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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끝나가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자본주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의 금융위기의 주범들인 국제금융기구의 수장들이나 7천억 불의 구제금융을 요구하는 부시나 투기자본의 산실인 금융기관들의 경영자들이 금융의 국유화를 자청하며 미국식 자본주의 파산을 떠들고 있다. 오히려 입 다물고 조용한 쪽은 자칭 “맑스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다. 기껏해야 신자유주의 반대 운운하면서 “건강한” 자본주의의 회생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순환적 위기? 주기적 위기?
자본주의 역사에서 위기에 대한 입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파국론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해 어느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새로운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는 묵시론이나 극단적 무정부주의가 자본주의 억압과 착취 밑에서 신음하는 무산자들을 미몽에 빠뜨렸고 아직도 그러한 비과학적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다.
또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항상 내뱉는 낙관론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장치를 내장하고 있고 투기를 근절시키면 실제 경제는 잘 운영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입장보다 더욱 세련되고 지배적 입장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규정하고 조용히 참고 기다리면 비바람이 그치고 순탄한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특히 이러한 세 번째 입장이 이른바 ‘사회주의진영’에까지 파고 들어와 계급투쟁을 희석시키고 ‘건강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19세기 자본주의에서 일어났던 광경이며 20세기와 21세기 자본주의 위기에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논리가 되어버렸다. 이는 상승기에 있고 무한히 확장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였고 맑스도 「공산주의 선언」에서 이 위기를 과잉생산의 전염병으로 불렀다. 그런데 과잉생산의 경향은 기아, 가난, 실업을 가져왔지만 상품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상품, 너무 많은 산업, 너무 많은 자원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은 경쟁을 통해 무정부로 체제를 끌고 가는 자본주의의 기능인데 새로운 임노동과 상품을 찾아 새로운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19세기는 위기의 순간을 건강한 심장이 뛰는 것으로 이해했다.
과잉생산 위기/ 이윤율 저하 위기
20세기는 1차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이러한 상승기의 자본주의가 마감을 하고 전 지구가 임노동과 상품의 생산관계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를 1919년 코민테른은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시기로 규정하였다. 한편으로는 세계시장의 쟁탈과 통제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아갔으며 다른 한편으로 과잉생산경향은 19세기와 달리 세계경제를 불안정과 파괴의 반영구적인 위기로 종속시키는 만성적인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2천만의 목숨을 앗아가고 20-30%의 실업자를 만든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인 1차 세계대전과 1929년 세계대공황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한쪽에 경제의 국가화를 통한 국가자본주의(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과 다른 쪽에 사적부르주아지와 국가 관료주의가 결합한 자유주의 국가를 형성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자본주의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 포함)는 25년 동안 재건과 부채증가에 힘입어 예외적인 번영을 했으며 정부관료, 노조지도자, 경제학자, 자칭 “맑스주의자들”까지 자본주의가 결정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호언장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7년 파운드화의 평가절하, 1971년 달러위기, 1973년 오일쇼크, 1974-75년의 경기후퇴, 1979년 인플레이션 위기, 1982년 부채위기, 1987년 월스트리트 위기, 1989년 경기후퇴, 1992년-93년 새로운 경기후퇴로 인한 유럽통화의 혼란, 1997년 아시아의 ‘호랑이’와 ‘용’의 위기, 2001년 미국의 ‘신경제’의 위기,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등 금융위기로 자본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연속되는 위기는 ‘순환적’위기, ‘주기적’위기인가? 백 번, 천 번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결코 치유할 수 없는 병, 지불능력이 있는 시장의 부족 때문이며 이윤율 저하 때문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은 거대한 국가개입을 통해 극단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이번 금융위기처럼 국가의 구제금융이라는 단기처방으로는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생산관계의 극심함 모순이 생산력의 확대를 막는, 막다른 길목에 서 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국가부채에 의존하는 것이며 과잉생산의 출구를 가공적인 시장의 창조에서 찾는 것이다.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
지난 4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짐으로써 재앙을 피해왔다.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다. 그 마약을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미국 같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부채의 결과는 지불 가능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전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전 세계 노동자의 가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생태적 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자본주의는 끝나가고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갑작스런 파멸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서서히 끝나는 마지막 단계, 체계적 몰락의 단계이다. 우리는 100년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들고, 다시 한번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를 말하는 역사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과 혁명적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에 올바르게 설 사회주의자들의 통일과 단결을 요구한다. 화폐, 상품, 시장, 임노동, 교환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 살아 숨쉬는 노동해방 사회 건설을!
