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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慶北中學校 42回 同窓會 원문보기 글쓴이: 高飛 정인환
금천 윤호정 동기가 중편(中篇) “동성로 여왕벌”을 발표함으로서 ‘문학예술사’로부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고 마침내 한국 현대 소설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앞으로의 왕성한 창작 활동을 기대하며, 소설 “동성로 여왕벌”을 이곳에 소개합니다. **********************************************************************************
********************************************************************************** 동성로 여왕벌 윤 호 정
1. 본향의 한 마담
지난해에 한국의 합섬직물수출이 물량 면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기술수준도 80%까지 따라붙자 금년부터 일본섬유업계지도자들의 대구섬유산지방문이 부쩍 늘어났다. 오늘도 세계제일의 합섬직물산지인 일본 후쿠이에서 일본직물조합의 가와이 이사장과 조합이사인 미야자키 사장, 종합무역상사인 이토츄 상사의 다니구찌 전무와 이노우에 한국지사장이 대구섬유업계와 공존, 공영의 길을 모색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을 경유하여 오후 다섯 시 경에 금호호텔에 도착할 예정이고 저녁에는 본향(한정식 집)에서 가와이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내게 베푸는 연회가 예약되어 있다. 금호호텔 인근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출입했던 유명한 요정인 춘앵각이 있지만 내가 굳이 섬유회관 옆에 새로 생긴 본향이란 조그마한 집을 택한 것은 그곳 주인인 한 마담이 나와 는 고향의 영천금호국민(초등)학교 동기생이며 철없던 중학교시절 스쳐간 로맨스가 있는데다 가오(얼굴)마담인 바둑이가 일본술집의 여급출신으로 일본말을 꾀 잘했기 때문이다. 내가 경북견직물조합의 최 상무와 함께 일본사람 넷을 대동하고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이리 오너라.” 하고 호기를 부리자 한 마담이 얼핏 내다보더니, “야들아, 알라(애기) 아부지 오셨다, 얼른 안방으로 모셔라.” 하고 외쳤다. 바둑이와 홍 마담이 버선발로 뛰어내려와 내 팔에 매달리며 우리들을 안방으로 안내 하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살포시 큰절을 하며 기생점고를 마치자 한 마담이, “한, 일을 다 통틀어가 봐도 우리 알라 아부지만한 인물이 없네, 보아하니 일본섬유업계의 거물인 것 같으니 일본말을 잘하는 바둑이 니가 알아서 잘 모셔라.” 하고는 산달이 가까워 오는 무거운 배를 안고 인사처럼 내 옆구리를 툭 치고 나갔으며 모처럼 현금계산에다 술값이나 팁을 아끼지 않는 일본손님들이라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술상이 들어오기 전 개다리소반에 콩나물죽을 앞에 두고 가와이 이사장이 정색을 하며, “권상, 그간 논의되어 왔던 ‘아시아직물회의’ 창설에 관한 협정문에 대구에서 서명을 해주면 바로 타이완으로 가서 서명을 받아 일 년 후인 내년 사월 도쿄에서 창립총회를 갖도록 합시다.”라고 했다. 나는 협정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와이 이사장의 일방적인 독주에 일단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우선 속도를 한 템포 늦추기로 했다. “팩스로 보내주신 협정문을 보니 삼국을 대표하는 직물단체가 일본은 ‘후쿠이현조합’ 한국은 ‘경북조합’ 중국(타이완)은 ‘타이페이조합’으로 되어있던데 이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자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비록 상징적이기는 하나 각국의 수도에 ‘직물조합연합회’라는 상위단체가 있고 회의명칭에 아시아가 들어가는데 지방조합 이름으로 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지방조합 명의로 양해각서(MOU)만 교환하고 내년에 상위단체명의의 정식협정문 조인과 함께 창립총회를 하는 것이 순리라고 봅니다.” 가와이 이사장이 이토츄상사 사람들과 숙의를 거듭하더니, “좋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권상이 지적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각국이 협정문에 필수적으로 담아야 할 추가적인 내용이 있으면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평소 하던 대로 술값계산을 알아서 하라면서 돈지갑을 내게 맡겼다. 나는 이곳 본향에서 가와이 이사장과 이토츄상사 사람들을 단골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별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처음 들어온 기생환갑이 가까워 오는 아가씨들은 팁을 주어 모두 내보내고 바둑이 마담을 불렀다. “바둑아, 여기 내 빼놓고는 다 내일모레가 환갑이다, 틀니 해 넣은 사람도 있고 이빨이 없어 잇몸으로 씹는 사람도 있는데 질긴 거는 통 못 자신다, 그러니 실크같이 연하고 보드라운 놈으로 골라서 올려라, 늙은 말이 연한 풀 찾는다는 소리도 못 들어봤나, 그리고 오늘은 꽃빤스 입은 애들은 아예 들이지 마래이.” “예, 알아서 모시겠심더, 이마빡에 노란 솜털이 뽀송뽀송한 영계백숙으로 올리겠심더.” “진작 그럴 것이지.” 새로 들어온 아가씨들은 역시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할 정도였으며 풋 보리밭에서 먹는 수박냄새처럼 코끝을 스치는 향기가 달랐다. “너희들 중에 금년에 중학교 졸업하고 여기 바로 온 사람 손들어봐라.”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손을 들었다. “손 안든 너는 뭐고, 작년에 졸업했나?” “그게 아이고예, 저는 아직 중학교 재학중이라예.” 우리는 상을 치며 폭소를 터뜨렸고 나는 이 아가씨의 위트에 감탄하여 일금 만원을 팁으로 주었다. 이어 임금님 수랏상보다도 더 잘 차린 요리상이 몇 개나 들어오고 그 비싼 양주병이 쉴 사이 없이 오가며 우리말과 일본말이 뒤섞여 시끌벅적한 가운데 누가 치마 밑에 손을 넣었는지 한 아가씨가 기겁을 하고 한걸음 물러앉았다. “쥐새끼가 감 씨를 물고 갈라고 들어 왔는갑다, 감 씨를 빼이면 시집 못간데이, 느그들 모두 조심 해래이.”하고 내가 사태수습을 하자 모두들 까르르 웃었고, “고 쥐새끼가 현해탄을 건너온 쥔지 대구 본토박이 쥔지 알 수가 없네, 대구 쥐는 찍찍, 짹짹하며 우는데 일본 쥐는 찍이노, 짹이노 하며 운다며?” 하고 바둑이 마담이 한술 더 뜨자 다시 웃음소리가 온 방안을 들썩이게 했다. “자, 자 일본 놈은 나가고 조선 놈만 들어오느라.”하니 모두들 무슨 뜻인지 몰라 나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소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꺼?”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옛날에 색주가집 대문에 붙은 방인데 비록 몸을 팔더라도 일본 놈한테는 안 판다고 하는 줄 알고 가상히 여겼는데 내용을 알고 본즉 그게 아니고 일을 본 놈은 빨리 나가고 좆이 선 놈은 빨리 들어오라는 말이라나......” 모두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를 했다.
3인조의 출장밴드가 들어오자 제일먼저 미야자키 사장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멋 떨어지게 불렀고 가와이 이사장은 18번인 ‘대전블루스’를, 나는 가와이 이사장이 좋아하는 우리민요인 ‘한오백년’을 불렀으며 홍 마담은 ‘그 때 그 사람’을 가수 심 수봉이 보다 훨씬 더 잘 불렀다. 가와이 이사장이, “어제저녁 서울에서 섬유산업연합회가 주관한 환영회에서 인간문화재가 부르는 정통한국민요를 들어봤는데 권상의 민요솜씨와는 차원이 다르더라.”면서 진반농반을 했다. 이 소리를 들은 나는 벌컥 화를 내는 시늉을 하며 우리말로, “그라면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하다 이 말 이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좆도 모르는 게 불알보고 탱자, 탱자 한다더니 그 까짓게 인간문화재라면 나는 천연기념물이다.”라고 하니 마담과 아가씨들이 박수를 치며 배꼽을 잡았고 최 상무의 통역으로 일본사람들도 박장대소를 했다. 밴드를 물리고 술판이 파장으로 넘어가자 또 바둑이가 와이담 한 자락을 내게 청했다. “공납금도 안 받고 이런 거 자꾸 가르쳐 주면 안 되는데......” “아따, 공납금 드리마 안되능교, 요즘 나도 밑천이 딸리는데 아다라시이(새로운 것)로 한 가지만 해주이소.” “나는 가진 게 돈 뿐이니까 현금은 필요 없고 현물로 도고.” “현물로요, 그라마 근사한 넥타이 하나 사드리면 되겠능교?” “가시나 이거는 가오마담이라 카는기 우예 이래 말귀가 어둡노, 그래가 니 언제 이집 인수 하겠노, 연분홍 감 씨가 달려있는 전복 하나면 된다.” “하이고 늙은 말만 연한 풀 즐기는 줄 알았더니 젊은 말도 연한 풀 찾는구나, 내 꺼는 시커멓고 찔겨서 못 먹겠다 이 말씀인데 내일 대구역에 한번 나가보고 시골서 금방 올라온 아주 새마을시러분(촌뜨기 같은) 가시나 하나 목욕재계시켜서 대령하께요.” “오냐,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개 씹하는 것도 모르는 교장선생님’ 해주께.” “그거는 지난번에 한번 했던 거 아잉교, 새걸로 하나 해 주소.” “그랬던가, 오냐 알았다, 자 나가신다.” “대구에서 섬유업을 하는 김 사장이 육십 평생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 일본의 후쿠이로 가기위해 김포공항에서 코마츠행 JAL기를 탔는데 일본입국가드를 기재하자니 전신만신 영어요 일어뿐이라 옆 사람에게 물어, 물어가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성명, 생년월일 등을 적어 넣다가 SEX 난이 나오자 김 사장은 기가 막혔다. 일본이 좀 별난 나라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도대체 일본정부는 뭣 때문에 남의나라 국민들의 부부간 잠자리 횟수까지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두 번이라고 '2' 자를 써 넣었다. 실제로는 한 번도 잘 안되지만......, 그럭저럭 입국수속을 마치고 사쿠라바시 들머리에 있는 아케보노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나니 무사히 도착하여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배가 몹시 고파왔다. 눈치껏 이리저리 살펴가며 삼층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가긴 했는데 식사시간이 어중간 하여 손님이 한사람도 없었고 식사주문은 해야겠는데 영어고 일어고 간에 한마디도 할 줄 몰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레슬링 선수처럼 우람한 체격의 서양남자 하나가 들어오더니 뭐라고 쉘라쉘 라 주문을 하는데 여자종업원이 잘 알아듣질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 영어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 서양남자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양손을 벌리면서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허리띠를 풀어 바지를 벌려 들여다보라고 손짓을 했으며 여자종업원이 들여다보고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뭐라고 주문을 했는데 이윽고 나온 음식을 보니 팔뚝만한 소시지 하나에 큼직한 계란 두개가 나왔다. 이를 본 김 사장은 무릎을 치면서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옳거니 나도 저렇게 하면 말이 안통해도 밥은 굶지 않겠구나, 역시 서양 놈은 조선 놈 보다 한수 위고, 일본여자도 한국여자 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 간다고 생각하며 김 사장도 손짓으로 종업원을 불러 바지를 풀어 보여 주었다. 종업원이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서 가지고 온 음식을 보니 하느님 맙소사, 겨우 말라비틀어진 고추 하나에, 메추리알 두개만 달랑 있었다.”
