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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日本] 스크랩 일본문화 - 라멘
1600-3341 추천 0 조회 93 09.04.15 07: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일본문화 - 라멘  

일본사람들은 라멘(생라면)을 대단히 좋아한다. 소바나 우동을 좋아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은 가끔 있지만 라멘을 싫어한다는 일본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렇듯 일본에 가보면 라멘 전문식당을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큰 길가나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등 라멘집이 없는 곳이 없다. 회사를 다니다 퇴직한 일본사람들이 개업하는 직종으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도 라멘집이다. 일본 라멘집 경영으로 성공한 스토리는 지금도 자주 TV에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라면의 語原을 찾아서 '라미엔, 라멘, 그리고 라면'

' 라멘'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라면(중국발음: Ramien, 일본발음: Ramen)과 즉석 라면의 역사를 보면, 라면은 원래는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700년 전 (서기 200~300년경) 몽고지방에서 알칼리성 물(견수, 일본어:간수이)의 반죽효과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한편 唐 대에도 장수면이라는 것이 있었고, 宋 대에도 현재와 유사한 타입의 라면이 있었다. 삼선면(三鮮麵), 계사면(鷄絲緬), 육채면(肉菜緬) 등 오늘날 중국 요리점에서 쓰이는 이름들도 송대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일본에서 라면과 유사한 음식을 처음 만든 것은 메이지(明治)16년경(1833년)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라멘의 기원

    일본 라멘의 기원은 중국에서 찾는다. 일본어사전에 노면(老麵 )이란 말이 있다. 중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老麵 오멘」이란 일본발음이 「라멘」의 어원이라는 설(說)이다.

    왕문채라는 중국인이 있었다. (실존 인물인듯하다). 일본 라면의 뿌리인 북해도 竹家(다께야)식당의 요리사였는데, 「(음식이) 다 됐습니다」라는 표현으로「好了,ハオラ,하오라」라는 특이한 표현을 썼다고 전한다. 이 라(ラ)를 따서 라멘(ラ-メンヲ)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설은 일본 라멘의 원조는 중국의 라미엔(拉 麵 )이라는 것이다. 1줄→2줄→4줄→8줄... 이런 식으로 면을 늘려 빼는 제법을 중국에서 납면(拉麵 )이라한다. 납면의 중국발음 「라미엔」이 굳이 「라-멘」이 되었다는 것이다. 

    라멘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중국풍 라면그릇이 따라왔다.

    1) 냄비가 말린 듯한 모양(나베마끼)은 번개(雷)를 표현한 것이다. 중국 은(殷) 주(周)시대 청동기에서 많이 사용되며 그리스에도 거의 같은 모양이 있었다.

    2) 라면 용기의 용(龍)은 오래 전부터 황제의 문장(紋章)이었으며 11세기 송(宋)시대에는 황제 이외엔 사용할 수 없었다.

    3) 일본 라면 용기의 봉황은 고귀함의 상징이며 중국과 조선에서 전래되었다.

    4) 라면 용기에 써 있는 쌍희(囍). 이는 주로 경사에 사용된다. 중국인은 이 문양들을 그릇이나 식탁에 사용하지 않는다. 엄숙.경건.경외심등을 나타내는 문양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을 것이다. 

 

 ▲ 후쿠오카 카날시티(쇼핑센터) 내의 라멘 스타디움. 일본의 유명 라멘들을 모두 맛볼 수 있도록

     라멘전문점들이 한 곳에 입점하여 각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영업하고 있다.

     photo by keiyko  

 

