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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北斗七星)은 자미원에 속하는 동양의 별자리로, 큰곰자리의 꼬리와 엉덩이 부분의 일곱 별을 말한다. 그 모양은 말 단위의 양을 재는 국자 모양과 닮았다.
'북두'는 북쪽의 국자라는 의미이며, 남두육성에 대응된다. 칠성은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북두칠성이 아니라 북두팔성(北斗八星)이 된다. 북두칠성을 구성하는 별들 중 국자의 자루부분 중 끝에서 두 번째 별이 미자르와 알코르로 이루어진 이중성이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은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하지만 8개의 별을 모두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코르'를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별자리는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고 믿어져 왔으며, 한반도와 만주에 분포하는 고인돌에 종종 이 별자리가 그려지기도 하였다. 동양 별자리에서는 황제의 수레로 불리기도 했으며, 그 모양이 벽화에 그려지기도 했다. 영어권에서는 큰 국자(Big Dipper), 쟁기(Plough), 찰스의 마차(Charles' Wain)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북두칠성은 북극성(Polaris)을 찾는 표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국자의 앞 부분의 길이를 5배하면 그 자리에서 북극성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1927년 당시 13세 소년이 디자인한 북두칠성과 북극성 깃발을 주기로 채택하고 있다.
북두칠성을 이루는 여덟 별은 다음과 같다.
이름 | 동양 이름 | 바이어 목록 | 겉보기 등급 | 거리 (광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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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베(Dubhe) | 천추(天樞) | α UMa | 1.8 | 124 |
메라크(Merak) | 천선(天璇) | β UMa | 2.4 | 79 |
페크다(Phecda) | 천기(天璣) | γ UMa | 2.4 | 84 |
메그레즈(Megrez) | 천권(天權) | δ UMa | 3.3 | 81 |
알리오츠(Alioth) | 옥형(玉衡) | ε UMa | 1.8 | 81 |
미자르(Mizar) | 개양(開陽) | ζ UMa | 2.1 | 78 |
알코르(Alcor) | 기수(騎手) | ζ UMa | 3.9 | 78 |
알카이드(Alkaid) | 요광(搖光) | η UMa | 1.9 | 101 |
미자르와 같은 방향으로 지구 관측자로부터 3광년 정도 더 뒤로 가면 알코르(큰곰자리 80)가 있다. 둘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시 이중성이다. 알코르는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4등급 정도로 맨눈으로 충분히 볼 수 있으나, 바로 옆에 보이는 미자르가 상대적으로 밝기 때문에 구별하여 보기 어렵다. 따라서 옛날에는 알코르를 식별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시력을 쟀다. 미자르는 네 개의 별로 이루어진 사중성계인데, 1617년 미자르가 쌍성 구조임을 밝혔으며 1889년 분광쌍성 구조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북두칠성에 속한 일곱 별들 중 다섯 개는 큰곰자리 운동성단의 구성원들이다. 다만 두베와 알카이드는 이들과 상관없는 존재이다. 그 이유는 이 두 별은 나머지 다섯과는 다른 방향으로 우주 공간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각자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북두칠성의 모양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는데, 약 5만 년 후 북두칠성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가 아닐 것이다.
▲ 개태사 칠성탱화 | ||
나는 삼신당의 칠성탱화를 보고 환상적인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무 그림도 없이 벽에 별모양으로 북극성과 북두칠성 및 주변의 별들을 배열해 놓았는데, 정말 ‘칠성신앙’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조각인지라 이것이 진정으로 칠성각이었다는 생각에 절에 가면 부처의 모습을 한 칠성여래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부처모습을 한 칠성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별자리를 배열해 놓았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칠성벽화는 장식품으로 사용해도 절묘한 느낌을 줄 것 같다.
칠성신앙이 어떠한 것이기에 절집 안에 꿋꿋이 그 모습을 이어 오고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만큼 북두칠성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민족은 아마 없을 겁니다. 북두칠성에 대한 선조들의 관심은 말과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나지요. ‘북두칠성이 앵돌아 졌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 하는 옛말을 보면 북두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러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정화수를 떠놓고는 칠성별에 소원을 빌었고 죽어서는 칠성판에 누워야 하늘 문을 통과한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상여가 나갈 때도 좌우로 7명씩 양두칠성과 음두칠성이 배치되었구요. 왜 우리 민족이 북두칠성에 그렇게 집착했을까요?”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의 저자이자 한배달 역사천문학회 부회장 ‘노중평’씨의 말이다.
우리가 일제 36년의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잃어버린 칠성 신앙을 오히려 일본이 계승해 최근 해외로 문화수출까지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정도이니 여기서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음력 7월7일 행하는 칠석제는 은하수 때문에 만나지 못하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까치와 까마귀가 놓아주는 오작교를 건너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날로 운우의 정을 나누는 것을 축복해준다는 이러한 의미는 북두칠성과 주변의 별들과의 운행을 뜻 하는 것으로 그 만큼 칠성을 중요시 했던 것이다.
