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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스크랩 24강 신명기 (1) 쉐마
여영 김영애 추천 0 조회 65 11.02.11 12: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결혼을 해서 아내가 참 착하면 행복할 것이고, 아내가 못되면 그야말로 신학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모세는 나이가 들어서 자기 사역을 접고, 마지막 고별설교, 이스라엘 40년간 파란 만장의 세월을 걸어온 그 40년간을 회고하면서 모세는 회한의 설교 아니면 고별설교를 하게 됩니다. 고별설교가 담긴 책이 신명기란 책입니다. 신명기도 교회에 거의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기껏해서 부흥강사가 와서 28장에 있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어쩌고 저쩌고. 그 복받는 얘기 외에는 하나도 알 바 없는 거에요. 여러분, 모세가 들으면 많이 섭섭할 일이죠. 설교를 갖다가 복받는 그것만 들으면 어떻게 해요. 신명기는 정말 중요한 책이니까, 짤막한 책이고 뭐 그리 큰 책도 아닙니다. 모세가 설교를 하룻동안에 한 세 번 한 것같거든요. 하루 정도에 한 것입니다. 때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압 평지까지 인도했을 때엔데, 장소는 여리고 맞은 편 모압 땅입니다. 설교를 하는데, 본문은 레위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레위기의 주석을 쓰고 한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의 내용을 하는 데, 제가 볼 때는 주석 설교도 아니고, 강해 설교도 아니고, 아주 프리하게 해요. 아주 평이하고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해요. 오히려 본문보다 짧아지게 설교를 하는 거에요. 제가 그런 면에서는 모세 설교를 참 좋아하는 편이고, 이 모세 설교를 많이 본따 가지고, 제가 설교를 하는 데, 제가 하는 설교는 본문 설교도 아니고, 강해 설교도 아닙니다. 제가 하는 설교는 설교학에 안나오는 설교에요. 저처럼 하는 설교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절도 안빼고 줄줄 읽으면서 하는 설교. 이를 무슨 이름을 붙여야 되겠는가 고민하다가, 대하 설교라고 붙였어요. 역사 설교. 큰 흐름을, 큰 강물을. 에덴동산에서 흘러서 생명수강가까지, 새하늘 새땅까지. 에덴동산, 시내산, 갈보리산, 새하늘 새땅까지 큰 흐름을 흘러가는 거에요. 대하 설교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성경을 다 읽어가면서 설명을 해가는데, 굉장히 빨리 갑니다. 모세한테 배운 것이에요.

 

 

