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파리 같은 대도시나 니스와 칸 같은 유명 휴양지 위주로 여행한 사람들에게 ‘샹띠이’는 낯선 이름이다. 그럼에도 ‘기차로 떠나는 작은 마을’ 리스트에 샹띠이를 올린 이유는 비록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지만 베르사유(Chateau de Versailles)의 거대한 인파와 오랜 기다림을 견뎌낼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고성(古城)의 향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셔 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샹띠이는 마치 ‘숲’으로 이뤄진 마을 같다. 기차역에서 내려 대한민국 판 ‘신데렐라 이야기’인 <파리의 연인>이 촬영된 고성 호텔 샤또 드 몽빌라젠느(Chateau de Montvillargenne)를 찾아가는 길도 온통 숲 천지다. 숲 길 사이를 말을 타고 한가로이 노니는 사람들의 풍경과 초록 숲과 단정한 정원 사이에 들어서 있는 아담한 고성 호텔이 만들어내는 ‘초현실적일 정도로 여유로운 광경’은 날 때부터 ‘도시인’이었던 여행자를 설레게 만든다. 그런데 작은 규모의 고성 호텔에 ‘설렘’을 느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샹띠이 성(Chateau de Chantilly)에서 만나게 되는 콘데 가문의 어마어마한 컬렉션은 외지의 여행자에게 ‘부러움’을 넘는 ‘시기심’까지 갖게 만든다. 샹띠이 성은 16세기 파리 주변 지역에서 가장 큰 세 개의 숲과 인접한 지역에 세워졌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숲’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다. 멀리서 바라보면 물에 떠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의 ‘성’ 그 자체는 물론 베르사유의 정원을 디자인한 앙드레 드 노트르(Andre de Notre)가 17세기에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도 하루 온종일을 투자해도 모자랄 정도로 호사스러운 눈요기지만, 샹띠이 성의 진면목은 어마어마한 수집품을 소장한 박물관에 있다.
그들은 수세기에 걸쳐 훌륭한 회화와 사본을 수집해 왔는데 프랑스혁명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됐다. 그 후 1814년 콘데 공작(Duc de Conde)이 수집을 시작했고 1830년에는 콘데 가문의 마지막 계승자 오말 공작(Duc d'Aumale)이 그 뒤를 이어 컬렉션 재건과 함께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직계 후계자가 없었던 공작은 1894년 샹띠이 성을 프랑스 한림원(Academie Francaise)에 기증한다는 유서를 쓴다. 이 유서에는 그의 가문의 이름을 따서 이 박물관을 콘데 박물관(Musee de Conde)으로 지어야 하며 콘데 박물관의 컬렉션을 외부에 유출, 대여할 수 없으며 그가 배치한 컬렉션을 원상태 그대로 일반인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특히 중세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프랑스 및 이탈리아의 회화겭瀛퍊삽화겮拈?등에 중점을 두어 회화 1,000점, 스케치 2,500점, 판화 2,500점, 필사본 1,500점을 소장하고 있어 그 규모가 루브르 박물관에 필적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푸케의 <에티엔 슈발리에의 기도서>, 라파엘로의 <성모자>, <삼미신>은 콘데 박물관의 그 많고 많은 컬렉션 중 특히 더욱 유명하다. 3만여 권의 고서가 소장되어 있는 서재에 들어서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다. 15세기 경, 인쇄술이 발명되자마자 만들어진 희귀한 책을 비롯해 각종 필사본과 고서들이 세월에 몸을 맡겨 향기로운 ‘책 내음’을 폴폴 풍기고 있다. 책읽기 딱 좋을 정도로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고서에 몰두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려니 중세 영화로는 <소공녀>가, 판타지 무비로는 <해리포터>의 주인공이 차례대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특정 ‘가문’과 ‘개인’이 평생을 투자해 이룬 어마어마한 수집 박물관은 ‘공공 기관’이 설립한 박물관과는 사뭇 다른 감동으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대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프랑스 기차 여행의 묘미는 남프랑스의 해안선을 따라 카르카손으로 가는 행로에서부터 빛을 발했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볕에 어여쁜 포도송이가 알알이 맺힌 나무로 가득 덮인 초록의 대지, 농부의 ‘예술성’이 담뿍 느껴지는 정리정돈 잘된 색색의 밭 모양, 산들 바람마저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정갈한 숲, 예쁜 마을의 오밀조밀함까지. 각각의 풍경들은 채도가 선명한 여러 폭의 유화를 이어붙인 것 같다. 