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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의 다양한 의미
우리가 “토라”의 의미를 정의 해볼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문서인가를 알아봅시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불필요한 질문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은 율법이냐”말한다. 사실, 그것은 어느 정도 법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주의 깊게 보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토라는 이것보다 오히려 가장 단순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가르침
무엇보다 먼저, 토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이것이 히브리어의 토라의 주된 의미라는 것을 이미 배웠다. 그것이 그의 아들을 가르치는 현명한 사람이든 아니면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하나님이든, “토라”는 문자적으로 ‘가르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토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며, 하나님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공의는 어떤 것인가를 인간의 알 필요성을 포함하는, 즉 인간의 필요성의 과녁을 맞히는 것이다. 토라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스스로 계시한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에 관하여 그리고 그의 공의에 관하여 가르쳐준 문서이다. 토라 안에서, 사람들은 성경의 나머지를 통하여, 예를 들면 죄, 희생, 구원, 성화-그리고 그것의 모든 것을 성취한 메시야로 확장된 모든 신학적인 개념들 배울 수 있다.
언약
두 번째, 토라는 언약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토라는 하나님과 그의 자신의 백성들 사이를 법률적으로 묶는 협약이다. 이러한 증거는 압도적이다. 토라는 그 자체를 언약(브리트)으로써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상당한 참조들이 인용되지만, 두 가지로 충분하다.
첫 번째 구절은 출애굽기 34:27절이다. 컨텍스트 는 십계명뿐만 아니라 다른 교훈을 포함한 처음으로 쓰여 진 계시가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계명들을 아래서 써라, 왜냐하면 이 계명들에 따라 나는 너희들과 이스라엘과 함께 언약을 맺는다.” 두 번째는 신명기 29:1이다. 모세는 출애굽기 34장에서 사건들 후 40년이 지나, 그의 생의 마침이 임박해지고 있었다. 그는 보다 많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기록했다. 지금, 곧 약속된 땅에 들어가려는 순간, 모세는 하나님으로 부터 모든 가르침을 요약하고, 다시 그것을 언약이라고 부른다. 그는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가 호렙에서 맺었던 언약 이외에, 모세에게 모압땅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맺으라고 명령한 언약의 말씀들이다.”
토라는 언약이기 때문에, 관련된 양측은 분명히 벌률적인 의무에 속한다. 이러한 언약을 선취하신 하나님은 그가 언약에서 했던 그의 말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묶는다. 이러한 협의에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마찬가지지로 똑같은 것을 해야 만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에 비추어 이해해볼 때, 토라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국가를 위한 민족적인 헌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특별히 분명해지는 것은 역사적인 연구에 비추어, 토라는 언약으로써 연구되고, 그 당시의 다른 국가들의 언약들과 비교해 볼 때이다.
최근에는 조지 멘델홀, 메레디트 G 클라인 그리고 그 외에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눈부신 많은 연구문서들이 있다. 그들은 토라의 문서들을 같은 역사적인 시기의 틀(기원전 13세기에서 15세기)안에서 비교해왔다. 특히 국가들과 정복된, 봉신국가들 사이에 문서화된 조약들이 연구되고 토라와 함께 비교되었다. 양식과 틀 사이에 유사성은 충격적이다. 이들 유사성은 토라의 이해를 언약 문서로써 보다 강화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신명기서의 구성과 고대 히타이트 조약의 전형적인 형식을 비교해 봅시다. 그러한 봉신조약을 위한 기본적인 윤곽은 다음과 같다:
*서문-언약의 기본적인 도입 문장
*역사적인 서언-위대한 왕들의 행동들, 그는 봉신국가를 위해 해온 것
*협의 사항들- 조약/언약의 주요 부분, 봉신국가의 기대들
*축복과 저주들-순종의 보상과 언약에 불순종의 처벌
*증인들-언약의 법령과 관련된 어떤 유명인들의 서명들
*계승의 수단들(선택적)-위대한 왕의 지위를 누가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 는 언약 안에서 조항
*언약을 보관하는 조항(선택적)-언약과 언약의 복사본을 어디에 보관 할 것 인가를 토론
지금 이러한 형식을 신명기와 비교해 봅시다:
*서문(신명기 1:1-5)-신명기서에 관한 기본적인 소개
*역사적인 서언(신명기 1:6-4:49)-위대한 왕(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진술
*협의 사항들(신명기 5:1-26:19)-평민들에게 “율법‘으로써 알려진, 책의 분량; 보다 정확하게, 위대한 왕, 하나님에 의해서 이 언약의 유지를 위한 이스라엘 에게 주어진 협의 사항들
*축복과 저주들(신명기 27-30)-언약을 지키거나 아니면, 언약을 깬 이스라엘을 위한 결과들
*증인들(신명기 30:19)-하나님은 이러한 언약에 증인으로 하늘과 땅을 부른다.