술자리가 파하자 우리들이 모두 비틀걸음으로 마루에 나와 구두를 신는데 보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신을 신겨주었고 나는 큰 인심이나 쓰듯이 만 원짜리 한 장을 빼주고는, “바둑아, 나는 택시 한대 불러주고 룸넘버 적어준대로 애들 잘 챙겨 보내래이.” 하니 미야자키 사장이, “권상, 바둑이가 무슨 의미노 말이무니까?”하고 물었다. “박 마담의 입이 강아지 입을 닮아서 붙인 별명인데 즉 개라는 뜻으로 박 마담이 개라면 그 보지도 곧 개보지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일본에는 이런 농담이 없는지 일본손님들은 별 반응이 없었고 보이와 아가씨들만 키들거렸으며 인사를 하러 나온 한 마담이 이를 듣고는 신을 신고 있는 내 어께에 팔매질을 해대며 눈을 흘겼고 가와이 이사장 일행을 맞이한 대구의 첫날밤은 이처럼 질펀한 술판과 걸쭉한 육담으로 깊어갔다. 삼천궁의 윤 마담은 배가 불러오자 ‘본향’이라는 조그마한 한정식 집을 개업하여 ‘한 마담’으로 술집 성도 바꾸고 바둑이와 홍 양을 데리고 나와 가오마담으로 앉힌 후 뒷전으로 물러앉아 주방 일에만 관여했다. 가격이 요정보다는 싸고 음식이 정갈하여 점심시간에는 앉을자리가 없었고 저녁의 술자리도 전속밴드만 없을 뿐이지 예쁘고 교육이 잘된 아가씨들이 많아 항상 흥청거렸으며 동 업계에서는 이제 한 마담도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고 나도 개업선물로 업소용 대형냉장고 두 대를 보냈다. 또 한 마담은 인건비도 아끼고 음식관리를 철저히 하기위해 주방장을 자청했고 식재료의 납품도 한사람으로 일원화 시켜 납품가격을 대폭 인하시켰으며 원래 솜씨가 짭질밪고 맵질밪아 손님들의 칭찬이 자자한데다 인도나 중동의 바이어들을 데리고 오면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니 종업원들도 주인을 달리 보았으며 천하를 손안에 넣은 것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요즘 같으면 정말 세상 살맛이 났다.
한 마담이 밴 아이의 아버지가 섬유수출입조합의 권 소장 즉 ‘나’라는 소문이 몇 바퀴를 돌아 내 귀에 까지 들어온 것은 배가 제법 부르고 얼굴에 기미가 꽉 끼었을 때였다. 나는 정색을 하며 낮지만 엄한 목소리로 추궁을 했다. “나는 당신 손목도 한번 제대로 못 만져 봤는데 뭣 때문에 내가 아이 아버지란 소문을 내고 다니노, 날 우세시켜서 덕을 볼 일이라도 있나?” “알라 아부지란 소문이 그렇게도 억울하든교, 진짜 알라 아부지는 대구바닥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섬유업계 회장인데 만약에 소문이 나서 알라를 낳기도 전에 지우라 카면 내 신세는 뭐가 되겠는교, 서울서 내려온 월급쟁이들이야 일, 이년 있다가 올라가버리면 그만인데 그까짓 누명 좀 쓰면 어떤교, 이십년 만에 만난 첫사랑한테 그만한 부주도 못해 주겠는교, 정말 너무합니더.”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 격이었고 너무나 황당해서, “이봐 한 마담, 부주할게 따로 있지 그런 걸 어떻게 부주를 하나, 이 말이 돌아, 돌아 우리 집사람 귀에까지 들어간다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못질 것도 없지 뭐, 쫓겨나거든 우리 집으로 오소, 내가 먹여 살릴 테니.” “오냐,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니 좋을 대로 해라, 내가 다른 거는 못해줘도 나중에 알라이름 하나만은 좋은 걸로 지어 주께.” 하고는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 말았다. 그때서야 한 마담의 얼굴이 훤히 밝아지며 ‘아이고 우리알라 아부지요’ 하고 내 목을 끌어안았으며 눈에는 감격의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이래서 나는 팔자에도 없는 이 집의 알라 아부지가 되었고 마담들로부터는 형부라는 호칭까지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고향에서 면서기를 하는 친구가 찾아와 한 마담의 얼굴이나 한번 보겠다고 하여 멀리 있는 본향까지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바둑이가, “언니는 몸이 무거워 오늘 못나왔는데 혹시 언니의 임신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느냐?”고 내게 제법 진지하게 물어왔다. “느그들이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노, 느그 언니 말대로 알라 아부지가 섬유업계 회장이라니 아이를 낳고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이 친구도 알다시피 언니와 나는 국민학교때 한반에 있으면서 서로 좋아했던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이십년 만에 처음 만났을 뿐이며 내가 한 살 더 많으니까 오빠대접을 해주는 거겠지.” “삼천궁 삼층에서 언니가 술이 취해 난리를 피우던 날 두분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능교?” “야가 생사람 잡고 있네, 그날 만취한 언니를 느그들이 데리고 내려갔고 나는 통행금지에 걸려 폭탄주에 곤드레가 되어 옷을 입은 채 쓰러져 잤는데 그 난리 통에 일은 무슨 일.” “거기까지는 맞는데 그날 저녁 삼층 안방에 술상을 마련하라 한 것도 언니고,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더니 같이 자고 있던 언니가 보이지 않았고, 또 아침에 두 분이서 청도 집 해장국을 시켜다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우리들은 평소에는 아침밥을 먹지 않고 늦잠을 자거든요.” “봐라, 서울서 혼자 내려와 사는 사람 아침밥 먹여가 보내는 것은 당연한일 아니가, 하여튼 나는 느그 언니가 울며불며 횡설수설하던 것 밖에는 기억이 없어, 그리고 내가 아무리 취했어도 통행금지만 없었더라면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갔을 거야, 호텔도 여관도 아니고 술집에서 자다니 그건 말이 안 되지.” “혹시 그날 폭탄주에 필름이 끊어진 거 아잉교, 술 잔뜩 먹고 집에 잘 들어와 놓고는 이튿날 아침에 간밤에 택시를 타고 왔는지, 차를 몰고 왔는지, 차는 어디다 두었는지 새까맣게 모르는 거 그런 경우 말입니더, 출산예정일로부터 거꾸로 계산하면 그때가 맞는데......” “술이 취해가 주긴 줬는데 어느 놈한테 줬는지도 모르고 엉뚱한 사람한테 줬다고 자꾸 우겨대는 느그들하고 내가 똑 같은 줄 아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퍼떡 따라라, 느그 언니 얼굴한번 볼라고 불원천리 찾아온 손님 술 고프시겠다.”
2. 삼천궁의 윤 마담
내가 서른셋의 나이로 상공부 산하의 한국수출입조합 대구합동사무소장으로 내려오자 대구무역업계가 잠시 술렁거렸다. 지역신문에 난 프로필을 보면 우선 나이가 만으로 따져 서른한 살에 불과했고 국회의원비서관 출신에다 아직 학위를 받지는 못 했으나 박사과정을 이수했으며 한국최대의 인맥집단인 KS마크(경북고, 서울대)이기 때문이었다. 수출입조합은 매 수출입건마다 승인서를 발급하고 일부품목은 수출검사까지 했으며 수출 질서유지 측면에서 독점수출권, 쿼터, 자율규제 등의 각종 법적제한조치를 관리하는 한편 주요 해외시장에 사무소를 두고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초기 무역업체의 입장에서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무서운 존재였다. 사무실에는 난 화분이 수없이 들어오고 내가 인사를 나간 기관이나 업체에서는 나와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업체의 임직원들이 찾아와 저녁초대를 했으나 이를 정중히 거절하느라고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러나 소그룹에서 초대하는 저녁식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업계의 실상을 파악하고 정보를 얻는 대는 안성맞춤이었으나 섬유수출경기가 워낙 좋은 탓인지 모든 모임을 거의 요정에서 하고 있어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날은 대구최대의 직물수출업체인 ‘영남무역’의 초대를 받아 대구종로에 있는 ‘삼천궁’이란 요정을 찾아갔는데 가오(얼굴)마담인 ‘윤 마담’과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동시에 얼어붙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아무리 산천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철부지시절의 첫사랑을 몰라볼 리가 없었고 그 서글서글한 눈매하며 영화 자유부인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왼쪽입술아래에 있는 녹두알만한 붉은 점이 나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으며 분명 윤 마담이 아닌 바로 ‘안 선례’였다. 선례와 나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으나 피차가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잘 몰랐으며 기껏해야, “나는 경북중학에 갈 테니 니도 제일여중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말 밖에 못 했으나 이런 소망이 뜻대로 이루어지자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져 대구에서는 선례의 하숙 밥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빵집과 자장면 집을 들락거리기도 했으며 대부분의 비용을 그녀가 부담했고 금호에서는 강 건너 과수원길이나 보리밭골에서 사과서리를 하며 서툰 스킨쉽으로 남몰래 풋사랑을 곱게 물들여갔다. 우리 집은 농촌에 있으면서도 한 뼘의 농토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했으나 선례네 집은 큰 과수원에 일본식 가옥이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도의원에 입후보했을 때는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윌리스 찝차를 타고 다녔으며 대구의 하숙집에서 우리의 밀회가 들킨 이후 선례는 본가에 들어가 한동안 기차통학을 했고 금호역이나 대구의 시내버스 안에서 더러 마주치기도 했으나 늘 나를 외면했으며 이런 날은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뿌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영남무역의 오 전무가 몇 번을 불렀으나 윤 마담이 나타나지 않자, “윤 마담이 오늘 영천장에 콩팔러 갔나 아니면 달거리 하는 날이가, 서방님이 오셨는데도 와 코빼기도 안 보이노, 냄새나도 괜찮으니 그냥 깨끗하게만 씻고 빨리 들어오라고 해라.”하며 농을 걸었다. 바둑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이가 좀 든 아가씨가, “언니는 몸이 좀 아파서 오늘은 못 들어와예.”라고 했다. “와, 어디가 아픈데, 보지 아프다 카더나, 그라마 내가 가죽 침 한대만 놔주면 대번 낫는데......” “아이고 전무님도, 가죽침도 침 나름이고 병도 병 나름이지 여자 가슴아픈거를 누가 무슨 수로 낫수겠습니꺼?” “야가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노, 그거는 더 쉽다, 여자 가슴아픈기사 그냥 손으로 가슴을 살살 만져주고 몇 번 빨아주면 대번 낫었뿐다” “아이고 내가 못살아, 우리는 여자 아인교 남사시럽구로, 마 그만하고 술이나 잡수소.” 