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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척문학 원류를 찾아서
본고는 삼척의 문학 -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삼척 출신 시인 작가이거나, 삼척 출신은 아니더라도 삼척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작품과 그 작가에 대하여, 삼척문학의 흐름을 살펴보기로 한다. 옛이나 오늘이나 글을 쓰는 시인 작가의 맑은 영혼,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작가정신 - 진실을 위해 희생하고 진실을 사랑하는,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써야할 때 쓰는 - 이러한 작가정신을, 그들의 글 속에서 또는 그들의 정신 속에서 읽으며, 삼척문학 원류와 오늘을 나름대로 정리를 한다. 편의상 시대의 구분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와 현대로 하였다. 시대별 작가와 작품은, 신라시대는 ‘삼국유사’기이 「수로부인조」를, 고려시대에는 이승휴를, 조선시대에는 정철․이옥봉․숙종․정조를, 현대에 와서는 이성교 ․ 김영기 등 삼척출신 시인 작가를 다뤘다.
1) 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조
삼척하면, 옛부터 죽서루竹西樓가 떠오르고, 죽서루하면 그 깎아지른 듯한 벼랑 밑에 흐르는 맑은 오십천五十川이 또한 바늘과 실처럼 연상되는 땅이다. 경관의 아름다움 그 이면에 그 누와 강과 흐드러져 있는 명승지마다, 그 빼어난 또 하나의 풍류와 맑은 영혼을 찾을 수 있다는 놀라움이다. 향토 역사지인 『척주지陟州志』와 『진주지眞珠誌』에는 문학쪽에서만 볼 때에도 「죽서루제竹西樓題」 한시가 220수首, 오십천 등 명승지의 한시가 323수首, 합하여 543수首가 남아 있다. 옛부터 죽서루는 경관도 아름답지만 한시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였는데 실감나는 놀라움이다. 어느 시대 어느 누각에 이토록 많은, 시인 묵객들의 한시들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뿌리 깊은 삼척의 향토문학을 우리는 신라와 고려에서 그리고 조선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작가들이 삼척 출신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삼척에서 쓰여진 그 자체에도 뜻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는 신라시대 두 편의 향가 ‘헌화가’와 ‘해가사’배경을, 실증을 삼척에서, 삼척문학의 원류를 찾아본다. 그리고 고려시대는 고려사람 삼척인 이승휴의 칠백 년 전의 시가 남아 있고, 짧게는 조선조 22대 왕 정조어제시는 이백 년 전에 쓰여진 것이다. 본고에서 다루는 여조의 한시는 위에서 말한대로, 지금부터 이백 년 전에서 칠백 년 전 그리고 천년을 넘고 넘은 작품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그들의 맑은 시혼에 동참하여 본다. 2) 신라시대, 헌화가와 해가사
신라 鄕歌 중에 <獻花歌>와 <海歌詞>엔 水路부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남편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절벽에 핀 철쭉꽃을 꺾어달라는 수로부인의 <헌화가>와 동해용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해가사>는 꽃과 용이 공통점이라는 데서 신라사회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설화이다. 꽃은 용과 같은 어원이다. 철쭉꽃은 색채가 붉은 기미(Redish)색으로 임금(용)이 입었던 자주색 옷과 같은 범주에 든다. 즉 절벽 위의 철쭉꽃은 곧 높은 신분의 용(권력자)으로 수로부인과의 사랑을 알게 하는 내용으로 신라사회의 성개방 풍토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1).’ 배경은 삼척 바닷가 임원리 부근과 증산리 부근이다, 김영기 논문 등이 논증한다. 증산리 마을 수로부인 공원에는 ‘해가사터비’와 ‘임해정’정자가 복원되어 있다. 신라시대 역사를 재현한 삼척의 멋과 맛이 명료하다. ‘자줏빛 바위가에/암소 잡은 손 놓으시고/나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면/꽃을 꺾어 바치 오리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어 놓아라/남의 부녀 빼앗아 간 죄 얼마나 큰가/네 만일 거역하여 내어 놓지 않으면/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헌화가」와 「해가사」 내용이다. 절세미인 수로부인을 빼앗긴 순정공이 노인이 이른대로 중구삭금衆口槊金 뭇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 여론이 무섭다는 최초의 어원이 생긴 곳에서 순정공과 주민들이 수로부인을 되찾기 위해 막대기로 언덕을 두들기는 모습이 천년을 넘고 넘어 눈에 훤히 보인다. 그 해룡은 억센 실직인 오늘의 삼척인이었다. -------------------------------------------------- 1) 蔡洙永 : 살아있는 정서의 편린들, 정연휘 시집 「해문밖에서」 134쪽 3) 고려시대, 이승휴의 제왕운기
그럼 고려시대 이승휴(1224-1300)의 시와 그에 대하여 알아 본다, ‘고려문학에서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李承休의 저술은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동안거사문집動安居士文集』이 남아 있는데, 고려의 시문집은 모두 헤아려도 10여편 내외인 터에, 양으로 보아 그리 많지 않지만 이의 가치는 큰 것이다2).’ 그것도 삼척의 두타산록 구동, 지금의 미로 천은사에서 저술되었으니 삼척인의 자긍심은 대단한 것이다. 그의 「죽서루제竹西樓題」 시 한 수부터 만나 보자. 半空金碧駕崢嶸 중천의 울긋불긋한 절벽 끝에 얹혀 掩映雲端舞棟楹 구름에 가려 비치는 동량이 춤 춘다. 斜倚翠巖看鵠擧 푸른 바위에 기대어 따오기 나는 것을 보고, 俯臨丹檻數魚行 난간에 구부려 물고기 노는 것을 헤아린다. 山圍平野圓成界 산은 들을 싸고 경계를 이뤄, 縣爲高樓別有名 고을의 높은 누에 별도로 이름이 있더라. 便欲投簪聊送老 벼슬을 떠나 늙음을 편히 보내고자 하나 庶將螢燭助君明 임금님의 밝은 정사를 돕고자 함이다.
