯ 오가시 : 오호, 오호리 , 학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
◯ 오가시 방죽 : 오호못, 오호 저수지 오가시 서남쪽에 있는 못.
◯ 오장골 : 오호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오천 : 오촌, 오천동, 온천동, 오호리 동쪽에 있는 마을.
◯ 웃노두 : 당나드리 동쪽에 있는 개. 위쪽에 노두(징검다리)가 있었다.
◯ 작은 구실섬 : 구실심의 작은 섬.
◯ 중당골 : 중방우 위쪽에 있는 골짜기.
◯ 중바우 : 산막개 북쪽에 있는 바위.
◯ 큰 구실섬 : 구실섬의 큰 섬.
◯ 통샘골(통샛골) : 오호 동북쪽으로 후동 넘어 골짜기에 물이 잦난 둥그런 샘이 두 개가 있었음.
◯ 하냐구 둠벙 : 하냥우둠벙. 오가시 남쪽에 있는 큰 둠벙.
◯ 홍살매 : 오가시 동북쪽에 있는 산. 홍씨의 묘가 있다.
◯ 시뚤둥범 : 구서둠범위에 위치했다. 여기에 있는 돌은 채취하여 낫과 곡괭이 등을 가는 돌(싯돌)로 사용하였다.
◯ 쌍샘골 : 오호 원부락과 오천동 사이에 두샘이 나란히 있었는데 나중에 하나로 만들어 허드제(빨래터) 셈터로 쓰이고 농업용수로 썼던 골짜기이다.
◯ 후동 : 옛 옥화리의 가마터가 남아있던 오호 동북쪽의 15호 이상의 마을
◯ 사짐매 : 오호 동남쪽에 위치한 10여호의 마을
◯ 등생이 : 소의 등처럼 넓은 농토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10. 문화유적
호수안에 정자를 세워 놋동이를 만들어 술을 담아놓고 풍류를 즐길만큼 부촌이었음. 지금도 그 주축들이 남아 있음.
11. 주민생활상
마을의 주 생업은 농업으로 쌀을 주 소득원으로 하고 있으며, 밭작물로는 배추, 고추, 참깨, 고구마를 재배한다. 젊은이들의 도시진출 등으로 노령층이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음. 마을 젊은이들은 어르신을 공경하며 효를 중시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
12. 교육
1960년대 훈장 박치삼이 동네 사랑방에서 서당을 운영하였는데 1975년쯤 없어졌음.
13. 민속
약 50년 이상 농약을 하며 정월대보름부터 하루달까지 동네를 돌았고 지금 징, 장구 2점, 꽹과리 등이 남아있다.
14. 미담
매년 5월 8일 무렵이면 경로잔치를 열어 어르신들에게 손수 준비한 음식을 마련하는 잔치를 열어 효를 실천하고 있으며 자금은 동계자금에서 충당한다.
15. 특기사항
◯ 마을 오가시 방죽은 아홉골짜기의 물이 합류한 곳으로 마을의 오가시 8.15 광복후 전염병이 돌때 이 방죽의 물을 길러서 떡을 해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인근사람들이 이 물을 길러 먹었다고 전해온다
◯ 현재의 마을회관이 예전에는 방앗간이었으며 마을에 연자방아도 있었는데 없어졌음.
◯ 1970~1980년대에까지 낚시터로 유명하여 서울 새벽낚시회에서 낚시대회를 3~4회씩 개최하여 부수입원이기도 했던 오호지.
◯ 1급수에서만 자라던 밀물새우, 징검새우, 밀물장어, 가물치, 잉어, 쌀붕어, 거북(자라) 등이 서식하고 개아래 긴둠벙에선 대압(조개), 파래, 감태 등이 자라 문전옥답과 산에는 고사리, 치나물, 버섯류 등이 70년대까지 풍부하여 풍요롭고 아름다운 좋은마을이다.
16. 인물
성 명 |
출생 년 월 일 사망 년 월 일 |
주요 경력 및 수상내역 |
참 고 문 헌 |
민현동 |
1961 |
인천연수 경찰서 경정 |
|
민동인 |
1958 |
대정 세무서 과장 |
|
민경조 |
1932 |
한국전쟁 참전 용사 |
|
민경옥 |
향교 전교 |
||
민용기 |
초대 마산 농협 조합장 |
17. 도움주신 분들 : 민옥기,민경조, 민서기, 임필근, 민경진
※ 오호리 마을 사진 자료
|
|
오호리 마을에서 축구대회 상 |
오호리 마을 주민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