신명기 1장을 펴보세요. 공부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신명기 1:1절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숲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줄을 그세요. 선포한 말씀이 설교죠. 그래서 오늘날 설교를 말씀 선포라고 하죠. 선포한 말씀이 설교, 기록한 말씀이 성경, 성육신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2절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절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4절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5절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그러니까 신명기라는 책은 레위기라는 율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 책의 성격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은 따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레위기라는 딱딱한 본문, 율법이 기록된 이 책을 알아듣기 쉽게 평이하게 해설해 나가는 그런 책이 신명기입니다. 거의 레위기에 있던 내용들을 중복합니다. 그런데 그걸 꼭 비례, 확대하는 것이 아니고, 알아들을 만한 것을 그냥 줄 줄 지나가고, 혹시 이런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싶은 그런 것만 다시 찝어서 되풀이하는데, 율법도 레위기 1장부터 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 신명기 1장 1절에서 4장 43절까지는 회고입니다. 돌이켜 보건데 상고하건데, 지난 파란 만장한 한 많은 40년간의 역사를 주욱 회고하는 이야기가 1장1절에서 4장 43절까지이고요. 4장 44절부터 28장 68절까지가 율법 설명입니다. 그후 29장부터 34장까지는 모압 평지에서 추가로 더한 부연하여 덧붙여 하면서 기록된 것이 29장부터 34장까지입니다. 신명기는 크게 세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회고를 하고 그 다음에 율법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 다시 추가로 부연해서 몇 말씀을 더한 구조가 이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신명기란 말도 잘 모릅죠? 신명기라고 할 때 신짜를 납 신(申)짜를 씁니다. 납이란 말은 원숭이이에요. 나비, 잔나비, 납 이렇게 하는데, 납은 잔나비 신, 원숭이 신입니다. 원숭이 신이라고 읽으면, 원숭이에 대한 계명이라면, 말이 되지 않죠. 신명기란 말이 무슨 말인가 하고, 더 큰 한문 옥편을 찾아보니까, 신자가 납 신짜도 되고, 신씨가 쓰는 성 신짜도 되고, 또 어떤 때는 되풀이할 신짜도 됩니다. 그러니까 이때는 되풀이할 신짜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되풀이한 것이다. 제 해석한 것이다. 제 음미한 것이다 가 신명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분에게 부탁하고 부탁한다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신신당부(申申當付)한다고 하지요? 그럴 때 쓰는 것이 신 짜입니다. 이렇게 거듭 거듭 당부한다는 말이 신신 당부한다는 것처럼 신명기란 계명을 거듭 부탁한다고 해서, 되풀이해서 강조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책 이름도 너무 어려운 말입니다. 미쉬나 하토라 핫쪼트라고 히브리어로 해 놓았지만, 율법에 대한 재해석, 제2율법이라고 이 사람들 얘기를 하는 데, 정확한 것은 율법 해석입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이것을 이 책 성격을 규정하는 겁니다. 우리가 무슨 책을 읽을 때 이게 무슨 책인지, 뭐하는 책인지, 모르고 읽는 것보다 알고 읽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신명기라는 말은 되새겨 보는 말씀, 되새겨 계명, 되돌아보는 계명, 이런 해석이 다 가능합니다.

 

신명기는 일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웅변서이다고 학자들이 표현을 합니다. 나는 아직 이렇게 웅장한, 이렇게 큰 스케일이 담긴 웅변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저도 어릴 때는 남의 웅변의 원고를 더러 써주었거든요. 예수를 믿지 않을 때 같은 반 애들에게 그런 소질이 좀 있었는데, 신명기를 보니까 인류 역사에 이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가장 장엄하고, 가장 위엄 있고, 그런 대 웅변서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웅변서입니다.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모세가 자신의 살아온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셔서 이루신 그 큰 구원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십계명과 율법을 설명하는 이 웅변이야 말로 전무후무한 웅장한 웅변입니다.

또 신명기는 모래밭에서 죽어버린 사람들은 할 수 없고, 거의 이제 모세가 볼 때는 신 세대, 젊은 세대. 모세는 120세가 되었는데, 지금 모세의 고별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 말고는 출애굽 1세대는 다 죽었어요. 대체로 젊은 새로운 세대를 보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미리암이라든지 형 아론도 세상을 떠났고, 모세도 이 설교를 하면 세상을 떠날 것이기에 마지막 설교요 고별 설교죠.

 

모세는 가나안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이 설교를 하고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멀리 사모하던 가나안 땅을 건너다 보기만 하고 자기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할 때입니다. 그때 모세 나이가 120세인데, 눈이 흐리지도 않았고 기운이 쇠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따라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구실은 지난 번에 반석을 치면서 패역한 백성! 어쩌고 저쩌고하는 그걸 빌미를 삼아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데, 그런 점도 있지만 꼭 그거 했다고 못 들어가게 한 것은 아닌 것같고요. 하나님께서 너 들 어가지마. 너 들어가면 여호수아는 뭐하냐? 그래서 모세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말을 못하게 하려고, 모세가 아니어도 여호수아가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려고 모세를 못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절대화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절대화하면 사람이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 사람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안되요. 그런 교회는 잘못된 거에요. 모세 없으면 안 된다. 그럼 모세가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굉장한 교회에 있는 분들은 조심해야 해요. 그 굉장한 목사님, 그 사람 없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어린 애에요. 목회도 잘 못한 것입니다.