우리의 옛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오니 부디 금 두꺼비 같은 아들하나 점지해 주옵소서.”라고 소원을 빌어 온 분이 북두칠성이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출생을 기원하는 흰옷 입은 여인의 치성(致誠)은 인간의 지속을 염원하는 원초성이 담긴 것이다.
치성광여래는 북두칠성의 가장 중요한 북극성이고 큰곰자리에 있다. 큰곰은 곧 환웅이고 태양과 달의 맏아들이었다. 환웅은 삼천의 천신을 거느리고 단수가 우거진 신단에 이르렀고 신시를 열었다고 한다.
환웅은 지모신인 백호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음으로써 개천의 시조를 탄생하였다.
북두칠성에 기원하는 것은 환웅의 강림으로 잉태를 기원하는 백호의 재현인 것이다.
우리의 칠성신앙은 그렇게 커다란 의식 없이 순수하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칠성신앙은 고대 이래로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고유 신앙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이 우주에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야 하고, 길흉화복은 물론 수명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북두칠성은 우리 조상들이 믿던 삼신 상제님을 별로 나타낼 때 붙여지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칠성신앙은 신교신앙의 하나였던 것이고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우리는 북두칠성의 자손 즉 천손민족인 것이다.
그래서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고 역대 임금들이 지내던 초재(醮齋)도 칠성님께 올리는 인사와 기원이었다고 한다.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과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28수(宿) 별자리를 본 따 조경한 독창예술품인 동시에 북두칠성 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의 대표작품이 경복궁과 창덕궁이다.
우선 광화문 앞과 경복궁 안에 있는 해치('해태'라고도 호칭)는 자미궁(자미원을 궁궐에 비유한 표현)의 남쪽 하늘을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경복궁 근정전 실내는 자미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내전 안의 장식 색깔은 자미원을 상징하는 검붉은 자주색, 비취색이다.
임금의 용상 뒤에 있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는 용상이 해와 달의 음양과 다섯 개 산의 목화토금수 오행(五行) 즉 하늘의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편 천장에는 용 두 마리가 각 28개의 발가락(하늘의 28수를 상징)으로 여의주(임금)를 호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시대의 고궁은 북두칠성이 있는 하늘의 궁궐, 자미궁을 본 따 지은 대궐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유의 칠성신앙을 바탕으로 한다.
조선시대에 명나라의 통제로 하늘의 제사권을 철저히 잃어버리고, 민간신앙으로나마 존립해오다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나라와 민족을 지탱하던 정신적 지주였던 칠성신앙을 몰아내기 위해 칠성신앙의 대표작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총독부를 지으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칠성신앙을 포함한 온갖 전통신앙을 탄압하여 없애 버렸다.
다행히도 총독부는 95. 8. 15.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철거되어 지금은 옛 모습대로 복구되었다.
민족정신의 정기를 바로 세운 쾌거였으나, 궁궐만 복구하였을 뿐 아직도 우리는 경복궁 조성에 간직되어 있던 진짜 의미인 ‘칠성신앙’과 ‘삼신상제 신앙’은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대다수 한국인은 경복궁에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으니 또 한 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자미성은 북두칠성 동북쪽에 위치한 가장 강력한 기운의 별로 백두민족인 우리가 모시는 별로 천자(天子) 자리를 움직이는 별이므로 자미성의 기운을 받은 국가는 아시아의 천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꿋꿋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자미성은 우리나라 곳곳을 비추고 있지만 그 기운 자체는 남쪽이 강하다.
해가 뜨는 동쪽인 함경도와 경상도에서는 권력적인 사람이, 해가 지는 서쪽인 평양과 전라도에는 문화적인 사람이 나온다. 21세기 세계의 주인은 문화다. 자미성의 천자 자리도 권력에서 문화로 변하고 있다.
문화가 꽃피는 시대, 자미성의 기운으로 태어난 백두민족의 힘으로 문화의 중심에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일 때다. (노중평저 ‘유적에 나타난 북두칠성’중에서)
북두칠성의 깃발, 결국은 그 중심에 한류(韓流)가 더 높아 질 수 밖에 없다.
가수 ‘비’의 미국공연이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의 한류에 두려움을 느끼는 또 다른 세력이 있음을 감지해보지만 결국 이러한 문화적인 전도를 막을 수는 없다고 보여 진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문화 사업이 그 모습을 점차 들어 낼 시대가 왔고 그 중심에 ‘간방(艮方)’의 한민족’이 있다.
북두칠성과 태을천이 우주에 미치는 역할은?