*계승(신명기 31:1-18)-하나님은 모세가 죽자 모세의 뒤를 이을 여호수아를 제 시 한다
*보관/읽기(신명기 31:9-13)-언약궤에 언약서를 저장하고 정해진 시간에 그것 을 공식적으로 읽도록 한 조항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역사적인 관점에서 고려해볼 때, 이러한 봉신조약과 토라 사이에 분명한 평행들은 토라가 토라 자체로 하나의 일치된 문서로 쓰여 진 것은 주전 2,000 후반에서 중반쯤이 것으로 복음주의자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리차드 헤스의 탁월한 주석인 여호수아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역사적인 서언이나 축복의 조항들과 함께 주전 1,000 년에는 없던 조약들이다. 그것들은 주전 2,000년의 문서 안에서 만 있었다.”
두 번째, 우리가 지금 보기 시작한 것은 토라는 단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법률적으로 묶는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문서이다.
게다가,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를 위해 국가의 법으로 써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안에 우리는 서문(미국의 헌법안에서 “우리 백성들”과 비교되는)으로부터 공식적인 증인들에 의한 입증으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회복된 민족, 이스라엘이 위대한 왕 앞에서 그것의 언약을 유지하고 그것으로 유익함을 즐길 수 있는 단지 언약의 관계성이 불과 하다.
케투바
비록 토라는 그 자체를 법률적인 언약으로써 나타내고, 우리는 그것이 또한 국가의 법으로 써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토라 안에서 여전히 다른 종류의 문서를 나타내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너무 도그마적 일 수 는 없지만, 그러나 토라 안에는 그것을 케투바로 명명 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근거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케투바는 유대인의 혼인 관계의 조건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공식적으로 쓰여 진
혼인 서약서 이다. 동시대의 유대인 혼인 케투바를 위한 문서들은 주전 1 세기 안에는 공식화 되었다.
그러나 결혼이 하나의 언약으로 생각되어진 사실은 성서적인
시대로 부터라는 것을 말라기 2장 14절에부터 알게 된다.
랍비의 사고에 따르면, “케투바”는 또한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토라가 주어졌을 때, 신부와 신랑은 시내산
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케투바는 언약서,
즉 토라를 나타낸다. 따라서 아리에 카플란에
따르면, 토라와 혼인
계약 사이에는 연결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의한다.
사실, 출애굽기 안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결혼에 여러 개의 구성요소들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이 약혼식이다. 약혼식은 육체적인 관계성 없는 법률적인 혼인이다. 그것은 이러한 관계성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혼증서가 필요했다. 약혼은 고대 근동에서 실천된 것으로 이스라엘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이웃들 가운데에서도 있어왔다. 하나님의 약혼은 출애굽기 6:6-7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고자 하는 의도를 말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분리시킬” 것이고, 그들을 구속에서 “해방” 시키고(노예의 멍에 아래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와), 그들을 “구속”하여, 그들을 그의 백성들로 “취하겠다”는 것이다. 페삭(유월절)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네 개의 동사가 세데르[유월절 식사]동안 전통적으로 가지는 네 가지 와인 잔 각각의 이름이 되는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동사, “취할 것이다, 삼을 것이다”는 타낙 안에서 그밖에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것으로, 한 남자가 한 여인을 아내로 “취할” 때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출애굽기 6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아내로 약혼하고 있었다.
다음, 결혼 그 자체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신적인 결혼 관계성을 가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반역은 간음과 매춘으로써 설명되고 있다(출 34: 15-16 그리고 레 17:7). 게다가, 이사야 56: 6-7을 예로 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스스로 분리한 신부로써 묘사된다. 그러나 혼인식은 언제였는가? 랍비의 생각에 따르면, 혼인식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토라를 주었을 때인 시내 산 에서 일어났다. 일부 랍비들은 시내산 에서의 사건들을 일부 유대인 결혼식들의 전통의 일부와 심지어 비교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동시대의 유대인의 문화를 성서적인 텍스트 안으로 되돌려 읽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신적인 결혼을 묘사하고 있는 시내 산에서 사건들의 다른 특징들도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19:5절에서, 신적인 신랑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신부로 몹시 사랑하는 용어를 가지고 언급한다.