나는 선례를 만난 충격에 말을 잊고 주는 술만 꾸벅꾸벅 받아마셨다. “권 소장, 내 막내 동생과 친구라니 하는 이야기인데 무역은 잘 아실 테고 대구산지에 온 김에 섬유를 원사에서부터 준비, 제직, 염색가공까지 철저히 배워가 가이소, 앞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겁니다, 그리고 권 소장도 언젠가는 섬유공장을 가지고 직접 무역을 해야 안 되겠습니까, 가능하면 서울 올라가지 말고 대구서 제대를 하이소, 지금까지 대구섬유는 일본섬유를 모방만 해왔는데 이제 일본섬유를 질적으로 추월하고 능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은 권 소장과 같이 때가 묻지 않고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젊은 엘리트들이 해내야지 대구의 섬유관련기관이나 연구소에는 인재가 너무 없어요, 공무원 퇴물들이 앉아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면서 일에는 등신이고 돈에는 귀신들이니......” “저한테는 과분한 말씀입니다만 깊이 명심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배 회장님을 자주 찾아뵙고 고견도 듣고 해외시장정보도 전해 드리고 하이소, 연세가 내일모레 팔십이라도 아직 정정하십니다, 대구에서 섬유 밥을 제대로 먹을라 카마 우리회장님 눈 밖에 나면 안 됩니다, 우리 회사는 직기가 만대에 하청공장만도 수백 개나 되고 연간수출이 섬유부분만 이억 불이나 되는 삼십대 재벌입니다, 즉 우리회장님이 대구섬유업계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무원이고 섬유업자고간에 우리회장님 앞에만 서면 숨도 재대로 못 쉬고 말을 더듬거리는데 권 소장은 인사를 하러 와서 눈 똑바로 뜨고 할 말 다하고 심지어 회장님의 의견에 ‘노’라고까지 하고 갔다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이쁘게 봐 주셨다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오늘저녁도 회장님께서 권 소장 밥 한번 사 드리라는 말씀이 있어서 마련한 자립니다만 부장들을 내 보낼까 하다가 회장님의 특별한 당부가 있어서 내가 나왔습니다, 일본은 종합상사를 통해 경쟁국의 생산이나 수출관련정보를 거울 보듯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타이완)에 관해 까막눈이니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지요, 거기다가 우리들끼리의 경쟁은 좀 심합니까,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습니까?” “우선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하는데 현재 대구의 직기가 기종별로 몇 대인지 월간 품목별 생산량은 얼마인지 등을 파악한 후에 섬유정보센터를 설립해서 신문, 잡지, 전문서적 등의 인쇄정보부터 수집하는 한편 해외의 코트라나 상사주재원들에게 정보수집비용을 지불하고 시장정보를 입수하여 대구에서 재가공해서 업계에 공급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인건비나 유지비에 막대한 예산이 드니 그게 문젭니다.” “그런 건 중앙정부나 경북도에서 부담해 줘야지......” “그러시다면 정식으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상공부에 백억 정도의 예산신청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정부 돈 백억을 받으려면 우리도 백억을 내놔야만 가능하며 경제기획원과 국회에 로비가 필요합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우리회장님과 잘 의논해서 권 소장이 한번 추진해 보이소, 그런 게 권 소장이 할 일이지 책상머리에 앉아 도장 찍는 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 아인교, 중앙부처나 국회에 전신만신 대구사람들인데 로비야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앞장 설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 대구섬유업계에서 백억을 목표로 모금을 한다면 얼마나 모을 수 있으며 영남무역에서는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습니까?” “잘해야 삼십억 정도 모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대구섬유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십퍼센트이니 그 정도 선에서 우리도 부담하겠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전경련이나 화섬협회의 지원을 받아야겠군요.”
“야 이거 우리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네, 홍 양아 니는 성이 뭐고?” “홍 양 성이 홍가지 양가겠습니꺼?” “아따 고년 입 한번 야물구나, 그래 니는 중국(타이완)유학까지 했다면서 무슨 도화살이 끼어가 여기까지 왔노?” “그게 도화살인지 망신살인지는 몰라도 그 사연은 열권짜리 대하소설로 엮어도 모자랍니더.” “그래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듣기로 하고 오늘은 ‘나쁜년 시리즈’ 그거 한 번 더 해봐라, 안 들으니 자꾸 잊어버려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못됐고 나쁜 년은?” “줄듯, 줄듯 하면서도 안 주는 년” “그것보다 더 못됐고 나쁜 년은?” “호텔까지 가서도 안 주는 년” “그것보다 더, 더 못됐고 나쁜 년은?” “자기도 안 주면서 남보고도 못 주게 하는 년” “그것보다 더 못됐고 더 나쁜 당장 때려죽일 년은?” “주지도 않고 줬다고 소문만내고 다니는 년”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착한 년은?” “밥도 사고 떡도 주는 년” “고것보다 더 이쁘고 착한 년은?” “호텔비도 내고 용돈까지 주는 년” “고것보다 더, 더 이쁘고 착한 년은?” “자기 것도 주고 친구 것도 맛보라고 하는 년” “고것보다 더 이쁘고 더 착하고 표창 받아야 할 년은?” “싫다할 때 깨끗이 물러나는 년” “홍 양이 하는 ‘년 시리즈’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단 말씀이야, 오늘은 서울서 오신 총각선생님을 잘 모셔야 한다.” “진짜로 총각이면 총각딱지는 내가 책임지고 떼 드리겠습니더.” “총각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요, 소장님이 우리 집에서 연애하기는 ‘트’자에 리을을 한 것 같습니더, 아까 보니 윤 마담 언니의 눈치가 이상하던데 혹시 우리언니가 첫사랑 아잉교?” 하고 바둑이가 끼어들었다. “첫사랑은 무슨 첫사랑, 전혀 예상치 못하고 고향사람을 만났으니 조금 당황했겠지요.”
윤 마담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집안이 망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동안 어디서 무었을 하며 어떻게 살다가 술집마담이 되었을까, 남편이나 자식은 있을까, 현재의 삶도 많이 고단할 텐데, 첫사랑이 나보다 잘돼있으면 배가 아프고 못돼있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던가? 하여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염색조합의 장 상무와 함께 두 번째 삼천궁을 찾았을 때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우리 방에도 들어왔지만 나에게 눈길을 주거나 말을 걸지 않았으며 세 번째는 내가 미리와 기다리다가 메리야스조합의 문 상무가 부친이 위급하여 못 온다는 전갈을 받은 후 커피한잔만 얻어 마시고 일어서니 바둑이가, “삼층에 있는 안방에 간단히 술상을 마련했으니 그리로 가입시더”라고 했다. 나는 혼자서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바둑이의 손에 이끌려 3층으로 올라가니 처음 보는 어린 아가씨가 조그마한 술상을 들고 들어왔으며 장롱과 화장대, 문갑 등이 있는 것을 보니 여자들의 숙소인 것 같았고 3층 전체가 아파트처럼 꾸며져 있었다. “오늘 처음 나온 아가씬데 잘 부탁하입시더”하며 바둑이는 내려가고 우리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대화도 없이 술만 마셨으며 나는 평소의 배나 되는 팁을 아직 솜털이 송송한 이 아가씨에게 미리 주었다. 위스키 한 병이 거의 바닥을 보일 즈음 윤 마담이 나타나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야- 권 영환, 니가 그리 잘났나, 니가 뭔데 나를 이래 비참하게 만드노, 서울대학 나와서 출세해가 부잣집에 장가가서 잘묵고 잘사니 내같은 거는 눈에 보이지도 않제, 대구바닥에 깔린 기 술집인데 와 우리 집에 들락거리노, 옛날에 우리아버지한테 당한 거 내게 복수 할라고 오나, 아니면 내 꼬라지를 보는 게 고소하고 재미있어서 오나, 말 좀 해봐라 이 문둥아, 사람이 우예 수십 년 만에 만나가 그동안의 안부도 한번 안 물어 보노, 우리가 부모죽인 원수지간이가, 맞고소 질을 한 사이가, 바둑아 여기 맥주 한 병 갖고 온나 보자 속에 천불나 못살겠다.” “아무래도 작정을 하고 나를 붙들어 놓은 것 같은데 속에 있는 이야기 다 꺼내놔 봐라, 나도 처음 보는 순간 무척 놀랐고 마음이 아팠으나 자네가 눈길 한번 안주고 아는 척도 안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노, 그러니 다른 말 하지 말고 오늘은 니캉내캉 술 한잔하면서 그간에 맺힌 거 있으면 훌훌 다 털어버리자.” 그러자 윤 마담은 ‘앵-’하는 싸이랜 소리를 내며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렸고 아가씨들이 몰려와, “언니야 와이카노, 점잖은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고, 술은 어데서 묵고 이방에 와가 찌꺼기 값을 하노, 야들아 이리 와서 언니 좀 데리고 가자.” “그냥 두고 술상이나 새로 봐 주시요.” 아침에 눈을 뜨니 전혀 낯선 곳이었다. 간밤의 일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윤 마담이 울고불고 난리를 친 것까지는 알겠으나 그다음부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양복은 말짱하게 옷걸이에 걸려 있었으며 옆자리에 여자의 채취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애써 이를 지워버렸다. 일어나 속옷 바람으로 앉아 담배부터 한대 물고는 어떻게 하면 이 집을 가장 품위 있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고 궁리중인데 윤 마담이 해장국을 겸상으로 차려왔다. 해장국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간밤의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하니 정식으로 상을 차린 것도 아니니 계산할 필요가 없다면서 오늘은 현충일이라 요정도 일 년에 한번 쉬는 날이니까 교외로 바람이나 쏘이러 나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간밤에 내가 여기 와서 자리도 봐주고 옷도 벗겨주었는데 기억이 나요?” 하고 물었다. “전혀 기억이 없는데......”하고 내가 고개를 저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리며 야릇한 웃음을 흘려보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팔공산을 한 바퀴 돌아 옛날 추억이 깃든 동촌의 출렁다리를 건너 유원지로 가서 어느 방갈로를 찾아들었다. “아이들은 몇이나 두었어요?” “아들만 둘인데 큰놈은 벌써 서울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어.” “욕심도 많으셔라, 이름은?” “세빈이, 재빈이라고 하지” 윤 마담은 눈물을 찍어가며 구절양장같이 길고도 설운 지난날을 퍼 널기 시작했다.