‘두타산 용계변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10년간 생활하다가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에 강원도의 안집사按集使로 왔던 이심돈李深敦의 주선으로 경흥부(慶興府 : 강릉고호) 서기로 나가게 된 것이 그의 관계官界의 첫 출발이다. 그가 경흥부 서기로 있을 때 이곳에 온 안찰사按察使 삼척인 진자후陳子候를 배행하면서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은 것이 죽서루에 대한 시 중에 제일 오래된 것이다3).’ 이승휴의 나이 42세 때에 위의 시이다. 이 시로 죽서루의 창건년대가 1266년 이전임을 고려사 기록에 의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창건년대는 바뀐다. 김극기金克己(1148~1209) 시詩와 죽서루 창건연대 - 한편의 시詩가 미궁 속의 역사나 연대를 밝혀준다. 죽서루 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고려 원종7년 1266년 이승휴(1224-1300)가 42세 때에 죽서루에 올라 ‘죽서루’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임을 알 수 있었다. 근간에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1148-1209)가 쓴 ‘죽서루’시를 찾아내어, 이승휴 시대에서 김극기 시대로 죽서루 창건연대가 바뀌었다. 김극기가 이승휴처럼 42세에 죽서루에 올라서 시를 썼다면, 그 해가 1190년도 이다. 지금으로 부터 820년 이전이다. 죽서루 창건연대는 지금까지 1266년 744년 이전에서 다시 1190년 820년 이전 임을 김극기의 ‘죽서루’시로 알 수 있다. 그럼 김극기는 어느 시대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하다. 죽서루에 제일 오래된 시를 남긴 김극기 시인은 고려 한림원에 들어갔고,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얼마 후에 죽었다. 이인로는 김극기문집 「김거사집金居士集」의 서문에서 김극기가 난새나 봉황 같은 인물이라 했다.그의 시는 농민생활의 어려움이 생생하게 나타난 작품을 썼다. 김극기는 입을 열면 바로 시詩가 된다 할 정도로 문장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135권에서 150권의 문집을 남겼는데, 지금은 「김거사집金居士集」만이 전하며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등에 여러 편의 시가 남아 있다. 김극기의 ‘죽서루’시로 죽서루 창건연대는 지금까지 이승휴의 시로 1266년 744년 이전에서, 다시 김극기의 시로 1190년 820년 이전으로 증명 되었다. 김극기金克己의 죽서루竹西樓
道氣全偸靖長官 (도기전투정장관) 官餘興味最幽閒 (관여흥미최유한) 庾樓夕月侵床下 (유루석월침상하) 藤閣朝雲起棟間 (등각조운기동간) 鶴勢盤廻投遠島 (학세반회투원도) 鰲頭屭贔抃層巒 (오두희비변층만)
도와 기를 다 갖은 골원은 편안하고 벼슬아치 재미는 유한함이 첫째이다 누각의 저녁 달은 침상으로 스며들고 죽서루의 아침 구름 추녀에서 일어난다 물은 학처럼 빙빙돌아 먼 섬으로 가고 자라처럼 솟은 바위 첩첩 산봉 마주본다 그럼, 다시 이승휴로 넘어간다. 그의 문학가로서의 진면목은 ‘승휴가 표사문表謝文을 올리니 글월이 아주 잘 되었다. 매일 관반館伴인 한림학사翰林學士 후우현候友賢과 같이 창화唱和하였다. 우현은 5세에 5경에 통하였으므로 황제가 불러 학사學士로 삼았고 신동神童이라고 일컬었다. 그가 승휴의 시를 보고는 탄복하고 문득 그를 읊었다……그가 돌아오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지었던 시문을 가져오게 하여 보시고 매우 칭찬하였다4).’ 그의 문학가로서 면목은 목은․역옹․사가 등과 같은 문학사에 일급으로 꼽히는 분들의 대단한 평을 받았고, 중국 연경燕京에까지 그의 이름을 떨쳤던 것으로 알 수가 있다. 요동遼東에 별천지別天地가 있사오니/중조中朝5)와 두연斗然히6)구분되며/큰 파도 출렁출렁 삼면을 둘러쌌고/북녘에 대륙大陸 있어 가늘게 이은 땅/가운데서 국경國境 천 리 여기가 조선朝鮮이라/강산의 형승形勝은 천하에 이름 있고/경전착정耕田鑿井7)어진 고장 예의의 집/화인華人이 이름지어 소중화小中華8)라. ― 제왕운기ㆍ하권ㆍ지리기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던고 / 석제釋帝9)손자 이름은 단군檀君일세. ― 제왕운기ㆍ하권ㆍ전조선기