저는 항상 저 없어도 괜찮은 교회 만들려고, 설교를 장로님도 시키고, 권사님도 시키고, 집사님도 시키고, 우린 다 하자 다 해. 왜냐하면 제가 세례받기도 전에 설교를 해 봤거든요. 세례도 안받았는데, 전도사님이 나를 강대상에 세웠어요. 하면 되는 지 안되는지, 그런 것도 모르는 사람을 세운 거에요. 그러니까 무식하면 담대하다가 제가 뭐라고 떠들었데. 떠드는데,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데요. 나는 은혜를 안줬는데도 받았데요. 사람들이요. 그렇게 해 봤기 때문에, 저는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새신자를 보냅니다. 새신자를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면 잘해요. 왜냐? 얼마나 어려운지 쉬운지 모르거든요. 근데 목사님들은 겁이 나서, 아는 게 많아가지고 못해요. 교회개척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 하면서 겁이 나서 못하는데 새신자를 보내면 잘 하는 거에요. 제가 벌써 그렇게 해서 교회 개척한 것이 새신자 청년들, 집사님들, 교사들 이런 사람들을 보냈어요. 여러분. 여기 있을 때, 원지에 있을 때 4개를 개척했어요. 내가 개척하는 개척교회이면서 10리, 20리 되는 밖에 자전거 태우고 택시 태워가지고 다 개척교회가 되었어요. 밀양갔을 때도 또 둘을 보냈어요. 한 사람은 진주의 믿은 지 얼마 안되었는데, 보내고 또 한 사람은 의령을 보내가지고 개척을 한 것이에요. 그 둘 다 잘 하거든요. 목사님은 잘 못하고, 장로님도 잘 못하고, 전도사님도 잘 못하는데, 새신자는 잘하는 거에요. 여러분, 한번 해봐요. 밑져야 본전이니까. 원래 없던 거니까. 그래서 저는 저 없어도 얼마든지 누구든지 설교할 수 있는 교회로 만들어요. 제가 여기 교회 비우고 왔는데, 오늘 수요일 맞죠? 저 우리 교회 권사님이 설교해요. 그 권사님 아니면 또 없느냐? 많이 있어요. 얼마든지요. 장로님도 할 수 있고, 집사님도 할 수 있고, 다 잘해요.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은 초대받아 갔는데, 한번은 부산에서 초대한 거에요. 역사가 108년된 교회라는 데, 교인수가 1800년된 교회에서 초대한 거에요. 가니까 뭐라고 하느냐? 당신은 목사도 아니고, 부흥사도 아니고, 집사니까 못해도 괜찮으니까, 길게만 하지 말라덥니다. 알았다고. 내 수준에 짧게 하겠다고. 이야기 이유인 즉슨, 지난 주간에 외부강사를 모셨는데, 한분은 한국에서 일류가는 부흥강사이고, 한분은 신학대학 교수를 모셨는데, 연거푸 지금 세주간째 당신을 모셨는데, 앞에 부흥강사와 교수가 얼마나 길게 하는지 설교를 1시간반을 하니까, 성도들이 중간에 가버렸다는 거라. 당신은 못해도 좋으니 부흥강사도 교수도 아니니까 길게 하지 말라 하더랍니다. 알았습니다. 올라가지고 3시에 시작해가지고 6시반까지 3시간 40분 한거에요. 짧게 한다고 해놓고 3시간 40분했네요. 아무도 도망못가고 두 사람이 도망갔는데, 한 사람은 임산한 여인이 해산이 갑자기 임함으로 산부인과의 응급실로 갔고, 한사람은 처음 나왔는데, 길게 한다고 갔다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7시에 식사하러 갔는데, 장로님들이 그러더래요. 우리 교회 108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강사를 모신 것같다. 그러니까 저녁먹고 3시간만 더 하자더래요. 그분도 여기 왔다가 오늘 내려갔습니다. 이제 전도사님되었죠. 신학을 더 시켰거든요. 신학을 안갈려고 꽁무니를 ?는 것을 기어이 싸워가지고 결국은 가서 신학했어요. 그러니까 집사님도 하고, 얼마든지 오케이.