선례의 아버지는 도의원선거에서 떨어지자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과수원도 날아가 집안이 졸지에 풍지 박산이 되었으며 영어에 소질이 있어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은 했으나 일 년도 못 다니고 내려와 친정식구들을 살려보겠다고 스무 살 꽃띠에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는 30대 후반의 돈 많은 홀아비에게 재취로 시집을 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이 많은 신랑으로부터 귀여움도 받고 친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으나 날이 갈수록 친정으로 돈이 새나간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고 2년이 되도록 아이마저 생기지 않자 그나마 눈곱만큼 주던 친정식구들의 생활보조비도 끊어 버리고 쌀이나 반찬거리를 직접 사들고 들어오기에 이르러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이혼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친정으로 살림을 빼돌렸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위자료 한 푼 없이 쫓겨나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연했는데 때마침 요정 아가씨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를 하는 친척 아주머니가 삼천궁에 주방장보조 일자리를 알선해 주어 숙식을 하며 주방 일을 돕고 청소와 빨래까지 하게 되었다. 서너 달이 지나 주방 일과 요정풍속도에 제법 익숙해졌을 때 어느 날 아가씨가 부족하여 주인마담에게 등이 떠밀려 손님방에 들어가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낮에는 주방일, 밤에는 접대부노릇을 하며 자장면 한 그릇 안 사먹고 팬티까지 기워 입으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예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시원스럽게 잘난 인물에다 사교성과 카리스마 까지 갖춘 덕분에 주인의 눈에 들어 삼천궁에 발을 들여 놓은 지 5년 만에 주방과 아가씨들을 총괄하는 가오마담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모진 세월이 어느덧 10년, 그간 모은 피 같은 돈으로 곧 조그마한 밥집을 하나 내겠다며 긴 이야기를 마무리 했고 나는 마스카라로 얼룩진 그 입술에 처음으로 깊은 입맞춤을 했으며 독립을 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힘껏 돕겠노라며 등을 토닥거려 주었으나 윤 마담은 내 무릎에 엎드려 섧디섧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3. 금향각의 민 마담
본향의 한 마담이 사내아이를 순산하고 한 달여의 산후조리를 마친 후 개선장군처럼 나타나자 나는 약속대로 그 아이에게 ‘형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포대기라도 하나 사라며 약간의 축하금도 주고 금호호텔의 중식당에서 근사하게 저녁도 샀다. “이제 어떡할 건데, 일을 다시 시작할건가?” “자식이 생겼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공부도 시키고 나중에 재산도 좀 물려줄 것 아이가.” “알라 아부지도 좋아 하고 이름도 잘 지었다 카드나?” “처음 알라를 가졌다고 했을 때는 믿지 않다가 배가 불러오니 의심을 하더니만 알라 얼굴을 보더니 지금은 입이 영천장 바소쿠리만해가 이름도 괜찮다 카고 큰집을 하나 사줄 테니 가게도 옮기라고 해서 지금 막 계약을 하고 오는 길이다.” 하고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살판났구나, 이제 아이를 낳았으니 진짜 알라 아부지가 누군지 말해봐라.” “아직은 말 못한다, 이야기 하면 당신은 기절했뿐다, 형빈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려면 출생신고를 해야 될 거 아이가, 그때 가서 이야기 해주께.”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섬유업계 회장이라면 나이가 많을 텐데 건강은 어떻노?” “나이는 육십 대 초반밖에 안됐는데 당뇨합병증으로 투석까지 하며 허구한 날 병원신세를 지고 약으로 산다.” “그것참 안됐구나,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 할 텐데......” “그건 그렇고 내가 지금 다른 사업을 한번 해볼라 카는데 오빠야 친구인 동성로파 오야붕(두목) 이 대환 사장 하고 우리고향의 선배라는 시경강력계 오 대환 계장을 소개 좀 해도.” “무슨 사업인데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노?” “좋게 말하면 금융업이고 실제로는 일수놀이인데 술장사에 일수쟁이 까지 하자면 그런 사람들 협조 없이는 못해먹는다.” “이제 먹고 사는 거는 잊어버렸는데 와 또 욕심을 내노?”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다, 먼 훗날 알게 될 거다.” 한 마담은 진짜 알라 아부지가 대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래 등 같은 큰 한옥을 사주어 한정식 집인 본향과는 비교도 할 수없는 ‘금향각’이라는 버젓한 요정을 차려놓고 술집 성도 ‘민 마담’으로 바꾸고 본향의 모든 식구들을 그대로 데리고 갔다. 내가 두 대환이를 금향각에 초대하자 민 마담은 이례적으로 아가씨들과 함께 큰절을 하며 “소첩 민 마담 문안인사 올립니다,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하고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시경의 오 계장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문안은 무슨 문안, 고향 사람이라니 반갑습니다.”하고 반절로 맞절을 했으며 동성로파 이 사장은, “권 소장, 자네는 공부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연애도 박사구나, 언제 이런 미인을 낚아채가 술집까지 차려 줬노?”하고 느끼한 웃음을 보냈다. “두 사람을 초대해 놓고 보니 정말 그림이 참 가관이네, 한사람은 주먹오야붕 이 대환, 또 한사람은 형사오야붕 오 대환, 우째가 이름마저 똑 같노, 느그 두 사람은 아마 전생에 부부였는갑다, 꼭 일제 강점기 때 종로 오야붕 김 두한과 종로경찰서 미와 경부의 만남 같네, 빨리 문 닫아라 기자들이 보면 가십거리가 되겠다, 오늘 두 분을 모신 것은 우리 민 마담을 잘 봐달라는 뜻이 아니고 대구섬유업계와 그 종업원들을 잘 보호해달라는 뜻이네, 무슨 말인고 하면 섬유공장이 부도가 나면 종업원들이 밀린 임금 을 해결하기 위해 재고 원단을 확보하는데 건달들이 트럭을 몰고 와서 대표이사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내밀고는 다 실어 가므로 이 과정에서 쌍방 간에 폭력이 난무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나니 이걸 좀 막아달라는 부탁이야,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심각한 문제야.” “나도 일선경찰서로부터 그런 보고를 받은 바는 있으나 정식계약서가 있는데다 워낙 신속하고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라 손을 쓸 방법이 없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고 우리 동성로에서는 그런 일에 개입한 적이 없는데 아마 그런 일만 전담하는 전문조직이거나 아니면 동네 피라미들이 하는 짓일 거야.” “하여튼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 주기 바라며 이집 금향각에는 내 지분도 있으니 접대할 일이 있거나 술 생각이 나면 언제든지 내 앞으로 달아놓고 맘껏 자시게.” “햐- 간밤에 꿈이 좋더니 권 소장 덕분에 평생 공술을 먹게 되었네, 아마 멀지 않아 대구섬유업계에서 권 소장 공덕비를 세워줄 거야.” 두 대환이가 돌아간 후 내가 마담 셋을 부르니 민 마담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우리 알라 아부지가 대구에서는 내가 내다 카는 그 두 사람을 한꺼번에 정낭(변소)에 앉아가 개 부르듯이 부를 줄은 몰랐네, 거기다가 ‘우리 민 마담 잘 봐 도고’ 할 줄 알았는데 불쌍한 섬유업계 종업원들을 깡패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술은 이집에 와가 내 앞으로 달아놓고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으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노, 그 정도로 고단수면 대구에서 썩기가 아깝다 아까워, 빨리 서울 올라가야 되겠다.” “언니야, 인자 알라도 낳았는데 소장님 보고 자꾸 알라 아부지라 카지마라, 다른 사람들이 들으마 참말인줄 알겠다, 소장님 장래가 만리 같은데 출세하는데 지장 있다.” “그거는 바둑이 언니 말이 맞다, 촌시럽그로 알라 아부지가 뭐고, 소장님, 소장님 하고 부르마 얼마나 듣기가 좋노, 높으신 헌법재판소 소장도 되고 무서운 파출소 소장도 되고......” “느그들 말도 듣고 보니 그럴 성 싶다, 앞으로는 내가 각별히 말조심을 하께.” “자 자, 청바지 물 날아가는 소리는 그만하고 내말 정신 차려 잘 들어본 후 각자가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 봐라, 지금 ‘룸살롱’이라는 형태의 고급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데 우리네 요정과 다른 점은 첫째는 아가씨들이 더 젊고 예쁘며 가벼운 양장을 했기 때문에 한복보다 주물럭 하기가 쉽고, 둘째는 안주의 가지 수가 적은 대신 고급화, 서구화 되어있으며, 셋째는 실내장식이 고급스럽고 화려하다는 점이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요정은 앞으로 이삼 년 이내에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라도 될 때 장래에 대비 하지 않으면 큰 고생을 하게 된다.” “지금이사 방이 없어 손님을 못 받을 지경이니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느그들은 룸살롱에 대해서 뭐 들은 이야기 없나?” “삼천궁의 어리고 반반한 애들이 모두 룸살롱으로 빠져가 장사가 안 된다는 소문은 들었다, 다른 집들은 벌써 영향을 받는 모양이드라.” “팁도 방석집(요정) 보다는 세고 이차 비는 두 배나 된다 카드라.” “뾰죽한 수가 없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봐라, 술장사나 돈 장사가 별거냐, 돈만 안 떼이면 부자 되는 것 아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첨단기업의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다른 집들과 차별화를 해야 하는데 다행히 큰언니가 영어에 기본은 되어있고, 바둑이는 일어를 잘하고, 홍마담은 유학까지 했으니 금향각을 외국인 중심의 요정으로 키워나가자 이 말이다, 섬유바이어들을 위시하여 대구에 오는 외국인들은 영어, 일어, 중국어 삼개 국어면 다 통할 것이고 외국인을 상대하면 외상거래도 대폭 줄어들 것이며 팁은 배로 더 받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 이미지도 좋아질 거야.” “나는 영어문장은 좀 알지만 회화는 제대로 못하는데 어떡하지?” “학원에 가서 더 배워야지, 한 일 년만 꾸준히 배우면 써먹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바둑이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데는 불편이 없겠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 좀 더 고급스러운 일어를 배울 필요가 있고 홍 마담은 대만에서 대학을 나왔다니 중국어는 그만하면 됐고 부족한 영어를 더 익혀야지, 그러니 민 마담이 학원비를 부담하여 보이나 아가씨들 중에서도 소질이 있는 사람들을 골라 외국어나 국악을 가르치고 실내 인테리어와 정원도 보다 한국적인 것으로 바꾸어서 분위기를 일신하여 새로 출발하는 거야, 결심만 서면 국내외 홍보는 내가 책임 질 테니까.” 