일본 라멘의 역사

    라 멘은 이미 일본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2차대전 이후까지 라멘은 시나소바(支那소바)라고 했는데, 시나는 china의 속칭이라고 볼 수 있다. 소바가 아닌데 소바의 일종으로 부른 것은 음식의 범주를 새롭게 만들어 넣기 보다는 외국의 것을 일본의 것으로 동화시켜버리려는 일본 특유의 이념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마치 16세기에 포르투칼 사람이 일본에 전한 '텐페로'라는 요리가 텐푸라로 일본의 전통 튀김요리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즉, '수타'라고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면과 스프를 직접 만드는 것이 일본 라멘의 특징이다. 원래 일본 라멘은 중국에서 건너온 1800년대 후반 항구도시 요꼬하마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요꼬하마에는 많은 서양인들이 독자적인 주거를 형성하여 살았는데, 그들이 고용한 가정부나 잡일들을 중국인들이 많이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중국인 사회를 상대로 하는 음식점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시 고기를 먹는 풍습이 없었던 일본은 큐우나베야(牛鍋屋 - 소고기찌게집)에 줄울 서 기다리면서까지 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아이스크림이 팔리기 시작하던 하이칼라를 지향하던 시대로, 당연히 이제까지 먹어본 적이 없던 중국요리는 새로운 시대의 음식문화고서 일반 사람들의 이 같은 미각을 충족시키는 것 중 하나였다. 그들 중 에도고(江戶子 - 동경토박이)들이 중국의 면에 주목하여 소박하면서도 간단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점도 있어 명치시대의 말기(1910년 정도) 무렵에는 동경의 支那そば(시나소바)-메밀국수」의 야타이(屋台 - 포장마차)가 생길 정도가 되었다. 

 

     □ 동경라멘의 탄생

    그러나 일본에서   당시의 시나소바는 소금 맛을 기본으로 하는 스프에 면, 파 등을 넣은 정말로 간단한 것이었다. 이것이 현재의 동경라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간장 맛으로 바뀐 것은 일본 동경의 아사쿠사에 있던 [來來軒-라이라이껜]에서였다. 1910년에 오픈한 라이라이껜은 요꼬하마 남경가(南京街, 현재 中華街)의 중국인 주방장 여럿을 동경 아사쿠사로 모셔다가 슈마이(만두같은 것의 일종)와 완당(일종의 만두)의 요리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팔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중국 요리집이라는 점과 장소적인 특징, 손님 대부분이 동경에 대대로 살고 있던 토박이가 많았다고 하는 점도 자연스럽게 동경 풍으로 변해가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메이지 43년. 이 라면집은 찌바에서 중국집을 경영하는 제자 한 사람을 남기고 쇼와50년(1975년) 노렌(라면집에 다는 붉은 깃발)을 내렸다.

 

    중국품의 돼지 뼈만을 사용한 스프에 닭뼈, 간장을 첨가하는 독특한 방법을 탄생시켰다. 또한 종래의 파를 더해 차슈(돼지고기를 간장양념에 졸인 것)와 면마(일종의 김치)를 넣어 고급화시키면서 일본에서 대중적인 면류로 크게 히트를 쳤다.

 

 

 

     □ 동경라면의 전국시대 (1960년대∼1970년대 중반)

     「來來軒-라이라이껜」에서 탄생한 동경라면은 간장을 기본으로 하는 맛으로 전국의 방방곡곡에 퍼져나갔다. 그러나「고인 물은 섞는다」는 속담처럼 당초의 관동인의 미각을 자극했던 간장을 기본으로 한 라면 맛이, 간장의 양을 늘려 단순히 간장 맛을 짙게 한 것뿐인 질 낮은 라면도 늘어났다.

    이런 간장라면의 독재시대에 1961년에 삿뽀로의「아지노산뻬이(味の三平)」로 미소라면(된장라면)이 탄생한다. 삿뽀로는「라면」이라고하는 이름의 발상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1900년대초부터 라면의 문화가 번창한 라면의 도시였다. 「아지노산뻬이(味の三平)」로 단골들이 명물인 돼지뼈 국물에 면을 넣은 것이 발달이 된「된장라면」은 그후 된장의 브랜드(여러 종류의 된장을 섞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냄)에 의해 한층 더 맛을 더해 삿뽀로의 된장라면으로서 세력을 확대, 1965년에는 간장라면의 메카인 동경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일본 전국, 어디에서도 사용되는 된장이 가정적인 맛을 무기로한 삿뽀로 된장 라면들은 체인화에 의한 전국진출이라고 하는 기동력을 갖추고 일순간에 일본전국을 제압, 동경의 간장라면은 멸망의 위기에 달하게된다. 그러나 동경라면의 세력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각자의 맛을 한층 더 높여 체인점에 의한 기동력을 갖추는 등 여러 방면에서 분투했다.
    그러나 된장라면의 세력을 꺾었던 것은 의외의 세력이었다. 된장라면의 최대의 매력은 그 가정적인 따뜻함이 있는 맛으로 그 누구나가 가정에서 먹었던 어머니의 맛인 된장국을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라면애호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된장은 너무도 일상적인 조미료인 것에 이제까지 동경라면을 만들었던 가게도 조금만 연구하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일면이 있었다. 또한 된장, 버터 등 맛이 강한 조미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간단히 스프와 면의 맛을 속일 수 있었다. 그 결과 붐에 편승한 조악한 맛의 된장라면의 가게가 늘어났다. 1975년에 들어서면서「예전의 된장라면은 맛있었다」라고 하는 라면애호가들의 불만이 나오면서 된장라면의 세력의 전국지배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연유로 간장라면과 된장라면의 두 세력이 약해지는 동안 힘을 축척 시킨 규슈(九州), 도호꾸(東北), 기따관동(北關東)등의 라면세력이 호시탐탐 수도인 동경에 진출을 꽤하고 있었다.