‘제왕운기는 외침의 수난기인 고려 중기의 민족서사시란 문학적 가치를 첫째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시형식을 가진 작품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희귀한 보배일 뿐 아니라, 종별로는 비록 중국의 고율시古律詩 나마 우리 민족 집단의 호흡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가 조선조의 가사歌辭 등 서사문학敍事文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문학사적 가치는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10).’ 사료로서의 가치는 더 대단한 것이다. 『제왕운기』는 상하권 두 권을 한책으로 엮은 것으로, 상권은 중국의 역사를 요약 7언 5시七言五詩로 읊은 서사시이고, 하권은 ‘동국군왕개국년대東國君王開國年代’와 ‘본조군왕세계년대本朝君王世系年代’ 2부로 엮었다. 1부는 264구句 1,406언言의 7언고시형이고 2부는 162구 700언 5언고시이다. 동안거사 이승휴는 1224~1300 출생했다가 타계한, 경산부 가리현 사람이지만, 제왕운기의 산실인 삼척 두타산 구동 용계변龍溪邊, 용안당容安堂에서 관직을 그만두고는 계속 살아온 삼척인이다. 두타산은 이승휴에 의해 민족자주정신의 발상지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삼척문학의 원류는 이승휴로부터 임을 알게 되었다. -------------------------------------------------- 2) 朴斗抱 역, 東明王 ․ 帝王韻紀, 1982년 을유문화사간, 32쪽 3) 삼척군, 삼척군지, 1985년 강원일보 출판국 간 464쪽 4) ‘고려사․이승휴열전’ 주1)의 책 33쪽 5) 중원中原의 왕조. 제왕운기 상권에 나오는 중국의 여러 왕조 6) 우뚝한 모양 7) 밭갈아 농사지어 먹고 우물파서 물 마시는 평화스러움 8) 우리나라 이르는 말. 야만인이 이吏와 구별되는 나라이며, 중화에 다음 가는 세계에서 둘째 가는 문화국이란 호칭 9) 불가佛家에서 쓰는 말, 도리천주忉利天主 즉 하나님이라는 뜻 10) 주1)의 책 37쪽 4) 조선조, 죽서루시와 척주동해비
조선조에서는 정철(1536~1593), 이옥봉李玉峯(1554~1592?), 허목(1595~1682), 숙종(1661~1720), 정조(175 2~1800)년대 순위로 그들의 작품과 그들에 대하여 알아 본다.
11) 關東仙界陟州樓 (관동선계척주루) 虛檻憑危夏亦秋 (허함빙위하역추) 天上玉京隣北左 (천상옥경린북좌) 夢中銀潢聽西流 (몽중은황청서류)
疏簾欲捲露華濕 (소렴욕권로화습) 一鳥不飛江色愁 (일조불비강색수) 欄下孤舟將人海 (난하고주장인해) 釣竿應佛鬱陵鷗 (조간응불울능구) 관동의 선계가 죽서루라, 위태한 난간에 기대니 여름이 가을 같네. 하늘의 임금님은 북녘 좌편에 계시고, 꿈속에 은하수 서녘으로 흐르는 소리. 발을 걷으니 이슬이 맺혀 있고, 새가 날지 않으니 강빛이 쓸쓸하네. 난간 아래 외로운 배가 바다로 들어가고, 낚시하는 모습이 먼 갈매기를 툭툭 치더라. 정철은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며 시인이다. 율곡, 성혼成渾등과 교유, 문과에 장원급제 강원도 관찰사로 등용, 지방장관으로서 보다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천재적 재질을 나타낸 ‘관동별곡’등 작품을 쓴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였다. 죽서루 경내에 ‘송강 정철 가사비’가 세워져 있다.