나는 제일먼저 간판부터 바꾸었다. 가운데 한자로 ‘琴香閣’이라 쓰고 왼쪽엔 영어, 오른쪽엔 일본어의 가타가나로 표기를 했으며 거금을 들여 조선식 가구와 병풍, 옛 그림의 모사품들을 구입하고 정원에 포석정을 닮은 연못도 만들었으며 밋밋한 기둥과 서까래에 단청도 입혔고 모든 비용을 내가 다 부담했다. 이와 같이 하드웨어의 개선작업이 완료되자 세 마담을 포함하여 십 여 명이 각자의 소질에 따라 일차적으로 외국어학원, 국악원, 예절학교 등에 등록하여 소위 전군의 간부화에 착수했으며 나는 지역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 수시로 광고도 해주고 해외바이어의 명단을 입수하여 외국어 팜플렛을 만들어 보내는 등 소프트부문의 개혁에도 착수했다. 또한 예약한 손님만 받도록 하고 현금으로 결제 할 시는 10%를 활인을 해주는 반면 3개월 이상 연체 시에는 과감히 거래를 중단 했으며 외국손님이 올 경우는 가야금병창이나 동래학춤공연을 하고 비용을 추가시키기로 했으며 서문시장, 칠성시장의 상인들과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상대로 일수놀이도 시작하고 건달이나 경찰들은 일체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이와 같은 금향각의 변신은 입소문을 타고 대구전역에 금방 알려졌고 서울과 해외의 바이어들도 하나 둘 찾아들기 시작했으며 특히 여행사를 상대로 한 집중적인 홍보로 일본 관광객들을 독점하게 되어 나의 구상이 이외로 빨리 적중되었음이 입증되자 민 마담을 위시하여 종업원들은 나를 사교집단의 교주처럼 떠받들었고 금향각에서 내 말은 곧 거역할 수 없는 법이 되었다. 이쯤 하여 나는 금향각의 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고 일정한 거리를 두었으며 박사학위 논문작성에 매달리고 부터는 아예 전화마저 끊어버렸다. 살아오는 동안 늘 선례를 잊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술집에서 해후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며 그가 지나온 눈물자국마다 나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고여 있었음을 알았을 때 어떤 형태로든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제 선례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마당에 내가 재벌인 기둥서방에다 그 자식까지 있는 여자의 주변에 더 이상 머물 이유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두부모 자르듯이 잘라 새로운 원망을 잉태시킬 이유도 없어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섬유수출규모의 급증에 따라 나는 30대중반의 나이에 상무이사로 진급을 했으며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아 겸임교수로 대학에 출강도 하고 외국을 내 집 드나들듯 들락거렸으며 금향각도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춘앵각을 따돌리고 대구를 대표하는 요정이 되었고 일수놀이로 시작한 돈 장사는 발전을 거듭하여 ‘대동금융’이라는 정식 사금융회사를 만들어 동성로파의 조직자금과 시경 오 계장의 개인 돈 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채권확보를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여 민 마담은 대구 사채업계의 대모인 ‘동성로 여왕벌’로 군림하게 되었다.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대통령이 암살되고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광주 민중 항쟁이 발생되어 수많은 사람이 죽는 등 엄청난 사회적인 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섬유업계에서는 빅 쓰리중의 하나인 ‘대구실업’의 방회장이 오랜 병고 끝에 돌아가시자 금향각의 민 마담이 소복을 하고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나타나 영정 앞에 엎드려 소리 없이 어께만 들먹이며 일어나질 않았다. 문상객들은 밀려드는데 애기를 데리고 온 낯선 여인이 일어나지 않아 상주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주변이 술렁거리자 먼발치에 앉아 이를 보고 있던 영남무역의 배 회장이 상제를 불러 여인을 데려오게 하니, “아이고 배 회장님 유 회장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옛날 삼천궁에 마담으로 있었던 저를 알아보시겠는지요?” “음 알만 허이,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군고?” “돌아가신 방 회장님의 아들입니다.” “뭐라고, 상주들도 알고 있는가?” “회장님이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만, 이 아이 얼굴과 영정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입니더.” “국화빵일세, 국화빵.” 장례를 치룬 며칠 후 맏상제인 방사장과 민 마담은 동인호텔 특실에서 마주했다. “요구사항이 있을 텐데 말을 해보시요.” “아이를 회장님 호적에 입적시켜주시고 우리 모자의 평생을 사장님과 같은 수준에서 보장을 해 주이소.” “뭣이라고, 당신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고 고함을 꽥 질렀다. “뭐라꼬, 나는 네 어미뻘이야, 말버르장머리 하고는......, 내가 동성로 여왕벌이고 여기가 내 나와바리(관할구역)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더듬수 부리다가는 다리 하나는 병신이 돼가 나갈 테니......” 하고 노려보니,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보이소.” 하고 금방 말투가 공손해졌다. “입적을 못시켜 주겠다면 회장님이 생전에 나한테서 사채 오십억 원을 빌려간 후 변제일이 삼년도 넘었으니 그간의 이자를 포함해서 육십억을 당장 갚아라 이거야, 입적을 안 시켜주는 보너스는 따로 챙겨주고, 이것도 못하겠다면 내일 바로 친자확인 및 유산분할소송과 동시에 회장님 재산을 압류하고 대구재벌이 아이 양육비는 고사하고 빌려간 돈 마저 떼먹고 저승 가버렸다고 온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내 버리고 신군부에 이야기해서 바로 세무조사 들어갈 테니 알아서 하게, 기한은 일주일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충고하겠는데 뭐 회장님 동상을 세운다고, 육갑들 떨고 있네, 니 애비가 독립운동을 했냐 반공사업을 했냐, 동상을 세우게, 앞산(정보부)에 끌려가 초죽음이 되기 전에 당장 그만둬, 돈 좀 벌었다고 외제차 타고 거들먹거리다가 붙들려가서 육군 일등병한테 카이젤수염을 다 뽑힌 황 회장 소문도 못 들어 봤나?” 하고는 입금계좌번호가 적힌 차용증과 공증서 사본을 던져주고 나와 버렸더니 일주일도 안 되어 70억 원이 입금되었다.
이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민 마담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면서 그간의 안부와 함께 방회장의 아들로부터 거금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진짜 알라 아부지가 방회장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진짜로 방 회장한테 오십억을 빌려주긴 했었나?” “돈 오십억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인줄 아나, 그런 돈이 내게 어딧노, 형빈이를 자기 호적에 못 올리니까 공장이라도 하나 물려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살아생전에는 아깝기도 하고 또 가족들이 알까봐 쉬쉬하며 자기가 죽은 후에 가져가라고 가짜차용증을 써 준거였지, 소문 들으니 고향에서 새마을 사업을 하는데 시멘트 몇 포대를 안 보태줘서 상여가 다리위로 못 지나가고 다리 아래로 갔다는 소문도 들리더라.” “소문한번 빠르구나, 아무리 본인이 작성했다 하드라도 가짜차용증으로 그런 자린고비들한테서 그렇게 큰돈을 받아낸 당신도 참 간이 크고 무서운 사람이구나.” “밤일도 못하는 주제에 동성로 여왕벌을 갖고 놀았으면 공장하나쯤은 떼 줘야지, 어마어마한 공장이 국내외에 수 십 개나 되는데 방 사장도 앞뒤 다 계산해보고 준거 아이겠나, 그까짓 성냥갑만한 공장하나 받은 샘밖에 안되는데 이런 건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 가도 무죄다, 그런데 당신도 방 회장 문상을 갔었나?” “갔었지, 왜?” “영정사진하고 당신하고 닮았다는 생각 안 해봤나?” “글쎄, 방 사장은 나하고 나이가 비슷하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방 회장은 사진을 보니 돌아가신 우리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왜?” “그저 그냥, 혹시 신군부 실세 중에 잘 아는 사람 없나?” 하고 말을 바꾸어 버렸다. “왜 없어, 보안사령관이 내 절친한 친구의 형님이고 영남무역의 오 전무 동생 아이가, 또 제 일인자인 정 도한이를 위시하여 전신만신 대구사람이고 경고출신들인데 와, 이제 서울로 올라가서 한바탕 저질러 볼라고?” “그런 거는 아이고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 기회에 당신도 인자 국회의원 한번 해야 안 되겠나, 선거비용은 내가 댈 테니 여당 공천 받을 궁리나 한번 해봐라, 내말 가볍게 듣지 말고, 나도 술집에서 가오마담이나 하던 옛날 안 선례가 아니고 지금은 대구에서 제일 큰손인 동성로 여왕벌 아이가.” “동성로 이사장이나 시경의 오 계장을 끌어들인 것을 보니 당신의 능력은 인정하겠는데 국회의원이나 장관은 천운을 타고나야지 돈만 있다고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야.” “쥐나 개나 다 국회의원 하고 육군소장이 대통령을 하는 판국에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에다 박사고 교수잖아, 뭐가 부족해서 못 하겠노, 당신은 국민학교때 부터 장래희망이 국회의원 아니가, 그리고 나도 사채업계와 유흥업계의 여왕노릇을 계속하자면 국회의원 정도의 빽은 있어야 되고......” “박사면 뭐하는데, 박사위에 육사 있고 육사위에 여사 있는데......”