사회주의 운동의 밝은 미래를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열어갑시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싸워 온 계급은 오직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이다. 프랑스에서, 러시아에서,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은 착취자들과 억압자들에 맞선 투쟁의 선두에 서왔고, 온갖 불의를 이겨내며 역사의 미래를 개척해왔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온갖 고난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어깨 걸고 앞장 선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1848년의 유령이 1917년의 기쁜 소식으로 그리고 지금은 희망의 푯대로 솟아오르고 있다. 맑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온갖 관념적인 조류들, 비노동계급적 조류들을 논박하면서 세워낸 과학적 사회주의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조건을 뛰어넘어, 전 세계 선진적 노동자들의 진정한 사상으로 굳건히 살아남아있다. 사회주의를 역사의 참된 대안으로 밀어올리는 힘은 정말 단순하다.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다.
무엇이 사회주의를 간절히 부르는가?
가짜 사회주의 국가들을 이용해 ‘사회주의는 끝났다. 자본주의가 정의다’라고 자본가 이데올로기, 자본가 언론들은 매일 같이 떠든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모습은 어떤가? 만성화된 불황, 수시로 덮치는 경제위기, 거대한 공황에 대한 공포감,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의 현 모습이다. 한줌 부자들과 다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부자들의 거대한 부의 성채를 더 높이 쌓아주기 위해 수십억 노동자들이 허리가 휘어지고 있다. 더 많은 것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은 대량 해고되고, 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야만적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적 노동자들이, 양심적 지식인들이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혁명적 대안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를 매장시키려는 자본가계급의 모든 시도를 헛되이 만드는 진정한 이유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소련의 스탈린 관료집단들이, 중국과 북한의 관료집단들이 타락시키고 완전히 변질시켜버린 과학적 사회주의의 참된 정신을 노동자계급 속에서 되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매일 같이 저지르는 참상으로부터 인류가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향해 똑바로 전진하는 것이다.
사노련에 대한 두려움의 뿌리
사노련은 전세계 노동자들, 그리고 이 노동자들과 어깨걸고 노동해방으로 전진하려는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왜곡시켰던 개량주의, 민족주의를 넘어서고 러시아 10월 노동자 혁명의 정신과 성과를 사수하려 투쟁한다. 노동자에 대한 또다른 억압체제를 만들었을 뿐인 스탈린, 김일성 관료집단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의 정신, 즉 노동해방의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복원하여 노동자 민중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투쟁한다.
또한 사노련은 비정규직 제도, 실업, 저임금 등에 맞선 노동자들의 모든 투쟁을 지지하고 그 한 복판에서 함께 투쟁한다. 이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만 자본주의의 야수적인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존을 지켜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힘이 자라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노련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사상과 원칙을 지키려는 한국의 사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회주의 세력과의 굳건한 연대를 조직한다.
이 모든 실천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운동을 보다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펼쳐나가고자 했다. 노동자대중의 무한한 잠재성과 창조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고,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듣고자 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자 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갈망이 우리를 지켜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사회주의 사상이 아직 노동자 민중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러나 사상, 조직의 자유만 있다면, 한줌 착취자들, 반동적 지배자들을 대변하는 자본주의 사상에 비해 노동자계급과 인류의 미래를 대변하는 사회주의 사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우위를 점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히 사회주의 정치를 공개적인 무대 위에 올렸다.
바로 이러한 사노련의 활동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싹을 자르려는 시도가 이명박 정권과 이를 지탱하는 폭압기구에 의해 벌어졌다. 자본주의가 매일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 아직 너무나 미약하지만 거대한 불길로 타오를 잠재력을 갖춘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감, 바로 이것이 사노련에 대한 작금의 탄압의 본질이다.