모세 없으면 안 된다 그럼 안 되요. 나 없으면 안돼. 그럼 안되요. 그것도 잘못된 거에요. 그 사람 없어도 되고 나 없어도 모세 없어도 되어야 교회지, 사람이 절대화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일부러 못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기 목사님 중에서 원로 목사가 되면 교회를 가까이 있으면 안되요. 원로 목사는 원로로 떠나는 게 좋아요. 너무 가까이 있어가지고 담임목사 부담주고, 그리고 교인 찢어 나눠놔서 속썩이고 쌈 부치고, 일평생 하고는 원로목사 돼서 다 까먹는 사람이 있어요. 한국에 그런 사람 꽤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손 놓으면 바로 지리산 들어올려고 이런 거 만들어 놓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도 그리 빨리 빨리 만들어 놔야죠. 갈 곳을. 먼 데로. 교회에서 멀리. 그렇다고 교회는 원로목사를 내 몰라라 내 쫓으면 안 됩니다. 멀리 가 있어도 챙기긴 챙겨 드려야 돼. 일평생 교회만 위해서 살아 왔으니까, 하돼 그러나 원로목사는 담임목사 부담되게 가까이 하면 추태라고요. 추태야. 하나님께서 모세를 일부러 데려가버린 거에요. 역시 하나님 멋쟁이죠.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보고, 야! 전쟁이 나도 말이야, 처녀하고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도 못한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돌려보내. 징집하지 마. 만약에 전사하면 타인이 그 여자하고 잘 게 아니냐? 사람의 일생에 그렇게 흔치않은 기쁨인데, 그걸 누리게 해야지. 약혼한 사람이 있으면,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면 전쟁이 났어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돌려보내. 그 사람이 일평생에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는 게 큰 기쁨인데, 그것도 누리지 못하면 되겠나? 아무리 전쟁이 났어도, 그 사람 없어도 전쟁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말이야, 과일 나무를 심었는데 첫 열매를 따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전쟁나도 돌려보내라고. 타인이 그 첫 열매를 먹지 않겠는가?

이게 3대 희락입니다. 1. 과일나무를 심어서 첫 열매를 따는 기쁨, 2.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는 기쁨, 3. 처녀와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는 기쁨, 이게 3대 기쁨인데, 아무리 전쟁이 났어도 그런 3대 희락을 주님께서 뺏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누리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멋쟁이 맞죠? 그래서 저도 그럽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부교역자, 부목사, 전도사 할 것없이, 결혼을 하면 1년간은 새벽기도회 면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청년들이라던지, 부교역자분들이 저를 좋아해요. 확실히 노 목사는 멋쟁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그렇게 빡빡한 분이 아니고, 여유가 있는 분이에요. 멋이 있는 분입니다. 멋은 여유에서 나옵니다. 목회를 할 때 너무 숨도 못 쉬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의미가 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가 전혀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데이트 코스를 좀 길게 잡은 것입니다. 약 40년간의 데이트하게. 험한 길 가면서. 여러분, 데이트를 할 때 험한 길을 가야, 손도 잡아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정도 드는 것이지. 그래서 일부러 청년들이 등산코스를 저 험한 코스로 가지요? 일부러 당겨주고 밀어주고 하면서, 스킨십이 생기면서 정도 통하고 전기도 통하면서. 하나님도 똑같아요, 보니까. 그 하나님에 그 백성이 똑같은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주 험한 길로 끌고 가는데. 좋은 길도 있습니다. 광야 해변길로 가면 보름이나 한 달이면 가 버립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무도 없는 곳, 인적도 없는 곳, 그런 험한 길로, 먼 길로 빙빙 돌아서. 어차피 지리를 모르기에 나침반도 없고 아무도 모르니까, 멀고 먼 길, 험하고 험한 길로 돌아서 길게 길게 코스를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좀 정이 들런가 싶어서 그랬는데, 세상에 정이 들 기는 뭐 정이 듭니까. 몇 번 싸워가지고 하나님께서 여러 번 때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세 너 비켜! 이들을 다 진멸해버리고 냐거 다른 백성들을 만들지 해야겠다. 그때마다 모세는 엎드려서, 아이고! 하나님 좀 참으세요. 여태까지 잘 참아놓고 왜 그러십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어서 통과해 간다고 세상에 다 소문이 났는데, 그 애굽에서 끌어내서 가나안 거기까지도 인도해 내지 못하고, 길에서 다 때려 죽였다고 소문이 나면, 하나님 소문이 더럽게 나서 앞으로 목회 못합니다. 제발 참으세요. 때로는 내 이름을 지어버려 주옵소서. 그리할 때 여러번 하나님께서 진멸하려고 했는데, 모세의 간곡한 만류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 덕을 많이 본 거에요.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모세가 엎드리면 하나님도 입장이 곤란합니다. 괄시할 수가 없어요. 늘 모세 신세를 졌기 때문에. 처음 듣는 소리죠? 처음 하니까. 아무도 그런 말 하는 거 나도 못들어 봤어요. 사실이거든요. 여러 번 여러 번 죽여 버리려고 했어요.