하늘의 중심축의 북극성 주위에 북두칠성이 있고, 자미원(태을천)이 있고, 그 밖으로 28수(宿) 안의 태미원과 28수 밖의 천시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천문의 분포를 3원, 28수 그리고 300의 성좌(별자리)와 1,460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자미궁은 하늘의 핵심으로 상제가 머무는 곳이며, 이러한 자미궁은 제후격인 28수(동서남북 각 7개)의 호위를 받고, 28수는 28수대로 해와 달, 목, 화, 토, 금, 수성의 7개 별인 칠정(七政)의 호위를 받고 있다.
하늘이 구천까지 전개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자미궁을 구천(九天)궁궐이라고도 하며, 이를 본따서 땅의 궁궐을 구중(九重)궁궐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늘의 모든 별들의 중심(자미원)에는 북극성이 자리잡고 있고, 바로 가까이에서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모시고 그 주위를 24시간을 두고 한 바퀴씩 돌면서, 하늘의 뭇별을 다스리고 있다.
북두칠성은 자미원에 흩어져 있는 각 별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별들을 연결하는 힘은 북두칠성이 보내는 중력의 힘이다. 북두칠성은 자미원 밖으로는 28수와 태양계 별들을 다스린다. 북두칠성을 따라서 28수와 오위(五緯: 목, 화, 토, 금, 수성)가 따라 움직인다. 모든 별들은 이 북두칠성의 힘에 이끌려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북극성은 우리가 속해 있는 우주의 중심이다.
태양계는 태양계의 모든 별들을 거느리고 태양계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하여 북극성 주변을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즉 태양계는 북극성 주변을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즉 태양계는 북극성이 주재하는 우주에서 볼 때 하나의 점인 것이다. 이 우주는 제 마음대로 도는 것이 아니고, '5·7·1 묘연(妙衍)'의 천부공식에 의해 정연하게 움직인다.
북극성은 우주의 북쪽 끝인 황도북극에서 동쪽으로 23.5도 각도인 천(天)의 북극에 떠 있다. 지구의 축은 이 북극성 을 향하여 23.5도 기울어져 있으며 태양 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반복한다.
문왕팔괘를 보면, 하늘(乾)이 서북쪽에 있고 땅(坤)이 서남쪽에 있는 데 이것은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말한다.
지구는 황도 북극을 향하여 스스로 바로 서려고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북극성과 반대편의 23.5도 각이 되는 곳에 있는 직녀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세차(歲差)운동을 한다. 또한 북극성도 항상 같은 위치에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천문학은 인간과 천체가 하나라는 철학에 근거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 것은 별자리 28수의 배치가 3양 2음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3양 2음으로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보다 많아 선천인류 역사가 남성이 주도하는 분열과 발전의 상극의 과정을 걸어왔다.
천문(天文)이란 하늘의 글월이란 뜻이다. 하늘에 글자가 써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는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 대한 어떤 예시(豫示)가 천체의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선조들은 본 것이다.
즉 우리 조상들은 신교 정신에 따라 하늘에는 절대적인 주재자가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祭天)의식이 오늘날 우리 생활속 깊이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천지인 합일 사상에 따라 인간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야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고, 하늘은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영혼이 돌아갈 고향으로 믿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빛이 1→3(삼원색)→7(일곱 무지개)로 전개되고 우리 몸이 1→3(삼혼三魂)→7(칠백七魄, 7개 챠크라)로 짜여 있듯이, 우주도 1(우주 본체)→3(자미원, 태미원, 천시원)→7(북두칠성 또는 4×7=28수)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다.
즉 북두칠성을 천제(天帝)를 대변하는 별로 보았고, 하느님의 자손인 한민족으로선 죽어서도 원래 왔던 하느님 고향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 아무런 망원경도 없이 하늘을 보고 오늘날 봐도 놀랄만큼 정확한 천문도를 작성하고, 그 수 많은 별자리와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별자리를 그냥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혜안을 가지고 보았다.
우리 선조들의 천문법은 인간과 천체는 하나라는 철학에 근거한 법이었다. 일식과 월식이 인간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하늘의 별은 지상 인간의 운명과 직결된다고 보았다. 즉 천지인 합일사상 또는 인간은 소우주라 생각하신 것이다.