또한 사노련에 대한 공안탄압은 촛불항쟁과 노동자 운동이 결합하려는 큰 흐름 속에서 자본과 정권이 이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일차적으로 좌절되었다. 노동자 민중운동의 대항투쟁과 정치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민주시민들의 항의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오히려 자본과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주의 운동이 본격적인 노동자 대중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절체절명의 선택
인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전쟁과 대공황 등 야만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지는가, 아니면 그 야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담하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가라는 절체절명의 선택의 기로에 우리는 지금 놓여있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이명박 정부의 행동은 무엇인가? 이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하고 앞으로 추진할 모든 조치들은 바로 자본가 계급만을 위한 선물들이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민중에게는 억압과 착취의 불벼락을 내리려 하고 있다. 자본가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우리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혁과 투쟁의 방향을 올바르게 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험난한 길을 피하고자 편하게 안주하는 길로 빠져들었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공동의 이해가 아니라 자신만의, 자기 사업장만의, 자기 나라만의 이해를 추구하는 조합주의의 길로 빠져들었다. 자본의 2중대가 될 수밖에 없는 개량주의가 독버섯처럼 퍼졌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단결 대신 자기 써클의 이해와 편협한 시야, 가족주의를 앞세우는 경향도 있었다. 지금 모든 사회주의 투사들은 이러한 길들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의 하나의 길에서 만나야 한다.
이 길은 무조건 모이면 된다는 식의 절충주의와 한탕주의의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자운동이 제대로 만나는 길이다.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견지한 풍부한 토론과 실천경험의 소통 속에서 자본주의에 맞선 사회주의 대안을 구체화하고 대중화시켜야만 한다. 노동대중 속에서의 공동의 실천 속에서 검증된 사회주의 노선과 구체적 대안을 가지고 당건설로 전진해나가야만 한다.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이 만나게 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이번 사노련 사건을 이러한 기회로 삼자. 자본과 정권의 탄압을 두려워하지 말자. 공개적이며 대중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전면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 실천하면서 노동자대중 속에서 전개되는 사회주의 운동만이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 단연코 미래는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것이다. 전진하기를, 승리하기를 절대 두려워하지 말자!
<자료1> 기아, 전쟁, 생태적 재앙
1) 임금노예도 먹여 살릴 수 없는 체제
○ 세계에서 매일 굶주림으로 10만 명이 죽는다.
○ 10세 미만 어린이는 매 5초마다 죽는다.
○ 8억4천2백만 명이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
○ 60억 인구 중 20억이 기본 식품비 인상으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2) 경제번영의 환상을 유지할 수 없는 체제 (현재 자본주의 체제)
○ 인도와 중국의 경제기적은 환상이다.
○ 최근 중국 중앙은행은 위안화 가치를 끌어내리려고 500억불로 외환에 개입했다.
○ 6만7천개 회사가 2008년 상반기에 파산했다. (2천만 명이 해고)
○ 영국 재무장관 - 세계경제의 60만의 최악의 상황 (실업, 저성장, 스태그플레이션)
3) 군사경쟁과 전쟁의 체제로서의 본질
○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의 전쟁은 러시아와 나토사이의 냉전의 부활
(독일, 프랑스, 이태리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공급에 대한 의존으로 실용주의적 접근, 반면 발틱국가들, 폴란드, 체코, 스웨덴 영국은 러시아의 공격을 비난)
○ 자본주의 야만주의의 새로운 시위
4) 생태적 재앙의 한계
○ 지구온난화 (평균온도 1896년 이래 0.6% 증가. 20세기는 북반구에서 지난 천년동안 그 이전보다 가장 심각한 온난화, 눈 덮인 지역은 1960년대 말 이래 10% 감소, 북극 빙하 두께 40% 감소, 평균 해수면은 20세기동안 10~20년 상승, 이러한 해수면 상승은 지난 3천년보다 10배 증가)
○ 90년 동안 지구의 약탈 : 남벌, 토양침식, 오염(공기, 수질), 화학방사물질의 살포, 동식물의 파괴, 전염병의 폭발 등- 생태적 재앙은 종합적이고 지구적 형태로 구성되어 예측할 수 없다.