*미수 허목의 시문학은 백성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고, 그의 안목은 미래 지향적이었다. 4언고시四言古詩 192자의 ‘동해송:척주동해비문’은 당대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 허목의 시문학이다. 허목은 삼척에 하나의 큰 획을 긋고 간 분이고 그 분의 이름은 삼척사와 함께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사람이다. 숙종9년 1682년 88세로 세상을 떠난 분이다.
허목은 삼척과 인연된 것은 현종 원년 1661년 삼척부사로 부임하면서 짧은 재임기간인 2년 동안 삼척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67세 되던 여름에 ‘동해송東海頌’시를 지어 고전체古篆體로 써서 석각石刻 1661년에 세워진 일명 퇴조비인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와 삼척지방을 기록한 최초의 삼척향토지인 실직국에서 시작하여 조선전기까지 기술한 『척주지陟州志』상하권을 1662년에 완성, 『진주지』와 『삼척군지』의 모태가 되었다.
‘그의 시문학은 백성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고, 그의 안목은 미래지향적이었다. 4언고시四言古詩 192자의 ‘동해송’은 당대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었다12).’ 당시 삼척은 동해바다의 조수가 부락까지 치밀어, 오십천이 범람하여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극심했다. 부사 허목은 이를 안타까이 여겨 ‘동해송’을 짓고 웅휘한 필치의 전서篆書 비문을 써서 세우니 조수가 잠잠해졌다. 부사 이혜李蹊 기록에 ‘허미수 선생이 작문하여 비를 세워 조수를 막았다 하니, 어떤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도끼로 쳐서 부쉈더니 다시 조수가 치밀었다. 그래서 다시 그대로 비를 세웠더니 과연 조수가 없어졌다13).’ 할 정도로 위력을 지닌 주술적呪術的인 비석이다. 물과 불을 다스리고 바람을 잠재우고 재액災厄을 물리친, 기운찬 필치와 필법에의 위엄에 감히 잡귀들이 범접치 못했던 것이다.
東海頌(陟州東海碑) 허목 瀛海漭瀁(영해분양) 큰바다 가이없어, 百川朝宗(백천조종) 온갖 냇물 모여드니, 其大無窮(기대무궁) 그 크기가 끝이 없네. 東北沙海(동북사해) 동북쪽 사해沙海여서, 無潮無汐(무조무석) 밀물 썰물 없으므로 號爲大澤(호위대택) 대택大澤14)이라 이름했네. 積水稽天(적수계천) 바닷물 하늘에 닿아, 浡潏汪濊(발유왕예) 출렁댐이 넓고도 아득하니, 海動有噎(해동유일) 바다가 움직이고 스산하네. 明明暘谷(명명양곡) 밝고 밝은 해돋는 곳, 太陽之門(태양지문) 태양의 문이라서, 羲伯司賓(희백사빈) 희백羲伯이15)공손히 해를 맞이하네. 析木之次(석목지차) 넓은 우주에 별무리 가득하고, 牝牛之宮(빈우지궁) 북두칠성 암소자리 거기 있으니, 日本無東(일본무동) 해가 본시 돋는 동쪽의 끝이 여기네. 鮫人之珍(교인지진) 비단 짜는 물속의 괴물 교인의 보배, 涵海百産(함해백산) 바닷 속 온갖 산물은, 汗汗漫漫(한한만만) 많기도 아주 많네. 奇物譎詭(기물휼궤) 기이한 만물이 변화하여, 宛宛之祥(완완지상) 너울거리는 상서로움이, 興德而章(흥덕이장) 덕을 일으켜 보여주네. 蚌之胎珠(방지태주) 조갯살 속의 진주는, 興月盛衰(여월성쇠)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旁氣昇霏(방기승비) 대기를 따라 김을 올리네. 天吳九首(천오구수) 머리 아홉인 괴물 천오天吳와, 怪虁一股(괴기일고) 외발 달린 짐승 기虁가, 颱回且雨(태회차우) 태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네. 出日朝暾(출일조돈) 아침에 돋는 햇살, 轇軋炫惶(교알현황) 넓디 넓게 퍼지니, 紫赤滄滄(자적창창) 자주빛 붉은빛 가득 넘치네. 三五月盈(삼오월영) 보름날 둥실 뜬 달, 水鏡圓靈(수경원령) 넓은 바다 거울되어, 列宿韜光(열숙도광) 뭇별이 광채를 감추네. 榑桑砂華(부상사화) 중국 동쪽 부상나라의 구슬, 黑齒麻羅(흑치마라) 흑치․마라와, 撮髻莆家(촬발보가) 상투 튼 보가족. 蜒蠻之蠔(연만지호) 가난한 연만족의 굴과 조개, 爪蛙之猴(조왜지후) 옛 파사국 개구리와 원숭이, 佛齊之牛(불제지우) 남만의 별종 불제佛齊의 소들은. 海外雜種(해외잡종) 바다 밖 잡종으로, 絶黨殊俗(절당수속) 종족도 다르고 풍속도 판이한데, 同囿咸育(동유함육) 우리와 같이하여 자라네. 古聖遠德(고성원덕) 옛 성왕의 덕화가 멀리 미치어, 百蠻重譯(백만중역) 온갖 오랑캐 여러번 통역거쳐 왔으나, 無遠不服(무원불복) 멀다고 복종하지 않은 곳 없었네. 皇哉熙栽(황재희재) 아 크도다 빛나도다, 大治廣博(대치광박) 그 다스림 넓고도 크나니, 遺風邈哉(유풍막재) 그 치덕은 영원히 빛나리.