4. 심전방의 심 마담 나는 영남무역 배 회장의 부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서 오시게, 지금 일본에서는 ‘기모 조젯트’라는 획기적인 신제품이 곧 나온다는데 혹시 알고 계시는가?” “예, 준비과정에서 경사는 싸이징을 하고 위사는 씩엔씩사를 가연하여 인터레싱을 하며 제직한 후 생지상태에서 버핑기로 아주 미세한 솜털을 일으켜 염색가공하고 염색 후 한 번 더 버핑한 것으로 천연섬유와 같은 외관과 촉감을 가진 신합섬 제품이며 내년에 출시되면 수출가격이 기존제품의 다섯 배인 야드 당 육달러 정도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복숭아 껍질처럼 질감이 좋다고 하여 직물 이름을 ‘피치스킨’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권 소장은 이러한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입수하며 매주 보내주는 ‘섬유정보’라는 주간지에는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던데 소스가 어디며 누가 만드는가?” “금향각이라는 술집에 오는 외국바이어들이 나누는 이야기와 홍콩과 일본의 섬유관련 신문잡지, 저희 수출입조합의 해외사무소, 해외의 개인적인 인맥 등을 통하여 입수하며 저 혼자서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재가공한 후 천 부를 인쇄하여 업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정말 장한지고, 비용도 수월치 않을 텐데 사무실에서 조달이 되나?” “월 삼백만 원 정도 드는데 연도 중간이라 예산을 마련할 길이 없어 부끄럽습니다만 유흥업을 하고 있는 친구한테 신세를 지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신문 값 정도로 유료화할 계획입니다.” “대구에 크고 작은 섬유업체가 이천 개나 되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 비용은 내가 부담 할 테니 인쇄에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한번 보여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자주 나누기로 하세.” “예,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피치스킨 샘플을 입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나, 샘플만 있으면 금방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가뜩이나 우리 한국 사람들을 경계하고 의심과 비밀이 많은 일본 사람들인데 아직 출시도 하지 않은 신제품의 정보를 쉽게 노출시키겠습니까, 노력은 한번 해보겠습니다만......” 대구섬유업계 빅 쓰리중의 또 하나인 ‘경상물산’이 원사공장을 짓느라 무리를 한데다 그간의 방만한 경영으로 부도가 나 은행에 담보된 중구 삼덕동 유 회장의 집이 매물로 나오자 민 마담이 솔개가 병아리 채듯 낚아채버렸으며 나는 방 회장이 돌아가신 후 자연스럽게 민 마담과 만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 큰집을 뭐 할라고 샀노?” “대지 천 평에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니 땅을 보고 싼 거지, 지금이야 주택지일 뿐이지만 앞산 밑 대명동에 고급주택지가 새로 형성되고 도심공동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멀지 않아 문화가 있는 상가지역으로 재개발을 하게 될 거야, 그러면 거기에 백화점이나 인텔리젼트빌딩을 지으면 고생 끝이지, 나중에 그냥 되팔아도 적지 않은 이익이 생길거야.” “이제 완전히 사업가가 되었군, 가격이 오를 때까지 어떻게 활용할건데?” “건평이 삼백 평이나 되니 리모델링을 해서 일층은 중식당과 일식당을 하고 이층은 룸살롱으로 하여 대구최고의 명소로 만들어 볼까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나야 당신이 일을 떠벌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잖아, 대구바닥에서 맘에 드는 전문경영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요정이야 인적자원이 많으니까 금향각은 새 사람을 구해 맡기면 되고 바둑이와 홍마담도 기생환갑, 진갑을 훌쩍 넘겼으니 식당하나는 차려줘야지, 일식당은 바둑이한테, 중식당은 홍 마담에게 줄 작정인데 식당경영도 쉽진 않겠지만 설마하니 가마니 짜던 년들인데 새끼 못 꼴라고, 그리고 룸살롱의 술안주가 국적도 없는 서양요리에다 비싸기만 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나는 우리 입에 익은 정통 중국요리와 일본 요리로 승부를 하고 싶어, 그러나 내가 식당을 하려는 더 큰 이유는 당신 때문이야, 국회의원을 하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요정이나 룸살롱보다는 고급식당이 제격이지.” “당신 마음 씀이 고맙긴 한데 나는 아직 대구섬유업계에서 할일이 남아있어, 국회의원은 나중 이야기야, 당신은 물론 바둑이 마담과 홍 마담도 협조해주어야 가능한 일이야.” “오늘날 내가 이정도로 큰 건 모두가 당신 덕인데 내가 무슨 일인들 못 하겠노, 그 애들도 당신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애들이잖아, 도대체 무슨 일인데?” “지금까지 일본의 섬유업자나 홍콩바이어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주고 정보지 발행비용까지 부담해준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인데 쉽게 말하면 지금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산업스파이 노릇을 좀 해 달라는 거야, 그것도 이중스파이로, 지금 대구섬유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일본 후쿠이의 신제품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유사품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 출시하는 것과 홍콩 삼쉬포시장 바이어들의 담합정보를 미리 알아내 우리가 선수를 쳐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뿐이야.” “나는 섬유도 무역도 모르니 보다 구체적인 행동요령이나 실천방법을 예기해봐.” “당신은 나의 제의에 동의를 해주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협조만 해주면 되고 바둑이와 홍마담은 일본의 가와이 이사장과 홍콩 리 카슝 회장의 한국 애인 또는 현지처가 돼 달라는 거야, 그리고 두 마담이 동의하면 나한테서 한 달가량 섬유와 무역에 관한 기초상식과 정보의 입수와 전수방법 등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후 깡패들이 하는 식으로 동성로파 이사장과 당신 및 내 앞에서 충성맹세의식을 갖도록 하고 당신이 식당 물려주는 것을 이 일과 연계시켜 주면 고맙겠네, 이 일과 관련하여 영남무역의 배 회장으로부터 얼마간의 자금이 나올 거야, 모든 걸 극비로 해주기 바라네.” 식당건물 전체의 이름을 ‘심전방’이라 하고 이안에 이층에는 룸살롱 ‘무랑루즈를’, 일층에는 중식당 ‘만리장성’과 일식당 ‘아사쿠사’를 배치했으며 대구 최고의 요리사와 배태랑 지배인을 고용하고 종업원들도 항공사 슈튜어디스 못지않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채용하여 중국과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게 했으며 금향각의 민 마담은 또 심전방의 ‘심 마담’으로 택호가 바뀌어졌다. “왜 번번이 술집 성을 바꾸는데?” “나는 당신만 빼놓고는 지난 것은 다 잊고 싶어, 내 과거가 너무 암울했던 탓도 있지만 지금은 하는 일 마다 다 잘되니 다른 사람들에게 현재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써온 윤, 한, 민, 심이란 성은 조선왕조 왕비들의 사대 성이야, 나는 어릴 때 왕비가 되는 꿈을 자주 꾸었어.” “나름대로 이유와 뜻이 있었군, 그리고 동성로 이사장과 시경의 오 계장이 투자한 돈에 대해서는 이자를 꼬박 꼬박 잘 주고 있겠지, 지급액수와 일자, 시간까지 한 치 오차도 없도록 하게,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게 끝장이니까.” “걱정할 것 없어, 지금까지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도 없지만 그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고 또 그들의 비리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지금은 오히려 안 회장, 안 회장 하면서 내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지.”
영남무역 배 회장의 초청으로 홍콩섬유수입업계의 대부인 리 카슝 섬유수입협회 회장과 일본섬유업계의 선두주자인 가와이 직물조합 이사장이 대구를 방문했다. 배 회장과 가와이 이사장은 구면이나 배 회장과 리 카슝 회장, 리 카슝 회장과 가와이 이사장은 초면이었고 배 회장 옆에는 내가, 리 회장 옆에는 홍콩무역발전국 서울지국장이, 가와이 이사장 옆에는 이토츄상사 한국지사장이 각각 배석했으며 세 사람이 모두 일어를 할 줄 알아 통역 없이 수출입질서유지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로 했으며 업계와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었다. 첫날 저녁에는 금향각에서 배 회장의 환영회가 있었으며 홍마담은 리 회장 옆에 바삭 다가앉아 유창한 중국어로 시중을 들었고 타이완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타이완출신의 리 회장이 적이 놀라는 기색이었으며 가와이 이사장과 바둑이는 이미 구면이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한, 일간의 덤핑수출경쟁자제와 홍콩의 질서 있는 수입을 요청했으며 가와이 이사장과 리 회장은 박수로 이에 동의를 했다.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했다는 국악인의 공연이 끝나고 술이 몇 순배 돌자 배 회장이, “홍 마담은 대만유학을 했다 카는데 바둑이 마담은 일본의 어느 대학을 나왔기에 일본말을 그렇게 잘하노?”하고 물었다. “회장님, 저는요 일본에서 묵꼬노대학 농띠과를 나왔심더.”라고 대답하자, “동경제대보다 더 유명한 명문대학을 나왔구나.”하여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심전방의 심 마담이 경고성 발언을 했다. “너희들 손님 잘 모셔라, 눈에 들기만 해봐라,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그까짓 중식당 일식당이 문제가, 당장 근사한 공장이 하나 떨어질 건데, 내일은 석굴암과 해인사 관광이 있으니 너희들이 직접 모시고 가서 잘 안내를 하도록 해라, 오다가 부곡온천에 들어가든지 말든지 그건 느그 자유다.”라고 하니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튿날 경주관광과 온천욕까지 마치고 온 리 회장이 답례로 심전방의 무랑루즈에서 중국요리 중심의 연회를 주최했으며 인사말에서, “서울에는 가끔 왔으나 대구방문은 처음인데 한국의 산천경계와 전통문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으며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대구의 아가씨들로 동양최고의 미인들”이라고 추켜세우고 배 회장이 초청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3일째 되는 날 리 회장과 가와이 이사장은 섬유공장시찰을 가고 우리 실무자들은 하루 종일 공동성명을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몇 번을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겨우 문안을 작성하였고 나는 홍콩이 반대하는 ‘체크프라이스제’ 실시를 관철시켰으며 그간 지지부진했던 ‘아시아 직물회의’ 창설도 합의되어 모든 것을 박 회장과 나의 의도대로 끌고 나갔다. 기자회견장에는 신문기자들뿐만 아니라 KBS와 MBC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유관기관의 직원들과 공무원, 업계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으며 배 회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성명문을 읽어 나갔다.
공동성명서
1.한, 일 양국은 직물수출시장에서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각자 경쟁력 있는 품목으로 국제 분업화 하여 수출을 특화시키기로 한다. 2.홍콩은 계절에 관계없이 일정량의 직물을 수입, 비축키로 하고 중국본토에 공장을 건설 하여 직접 생산하는 것을 자제키로 한다. 3.위 두 가지 사항을 담보하기 위해 한, 중, 일 3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직물회의를 창설 하고, 직물수출가격이 20% 이상 하락하여 2개월 이상 장기화 될 경우 체크프라이스제를 실시하여 일정금액 이하의 수출은 불허한다. 4.본성명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의 3부를 작성하고 해석상의 이견이 있을 경우는 영 문본의 해석을 기준으로 한다.
1985년 9월 28일 대구섬유협의회 회장 배 용규 홍콩섬유수입협회 회장 리 카슝 일본견인섬직물조합 이사장 가와이 히토시가 대한민국 대구에서 연장자순으로 서명하다.