잊혀진 우리의 북두칠성 문화
우리들은 죽어서도 칠성님에게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시신을 안치하는 칠성판이 그렇고 송장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님을 나타낸다. 그러나 지금의 칠성판에는 일곱 개의 별이 없다. 칠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죽어서 가기는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일깨워 준 칠성에서 태어나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칠성신앙을 송두리째 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일제는 우리 고유의 천문학을 정책적으로 축소 왜곡시켰으니, 우리의 왕립 천문대는 1904년부터 일개 측우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제는 또한 우리 겨레가 별에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생각들을 미신이라는 누명을 씌워 제거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별자리, 특히 북두칠성 신앙은 제 자리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별자리 북두칠성 : 어출쌍생 성골남진부분[아래사진은 두번째별 쌍생]
메트로의 살롱가인 이명현(연세대천문대 책임연구원)의 별의별 이야기중에도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아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 한 바퀴 도는 일곱 개의 별을 서양에서는 큰곰자리의 일부로 보았지만 동양에서는 북두칠성으로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북쪽 하늘에 자리한 북두칠성이 사람의 죽음을 관장한다고 생각해 왔다. 천지신명께 빌려면 북두칠성에 빌었다. 칠성각을 지어놓고 빌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북두칠성은 그 옛날 고인돌에도 새겨져 있고 고구려벽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한편 남쪽 하늘 궁수자리에 있는 남두육성은 북두칠성과 그 모양이 엇비슷한데 사람의 삶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엄마 배 속에 아기가 생기면 그 아이가 태어나는 날은 남두육성이, 죽는 날은 북두칠성이 정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 두 별자리는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북두칠성은 국자처럼 생기기도 했다. 국자 손잡이 부분 끝에서 두 번째 별이 ‘미자르’인데 자세히 보면 바로 옆에 별이 하나 더 보인다. 물론 눈이 좋은 사람이 맑은 날에 어두운 곳에서 봐야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알코르’라고 불리는 이 별은 사실은 미자르와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인데 우리 지구에서 볼 때 우연히 나란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로마 시대에는 이 알코르가 보이는지의 여부로 시력검사를 해서 군인을 선발했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천체망원경으로 북두칠성의 별들 근처를 살펴보면 눈에 보이지 않던 어두운 별들이 하나 둘 씩 마구 나타나 보이기 시작한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졸린 눈을 비비며 한 친구와 미자르와 알코르 찾기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추억이 아련하다. 내 눈에 알코르가 보였던 날은 북두백성을 얻은 기분이었던 그 짜릿한 기억이. ...
국자 손잡이 부분 부터 7개의 칠성이 진행된다 [1대괴탐랑 2거문(미자르) 3녹존 4문곡 5염정 6무곡 7파군]
칠성신(七星神).북두칠성의 일곱 성을 인격화한 신. 1) 탐랑성 : 괴(魁)의 첫 번째 별로 정성(正星)이라고 하니, 하늘이 된다. 주로 양의 덕을 맡으며 천자의 상이다. 이 별은 하늘의 으뜸이 되는 법도를 정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생하므로 생기성(生氣星)이라고 한다. 하늘의 축이라 하여 천추성이라고도 한다.
북두의 별 - 별자리 - 별자리의 의미
[조용헌 살롱]북두칠성(北斗七星) 고구려 고분 벽화들을 유심히 보면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북두칠성 그림이다. 왜 죽은 사람의 묘마다 빠지지 않고 북두칠성을 그려 넣은 것일까? 고구려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두칠성은 ‘時間의 神’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은 7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섯 번째 별을 무곡성(武曲星)이라고 하고, 마지막 일곱 번째 별은 파군성(破軍星)이다. 여섯 번째 무곡성과 일곱 번째 파군성을 선으로 연결하면 국자의 손잡이 형태가 된다. 이 손잡이 부분을 보통 두병(斗柄)이라고 하는데, 고천문학자들은 시침(時針)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우주의 시곗바늘이라는 뜻이다. 음력에서 말하는 1년 열두 달은 이 시침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1월을 알리는 절기는 ‘입춘’이다. 옛날 사람들은 입춘이 되는 날 저녁 술시(저녁 7~9시) 무렵에 밤하늘에서 두병(시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느 쪽인가를 관찰하였다. 별자리는 술시에 관찰해야 한다. 입춘날 술시(戌時)에 두병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확하게 인방(寅方)이다. 나침반에서 인방은 북동쪽이다. 인(寅)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1월에 해당한다. ‘경칩’이 되는 날 술시에 두병이 가리키는 방향은 동쪽인 묘방(卯方)이다. 묘는 2월에 해당한다. ‘청명’이 되는 날 술시에 두병이 가리키는 방향은 진방(辰方)이다. 진은 3월이다. 북두칠성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계이자 달력이었던 셈이다. 고구려인들은 북두칠성이 우주시(宇宙時)를 가리킨다고 믿었다. 우주시가 몇 시냐에 따라 인간시(人間時)가 정해지는 법이다. 북두칠성은 우주와 인간의 스케줄을 관장하는 시간의 신으로 생각하였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 끝났다는 의미이고, 다시 새로운 시간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우주의 시계인 칠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돌아가셨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명이 짧은 사람은 칠성기도를 드리고,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 위에 올려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발생한 테러를 보면서 왜 인간은 이처럼 참혹하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맴돈다. 원래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간 것이라고 위로해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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