그래서 이 광야 생활을 한 것은 목적이 있다는 거라. 광야길을 걷게 한 의미가 있다는데, 신명기 8:2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첫째 이는 너를 낮추시며.” 사람이 어디 가서 은혜를 받으려면 낮아져야 은혜를 받습니다. “또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하나님 말만 잘 들으면 얼마든지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는 걸 보여주게 하려고. 또 사람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길이 있는 걸 보여주려고 일부러 데리고 나왔다, 양식 없는 곳으로. 슈퍼도, 대형마트도 없는 곳으로 아무 것도 없는. 우리들을 왜 이 지리산까지 하나님이 끌고 왔겠어요? 우리를 낮추시려고. 우리가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는 거에요. 이게 신명기 8:2-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게 이른 바 쉐마라는 건데, 쉐마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는 말입니다. 신명기 6:4-9절까지를 보통 쉐마라고 하고, 또 쉐마를 암기하고. 우리가 신앙 고백하듯 암기하는 겁니다.

4절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절 :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절 :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절 :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절 :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렇게 합니다. 이 속에 경문갑이 있는데, 경문갑 안에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까지의 성경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건 미간에 눈썹하고 눈썹 사이가 미간이죠. 미간에 붙여서 표를 삼고. 손목에 매어서 기호를 삼는다. 손목에 매요. 머리에 키파 라는 모자를 쓰고,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또 머리에 또 위에다가 써야 되요. 히브리 사람들은 기도할 때, 이렇게 해서 기도합니다. 성경 읽을 때도 이렇게 하고, 기도할 때도 이렇게 해요. 근데 상당히 시간이 걸리겠죠? 이렇게 하다보면. 여기 미간에 붙인 경문갑 안에도 쉐마 이스라엘 하는 구절들이 있고, 손을 모으면 가슴에 닿습니다. 마음에 새겨지게 또. 심장을 꺼내서 새길 수 없으니까, 이렇게 밖에. 이렇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문에 문설주의 바깥문에 기록하는 거에요. 이게 메추자라는 것이고, 이게 테플린이라는 것입니다. 테플린은 손목에 매고, 메추자는 대문간이나 문설주에 붙여요. 아침에 출근할 때 만지면서 출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 만지고, 아니면 키스를 해요. 뽀뽀를 하고 열면 성경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서 어디에 어떤 성경구절을 써서 붙여라하는 유일한 구절이 신명기 6장 4-9절에 들어 있어요. 그래서 신명기 6장 4-9절을 써서 붙이기만 하는 구절을 볼 때는 4절, 5절 아니면 5절 한절만이라도. 여러분 에스라 하우스 와 가지고, 딴 데서는 별로 보지 못한 게, 저기 저 대문간 위에 문 인방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렇게 붙어 있을 것이고, 여기도 붙어있죠? 저 사무실 방이나 큰 강당, 작은 강당, 우리 교회에 가면 예배실 입구, 서재, 당회실, 모든 방에 다 붙어 있어요. 저가 사는 사택에도 물론 있고, 우리 성도들 가정마다 다 붙어 있습니다. 딴 거 다 뗍니다. 다른 구절 어지간한 거 다 떼고 가장 중요한 구절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구절만이 하나님께서 써서 붙이라는 유일한 구절이에요. 이게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하나님이 제일 중요시하는 하나님의 요절이에요.

