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절정을 호흡하며 달리는 춘천마라톤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한 해 동안의 훈련 성과를 확인하기에 이상적인 무대이다. 많은 마라토너들이 가을 단풍의 정취와 의암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등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춘천마라톤 코스에서 자신의 최고기록 달성을 목표로 각자 나름대로의 훈련을 하며 대회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오다.
일요일 새벽 3시 20분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전날 챙겨놓은 준비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내가 속한 마라톤동호회 주주클럽 회원들이 춘천대회장까지 단체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한밭수목원으로 걸어간다.
버스에 오르자 먼저 탑승한 클럽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자리를 잡고 토막잠을 청해 보지만 걱정 반 설렘 반 머릿속은 복잡하다. 전조등 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문막휴게소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 다시 버스에 오른다.
7시 40분 경 대회장인 공지천에 도착한다. 맑고 상쾌한 아침공기가 폐부까지 시원하게 전해진다. 자봉들과 회원들이 분주하게 주주호텔을 설치한다.
나이 50이 넘어 시작한 마라톤.
작년 여름 2년에 한 번씩 하는 직장인 건강검진에서 키 180cm, 체중 84kg, 혈압 150/100, 과체중에 고혈압 위험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체중을 줄이던지 아니면 고혈압 약을 복용하라고 처방했지만 고혈압 약은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말에 고민하다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즐기던 육식을 끊고 현미밥과 야채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건강증진센터에 등록하여 트레이너의 지도에 따라 주 3~4회 밀(런닝머신) 위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전신 근육을 골고루 단련시킬 수 있고, 심폐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매우 좋은 운동이다.
처음에는 5km를 뛰고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30분도 뛰지 못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몸이 차츰 적응하기 시작하여 조금씩 운동시간과 거리를 늘려나갔고 1시간에 10km를 달리고도 호흡이 편해졌다. 체중계에 올라 갈 때마다 눈금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혈압도 조금씩 낮아지는 것이 신이 났다. 운동을 시작한 첫 주에는 2kg이 감량되고 그 다음부터는 매주 1kg씩 체중이 줄어들어 한 달이 지나자 5kg이 줄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체중 감량 속도가 느려져 한 달에 1~2kg정도 줄어들었다.
어느덧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체중은 12kg이 줄어 72kg으로, 혈압은 120/85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다이어트는 성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방법을 물어보면서 관심을 보였고 부러워했다. 이제는 어렵게 만든 적정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곧바로 등산을 같이하던 친구가 있는 마라톤 동호회 대전주주클럽에 가입했다. 첫 번째 정달 모임에 나가자 팀장과 회원들이 가을의 전설에 함께 하자며 환영해 주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내가 속한 대전주주클럽은 카이스트운동장에서, 유등천변에서, 보문산에서, 계족산 임도 등에서 주 3~4회 정기적으로 훈련을 한다. 때대로 몸이 피곤하여 달리기가 귀찮고 게을러질 때도 정달 훈련에 참석하여 회원들과 함께 달리다보면 새로운 활력을 얻곤 한다, 정달에 열심히 참여하고 동호회카페 활동을 통해 회원들과 친목을 다지면서 전국 각지의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했다. 이제 나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마라톤이다. 10년 넘게 매주 일요일마다 해오던 등산도 뜸해졌다. 한 개 한 개 완주메달이 늘어나면서 완주메달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과유불급,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 충분한 휴식 없이 계속 이어진 훈련과 대회출전으로 왼쪽 무릎에 부상이 왔다. 한의원과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하고 ‘때로는 휴식도 훈련’이라는 풀코스 100회 완주 경험의 선배 충고를 떠 올리며 휴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첫 주 공주동아마라톤에서 다시 풀코스를 힘겹게 완주하고 왼쪽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어 정형외과에서 서너 번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목요일 밤 유등천변을 km당 6분 페이스로 10km 조깅을 하면서 마지막 몸 컨디션을 점검했다. 다행히 걱정했던 무릎 상태는 양호했다.
대한민국 마라톤 대회의 대명사 춘마
강원도 춘천시 의암호 순환코스에서 열리는 2012 조선일보 춘천국제마라톤대회(조선일보사·춘천시·스포츠조선·대한육상경기연맹 공동주최)는 2만5000여 명이 풀코스(42.195㎞)와 10㎞ 부문에 참가하여 레이스를 펼쳤다. 올해 대회엔 IAAF(국제육상경기연맹)가 인정하는 로드 레이스 최고 등급인 '골드 라벨'이 붙으면서 외국 선수들의 관심이 예년보다 커졌다.
이번 대회 풀코스 참가자 2만여 명 중 20대는 남녀 통틀어도 700여명뿐이고, 40~50대 남성이 80% 가까이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30대 중후반부터 마라톤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달릴 채비를 서두른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주주회원들과 준비운동을 한다. 부상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준비운동(웜업)과 마무리 운동(쿨링다운)이다.
처음으로 가을의 전설을 쓰다.
손을 모아 주주파이팅!을 외치고 출발 구역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참가인원 2만 5천명, 주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문득 말아톤에 입문하고 지내온 지난 10개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만감이 교차한다. 다른 지방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몇 번의 풀코스 완주 경험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춘천마라톤대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과 흥분을 느끼게 한다.
드디어 9시가 되자 세계적 선수들의 출발 신호가 가을 아침을 가른다. 이어서 A그룹, B그룹이 머나먼 고행의 길로 향하지만 내가 속한 E그룹이 출발하려면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다.