어느 기자가 질문을 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수출 체크프라이스제 실시가 법적으로 가능한지, GATT 규정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가능하다면 어느 기관에서 담당을 하게 되는지?” 이에 대한 답변은 내가했다. “중소기업계의 결의에 의한 자율적인 제한조치의 시행은 GATT규정이나 우리의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았으며 수출입조합의 수출승인과정에서 수출가격을 체크하게 될 것입니다.” 이날 저녁에는 가와이 이사장이 무랑루주에서 일식으로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오늘 공장을 둘러본 결과 그 엄청난 규모에 새삼 놀랐습니다, 중소기업 중심의 일본과 대기업 중심의 한국이 무모한 경쟁을 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한 일이므로 한국은 소품종 대량생산, 일본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한, 일간에 국제 분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으며 리 회장은, “중국본토에 직물공장을 짓는다면 한국보다 몇 배로 크게 짓지 않으면 승산이 없고 임금의 단순비교만으로 경쟁력을 가늠하기는 어려우며 당분간은 한국의 독주가 예상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배 회장은, “이번에 두 분을 모신 것은 서로를 정확히 알고 공생의 길을 모색하자는데 뜻이 있으므로 일본의 후쿠이에서도 대구섬유업자들에게 공장을 개방하여 우리 눈으로 직접보고 특화할 것은 특화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하며 홍콩의 리 회장도 생산과정을 직접 보셨으니 생산원가를 무시하고 시장상황에 따라 가격을 후리치는 일이 없도록 홍콩수입업계를 잘 이끌어 주시기 바라며 우리 모두 나의 희생으로 우리를 살리는 일에 앞장을 섭시다.” 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건배제의를 하고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일찍 자리를 떴다. 심 마담이 어제와 오늘 요리가 어떠냐고 물으니 리 회장이, “우리가 평소에 먹는 광동요리에서 변화한 홍콩요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고 한국식 중국요리는 사천요리를 닮아 깔끔한 맛이 있었으며 특히 송이버섯이 들어간 전가복 요리가 좋았다.”고 했으며 가와이 이사장은, “오사카나 도쿄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고 특히 살아있는 생선의 회를 뜨는 기술은 한국이 일본을 능가 한다.”고 칭찬을 했다. 배 회장이 자리를 비켜준 후 술자리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중대발표가 나왔다. 리 회장이 홍 마담을 홍콩으로 초청하겠다고 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바둑이가 가와이 이사장에게 콧소리를 내며 매달리니 가와이 이사장은, “후쿠이는 인구 이십오만 밖에 안 되는 시골이라 남의 이목 때문에 초청은 할 수 없고 오사카에 와서 연락을 하면 꼭 나가겠다고 했으며 그 대신 대구에 자주 오겠다.”고 하여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내가 심 마담을 데리고 영남무역의 배 회장을 방문하니 만면에 웃음을 띠고, “어서들 오시게, 정말 수고들 했네, 특히 체크프라이스제를 실시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우리가 공식적으로 아시아직물업계를 리드해 나갈 수 있는 아시아직물회의창설을 합의 했으니 큰 걱정거리들을 덜었네.” 하고 수표 한 장을 내 내놓았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고 우리업계를 살리는 일에만 쓰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삼자회동에서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은 일본이 천연섬유와 화섬의 복합섬유에 흡한속건, 방오방염, 항균소취 등 십여 가지의 멀티기능을 부여한 슈퍼섬유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라고 하자 배 회장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면서, “좀 더 구체적인 정보는 없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해,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는가?”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아주 미세한 캡슐에 나노화된 기능성물질을 넣어 고품질의 바인더로 섬유에 부착시키면 옷을 입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캡슐이 터지면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장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없듯이 그런 고기능 섬유는 일본기술력의 과시용일뿐 그 수요는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영남무역에서 피치스킨과 슈퍼섬유를 개발하여 곧 출시한다는 역정보를 흘리면 홍콩의 바이어들은 이것을 독점수입하기 위해 우리에게 코가 꾈 것이고 일본은 우리제품의 출시를 기다려 장단점을 파악한 후 자기네 제품을 보완하여 출시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년 정도의 시간을 벌수 있으니 우리는 소련의 은퇴 과학자들을 헐값으로 초빙하여 캡슐대신에 나노물질에 직접 낚시 바늘과 같은 갈고리를 만들어 바인더 없이 섬유 속에 침투시키면 두 공정을 생략할 수 있으므로 개발비용과 시간을 대폭적으로 절약할 수 있어 일본과 한번 붙어볼만합니다.” 배 회장은 너무 감격하여 내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고는, “내가 드디어 장자방을 얻었도다, 고맙네 고마워, 우리한번 해보세, 그리고 이번에 심 마담도 애 많이 썼네,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저야 회장님 덕분에 장사 잘 하고 권 상무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수고랄 게 있습니까, 앞으로도 회장님과 상무님이 시키시는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곧 바로 무랑루즈의 밀실에서 바둑이와 홍 마담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고 일인당 천만 원씩을 나누어 주었으며 나머지는 비자금으로 예치시키기로 하자 바둑이와 홍 마담은 너무 흥분하여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 볼에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5. 내 사랑 여왕벌
내가 소련과학자 두 명을 데리고 심전방의 중식당 만리장성으로 들어서는데 정원 한구석에 처음 보는 닭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집에 웬 닭장이 다 있노?” 하고 물었더니 홍 마담이, “우리 집 도련님이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 와서 아파트에서 키우다가 너무 커서 이제 여기에 갖다 놨심더.”라고 했다. “가가(그 아이가) 벌써 국민학교에 들어갔나?” “하마요, 인물도 소장님처럼 준수하게 잘 생겼고 공부도 잘 해서 반장을 한다 캅디다.” “자기 아버지가 너무 일찍 죽어서 안됐구나.” “오히려 잘됐지요 뭐, 크게 한 살림 안 받았읍니꺼, 이년한테는 우예 그런 복도 없는지.” “와, 홍콩의 리 회장이 한 살림 물려준다 안 카드나?” “외국 사람한테서 뭘 기대하겠습니꺼.” “그러면 내가 돈 많고 명 짧은 영감하나 소개해 주까?” “간밤의 꿈에 해가 품안으로 들어오더니 나도 인자 언니처럼 팔자가 늘어질 모양이네.” “나는 소련 사람들은 다 북극곰같이 생긴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체구도 작고 잘 생긴 동양인처럼 멋쟁이 들이네, 오빠야 우리도 남들처럼 여름휴가 한번 가보자, 나는 평생 휴가라는 걸 못 가봤다.” 하고 선례가 넋두리를 했다. “그렇다면 소원 한번 풀어주지, 어디에 가고 싶노, 산이 좋겠나, 바다가 좋겠나?” “오빠야 좋은 대로 해라, 산보다야 바다가 났겠지만 나이 사십에 비키니를 우예 입겠노?” “그러면 이번 광복절이 연휴니까 이박삼일 예정으로 통영에서 여수까지 배를 타고 한려수도를 한 바퀴 돌아보자, 동해안은 아는 사람들을 만날까봐 못가겠다.” “형빈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제?” “그럼, 애들은 여행을 자주해야 견문이 넓어지지,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하는지 내가 테스트도 한번 해보고......” 우리는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던 날처럼 들뜬 마음으로 내가 손수 운전을 하여 통영으로 향했으며 형빈이도 기분이 좋아보였고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잘 붙였으며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가 반듯한 게 내 어릴 적사진과 판박이여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충무비치호텔에 여장을 풀고 부둣가로 나와 중앙시장을 한 바퀴 돌아 해산물 전문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보니 정말 동양의 나폴리라고 할 만큼 야경이 아름다웠으며 문인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등을 낳은 예향답게 곳곳에서 예술의 향기가 묻어나왔다. 술기운도 어지간히 오른 데다 형빈이가 잠든 것이 확인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풍우 같은 격정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태풍이 지나가고 긴 항해가 끝난 다음 고요가 찾아왔을 때 선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십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네, 그 동안에 엄청난 변화도 있었고......” “그게 무슨 말이야?” “십년 전 당신을 삼천궁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혈혈단신의 고아였으나 지금은 천금 같은 자식도 있고 돈도 모을 만큼 모았으며 이런 고급호텔에서 당신과 같은 멋진 남자와 운우의 정까지 나누게 되었으니 보통행운이 아니지, 지나간 십년이 너무 아까워, 당신이 삼천궁에서 자던 날 밤에도 우리는 폭풍우 속을 헤맸지.” “설마?” “그때 당신은 술이 너무 취해서 이튿날 기억을 못했을 뿐이야, 그리고 어렴풋한 기억이 있었다 하더라도 애써 부정하고 잊어버리려고 자기최면을 건거지.” “소설을 쓰고 있군.” “형빈이가 당신을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나?” “나와 형빈이 아버지가 닮은꼴이니 나를 닮은 것은 당연하지,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아빠는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언젠가는 크리스마스 날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올 거라고 했 지, 그런데 당신 지금도 옛날처럼 날 좋아하고 사랑해?” “글쎄, 항상 걱정되고 궁금하고 보고 싶긴 한데 그게 사랑일까?” “나는 당신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당신은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야, 그래 오늘은 이쯤만 해두자, 분위기 망칠라.” 영남무역의 배 회장과 내가 의기투합하여 추진했던 일은 하나씩, 하나씩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수출입조합에서는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수출품목에 대해 체크프라이스제를 실시했고 바둑이와 홍 마담도 귀중한 정보들을 속속 물고 왔으며, 대구섬유업계에서 40억 원을 모금하고 전경련과 화섬협회로부터 60억 원을 지원받아 정부예산 100억 원을 따내어 ‘대구섬유협의회’라는 기존의 친목단체를 상공부산하의 ‘사단법인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로 확대 개편하여 배 회장은 회장에, 나는 전무이사에 취임하였고 ‘대구섬유정보센터’의 설립을 주도해나갔다. 또한 영남무역은 내가 구해준 일본제 피치스킨 샘플을 분석하여 일본보다 한발 앞서 이미테이션 직물을 개발하여 돈방석위에 앉게 되었고 홍콩시장도 우리가 의도한대로 공급자위주의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으며 일본은 우리의 대량생산, 대량공급에 밀려 수출시장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에 산지에서는 하청공장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슈퍼섬유의 개발을 위한 소련 과학자들의 연구도 속도가 붙어 시험실에서의 연구와 시험을 모두 성공적으로 끝내고 8개 선진국과 5개 경쟁국에 특허출원을 했으며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 섬유기술진흥원에 있는 시험실과 소련과학자들의 숙소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24시간 감시를 하도록 했고 미국으로부터 나노분쇄기를 도입하기 위해 조달청과 포항공대에 오퍼를 의뢰해 놓았다. 이와 같은 내용들이 섬유신문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자 전국의 섬유유관기관과 연구소들이 밴치마킹을 위해 몰려들었고 일본과 중국(타이완)의 섬유업계에서도 냄새를 맡고 견학요청이 쇄도했으며 특히 일본의 가와이 이사장은 똥 밟은 인상이 되어 찾아와서는 겨우 샘플 한 조각을 얻어 돌아갔고 정부에서는 제반 사실을 확인한 후 배 회장에게는 금탑산업훈장을, 나에게는 대통령표창장을 수여했다. 이즈음 선례는 먼 친척인 5공화국의 실력자와 선이 닿아 돈 보따리를 안겨주고 지난번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여 무주공산이 된 대구중구의 여당지구당위원장자리를 따내어 나를 앉혔으며 선거준비자금으로 거금을 내 놓았다. 선례의 사업도 순풍에 돛을 달아 식당과 술집들이 모두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대동금융에서도 중견기업들의 어음할인과 월말결제급전, 부동산담보대출 등에 까지 손을 뻗혀 소리 소문 없이 부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선례는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가정교사 겸 가사도우미에게 오늘 할일을 일러주고는 헬스클럽으로 가 두 시간 가량 운동과 사우나를 하고나서 늘 만나는 일당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며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단골인 석 미용실로 향한다. 오후 두시쯤 대동금융으로 출근하여 은행지점장출신의 상무로부터 보고를 받고 밀린 결재를 한 후 여기 저기 필요한 전화와 필요도 없는 전화질을 하다가 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금향각을 거쳐 심전방에 이르러 어제의 매상과 오늘의 지출 등을 체크하다 보면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이 된다. “심전방인데 저녁은 어떡할 거야?” “수성못 밑에 전라도 한정식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거기나 한번 가보자.” “내가 차를 가지고 갈 테니 사무실 뒤쪽으로 나온나.”