다음은 숙종ㆍ정조 의제시를 다뤄본다.
硉兀層崖百尺樓 층층 벼랑위에 우뚝 솟은 백척루, 朝雲夕月影淸流 아침 구름 저녁 달이 맑은 물에 비친다. 粼粼波裡魚浮沒 맑은 물결 속에 고기떼 놀고, 無事凭欄狎白鷗 한가히 난간에 기대어 세상사 잊었네. ― 肅宗大王御製詩/竹西樓16)― 숙종대왕어제시ㆍ죽서루
彫石鐫崖寄一樓 층암을 다듬어 그 위에 세운 누각하나 樓邊滄海海邊鷗 루 저쪽 해변에는 갈매기가 노네. 竹西太守誰家子 죽서루의 태수는 누구집의 아들인가 滿載紅粧卜夜遊 미녀들을 가득 싣고 밤 새워 뱃놀이 하는 구나 ― 正祖御製詩/竹西樓17)― 정조어제시ㆍ죽서루
숙종(肅宗 1661~1720)은 조선왕조 제19대 왕이다. 조선왕조 중 당쟁이 가장 격심했던 기간인데, 1674년 즉위하던 해 제2차 예송禮訟으로 남인 허목 등의 대공설(大功設 : 9개월설)을 지지하고 기년설을 주장한 서인들을 배척하여 남인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특히 재임기간중 쟁쟁한 학자들이 배출되어 조선말기 성리학의 전성기를 이루게 한, 숙종의 ‘죽서루제’앞의 시이다.
정조(正祖1752~1800), 조선왕조 22대 왕이다. 어머니는 ‘한중록恨中錄’을 지은 혜경궁 홍씨, 왕실 연구기관인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한 분이고, 조선말기 문화적 황금기를 이룩한 정조의 ‘죽서루제’ 어제시가 뒤의 작품이다.
* 조선왕조 광해․인조시대의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은 선조대왕의 생가 아버지 덕흥대원군 증손녀이다. 허난설헌과 맞먹는 대가인데 낭군 조원趙瑗이 삼척부사로 왔을때 3년을 삼척에 지내며 시를 남겼다. 다음은 조선왕조 광해光海․인조仁祖 시대의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은 ‘선조대왕宣祖大王의 생가 아버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후손(증손녀)인 금산군수金山郡守의 부승지副承旨 벼슬을 지낸 바 있는 이인섭의 막내딸이다18).’ ‘그녀는 허난설헌許蘭雪軒에 육박하는 대가이며, 한문학사상 여웅女雄이다19).’ 그리고 ‘우리나라 여류 시인으로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계월향 등 허다하였지만 그중 양질量質에 있어서 이옥봉 시가 후인들에게 가장 많이 감명 끼친 바 있는데, 유독 그녀에 대한 역사만은 아는 이가 드물다20).’ 기록에 전하는 바가 없다. 그녀의 시 한 수를 보자. 이 시는 「추사秋思」인데 1583년(선조16) 낭군 조원(趙瑗 : 1544~1595)이 좌천되어 삼척부사로 왔을 때, 함께 3년간 삼척에서 지냈을 때 「죽서루」 제목의 유명한 시 몇 편을 남긴다.
霜落眞珠樹 서리내려 나무들은 진주수 되었고, 關城盡一秋 성안에는 어느 사이 가을이더라. 心情金輦下 마음은 임금님곁에 있으나, 形役海天頭 바닷가 삼척 먼곳에 있음이여. 天制傷時淚 서러운 눈물 막을 길 없고, 難堪去國愁 고향 떠나 온 수심도 난감하여라. 同時望北極 임과 함께 임금 계신 북극을 바라보니, 江山有高樓 강위에는 죽서루가 높이 있더라
또 한편의 시는 심금을 울린다. 동서고금에 이런 열정적이고 외로운 혼이 담긴 독보적인 사랑의 시는 그렇게 많지 않다.
若便夢魂行有跡 꿈속에 오고 간 길 넋에 흔적 門前石路半成砂 임 계신 문앞 자갈길은 반쯤 모래가 되었네요.