하나님은 이런 구절을 제일 요절이라고 하는데, 성도들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성도들은 그것이 요절이에요. 목사님 요절은 또 따로 있어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를 가보면요, 동상 삼몽을 보는 거에요. 하나님이 중시하는 요절 다르고, 성도들이 좋아하는 요절이 다르고, 목사님들이 좋아하는 요절이 달라요. 서로 안 통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요절은 없습니다. 66권을 다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중시하는 구절을 써서 붙입니다. 제가 꽤 여러 신학교, 수양관. 기도원은 뭐 잘 안갑니다. 기도원은 이미지가 나빠서 오라고 해도 안가요. 안가고 교회도 1년에 한 교회 내지 두 교회 갑니다. 개교회서 저를 요청하면 일년에 한 교회 내지는 두 교회 정도 가는데, 가서 봤을 때, 어느 한 곳도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가는 계명을 써서 붙여 놓은 교회도, 신학교도, 수양관도 단 한 곳도 못봤어요. 단 한 건도. 그런데 놀랍게도 유대인들은 모든 집집마다 다 붙여놓아요. 왜 이리 되었을까요?

그래서 쉐마 운동이라고 하는 것을 제가 근 20 몇 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집에 혹시 이런 저런 것 붙어 있으면 다 때내세요. 그리고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것은 성경에 있지만 하나님 말씀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빌닷이란 사람이 욥을 조롱하다가 한 소리에요. 횡설수설 하다가 욥을 조롱한답시고 한 소리에요. 제 주제에 욥을 조롱할 만큼 그런 수준도 안되면서. 앞에도 안보고, 뒤에도 안보고, 그걸 성경에 있다고 하나님 말씀이라고 붙여 놓은 거에요. 챙피한 줄 알아야 해요.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성경을 전체로, 포괄적으로 성경 전체를 말할 때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맞아요. 하나님 말씀 맞지만 구절로 떼거나 짜르면 거기 하나님 말씀도 있고, 사람 말도 있고, 사탄의 말도 있어요. 그래요? 안그래요? “땅에 두루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그것은 누가하는 말입니까? 그걸 액자 만들어 걸어놔 봐. “먹으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모르겠어요. “땅의 여기 저기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는 그런 거 또 액자 만들어 가지고, 여행사 개업할 때 갖다 주면 좋아할거야. 자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 엉터리로 본 거죠.

 