기차 타고 남프랑스를 흘러가며, 루브르나 오르세 박물관에서 만난 위대한 예술가를 칭송하기 이전에 그 풍경을 소중히 보듬고 가꿔온 정원사, 포도밭의 파수꾼, 마을의 집들을 예쁘게 지어 올린 무명(無名)의 건축가에게 먼저 찬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아무래도 <콩쥐 팥쥐>, <장화 홍련>, <홍길동> 등의 서민 동화가 친숙하고 ‘성(城)’보다는 ‘궁(宮)’의 이미지가 익숙한 여행자에게 카르카손의 ‘성’은 차라리 ‘현실’과는 요원한 ‘판타지’라고 설명하는 편이 낫다. 돌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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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두르고 적색과 군청색의 고깔모자를 쓴 듯한 모양새의 카르카손 성곽을 첫 대면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철옹성(鐵甕城)’이라는 실제의 쓰임새 이상의 낭만적 상상력이 무조건반사처럼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 상상의 도화지에 펼쳐질 신비로움의 아이콘은 무한대. ‘요정’, ‘마녀’, ‘기사’, ‘공주’, ‘왕과 왕비’, ‘마법사’, ‘유니콘’, ‘살아 움직이는 정령의 숲’, ‘난쟁이’…. 이곳, 카르카손에서는 누구나가 현실을 벗어버린 ‘낭만주의자’요,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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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마치 시공간의 역류로 판타지의 세계로 회귀한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드는 이 4차원의 공간과 같은 카르카손은 ‘중세의 유럽’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요새 도시’로 꼽힌다. 과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경에 근접해 피레네 산맥을 관통하는 지리적 요지였던 카르카손은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적으로부터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로마 시대 무렵부터 고지대에 튼튼한 성곽을 짓기 시작했다. 그 후 카르카손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12세기, 당시 트랑카발 왕조는 높은 성의 언덕을 체계적으로 축성했고 ‘성 안의 또 다른 성’인 화려한 콤탈 성(Chateau Comtal)을 지어 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했다. 하지만 이 웅대한 성벽에도 불구하고 카르카손은 물 부족과 폭염, 전염병으로 1209년 알비겐저 전쟁 때, 십자군에 12일간 포위당한 끝에 무릎을 꿇었다. 승승장구하던 십자군이 이 도시를 약탈했지만 다행히 모조리 파괴하지는 않았다. 수십 년 뒤 프랑스의 성왕(聖王) 루이 9세는 도시 주변에 두 번째 원형 성벽을 쌓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카르카손의 실루엣은 이 무렵 그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카르카손이 피레네 산맥의 중심도시 역할을 잃어가고 시테(La Cite)자체가 도시의 거대한 빈민촌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1850년부터 프랑스 정부차원에서 복원사업을 시작, 무려 60여 년에 걸친 부단한 노력 끝에 화려했던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만나는 동화적 상상으로만 가능할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성곽 도시는 유명 건축가, 복원 전문가, 고고학자들이 원래 모습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낭만적 상상력을 발휘해 카르카손을 더욱 찬란하게 꽃 피워낸 것이다. 성 문을 통해 시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 동화, 마법, 상상 속의 온갖 아이콘을 가득 진열해 놓고 여행자를 유혹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는 오래된 돌담의 집들, 꼬불꼬불 미로처럼 이어진 작은 골목들을 따라 걷다 성곽 안의 또 다른 성인 콤탈 성의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카르카손에서는 ‘시간’이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비단 시각만이 아님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성의 구석구석,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코를 킁킁거리며 고성의 향기를, 시간의 향기를 들이마셔 볼 때, 나무 계단을 오르며 삐걱삐걱 오래된 소리를 낼 때에도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마을을 지켜 왔을 돌을 하나하나 보듬어 본다. 어느새 머리 꼭대기에 오른 태양이 데워 놓은 돌이 ‘세월의 온기’를 받아 너무나도 ‘따뜻하다’.
