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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경 해석에 관해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 ‘하나님의 러브레트‘라고도 하고 성경을 짜고 또 짜보면 결국 예수의 피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성경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을 기록한 한 권의 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 구약 성경이 ’무엇에 관해 기록된 말씀이냐?’를 정확히 알고 성경을 보고 읽는 게 중요하겠지요?
1) 성경은 하나님에 관해 즉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기록되어 있어요.
2) 그 언약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성도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관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언약의 실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어떻게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과 그 구원을 이루어가시는지?‘를 기록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 곧 옛 언약의 실체가 누구인지 확인해 봅시다.
요5:36-40절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네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36절 ‘내게는 요한의 증거‘에서의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입니다.
성경의 복음서를 보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친 여러 가지 증언이 나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난 빛이 아니라 세상에 오는 참 빛이 있다 난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그이시다’라고 증거 했어요.
36절에 예수께서 ‘내게는 요한이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라고 하십니다.
여기 ‘더 큰 증거‘는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외친 그 증거보다 더 큰 증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확실한, 더 참된’으로 해석해야 맞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세례요한이 증거한 것보다 더 확실하고 참된 증거가 뭐냐?
‘아버지께서 네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게 뭡니까?
아들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이 성취가 되는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는 거예요.
주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실 그 역사와 아버지가 나를 증언하시느니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언하시는 아들과 아들이 이루실 역사 곧 십자가를 믿지 않은 건 곧 누구를 믿지 않는 것? 곧 하나님 아버지를 믿지 않는 것이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증언하시느니라’ 말씀하셨으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그 역사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증언하신 그걸 기록한 게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게 성경이란 말입니다.
38절에서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세요? ’그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요한복음은, 예수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을 기록한 거니까~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그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 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주님은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성경은 어떤 성경? 구약 성경~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도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 성경 말씀이 너희 안에 있지 않으니 날 믿지 못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신 게 39절입니다.
그럼에도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 내게 말씀 앞에 오기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하신 거예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어 이루시게 하시는 그 역사를 못 봤고 메시아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을 한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 실체이신 예수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요5:46-47절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구약의 선지자 모세가 기록한 글이 모세오경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기록한 그 모세오경이 자신에 대하여 기록하였다고 말씀하시죠?
47절 모세오경이 예수님 자신에 대해 기록한 글인데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니까 ‘모세의 글도 믿지 않는데 어찌 너희가 내 말을 믿겠느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구약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주님을 믿을 수 있다? 없다? 당연히 예수를 믿게 된다.’는 거예요..
구약 성경의 말씀이 주님에 관한 복음의 말씀임을 또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눅24:25-27절 ‘25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지금 동행하고 계세요.
근데 그들이 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16절에 나옵니다.
왜?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주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누가가 말하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17-24절까지를 보시면 눈이 가리어져 있는 그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대한 의미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25-27절까지 구약의 성경을 풀어 주십니다.
‘모세와‘란 모세 오경을 가리키는 것이고 선지자의 글로’란 구약의 선지서를 가리키는 거죠?
모세오경과 선지서가 누구에 관해 기록된 말씀?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
눅24:30-32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모세의 율법’ 헬라어는 ‘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모세의 책’이라는 뜻도 됩니다.
예수님도 모세 오경을 ‘모세의 책’이라고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모세 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확실하게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아직 신약의 복음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엇을 갖고 복음을 전했어요? 구약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를 복음을 전했단 말입니다.
그러면 신.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말씀이라면 마땅히 하나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은혜로 해석해야 맞는 것입니다.
히1:1-2절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이 옛 적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사건과 그림자 모형으로 아들에 관하여 십자가와 복음에 관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2절은 ‘이 모든 마지막에는‘ 이건 예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말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아들이 전하여 준 계시의 말씀 외에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그 아들이 전하는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약의 노아 홍수 심판, 노아의 방주, 유월절 어린양과 어린양의 피, 이스라엘의 출애굽 홍해, 광야, 약속의 땅 가나안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속 사역 곧 예수의 십자가를 설명하고 있는 거죠?