<자료2> 최근 세계의 계급투쟁
○ 이집트
2006년 12월, 2007년 봄 Ghazl Al Mahallah 공장 (카이로에서 수백킬로 떨어진)의 2만7천명 노동자의 파업투쟁. 정부가 모든 노동자에게 150일의 임금지불의 약속을 어기자 2007년 9월23일 재파업 (회사의 노조에 대한 불신) 다른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연대파업, 카이로의 제분공장노동자의 연대파업. 석유공장노동자도 방직공장노동과 비슷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 이들 투쟁은 정부와 자본의 충실한 대리인인 공식 노조를 거부했다.
○ 두바이
수만의 건설노동자(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노동자)는 한 달 100유로를 받고 짐승같은 주거환경에서 노동하는데 2006년 봄 투쟁을 벌였고 2007년 10월 그들 중 4천명이 탄압, 강제출국을 무릅쓰고 40만 건설노동자와 함께 이틀간 투쟁을 벌였다.
○ 알제리아
2008년 1월12~15일 공공서비스(교사) 노동자들의 전국적 파업, 보건 노동자를 포함한 다른 부분으로 파업이 확산되었다. Tizi Ouzon시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 베네주엘라
2007년 5월 석유노동자의 국유기업의 해고에 대항하는 투쟁. 9월에도 임금협상에서 투쟁 재개
○ 페루
2007년 4월 중국기업에서 파업이 시작되어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적인 석탄광산으로 확대되었다. Chimbote의 Side의 Peru회사는 노조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마비되었다. 6월에는 32만5천명의 교사가 가세하였다.
○ 터키
Turk Telecom 노동자는 1991년 광부파업 이래 가장 큰 파업을 2007년 말 44일 동안 벌였다. 투쟁결과 일자리를 지켰고 10% 임금인상을 얻어냈다.
○ 그리스
연금제도 개혁에 대한 반대투쟁을 2007년 12월12일 70만 노동자 (전체 노동자의 52%)가 벌였다
○ 핀랜드
7만 보건노동자(주로 간호사)가 24%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2007년 10월 한달간 파업을 벌였다.
○ 불가리아
2007년 9월 말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교사들이 파업을 벌였다
○ 헝가리
구조조정 반대, 연금개혁반대를 걸고 철도노동자가 파업을 벌였다. 12월17일에는 다른 산업 (교사, 보건노동자, 버스운전사, 항공노동자)의 3만2천 노동자가 연대파업에 동참했다.
○ 러시아
24시간 이상의 모든 파업을 불법화시킨 법을 무릅쓰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2007년 봄 서부 시베리아로부터 코카서스에 이르기까지 파업의 물결이 휩쓸었다. (건설주물, 병원, 자동차, 부두, 우체국, 철도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정부와 손을 잡은 <러시아독립노조연맹>은 파업에 적대적이었고 주요 기업의 경영층은 서구지배계급의 지원을 받아 “계급투쟁”노조주의에 대한 노동자의 환상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새로운 조합구조 (보기: <자동차노동자의 지역노조> 등)의 출현을 고무시켰다. 이들 “독립노조”는 그들 공장에 노동자를 고립시켜 연대를 제약했다.
○ 이태리
고용안정을 공격하고 연금과 의료비를 삭감시키는 정부와 세 주요노총 (CGIK/CISL/UIL)과의 협약 (2007년 7월23일)에 반대하는 2백만 노동자의 총파업이 11월23일 평조합노조 (CUB, Cobas 등 “계급투쟁” 노조)에 의해 벌어졌다. 40만 노동자가 로마와 밀란에 25번의 시위를 벌였다.
○ 영국
10년 만에 처음으로 우체국 노동자들이 실질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일련의 파업을 벌였다.