그는 그녀를 그의 “세굴라”로 부른다.
세굴라(סְגֻלָּה)는 일반적으로 “보배로운 소유”로 번역된다. 세굴라, 이러한 히브리 단어의 어원은 또한 이러한 같은 시기에 세속적인 텍스트들 안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왕들이 정복된 국가로부터 어떠한 물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왕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왕은 모든 그의 소유를 가치 있게 여겼지만, 극소수의 보물들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것들이 그의 세굴롵 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읽는 “보배로운 소유”라는 표현은 전리품의 분류나 재산의 상속을 통해서든지, 축적된 자산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고대 근동의 다른 언어에서 흔한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묘사된 것은 왕이 스스로를 신 하다드의 “보배로운 소유”로써 동일시하는 아라라크 로부터 왕의 인장 안에서 명확하다. 우가릿 문서에서 마찬가지로,
봉신으로써 우가릿의 소중한 지위의 왕은 그를 그의 힛타이트
군주의 “보배로운 소유”로 명명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세굴라로 부를 때, 그것은 아주 사랑스러운 표현이다. 그는 모든 그의 피조물을 돌보지만,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그의 특별한 신부로 여긴다.
혼인식의 주된 요소들 중의 하나는 케투바 자체이다. 그것은 결혼의 합법성을 증명하는 것 이외에도, 그 결혼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그들 상호간의 책임성을 양자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케투바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요약된 것처럼, 토라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 서약(역자이해 24장 7-9절)이다. 하나님은 하나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두 개의 복사본을 심지어 주었다. 두 개는 언약궤 안에 보관 되어져야만 했다. 따라서 우리는 출애굽기 31:18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언약)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이외에,
반지 없는 결혼은 무엇인가? 분명히 우리는 역사적인
시대와 문화 속에서 반지들이 결혼의 상징으로써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언약들이 언약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그들의
언약 관계성을 상기시키는 외적인 상징성들을 가지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혼반지는 결혼 언약의 외적인 상징으로서 역할을 한다. 신적인 결혼에서 반지는
어디 있는가? 아마 그것은 출애굽기 31:12-17절에서 발견된다.
13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시대를 걸쳐서
자신과 이스라엘의 자녀들 사이에 히브리어, 오트(אוֹת)인 징표로써 안식일을 주었다. 사실 샤밭은 언약의 징표로써 너무 중요해서 그것은 17절에서 한 번 더 반복되고
있다. 이와 같이
샤밭은 따라서 결혼 언약의 외적인 징표인 반지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신적인 부부를 위한 새로운“가정”을 잊지 맙시다.
우리는 성막을 말하고 있다. “성막”을 위한 히브리어 용어는 미쉬칸(מִשְׁכָּן)이다. 이 단어는 “거주하다” 또는 “집에 있다”를 의미하는 어근으로부터 왔다.
사실,
출애굽기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미쉬칸을
지을 지침서를 주었을 때, 그는 말하길 만약 그것이 그가 지시한대로 지어진다면, 그는 거기에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쉬칸은 이들
“부부”의 거주 장소였다고 제안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만큼 많이, 이러한 개념을 확대할
장소는 아니다.
예수아의 승인 인장.
토라가 독특한 것은 그것이 언약이며, 국가적인 헌법이며, 혼인 서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예수아가 그것과 관련된 길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날 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그렇게 인식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메시아는 지금까지 살아온 가장 위대한 토라 선생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 전체를 통하여 흐르는 강조점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살아있는, 의미 있는, 그리고 지속적으로 토라와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아의 사고 속에서, 토라의 주된 목적들의 중의 하나는 회복된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17-20절은 이것을 아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아는 토라를 폐하기 위하기 오지 않았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게다가 그는 그것을 무효화 시키려는 사람들을 꾸짖는다. 그는 말하길,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의 진술을 지지 하기 위하여, 그 다음 그는 일련의 가르침을 시작한다(마 5-7), 그리고 그는 그의 자신의 해석을 도입함으로 여러 개의 토라 개념들의 몇 가지 대중적인 이해에 도전한다. 그는 이것을 반복적인 공식의 사용을 통하여 확립한다, “너희는 옛사람에 말한 것을 들었다(랍비들의 잘못된 가르침),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정확한 해석)” (또는 유사한 말들).