이게 하나님께서 옛 적 구약에서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주었거든요.
근데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구약성경에서 예수와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으로 존재하고 계세요.
‘영원 안에서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이 ’영존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이 역사 속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고 시공에 제약을 안 받으세요.
그걸 베드로가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라고 말한 거예요.
근데 영존하신 하나님이 왜? 시간과 공간과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까? 하나님이 말씀이 왜? 육신을 입고 이 시간과 공간 안으로 들어오셨을까? 여러분은 그걸 깊이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아무런 이해 없이 성경을 그냥 문자적이며 표피적으로 보게 되면 여러분은 성경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구속사역의 목적을 절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엡1:3-6절)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창세전‘이란 이 역사 속 시간이 창조되기 이전인 ’영원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창세전 영원 안에서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고, 성령하나님이 완성하실 것을 계획하시고 작정하셨습니다.
이게 성부와 성자 예수님 사이에 맺으신 창세전 언약이며 하나님의 예정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 영원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그게 은혜며 구원인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영원 안에서 완성이 되어 있어요.
성경을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한다.‘라는 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이 역사를 주관하시면서 이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속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가시는 그걸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구원해 내시고 그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가?‘ 그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 구속사적 성경해석인 거예요.
영원 전에 하나님이 이미 완성하신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통해 어떻게 그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가시는가?‘를 성경 안에는 보는 것입니다.
그걸 성경의 구속사적 이해, 해석‘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요14: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가’ 누가? 보혜사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무엇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러니까 성경의 본 저자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복음 곧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 전까지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기다리고 하셨던 것입니다.
행전2장에 드디어 오순절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약속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자 구약의 성경으로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은혜와 사랑은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근데 많은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방언하거나 이상한 예언을 하거나 병 고치거나 신비한 이적을 행하게 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어요.
성경은 눈으로 보고, 읽고 인간의 사고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자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성경의 그 문자적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복음과 생명과 십자가의 참된 영적 의미를 성령이 조명해 주셔서 그 의미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곧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게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도는 성경을 조명해 주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난 어떤 존재이었으며?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랑과 은혜를 베푸셧는지?’ 우리가 그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 땅을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걸 성경을 통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성경이 유기적이며 점진적이며 예수와 십자가 은혜의 복음을 모형하고 상징하는 예표로 기록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1) ‘성경이 유기적이다.‘라는 건, 성경 구약과 신약이 연결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말씀이 요한 계시록에, 출애굽기가 로마서에서 올라오는 식의 유기적인 하나의 책이 성경인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짝을 이루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34:16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그래서 본문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설교자들이 여기, 저기서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거예요.
마13: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서기관’이란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풀어 기록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란 천국이신 예수님의 제자인 서기관’이라는 그 말입니다.
그 서기관들은 곳간에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새 것‘ 신약과 옛 것 구약을 찾아 설명하더라는 그 말씀인 거예요.
2) ‘성경이 ‘점진적이다.‘라는 건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성경 전체를 통해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그런 말인 것입니다.
3)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모형론적이며, 상징적이며, 예표적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아주 쉬운 예로 구약의 율법을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한 건 구약의 율법 안에 복음의 원형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모형론적이며 상징적 예표로 기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4) 이렇게 성경이 유기적이며, 점진적이며 모형론 적인, 상호 관계에 의해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관해 기록이 되었다는 전제하에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성경신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성경 신. 구약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어떻게 유기적이며 짐진적이며 상징적 모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지 그 예시를 몇 가지 찾아 드리겠습니다.
창2: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기 ‘생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르와흐‘인데 창1:2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애4:20절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여기 ‘우리의 콧김’ 이 단어가 ‘생기‘인데 그걸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메시아흐‘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헬라어로 뭐라고 해요? 그리스도
그러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는 기름부음 받은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라는 의미로 ’그리스도‘라고 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이신 거예요.
‘생기’라는 그 단어가 에스겔서37장에 그대로 사용이 되었습니다.(겔37:9-14절)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라고 우리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니까 생기는 14절 ‘내 영‘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영, 성령을 가리키고 있죠?