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되어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한잔 한 후 당연지사처럼 러브호텔로 직향했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봇물이 터지고 나면 걷잡을 수없이 흘러가는 것이 남녀 간의 이치인데 우리라고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수 십 년간 굶은 것을 벌충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서로를 탐하게 되었다. 선례가 나의 지구당위원장취임과 대통령표창을 축하하기위해 기어코 잔치를 하겠다고 나서 행사전문 기획사까지 불러 일을 맡기니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하게 되었다. 기왕에 시작한 거 야당출신 지역구 의원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대구의 정, 관계와 재계는 물론 야당인사들에게까지 초청장을 보냈고 심전방의 중식당과 일식당을 트고 정원에도 라운드테이블을 놓았으며 만약의 불상사에 대비하여 동성로 애들을 대거 2선에 배치했다. 나의 인사말과 축사, 건배사 등이 있은 다음 내가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보다 열 살이나 위며 지역의 현역 야당국회의원인 권 승환 의원과 마주쳐, “반갑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선거는 대 권과 소 권의 싸움이 되겠군요.”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큰놈과 작은놈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보나 마나지요.”하고 헛기침까지 하며 거만을 떨었다. “역사는 소 권이 이긴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여당이라 역시 실탄이 풍부 하군요, 이렇게 거창한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보니, 그런데 웬 깍두기들을 이렇게 많이 동원했어요, 아예 집총한 군인들을 배치하지.”라며 군사정권을 비꼬았다. “누가 행패를 부리거나 각설이 부대들이 들이닥칠 가봐 행사를 준비한 업체에서 동원한 모양입니다, 깍두기 방어선이 무너지면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들어오겠지요, 자 많이 드십시오.”하고 나는 자리를 피해버렸다. 선례는 내 안사람이나 되는 것 같이 여왕처럼 꾸미고 나와 바둑이와 홍 마담의 두 시녀를 거느리고 이것저것 간섭을 하며 진두지휘를 하여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며 나와의 관계에 대해 여기저기서 수근 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섬유협회의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막 나서는데 바둑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무님, 언니가요 정신을 놓았뿌렀어요, 동산병원 응급실로 빨리 와보이소.” 택시를 타고 동산병원에 도착하는 데는 10분이 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언니가 축하잔치준비에 너무 신경을 써서 몸살이 난줄 알고 약국에서 몸살 약만 지어다 먹였는데 점심 챙겨주러 가봤더니 완전히 산송장이라 구급차로 여기 왔습니더.” “평소에 어디 아프다거나 숨기고 있었던 병은 없나?” “그런 거는 없고요 요즘 와서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체중이 준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있었습니더.” 나는 친구인 내과과장을 찾아가 정밀검사를 부탁했다. “누구인가, 부인인가?” “아닐세, 동성로 여왕벌인데 나와 동성로의 대환이가 뒤를 봐주고 있지.” “일단 입원을 시키고 삼, 사일이면 모든 결과가 다 나올 거야, 여자 몸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느라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거겠지.” 문자 그대로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안 선례에게 췌장암 말기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수술을 하면 생존가능성은 있는가?” “수술을 할 수 없는 부위야, 다른 장기에도 이미 전이가 되었고, 앞으로 육 개월을 더 버티기가 어려울 거야.” 나는 선례를 들쳐 업고 서울의 국립암센터로 갔으나 거기서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 가면 살릴 수 있을까요?” “췌장암은 선진국에서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수술 없이 항암치료만 하는 것은 서울이나 대구나 마찬가지이니 대구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본의 가와이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국립암센터중앙병원’에 예약을 부탁하고 섬유협회의 배 회장에게는 선거준비를 핑계로 사표를 내었으며 아내에게는 일본에 1년간 유학을 간다하고 선례와 함께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암센터의 의견도 서울과 대동소이했으며 다만 치료 후 생존율이 한국의 배 정도 된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마타데’라는 시골동네에 조그마한 집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으며 5일간 입원하여 집중적인 항암치료를 받고 10일간 집에서 원기를 회복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암에 좋다는 자연식품은 다 구하여 먹이고 식생활과 운동을 철저히 관리했다. 나는 텃밭을 가꾸어 직접 채소를 길렀으며 우연히 올라가본 뒷산에서 지천으로 깔려있는 취나물, 머위, 더덕, 두릅 등의 산나물과 암에 좋다는 바위솔, 겨우살이 등을 채취하여 말리거나 냉동을 시키고 매일 낫토(일본식 청국장)를 사와 찌개를 끓이는 등 일벌이 여왕벌을 섬기고 봉양하듯이 병간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대구의 금향각, 심전방, 대동금융도 전화와 팩스로 내가 직접 관리했으며 사소한 잘못이라도 있으면 불호령을 내려 꼼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선례가, “당신도 사업을 하면 잘할 것 같다.”며, “어차피 섬유협회에 사표를 내었으니 대구에 돌아가면 모두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사업에는 자신이 없어, 내가 줄 돈은 될 수 있는 대로 안주고 내가 받을 돈은 악착같이 받아내며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이 해야 하는 게 사업인데 나는 그게 자신이 없어, 선례도 대구에 가면 모든 걸 정리하고 건강이나 돌보면서 조용히 살아야 해,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마음을 비워야 돼.” 일본에서의 투병생활이 6개월로 접어들자 선례의 병세는 많이 회복되어 겉으로는 병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일상생활에도 거의 불편이 없었으며 하루하루를 행복에 겨워했고 형빈이와도 전화를 자주했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의사의 허락을 받아 귀국키로 했으며 저 남쪽의 나가사키에서부터 홋가이도의 삿뽀로까지 일본전역을 유람하고 대구에 오니 동성로 이 사장이 무사귀국을 축하한다며 저녁식사를 마련한 자리에서 요즈음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니 이제 보스자리를 내어줄 때가 되었다며 서글퍼했고 시경의 오 계장도 승진하여 시골의 경찰서장으로 나갔다고 했다. 나는 선례와 의논도 없이 선례의 지분을 이 사장이 매입하는 조건으로 대동금융을 넘겨주기로 했으며 금향각과 무랑루즈는 월세를 놓고 만리장성은 홍 마담에게, 아사쿠사는 바둑이에게 비품대나 권리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경영권을 넘겨 집세만 내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선례는 팔공산 밑 백안동에 전원주택을 마련하여 이사를 했고 나는 심전방에 내가 거처할 방과 연락사무소를 꾸며 주민등록을 중구로 옮겼으며 다시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한편 만리장성과 아사쿠사에서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며 서서히 선거준비를 해 나갔다. 또 선례와 의논하여 심전방의 담장을 허물고 정원을 대폭 개조하여 500여 평의 땅에 농구, 베트민턴, 족구장 등을 만들고 체력단련을 위한 각종 운동시설과 화장실, 벤치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소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개방하였으며 조그마한 준공비석에 ‘권 영환’이란 내 이름 석 자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금호강 풋사랑’, ‘아양교의 이별’, ‘추억의 금호역’이라는 대중가요를 직접 작사하여 테이프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며 각종행사에 빠짐없이 기부를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이처럼 내가하는 일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되어가고 있었으나 선례는 일본에서 귀국한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동산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으며 내과 과장은 내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러 주었다. 아마 재산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한 것 같았으며 나는 눈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움켜잡았는데 여자 하나를 못 살려내다니......, 산삼을 먹이면 나을까, 용한 점쟁이를 한번 찾아가 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내가 선례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기껏해야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동산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여 만에 퇴원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네만 더 이상 방법이 없네, 앞으로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울 거야, 준비를 하게, 참 안됐네.” 나는 멍하니 창 너머 먼 하늘만 바라다보았다. “기사양반, 팔공산 백안동으로 갑시다.” “아니야 금호로 가고 싶어, 옛날 우리가 노닐던 금호강과 과수원길, 가슴 설레며 만나던 금호역이 보고 싶어, 지금도 기적을 울리며 통근차가 다닐까, 거기에는 당신이 작사한 노래비도 있다면서?” “그래, 그럼 금호로 갑시다.” 우리는 눈에 익은 국도를 달려 금호강 제방과 과수원 길을 한 바퀴 돌아 금호역으로 갔으며 거기에는 오늘을 예견한 듯한 노랫말이 적혀 있었다. 추억의 금호역 내고향 금호역에 진달래 붉게타면 몰래키운 어린순정 발갛게 물들었지 긴세월 가슴에묻은 댕기머리 내사랑 통근차 차창넘어 그모습 아련한데 오늘도 금호역엔 기적이 울겠지. 해저문 금호역에 외로운 저나그네 무슨사연 그리많아 발길을 못돌리나 희미한 가로등아래 다홍치마 옛추억 막차도 떠나가고 조각달 외로운데 불꺼진 금호역에 실안개 내린다. 대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선례는 조그마한 손가방 하나와 편지 한통을 주면서 내가 30년 만에 당신께 연애편지를 썼으니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하며,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꼭 보고 싶었는데 못보고 가나봐.” 했다. “무슨 소리, 볼 수 있고말고, 내가 산삼을 구해 올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당신이 없다면 국회의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산삼 먹는다고 나을 병인가, 옛날가수 나 애심이가 부른 ‘미사의 종’이라는 노래가 듣고 싶어, 당신 노래 잘 하잖아, 이절은 방금 금호역에서 본 노랫말로 불러줘.” 나는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걸어오는 발자욱마다 눈물고인 내청춘, 죄많은 과거사를 뉘우쳐 울적에......” 할 때에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고 선례는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내가 노래를 다 마쳤을 때는 이미 눈을 감고 잠이 들었고 그 잠은 다시 깨어나지 못한 체 내 사랑 여왕벌은 내 어깨에 기대어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나는 선례를 경대병원에 안치하고 난후 연애편지란 것이 유서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즉시 뜯어보았다. “내 사랑 영환 씨 보세요. 내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다보니 무덤까지 갖고 가려했던 비밀을 당신께 털어놓지 않을 수 없군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면 형빈이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방회장의 별장에서 가끔 술을 나누며 밤을 보낸 적이 있었으나 그 당시 이미 방 회장은 당뇨중증으로 심신이 온전하지 못했으며 이런 사람에게 자기자식이라고 착각을 하게 만든 것은 순전히 덕이나 좀 보려고 꾸며낸 나의 음모이고 연극이었습니다. 저승에서 만나면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지요. 지난 10년간 당신은 나의 애인이고 남편이었으며, 오빠고 아버지였습니다. 그간 내게 베풀어준 사랑과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겠으며 특히 일본에서 받은 당신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 세상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고귀한 것으로 고 히 간직하여 저승까지 가져가겠습니다. 여기 100억 원의 예금과 다섯 건의 부동산이 있으니 적의조처하시고 당신 부인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형빈이를 입적시켜 친자식으로 삼아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형빈이는 우연히 얻은 자식이 아니고 당신과 나를 하나로 묶어주기 위해 하늘이 점지해 주신 신의 선물이니 부디 소중히 키워주소서. 당신은 이재에도 밝지 못하고 사업에는 관심도 없으니 아예 사업을 할 생각은 말고 수성에나 신경 쓰기 바라며 혹시 국회의원선거가 여의치 않아 현금을 다 없앤다 하드라도 부동산만은 처분하지 말고 그대로 갖고 계세요, 앞으로 부동산값은 엄청나게 오를 전망이니 소유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과 형빈이의 평생을 보장해줄 것입니다. 가방 속에 명의이전에 필요한 모든 서류와 도장이 들어있습니다. 금호강과 과수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그마한 무덤하나 만들어 주시고 해마다 진달래꽃이 필 무렵 당신과 형빈이가 함께 와서 술 한 잔만 올려주면 나도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 당신을 믿고 먼저 갑니다. 1986년 10월 9일 안 선례 올림.” -끝- |
첫댓글 윤호정형의 소설을 스크랩 해왔습니다.
윤형, 뒤늦은 등단을 축하합니다. 일쥐월장의 발전을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