심장이 뛴다. 9시 20분 경 배동성 MC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발 신호에 맞춰 긴 호흡으로 초조함과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고 E그룹 4시간 페이스메이커(이명희)를 따라서 출발한다. 누군가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 코스 위의 등대라고 했던 소리가 생각난다. 참가자들이 무리하지 않고 코스를 지키며 뛸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고르며 왕복 6차선 대로를 달린다. 초반 언덕 구간은 보폭을 줄여 편안하게 오른다. 4km 지점에서 취타대가 멋진 응원을 하고, 8km지점 터널 속을 지나면서 지르는 마라토너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며 흥분시킨다. 10km 지점인 의암댐을 지나고 급수대에서 물 한 컵으로 갈증을 달랜다. 속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을 누르고 후반을 위해 힘을 비축하며 단풍과 의암호가 어우러진 절경을 만끽하며 천천히 달린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 달리고 있는 주자들의 모습, 그들의 발자국 소리에 온몸이 전율한다.
약 300m 오르막이 강원 애니고등학교까지 이어지지만 비교적 편안한 구간이다. 급수대에서 물 한 컵을 마신다. 반환점이 있는 신매대교 구간은 주로가 좁다. 주자가 많이 모여 있어 자칫 서로 부딪치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29km 지점, 언덕이 턱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일명 「깔딱고개」다. 숨이 조금씩 차오른다. 페메와 구령소리에 맞춰 ‘영차! 영차!’를 외치며 오른다. 제자리에서 맴돌 듯 언덕을 벗어나니 드디어 내리막길이다. 오르막이 이어지는 춘천댐 구간을 지나자, 걷는 주자가 늘어난다.
33km 지점을 지나자 도로가 넓어지면서 시야도 탁 트인다. 심호흡을 하면서 시선을 20m 전방에 두고 페이스메이커와 속도를 맞춰서 전진한다.
35km 지점부터는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며 언제나처럼 고통이 밀려온다. 서서히 지쳐가고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다. C그룹, D그룹 주자들 중에 쳐진 사람들로 주로는 꽉 차 있다. 마음으로 다시 완주의 의지를 다지고 호흡을 길게 하면서 페이스메이커의 구령에 맞춰 달린다.
오른쪽 무릎에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일단은 끝까지 걷지 말고 완주해야하기에 36km 지점에서 페이스메이커를 보내고 속도를 조금 늦춘다. 아름다운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달리는 물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에 몸부림치며 달리는 걸까? 한 발 한 발 힘겹게 발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소양2교를 지나자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다른 대회에서는 시민들이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들과 실랑이를 벌여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춘천마라톤은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 분위기다. 취타대와 주민들로 구성된 농악대 그리고 군인, 학생들의 응원과 박수가 지친 몸에 활력을 준다.
40km 지점에 설치된 전자 매트에서 나오는 소리가 반갑다. 긴 여정의 끝이 보인다. 이제 2.195km만 가면 된다. 소양강처녀상이 보이고 누군가의 멋진 색소폰 연주가 들린다.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젖 먹던 힘까지 솟아난다. 사람의 다리가 정말 무섭다. 마지막 물 한 컵을 마시고 점점 또렷해지는 정신력으로 달린다. 두 팔을 치켜든 채 승리의 포즈를 취하면서 골인점을 통과한다. 마지막 남은 고통과 절망을 털어 버리는 순간, 벅찬 감동과 환희의 물결도 그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4시간5분 42초. 올해 초 마라톤에 입문하여 몇 번의 풀코스 완주 경험이 있지만 서브4를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춘천마라톤에서 기록은 3시간 59분 즉 서브4가 목표였다. 비록 목표했던 서브4의 기록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숙제 하나를 끝내니 후련하고 뿌듯하다.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이 홀가분해지며 평화가 가슴 한구석에 밀려온다.
갈 때까지 가 보자.
누군가의 지금 삶의 모습을 보려면 그 사람이 여유 시간에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무엇 하면서 보내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올해 나는 주주클럽 회원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이 50이 넘어 마라톤을 시작했다. 좀 더 젊은 나이에 마라톤의 매력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 나는 마라톤을 하고 있고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타 대회는 서브3 기록을 달성한 주자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지만 춘천마라톤대회는 10회 완주자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에 기록인 서브3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10년을 춘천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여 완주한다는 것도 대단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철저한 자기관리를 잘 했다는 의미에서는 더욱 값진 기록이 아닐까.
이제 정년까지 9년 남았다. 이제 춘천마라톤 첫 완주를 끝냈으니 정년까지 매년 춘천마라톤에 출전하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에 욕심내지 않고 부상 없이 꾸준히 오랫동안 마라톤을 즐기기로 다짐해본다.
춘천마라톤은 수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과 열정에 고통과 인내를 더하고 환희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끝으로 자원봉사 하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완주하신 모든 분들께는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될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참가자 모두가 가을의 전설이고 모두가 챔피언입니다.
첫댓글 난 이날 의암호를 품고 서 있는 콘도에 직원결혼식 참석으로 가는데 혹시나 도로가 막히지 않을까 걱정으로... 다행이 출발점 앞을 지나가는데도 전혀 막힘없이 잘 빠지더군요.
혹 산찾사 오나싶어 문자 했더니 이번엔 불참 그 다음주 서울중앙 마라톤 참석한다는 소리 들었는데 황태자님이 참석하셨네요.
마라톤 입문기 읽으니 나도~? 하지만 그냥 참을 랍니다. 건강하게 주루를 달리는 황태자님을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잘 보고 갑니다.
모두들 대단합니다.
도전하는 자세에
중간에 얘기했듯 도전은 아름다운것,자기 체력에 맞게 도전하시고,기록에 넘 신경쓰지 마시고 10회 꼬
또한,
기회가 된다면 서브3까지 도전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