흙, 먼지, 없음의 존재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부어 생령 산 존재가 되는 그걸 설명하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으며 없음의 존재에 생기 곧 성령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백성 생명 있는 산 자로 새롭게 창조해 내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를 모형하고 있는 거예요.
엡2:1-5절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제까지 말씀드린 그 내용을 바울이 이렇게 간략하게 말한 거예요.
하나님의 구속사적의 성경해석, 예수와 십자가 은혜와 교회라는 또 다른 예시를 보세요.
창1:26-27절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라는 연합된 한 존재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여자를 탄생시키십니다. 어떻게?
창2:20-24절까지에 하나님이 남자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지으셨죠? 그것에 대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엡5:30-32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니까 창2장에서 이미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 교회의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천국의 혼인잔치를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 그리스도는 자기의 신부인 교회와 더불어 영원히 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에서의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과의 온전한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결혼, 혼인‘이라는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한 몸으로 연합되고 연결되어 있어서 교회를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고 하고 그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바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온전한 연합의 관계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엡4:15-16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선악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자 어떻게 되었느냐
창3:7절에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란 ’그들의 죄와 허물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들의 죄가 벌거벗은 듯 드러났다.‘ 그걸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뭘 하죠? 자기 자신의 벌거벗음, 죄가 드러나니까 그 부끄러움을,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잖아요?
그들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들어 입은 그 옷은 뭐냐?
자신들의 의로움을 증명해 보겠다고 인간이 만든 종교와 종교행위, 율법지킴이나 인간의 선악 체계로 생산해 낸 윤리와 도덕적 깨끗한 삶 선행, 고행, 그런 인간의 행위들입니다.
마21:18-20절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가에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바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말랐나이까‘
인간의 열심과 행위로는 절대로 너희 죄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 그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열매 아니냐~‘
그래서 예수님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해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고 사망에 처하게 된 아담과 하와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고 여자 곧 교회를 구원해 내시겠다는 원시복음이 창3:15절에서 주어진 거예요.
아담이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의 머리를 밟음으로 해서 여자가 산 자가 되는 거구나~‘를 깨닫자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라.‘는 하와라는 이름을 붙어 준 거예요.
창3: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길 보시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부끄러움을 덮으려고 한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그 옷을 벗겨버리시고 무상으로 입혀주시는 짐승의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시죠?
그 짐승의 가죽 옷이 뭘 모형하고 뭘 상징하고 뭘 예표하는 거예요?
예수의 믿는 자들에게 은혜로 거저 입혀 주시는 어린 양의 피로 씻어 희게 된 그 세마포 옷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 복음을 계시해 주시고 계신 거란 말입니다.
계7:13-14절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곳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19:7-9절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때가 차매 예수께서 오셔서 그 은혜의 복음을 완성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구약에서 예수와 십자가를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 상징과 모형으로 보여주셨던 거예요.
창22장으로 가면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더 선명하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번제단에 올려 져서 번제물로 희생 제물로 태워 죽기 위해 장작을 메고 모리아 산으로 오리는 그 이삭이 누구를 모형하고 있어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시는 예수 그리스도
근데 번제단에 올려져 죽어야 할 이삭 대신에 누가 죽죠? 수풀에 뿔이 걸린 한 숫양이 그 역시 어린양 예수를 모형하는 거죠?
창22:14절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 이레‘라는 그 뜻이 뭡니까?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그러니까‘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 희생 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죽어야 할 자들이 살아나신다.’ 그게 ’여호와 이례’의 진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한 거예요.
근데 그 ‘여호와의 이례‘를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그 때마다 준비하시는 하나님‘ 이게 제가 어릴 때 들었던 설교란 말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모세를 통해 우리의 중보자이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십니다.
출19장을 보시면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후 시내산에게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출19:4-8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그까짓 것 못할 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이 시키는 건 다 할게요! 다 지킬 께요 다 준행할께요‘ 호언장담했어요.