그래서 아니 뭐, 좋은 성경 구절을 써서 붙일 수 있으면 할 수 있겠지요. 할 수 있겠는데 하라고 한 것부터 먼저 합시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하도 제가 20 몇 년인가 이 운동 하니까, 지금은 있어요. 어기 가면은. 저 사람도 에스라 다녀갔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가끔. 여기 아니면 어디를 가도 이 말씀을 붙이라는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데도 어떻게 눈길도 안주고 지나왔어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게 구약에만 있는 말씀이 아니고, 신약에도 율법학자가 와 가지고, ‘선생이여,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께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거기 성품이란 말이 번역이 잘못된 겁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이란 것은 넷페시라고 되어 있어요. 넷페시는 목숩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첫째가는 계명이요, 또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 사랑을 네 몸같이 하라.” 이렇게 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 크고 첫째 가는 계명, 이런 것을 써서 붙여야지, 어떻게 ‘주의 은혜로 종에 집에 복을 받게 하옵소서.’ 그런 거라든지,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가는 곳곳마다 다 그래요. 한심한 얘기죠. 혹시 집에 네 시작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거 있으면, 밤에 조용히 떼어내고, 챙피하니까, 액자가 아까우니 그 알맹이을 빼고 5절만이라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붙이세요.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에 들어오는 입구에 꽤 잘 보이는 곳에 꽤 큰 글씨로 십자수를 만들어서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마치고 나갈 때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렇게 붙일 수 있겠고, 친교실 같은 데, 교육관 같은 데는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런 게 붙어 있어야죠. 적어도 교회가. 좀 성숙하려면. 이 말 이렇게 하면 청년들이 다 알아서 싹 다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알아서 가정에 다 붙이고. 그래 그런 것부터 바꿔야 해요. 하나씩,. 옳지 않은 것은 뗄 것은 떼야 합니다. 미련하게 붙여놓고 하는 것은 고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아는 어떤 한분은 믿음도 없으면서 교회에 나가가지고 6년, 7년 동안 다니면서 세례도 안받은 주제에, 복을 받으려고 했던지 큰 피자집을 했습니다. 피자집을 하는데, 그 피자 이름이 이탈리아에서 최고 유명한 이름을 따서 개업 예배를 하면서, 보나마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했는데, 시작이 전혀 미약한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를 11억을 들여서 했으니까. 그런데 시작은 창대하게 했는데, 나중은 아주 미약하게 된거라. 하루에 피자 열 개도 안 팔려요. 그때 그 이자를, 신협이라고 이자가 높아요. 돈을 빌렸는데 이자가 한 달에 2,500만원 나가는 거에요. 하루에 피자 10개 팔아서, 직원 월급하고, 이자하고 고민하고 있다가. 그 부인이 이 집회에 왔다 같는 데 얼마나 찔림을 받았겠어요. 부인은 신앙은 좋은 분인데, 남편이 좀 삐닥했거든요. 교회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인데, 그걸 탁 붙여놓고 했는데, 피자집에 인테리어를 너무 어마어마하게 해 놓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왔다가 인테리어를 보고 이 놈의 피자가 얼마나... 겁이 나서 한번 왔다가 다시는 오지를 않아요. 부인이 왔다가면서 제가 강의하는 강의 테이프, 강의 CD를 사 가지고 가서 ‘이걸 한번 들어보시지요.’ ‘뭐야?’ ‘지리산에서 성경만 연구하는 목사님 강의인데 한번 들어보세요.’ ‘지리산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고 안들어 보는 거에요. 안들어보는데 매월 이자는 잡아먹히고 갑갑하고 답답하고 하니까, 좀 들어보니까 에이 복준다는 말도 없고 뭐야? 하고 밀어 놨다가 또 심심하니까 또 댕겨보다가 듣다가 말다가 듣다가 말다가 하다가 어디까지 듣다가 여기까지 온거에요. 신명기까지. 그런데 딱 자기가 믿음도 없으면서 네 시작은 창대했으나 나중이, 차츰 미약해지기에 거기서 크게 찔림을 받고, 울면서 다 듣고 테이프 두 개가 남았다고 전화가 왔어요. 두 개 남았는데, 두 개 듣고, 목사님 만나러 온다는 거에요. 그래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와 봐도 아무 대책이 없고, 오지 마라.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더 좋은 믿음이다. 오지 마라. 기어이 온다는 거야. 온다는 게 자기 발이니까 막을 수 있습니까? 