 


    □ 성숙기(1985년∼현재) - 규슈라면 세력의 진출

    1980 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 도래와 함께 구루메(미식가)붐이 일어났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아끼지 않고 면의 도시 동경에서는 간장라면 대 된장라면의 10년 전쟁의 결과 피폐해 있던 각 라면의 세력이 버블과 구루메붐을 타고 다시 부흥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채비를 갖추고 동경에 진출한 것이 하까따를 중심으로 한 규슈 부따호네 라면(규슈의 돼지뼈 라면)집단이었다. 멀리 서쪽 끝의 땅에서 독자의 돼지뼈 문화를 키워온 규슈세력은 버블의 도래와 함께 동경의 각 라면의 세력의 약화의 때를 기다린 보람이 있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이제까지 간장과 된장 맛밖에 몰랐던 동경사람들에게 돼지뼈 라면의 출현은 된장라면의 출현 이상의 충격이었다. 하얗고 뽀얀 스프는 농후한 맛을, 가는 면은 목을 술술 넘어가는 농축된 깊은 맛이 입안 가득히 넘치는 그렇다고 뒷맛이 껄끄럽지 않고 깔끔한 돼지뼈 스프의 깊고 세련된 맛이 라면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버블의 붕괴에서 1990년대의 불황의 시대로 흘러들었지만 규슈라면의 조금씩 세력을 쌓아갔고 된장라면의 쇠퇴의 원인이 된 대중화에 의한 맛의 저하도 그 제법에 고도의 경험과 테크닉을 필요로 하고 누구나가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규슈라면은 그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버블의 도래에서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경에 진출한 것은 규슈라면뿐만 아니었다. 일본풍의 국물을 무기로 한 도호꾸(東北)의 대표적인 기따까따라면(喜多方ラメン), 양질의 밀가루와 좋은 물로 만드는 죠슈(上州)의 유명한 사노라면(佐野ラメン)과 최근에는 기슈(紀州)의 와까야마라면(和歌山ラメン)도 그 세력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그 어느 쪽도 지방에서 세력을 늘려가고 있던 강자임에 틀림없는 각 지방의 라면은 운송수단의 발달과 함께 그 지방의 맛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있게 되었다. 이러한 라면 전쟁에서 살아 남아온 동경라면과 된장 라면도 활기를 되찾아 가는 지금, 면(麵)의 도시 동경은 세기말의 라면 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 라멘의 분류

    일본음식으로 라멘은 그 국물 맛에 따라 크게 4종류로 분류된다고 한다.

    ◎ 큐슈지방 라멘 -- 돼지뼈를 고아서 만든 국물의 라멘

                               (하카다 라멘, 나가사끼라멘, 구마모토라멘)

    ◎ 도쿄라멘(東京ラ-メン) ------ 닭뼈를 사용한 간장 맛의 라멘

    ◎ 삿포로 라멘 --- 된장 맛의 라멘 (북해도 미소 라멘)

    ◎ 시오라멘(鹽ラ-メン)  -----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담백한 맛의 라멘

 

일 본의 점심시간에는 유명한 라멘집들 앞에는 지금도 긴 줄을 서서 라멘을 먹는다. 또한 남자들은 저녁에 술을 한잔 한 후 집에 들어가기 전에 라멘을 한 그릇 먹고 귀가하기도 한다. 물론 전날의 숙취를 해장하기 위해 먹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라멘이 일본의  하나의 전통 문화적인 소재로 부각되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나 백화점의 음식 상가 등에는 아예 전국 라멘을 한 곳에서 골라서 먹을 수 있는 라멘 센터와 같은 곳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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