20-23장까지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의 세목들이 기록되어 있고, 출24:1-8절 그 언약서에 양푼으로 피를 뿌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단 말입니다.
언약서에 피를 뿌리는 건, ‘그거 안 지키면 죽는다. 하나님 우리가 율법 십계명 안 지키면 죽여도 좋습니다.“ 그 말입니다. 출24:12-18절
모세가 성막 곧 예수 복음을 듣기 위해 하나님께로 올라가 주야로 40일을 함께 합니다.
출32장에서 모세가 내려오지도 않았고 40일도 안 되어 그들이 무슨 짓을 합니까?
금 귀걸이 뽑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게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니라‘ 이렇게 여호와의 절기를 지킨다고 그 앞에서 뛰어 놉니다.
이스라엘이 십계명의 제1-2계명을 어겼으니까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죽어도 할 말 없어요. 왜? 피로 그 언약을 맺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3천 명이 죽여가기 시작했어요.
실제로는 다 죽어야 되는 것인데 “3000명 죽이고 이제 본때를 보여 줬으니까 ”너희들 이제부터 잘 해!‘가 아니었어요! 다 죽어야 하는 사망이었다니까요.
3000명쯤 죽였을 때 모세가 가로막고 서서 ‘안 됩니다. 하나님! 차라리 나를 생명책에서 지워주세요!’라는 모세의 간구와 중보의 역할로 죽어야 할 자들이 살아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은 중보자 모세를 통해 또 다시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신 거예요.
민21장의 광야의 놋 뱀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발견해 봅시다.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 모세의 중보로 살아났으면 ‘하나님 난 이미 죽어 마땅한 자인데 모세의 중보로 예수의 은혜로 살아났어요.’라는 그 자인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게 맞죠?
근데 이미 죽어 마땅한 자들이 ‘왜? 우리를 광야로 델고 와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그 때 하나님이 불 뱀을 풀었어요.
맹독성이 있는 그 불 뱀에 물리면 죽어요. 불 뱀이 사람들을 물어서 ‘이제 나는 죽네! 죽어야 할 자네”라는 그 자인식을 불 뱀이 끌어내는 것이죠? 그렇죠? 불 뱀이..
그 불 뱀에 물리자 한 사람, 한 사람 죽어가니까 이스라엘백성이 모세를 찾아와 하나님께 간구해 우리를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놋뱀을 달아라! 장대에다가 놋뱀을 달아라!“ 하시죠?
성경에서 놋은 항상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놋 뱀을 장대에 매 달라.‘는 그건 심판 받은 뱀’이라는 의미입니다. 저주 받은 놋 뱀이 누굴 상징해요?
예수를 상징하는데, ‘놋 뱀이 장대에 달렸다 예수가 저주 받은 자가 되었다.‘가 무슨 말이겠어요?
갈3:10-13절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병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 받은 다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걸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3:13-17절 ‘하늘에게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불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기 위해 저주 받은 놋 뱀이 되어 십자가에 달린 장대에 달린 예수, 이야기가 15절인 거예요.
그걸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해서,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가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예수가 먼저 우리의 저주가 되사 저주받은 뱀으로 오는 거예요.
앞뒤 것 다 잘라 버리고 나가서 “예수가 뱀이다.‘ 그러면 전 이단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묘사 할 때 항상 발, 손이 “놋, 주석으로 되어 있는 게 거기에 나오는 거예요.
예수가 성령으로 여러분에게 오시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뭘까요?
“하나님 난 죽어야 할 자가 맞네요! 전 진짜 죄인이네요!”라는 그 자아인식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는 선악판단의 주체로서의 뱀인 “나“ ”내가 십자가에 삼판 받아 죽는 것“입니다.
그걸 바울이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라고 말한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하나님의 일하심 그게 하나님의 사랑‘인 거예요.
구약 요나서의 내용 잘 알고 계시죠?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 거민들에게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 멸망시켜 버릴 거야~’ 그 말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거든요
근데 니느웨 거민들은 늘 유대 민족을 침략하고 핍박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건데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일어 배 안에 있는 자들이 꼼짝없이 다 죽게 생겼어요.