○ 독일
철도노동자의 임금인상 파업이 10개월 지속되었다. 노동조건은 지난 15년간 독일에서 가장 최악의 조건 (월급 평균 1500 유로)으로 악화되었고, 노동자의 수는 반으로 줄었다. 이들 파업으로 11%임금인상을 쟁취했으며 노동시간은 2009년3월부터 41주에서 40주로 줄었다
2008년 말 핀랜드 휴대전화회사 노키아는 보쿰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2300명 노동자들이 실직하고 하청업의 1700개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되었다. 이 발표 후 노동자는 작업을 거부했으며 자동차 노동자, 철강노동자들이 연대와 지지를 보냈다. 2007년 파업일수는 통독의 1993년 이래 최고치에 달했다.
○ 프랑스
2006년 CPE반대 투쟁 이후 2007년 10월과 11월 철도와 전철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졌다. “특권화”된 연금제도에 매달리지 않고 철도노동자는 37년만의 봉사기간 이후의 퇴직을 요구했다. 1986년-7년과 1995년의 투쟁에서 중점을 두었던 철도 노동자 (승무원, 기술직)의 분할에 반대하고 젊은 노동자들의 결의가 돋보였다.
대학을 엘리트 대학과 “쓰레기통” 대학으로 분할하는 정부의 대학개혁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투쟁이 2006년 이후 이어졌다. 학생과 철도노동자 사이의 진정한 연대의 끈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정부와의 야합이 명백해졌고 모든 노조는 투쟁을 분할하고 고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 미국
철도노조는 9월 제너랄 모터스에서, 10월 크라이슬러에서 자본과 타협하면서 파업을 방해했다. 이러한 노조의 태도는 200년 뉴욕 지하철 노동자가 보인 결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미래세대를 불리하게 하는 협약에 반대하면서 자신들을 희생하는 결단을 2005년에는 보여주었다.
잠정결론
지난 20년 동안 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사보타지하는 역할에 대해 노동자들이 투쟁의 총체적 경험을 얻도록 전진과 후퇴를 하면서 강하고 약하게 지속되었다. 동시에 노동계급은 왜 고전적 노동조합주의의 거부가 이러한 투쟁 속에서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1989년 동쪽 블록과 스탈린 체제의 몰락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 ‘계급투쟁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의석과 전투성 수준에서 심각하게 후퇴하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동안 노동계급은 투쟁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투쟁의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에 대적할 폭이나 의식 그리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2003년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1989년 이래 프롤레타리아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연금에 대한 공격에 반대 동원을 한 투쟁이 전기가 되었다. 노동자의 투쟁은 대부분 중심국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 (2005년 보잉과 뉴욕교통), 독일 (2004 디임러와 오펠, 2006년 봄 의사, 2007년 봄 독일 텔레콤), 영국 (2005년 8월 런던공항), 프랑스 (2006년 CPE에 반대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운동)가 있고 주변부 국가들로는 두바이 (2006년 봄 건설노동자), 방글라데시 (2006년 봄 방직노동자), 이집트 (2007년 봄 방직, 운수 및 기타 노동자)의 투쟁이 있다.
현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
첫째, 40년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에 대한 공격, 특히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미래는 좋아질 것 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렸다.
둘째, 점점 야만적 형식을 취하는 군사갈등의 영구화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가시적 위협은 사회의 근본변혁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반자본주의운동”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그들의 슬로건의 재출현은 이를 빗나가게 하려는 부르주아지가 숨긴 일종의 항체다.
셋째, 스탈린주의와 20년 전 그 몰락 이후의 캠페인이 만든 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 지금 노동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는 “공산주의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어린이였다.
첫댓글 80~9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경험한 우리세대는 한편으론 '스탈린주의' 다른 한편에선 '반공주의'의 직격탄을 맞으며 자라와서 아직도 외상이 깊고, 그 시절의 감성들이 이성을 가로막고 있지요. 하지만 다행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좌익공산주의'는 처음부터 그것들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왔고 그것을 넘어서는 전망을 가져왔고 지금 현재도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갈길이 멀어보이긴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