카르카손에서 아를까지 가는 데 기차로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반. 영화 한 편을 보기 딱 좋은 시간이다. 아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호기롭게 노트북을 꺼내 극장에서 볼 타이밍을 놓친 최신영화를 플레이시켰다. 기찻길을 따라 영화도 흐르는데 시선은 자꾸 창밖으로 향한다. 이어폰을 귀에 틀어박고 모니터에만 집중하며 온 기차 안을 나만의 영화관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남프랑스의 절경은 한시도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느샌가, 노트북을 덮어버리고는 창문에 코를 틀어박고 ‘만화경’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눈앞에 펼쳐진 근경과 중경, 그리고 원경의 파노라마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남부 프랑스에는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미안한’ 숨은 보물 같은 여행지가 참 많다. 아를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파리를 위주로 프랑스 여행을 즐기는 우리나라 여행자에게는 국제공항이 없는데다 구할 수 있는 여행정보마저도 빈약한 아를이라는 여행지가 낯선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를은 ‘고대’, ‘중세’, ‘르네상스’의 유적이 남아 있고 그런 연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하지만 사실 드문드문 아를을 찾는 한국인들을 인터뷰한다면 그들이 아를을 찾게 된 이유의 98%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일 테다. 아를은 고흐가 ‘요양’을 위해 1888년 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그는 프로방스(Provence)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300점 이상의 그림과 스케치를 남겼다.
고흐를 찾아가는 여행은 아를 여행자 센터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고대 유적지, 중세 유적지, 르네상스, 빈센트 반 고흐의 스케치 장소, 세계 문화유산의 5가지 테마의 여행코스가 상세히 소개된 지도와 필요한 여행정보를 구해 계획을 잡는 게 좋다. 지도는 1유로. 도대체 고흐는 어떤 눈으로 아를을, 아를의 햇살과 색채를 바라보았을까. 호기심을 가득 품고 고흐의 흔적을 좇는 여정은, 과연 예술가가 ‘필터링(filtering)’한 세계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참 다르다는 사실과, 그가 걸었던 길, 그가 보았던 것들을 몸소 체험해 본다는 특별한 의미를 안겨준다. 전형적인 프로방스 마을의 매력이, 남프랑스의 따사로운 햇살이, 지중해 특유의 여유로움이 고흐 같은 예술가는 물론, 이곳을 찾은 여행자 누구에게라도 무한한 영감을 선사할 것만 같다. 역시나 기차는 ‘현재’를 즐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인 여행에 있어서 가장 간편한 이동수단이었다. 기차 안은 ‘목적지가 같다’는 공통점 이외에는 교집합이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각기 사연 다르고 서로 낯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공적’인 공간이지만 기차 좌석에 몸을 파묻고 차창 밖을 바라보노라면 흐르는 풍경에 빠져드는 동시에 지난 추억 속에까지 빠져드는 ‘사적’공간이기도 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남프랑스의 그림엽서 같은 ‘풍경’들을 아쉬워하듯 기차에서는 과거를 아련히 추억하게 된다. 과거로의 상념에 빠진 나와, 현재의 나를 목적지로 이끌어주는 기차를 타고 또다시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누빌 날을 꿈꿔본다.
Travel Information ■ 프랑스 가는 법_프랑스 남부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한항공, 에어프랑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파리 간 노선을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약 12시간.
■ 시차_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면 7시간 느리다. 서머타임은 3월 4째 주~10월 4째 주까지 적용된다.
■ 열차 시간표_확인 사이트 www.sbb.ch/en
■ 샹띠이 가는 법_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RER선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샹띠이-고비오(Chantilly-Gauviex)역에서 하차하면 되고 소요시간은 25분 정도. 프랑스 북역에서 가는 방법도 있다. 일반 RE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고 RER선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30분 정도, RER선을 이용할 경우 40분 정도 소요된다. 유레일패스 소지 시 두 기차는 모두 무료고 예약 없이 탈 수 있다.
■ 카르카손 가는 법_파리에서 정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6시간 정도 달리면 카르카손에 도착할 수 있다. 리옹(Lyon) 역이나 몽파르나스(Montparnasse) 역에서 출발하며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몽펠리에(Montpellier), 나르본(Narbonne), 뚤루즈(Toulouse) 등에서 환승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파리 리옹 역에서 오전 11시 20분 TGV6209편으로 나르본으로 가는 열차 탑승 후, 나르본에서 카르카손으로 가는 열차인 RE76312편으로 환승해야 한다. 나르본에서 카르카손까지는 30~40분이 소요된다. 이럴 경우 환승 대기 시간까지 총 6시간 22분이 걸리는 셈이다.
■ 아를 가는 법_카르카손에서 아를로 가는 직행 기차가 있다.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며 TGV는 아니지만 반드시 예약이 필요한 구간이다. 파리 리옹(Lyon) 역에서 아를로 가려면 TGV를 이용한다. 직행 기차로 이동시 소요되는 시간은 약 3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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