그때 요나가 선원들에게 ‘날 저 저주의 바다에 던지면 당신들은 반드시 살 것이다.’고 했죠?
진자 사람들이 풍랑이 이는 그 저주의 바다에 요나를 던져 버리자 저주의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할 배와 그 배 안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명을 구원을 얻게 되었잖아요?
마치 노아의 홍수 심판 가운데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살아나는 노아의 방주가 연상되지 않으세요?
마12:39-40절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간 무덤 속에 들어가 계셨던 그걸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나 저주의 바다에 빠져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의 스올(지옥, 죽음) 체험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을 상징하는 이 세상 앗수르의 니느웨 거민이 살아납니다.
그러니까 요나의 물고기 뱃속의 경험과 니느웨 거민이 살아나는 건 마땅히 죄로 심판받아 죽어야 할 성도들의 죄를 몽땅 품어 안고 지옥으로 들어간 메시아의 체험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장사되어 무덤에 들어가심으로 끝이 아니라 그 사흘간의 무덤 안에서 하나님 백성들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사역을 설명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성도의 죽음이 그게 어떻게 성도에게 소망이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기는 불러요.
근데 강단에서는 예수의 은혜, 아버지의 사랑 십자가 복음의 메시지는 없고 말씀과 복음에 이 세상의 것들을 적당히 가미시켜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단 말입니다.
예수의 은혜의 복음에 인간의 가능성을 부추겨 주는 율법의 행위나. 인본주의, 세상의 물질 만능주의 성공주의 기복신앙 같은 것을 첨가하는 그게 가짜 거짓복음인 거예요.
오늘날 교회가 진짜와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까지 구약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역 곧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은혜의 복음을 신약의 말씀과 연결하여 간략하게 풀어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신, 구약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발견하고 그걸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구속사적 성경 해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창세기의 저작연도는 모세가 BC1,500년 경 사람이니까 BC1,500년경이라고 알고 계시면 됩니다.
4. 창세기의 내용은 ‘우주만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 ‘죄와 죽음의 기원’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구원의 기원’과 ‘이스라엘의 기원’과 ‘이신 칭의’ 복음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창세기를 들으시면서 로마서에서 다룬 모든 기독교의 교리를 접하게 될 것입니다.
5. 이 창세기의 수신자는 누구? 일차적으로는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자손들입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 하면서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들, 태양, 달, 별, 강, 바다, 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까지 섬겼던 것입니다.
_ 그래서 모세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창세기를 통해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창조주이시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오직 그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를 창세기를 통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_하나님이 우리 조상들과 어떤 약속을 하셨고 그 언약을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성취하실지?‘ 창세기를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게 히1:1절의 말씀이에요.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이 창세기를 읽으면서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걸 먼저 확실히 아셔야만 합니다.
_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하나님이 구약 성도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 언약을 이루시는지?‘ 여러분은 그걸 창세기를 통해 그걸 발견해야 해요.
5. 창세기의 구조는 각 자가 다르게 나눌 수 있으니까 어떻게 나누든지 상관이 없어요.
창1-11장까지 ‘하나님의 창조’ ‘사탄의 등장과 사람의 타락’ ‘하나님의 구원 약속과 그 약속의 전개’등을 ‘태초의 역사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까지의 세계 역사’에 대한 부분입니다.
12장부터 50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 족속의 애굽 체류 때까지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그 주제입니다. 그게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하나님은 창세기의 내용을 통해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죄인들을 포함한 이 세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가실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는 창세기에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설명하기 위한 여덟 명의 구별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창세기의 중심인물들입니다.
그 인물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 은혜의 필연성을 설명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등장인물들의 전기를 궁금해 하셔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목적 안에서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걸 찾아 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창1-2장의 창조기사도 단순히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설명하고 잇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란 무엇이며?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창1장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창조의 목적에 대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만 이해할 수 있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과학으로 절대 이해할 수도 이해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거예요,
창세기의 전체 주제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구속 사역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핵심이고, 그 외에 다른 게 적혀 있지 않다는 그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