오면서 목사님이 오면 어떤 분인지 목사님 만나 뵙고 을 끌어안고 울려 버리겠다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왔는데, 그 테이프에서 듣던 목소리하고, 내 모습이 매칭이 안되는 거에요. 이게. 자기가 그 테이프에 강의를 들어보니까, 샤프하게 생겼을 것이고, 까무잡잡하고 아주 날카롭게 해가지고, 키는 작달막하고 샤프하고 할 줄 알았는데, 오니까 샤프한 게 아니고, 터프하고, 키가 작은 게 아니라, 키가 크고 전혀 안되가지고, 만나자 마자 끌어앉고 울어 버리겠다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그냥. 울지도 못하고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쭉 늘어 놓는데, 보니까 팔을 이래 내어놓고 이야기 하는데, 세상에 팔뚝에 시계 줄만한 누런 금팔찌를 남자가 차고 있는 거라. 내가 아이고, 이 사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만. 난 여자가 팔찌 한 것도 시덥지 않게 보는데, 남자가 누런 금팔찌를 차고 말이야. 저가 뭐하는 건가? 속으로 눈에 괜히 거스르는데. 그런데 그걸 끌려요. 난 저걸 나를 줄랑가 싶어가지고.. 끌러가지고 보여 주는데, 날 주는 게 아니고, 그 결혼할 때 부인에게 남편이 열 돈짜리 한 냥짜리 목걸이를 순금으로 해준건데, 그 부인이 자기 남편의 피자집은 망했지만, 목사님 그 테이프를 듣다가 신앙이 회복되어서, 전도하고 병문안가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은 자기 점포에 불러가지고 취직시키고 전도하서 세례 받게 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에요. 자기 남편이 달라졌는데, 11억 좀 비싸긴 비싸지만, 너무 감사해서 자기가 결혼 예물로 받았던 금목걸이를 녹여서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해서, 그 손목안에 금팔찌를 보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장 5절 금에다가 새겨서 손목에 차고 있는데, 그걸 목사님에게 보여 드리고 싶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감동이 되었겠어요. 그래도 빚은 갚아야 된다. 아직도 다 못 갚았어요. 10년이 넘었거든요. 아직도 못갚고 모르죠. 11억중에 1억은 갚았겠는가? 평생을 갚아갈려면 어려울꺼라. 그래도 기쁨으로 신앙생활하고 전도하고 그렇게 해요. 그리고 저보고 그러더라구요. 목사님, 볼펜이나 만년필이나 뭘로라도 간에, 목사님 친필로 신명기 6장 5절을 좀 써달라는 거에요. 나보고. 그럴 써주시면 액자를 만들어가지고, 자기 그 점포의 카운터 앞에 놓고 항상 그걸 바라보면서 살겠다는 거라. 내가 지금은 쓸 형편이 안되니까, 내가 시간 여유가 나면, 붓으로 먹을 갈아서 제대로 해드리겠다. 혹 마산을 지나가더근 저보고 자기 집에 한번 오라는 거에요. 제가 밀양에 있을 때인데, 어떻게 오라고 전화가 오는지, 안가면 삐질까 하고 싶어서, 시험들고 할까 싶어서 갔어요. 가니까 자기 교회 담임 목사님께 부탁했는데, 만년필로 써 주신 거에요. 그걸로 조그만한 액자에 해 놓고 프런트에 해 놓고 있는 것에요.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는데,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는 성경에 있으나,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빌닷이 횡설수설한 말입니다. 꼭 써서 붙일 구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언젠가 여러분 가정을 방문 했을 때, 꼭 붙어 있기를 기대합니다. 자, 이 마음을 다하고 하는 노래가 있지요? 아는 사람은 같이 불러 봅시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하는 노래가 있어요. 제가 유일하게 하는 복음성가 그 하나에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자녀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네가 짓지 않은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 하리라

그러나 한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할렐루야

이제 신명기 본문을 읽어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 동안 저희들이 성경말씀을 볼 때, 너무 이기적인 생각으로, 우리 입장에서만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아 왔던 것,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입장에서 보는 안목도 열려지게 하여 주옵소서. 율법서를 잘 본 다음에 이 율법, 하나님과 맺은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또 그대로 살았을 때 어떻게 되었으며, 그 언약을 어겼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역사서를 바로 보고, 역사서를 본 다음에 예언서도 열려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지켜 주심을 감사하며, 우리가 짧은 시간 자고 쉴 때, 우리 몸에 쌓였던 모든 피로가 온전히 풀려지게 하옵시고 내일도 주님과 한 걸음 한 걸음 동행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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