마태복음 5장 17절의 처음에, 예수아는 분명하게 그가 토라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가를 진술한다. 그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려고 왔다” (마 5:17, NIV). 이들 단어들의 중요한 의미에 관하여 의견의 차이들이 있다. 일부는 말하길 그것이 명확하다 고한다. “성취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플레로사 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 단어는 “완성시키다” 또는 “가득 채우다”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그들에 의하면 여기에서 예수아는 모세의 토라를 끝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는 여기서 단지 도덕법만을 언급한 것이고” 시민법과 예식법은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예수아는 모세의 토라를 제하고, 그의 자신의 새로운 토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토론의 상황의 특성과 토라의 교사로서 예수의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모든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의견으로, 우리는 그 당시에 토라 토론의 상황 속에서 이러한 단어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번역된 헬라어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말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히브리어나 아람어에 따라 그것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히브리 대학에서 초기 기독교와 제 2성전의 유다이즘의 교수였던, 데이비드 퍼셔에 따르면, “폐지하다”와 “성취하다”는 유대인 성서주석에서 사용된 최초의 두 용어였다. 랍비 어휘에 따르면, 두 용어는 성서 구절의 옳거나 잘못 된 해석과 연결하여 사용되었다. 만약 그것이 잘못 해석된다면, 너는 “폐지시키다”, 토라의 단어를 무효화 시킨다. 만약 네가 그 구절의 최초의 의미를 찾는데 성공한다면, 너는 “성취한다”, 그것을 세운다.
이와 같이 토라를 끝내려는 시도를 설명하기 보다는 오히려, 마태복음의 이 구절에서 이 단어들은 예수가 이어지는 그의 성서해석이 감히...한 것처럼 보일 가능한 반대들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학자 데이비드 비빈이 제시하는 것은 “폐지하다”(NIV)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에 상응하는 유사한 히브리어 단어는 레바텔, 문자적으로 “취소하다” 이다. 그는 계속해서 제시하길 마태복음 5:17절에서 “성취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플레로사(πληρῶσαι)이 에 상응하는 유사한 히브리어 단어는 레카옘 이다. 예수 당시에 레카옘은 주로 레바텔(취소하다, 무효로 하다)의 반대어였고 그리고 “보존하다” 또는 “유지하다”의 의미 안에서 사용되었다.
누군가 말하듯이, 만약 신자가 토라와 아무런 의미 없는 관계성을 가진다면, 그 다음 이것은 예수아가 그것을 가르치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였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수아의 토라를 위한 승인의 인장을 주는 브리트 하다쉬(회복된 언약)로부터 또 다른 중요한 구절이 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그의 부활이후, 예수아는 엠마오 향하는 길을 그들과 함께 걷는 동안 그의 제자들 중 두 사람에게 스스로를 드러냈다.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과 함께 시작하여, 그는 그들에게 모든 성서 안에서 그 자신에 관한 것들을 설명했다.” 다시 44 절에서, 그는 유사한 것을 말 하고 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 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이루어지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그가 말하는 것은 토라 그리고 나머지 타낙(구약성서의 약어)이 적절하게 해석되어지기 위하여, 누군가는 그것이 그 자신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보아야만 한 다 것이 가능한 것인가? 예수아가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토라는 모든 그의 가르침 안에서 그를 보는 것과 같은 그러한 방법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토라의 적절한 해석을 위하여 상당히 중요한 해석학적인 원칙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일단 그것이 메시아를 어떻게 나타내는가를 알게 되면, 어떠한 주어진 가르침을 어떻게 따르는가를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예수아의 생애는 쓰여진 토라를 완벽하게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완벽하게 토라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너무 토라와 관련되어 있어서 그를 처음에 따르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를 ‘하토라’-“그 토라”로 언급했다.
그 다음, 토라는 지키기에 불가능한 율법의 상당한 목록 보다 더 크다. 그것은 교훈적인 문서, 하나님과 그의 길들에 관한 가르침,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법률적인 문서,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헌법, 위대한 왕 스스로가 그의 백성이 그의 나라 안에서 어떻게 수행하기를 원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신랑)과 이스라엘 백성(그의 신부) 사이에 거룩한 혼인 언약서 이다.
그러나, 법률적인 언약으로써 그것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반면에, 토라는 또한 많은 다른 기능들을 성취하도록 계획되어져있다. 우리가 토라를 전체로써 적절하게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는가를 토론 할 준비를 함으로써 이들 중 몇 가지를 주목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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