이옥봉의 눈물의 시를 보면서 조선조에서 다시 현대 삼척문학으로 넘어 간다. -------------------------------------------------- 11) 崔晩熙 編, 眞珠誌 全, 1963년 회상사 간, 권2,7쪽 12) 李昌植, 韓國文學硏究 9輯, 1986년,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간, 202쪽 13) 한국구전문학대계 2~3 강원 삼척편, 1981년 한국정신문화원 간 14) 함경북도 길주군 양서면에 있는 못, 255㎡ 15) 堯때에 天地ㆍ四時를 다스린 관원 16) 崔晩熙 編 眞珠誌, 권2, 5쪽 17) 崔晩熙 編 眞珠誌, 권2, 6쪽 18) 眞珠 제5집, 재경삼척군학우회, 1969년 보진제인쇄소간 24쪽, 영월군 의거 19) 삼척군지, 삼척군, 1985년 강원일보 출판국간 528쪽 20) 18)항의 책, 23쪽 金重烈이 쓴 “詩人 李玉峯과 子規樓詩 作者”에서 2. 삼척문학의 오늘
1) 60년대 동인지 시대 그리고 최초의 문학이벤트
삼척의 현대문학은 60년대를 전후하여 여명기와 습작문단-예비 문인들이 불모의 땅에서 목말라 하면서-자음과 모음이 얽힌 언어의 숲에서 홀로 고독한 문학의 병을 앓는 이들이, 서로 고리가 이어지면서 외부로 표출되는 동인지 시대가 열린다. 60년대 이전의 삼척의 현대문학은 태동기이고 여명기이다. 한국문단으로 볼 때 1910년대는 최남선의 근대시 출현과 이광수의 근대소설의 등장으로 근대문학이 탄생했고, 1920년대는 근대문학의 전개기며, 1930년대는 현대문학사로서 동인지문단에서 사회적문단으로, 습작문단에서 작가문단으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 분리된 60년대 이전의 한국문학 풍토였다.
60년대 이전 삼척출신 시인 이성교, 최인희, 수필가 홍영의, 평론가 김영기 등은 중앙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61년 8월 31일 동인지 『동예東藝』 제1집이 김영준, 정일남, 박종철, 이경국, 김정남에 의해 「동예문학회」가 삼척 최초로 동인지를 세상에 내어 놓는다. 이어 김익하, 최홍걸, 정연휘, 이종한, 박학래의 『불모지不毛地』 동인지, 그리고 김지도, 조무근, 조무남, 정지자, 권명준 등의 『죽서루』동인지, 김영대 등의 『수적水滴』동인지 김용수 등의 『불사조』동인지가, 그리고 김형화, 김준영, 정문수의 『영시문학』등이 속출된다. 삼척 향토에서 전무후무한 동인지시대, 습작문단의 청청한 한 기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예』 동인지 제1집 머리말은 ‘능금나무의 주인들이……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풋나물, 가난을 먹으면서 인공위성을 달나라에 띄우는 작업보다 더 무거운 생각으로 주인 역할을 시작한다.’하면서 김영준은 ‘밤의 소고’, ‘어느지역에서의 변’을 정일남은 ‘북北’, ‘SCHEDULE - 해변에서’를 이경국은 ‘연륜’을, 김정남은 ‘일출’, ‘연정․2’ 각각 시를 그것도 호흡이 긴 시들을 발표했고, 박종철은 단편소설 ‘상像’을 발표했다. 이어 동년 11월 『동예』 2집에서는 새 식구들 - 이윤자, 이영애, 전영자의 작품이 선보이며, 제1집 형태인 52쪽 4․6배판 프린트판으로 발행 된다. 『동예』 3집은, 허목 선생이 ‘동해송’을 지어 척주동해비를 세운지 꼭 300년이 되는 해 1962년 5월 30일에 발간된다. 책머리에 평론가 김운학金雲學의 기고 ‘편신片信’이 실리고, 3집 후기에서는 ‘…편집에 열이 생기지 않았다.’, ‘쓸쓸한 녹색지대에 황혼이 내리면…,모두들 지쳤는가? 잠시 동예의 휴식이 필요한가’로 삼척 최초의 동인지 『동예』는 3집을 끝으로 긴 휴면이 아닌 막을 내린다. ‘동예’에 이어 『불모지』 1집은 1965년 3월에 간행된다. ‘황폐한 불모지에서 파종播種하고자, 엄청난 집념에서, 무모하지만 문학적 토질개량만 하면 알찬 한 톨의 열매인들 어찌 결실치 않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목표하면서 첫 출발을 한다. 시로서는 이종한의 ‘정오 위에서’ ,‘무제’와 최홍걸의 ‘넝마비가’, ‘설정雪程’ 그리고 김익하의 ‘님의 편지’와 단편소설 ‘간석지干潟地’가 발표되고, 정연휘 ‘오월의 대화’가 선 보인다. 동인들이 군문에 가면서 『불모지』는 1집으로 단명하지만, 삼척향토와 다른 의미의 상견례를 한다. 그것은 삼척 최초의 문학이벤트 「문학의 밤」과 「동인시화전」이다. 1965년 8월에 태백다방에서 「동인시화전」을, 그리고 1966년 1월 10일 「불모지문학의밤」을 제일극장 입구 한일예식장에서 개최하게 된다, ‘삼척 최초의 시낭송회이었다. 입추의 여지없이, 설 자리마저 없어 되돌아간, 우리를 감격케 한 삼척 최초의 시낭송회……’는 67년 1월 1일 「제2회 불모지 문학의 밤」을 삼척문화원인 읍공관에서 개최한다. 이어 불모지 동인의 마지막 행사인 김익하, 정연휘 「2인 시화전」이 68. 4. 21-27 삼척 태백다방에서 다시 송정 청파다방에서 다시 북평여고 교정에서 순회 전시로 「불모지동인회」도 막을 내린다. 「죽서루아동문학회」는 『죽서루』 회지를 발간하면서 동인 자신들의 습작 창작과 관내 초등학교 교사들이어서 어린이 글짓기 지도에 힘쓴 분들이다. 「수적동인회」는 동양시멘트 사원 위주로 동인지 2집을 간행, 「불사조동인회」는 얼굴을 비쳤다가 침잠하였고, 「영시문학회」는 삼척공전 지금의 강원대 삼척캠퍼스 전신 재학생으로 원활한 활동을 교내에서 펼치었다.
이렇게 60년대 삼척의 현대문학은 동인지활동과 「문학의 밤」과 「시화전」을 통한 내부의 의욕이 외부로 표출되는 습작문단 또는 동인지문단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이렇게 부침한 「동인지」내지 「동인문학회」는 자원이 절대 빈곤한 척박한 땅에서 결코 장수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름대로의 동인활동은 무너지고, 뿔뿔히 자기길로 떠나갔다가, 1969년 6월 24일 「두타문학회」의 전신인 「삼척문학회」가 결성되면서 많은 험로를 거쳐 지방문단을 형성하고 중앙문단의 영지影地에 돌을 던진다. ‘우리의 출발은 그 자체가 몸부림이다. 그것은 피동의 몸부림이 아니라 능동의 몸부림이다.’ 정일남은 ‘동인서약서’에서 이렇게 머리말을 시작하여 ‘동인 각자가 조금씩 거리를 두고 서로 견제하면서 빛깔이 다른 정서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생명으로 여길 따름이다. 당분간 이 작업은 반발없이 꾸준히 작업에만 열중할 것이다. 주위의 눈부신 배경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없이 당면한 저마다의 숨가쁜 작업이 언젠가는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문단의 영지影池에 돌을 던지게 될 것이다.’ 이 말은 1972.2.14. 40년 전 그때의 삼척문학회, 뒷날 두타문학회로 개명되지만, 삼척의 문학을, 삼척의 문학인들을 함축성 있게 예언적으로 표현된 동인지 3집에 게재된 동인 서약서이다. 제1집은 1970년 4월 26일『삼척시단』으로 4․6배판 32쪽 프린트판으로 발행되는데, 삼척문학의 진정한 의미의 현대 삼척문학은 『삼척시단』으로 출발하였다. 동인시화전을 개최하면서 부수적으로 탄생된 동인지가 확연한 삼척문학의 하나의 지울 수 없는 획을 그었다. 그 제1집에 참여한 동인은 열두분이다. 그들의 작품은, 정일남의 「어부사」, 김영준의 「개나리 피다」, 김익하 「학 전형에 날다」, 정연휘 「기억․5」, 이종한 「거리의 프라타나스」, 박자운 「하늘」, 최홍걸 「어항 속 언어」이며 「문을 여는 첫소리」라는 김영기 글도 첫머리에 실려 있다. 제2집은 『삼척시단』에서 『삼척문학』으로 개명하면서 제1집과 같은 책형이나 쪽수는 68쪽으로 늘었다. 시에 김영준, 정일남, 최홍걸, 박 운, 윤성우, 고성범, 박자운, 이종희, 홍말순, 윤경희, 이종한, 이희돈, 함영범, 수필에 이란희, 정연휘, 창작에 김익하가 각각 작품을 발표하였다. 두타문학회와 그 동인지 연구는 ‘두타문학 제32집, 2009년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창립에서 40년 동안 중요 결실만 요약한다. 2) 두타동인 문단등단 : 47명 중 40명
1970년 1월 1일 정일남 동인이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시인등단을 하고 1980년 4월 1일 『현대문학』지로 추천완료하고, 그해 6월 1일 김익하 동인이 『현대문학』지에 소설가로 등단하고, 이어 같은 해 12월 1일 김진광 동인이 『소년』지로, 후에 다시 『현대시학』으로 등단한다. 등단동인은 이성교 김영기 김정남 김원우 정일남 박종철 김원대 김익하 정연휘 최홍걸 김형화 박종화 김진광 서상순 김태수 박문구 이창식 김소정 이출남 조관선 박대용 박선옥 김일두 김용섭 이은옥 서순우 정순란 문상기 김옥남 이정숙 이용대 이은순 김영채 박군자 윤종영 김귀녀 이봉자 강동수 조성돈 조의령 동인 47명중 40명이 등단하였다. 3) 삼척문인 문단등단 : 14명 두타문학회 동인 외 등단문인은 권정선 김성영 오연수 김은숙 이동림 이미숙 이미경 전금옥 주종덕 최정규 최미라 정석교 최성달 박인용 14명이다.
4) 두타동인 작품집 발간, 85권 이성교 시집 『산음가』외 11권, 김영기 평론집 『한국문학과 전통』외 12권, 김원우 수필집 『노루야 두만강 노루야』, 박종철 수필집 『아버지의 땅』외 4권, 정일남 시집 『어느 갱 속에서』외 6권, 정연휘 시집 『해문 밖에서』외 2권, 최홍걸 시집『해인의 시』외 3권, 김형화 시집 『꿈꾸는 오십천』, 박종화 시집 『두타산 들국화』외 10권, 김진광 시집 『모시나비』외 4권, 서상순 수필집 『세상도 웃고 달도 웃고』, 김태수 시집 『사람의 길』외 1권, 이창식 시집 『어머니 아리랑』외 7권, 조관선 소설집 『유전인자』, 박대용 시집 『헌물 나가고 새물 들어와라』, 박선옥 시집 『내가 한줄기 바람일 때』외 1권, 김용섭 시집 『당신의 향취』, 문상기 수필집 『모든 것은 지나간다』, 김옥남 수필집 『시간의 향기』외 1권, 이용대 시집 『처음 만난 그날처럼』외 2권, 이은순 수필집 『이화정의 바람꽃』, 윤종영 시집 『허공에도 집이 있다』, 김귀녀 시집 『내 생애 가장 큰 선물』, 박인용 시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일 축하』, 이봉자 시집 『입술』이 발간되었다.
5) 삼척문인 작품집 발간
두타문학 동인 외 삼척문인 작품집은 다음과 같다. 김은숙 시집 『강물 위의 시간들』외 4권, 김성영 수필집 『아내의 손』외 2권, 최정규 시집 『불면의 시간』외 2권, 이동림 시집 『화석처럼 남기고 싶은 의미하나』외 1권, 오연수 소설집 『세발자전거를 타는 여자』외 1권, 박유정 시집 『태백 가는 길』, 홍성화 시집 『빈곤의 불을 밝히고』외 2권, 정석교 시집 『산 속에 서니 나도 산이 되고 싶네』, 최성달 수필집 『그 정원에 가고 싶네』 외 1권 등이다. 6) 두타문학 중요한 약사 : 2010. 9. 25 현재 ① 연간지 「두타문학」 33권 발간 ② 「월간두타문학」 264권 발간 ③ 매월 두타시낭송회 264회 ④ 동인시화전 12회 ⑤ 문학기행, 한용운을 찾아서, 백담사 등 4회 ⑥ 삼척문학축제 6회 ⑦ 동안이승휴전국학생백일장 18회+문협 9회 ⑧ 문학강연회: 구상 시인초청, 박화목 선생초청, 신봉승 선생초청 등 12회 7) 두타문학 역대회장 : 1969-2009 1대 김종욱 1969.6.24~1969.12.31 2대 김영준 1970.1.1 ~1979. 6.19 3대 김형화 1979.6.20~1980. 1.31 4대 김영준 1980.2.1 ~1982.11.28 5대 정연휘 1982.12.1~1987.12.31 6대 최홍걸 1988.1.1 ~1989.12.31 7대 박종화 1990.1.1 ~1991.12.31 8대 김태수 1992.1.1 ~1992. 4.16 9대 박종화 1992.4.17~1992.12.31 10대 정연휘 1993.1.1 ~1996.12.31 11대 김진광 1997.1.1 ~1997.12.31 12대 박문구 1998.1.1 ~2002.12.31 13대 김소정 2003.1.1 ~2003.12.31 14대 박종화 2004.1.1 ~2004.12.31 15대 박대용 2005.1.1 ~2007. 9. 7 16대 이출남 2007.9.8 ~2009. 7. 9 17대 김일두 2010.4.1~
위와 같이 삼척문학의 원류와 두타문학을 살펴보았다. 『두타문학』 32집 두타문학회 2009 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