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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기억속의 춤꾼, 영원한 안무가 이숙재
-이숙재 (李淑在, Lee Sook Jae) 선생을 찬하며
장석용(Chang Seok Yong, 문화비평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회장)
어느 나라에서에서든 자기분야에서 역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위대하다. 교육자이자, 안무가, 무용가로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이숙재는 한국 현대무용계의 산 증인이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중의 한명이다.
이숙재 선생의 춤은 크게 밀물현대무용단의 성장과 현대 춤 형성화 과정인 춤 작업 1기(1984년~1990년 까지), 춤 작업 2기는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한글 춤 이야기 본격적 구축과정인(1991~2005년), 춤 작업 3기는 현대 춤 의미 캐기와 실험 작업(2006년~현재)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춤 작업 1기(早春)는 댄서 이숙재의 현장 춤 작업을 포함한 안무 작업, 춤 작업 2기(晩春)는 본격적 안무가로서의 작업과 ‘한글 춤’이 본격적 태동이 되던 시기의 작품과 안무 작업, 춤 작업 3기(盛夏)는 다양성과 가변성, 그리고 실험성이 돋보이는 M극장의 작품들이다. 4기(晩秋)의 작품들은 이숙재 선생의 춤을 총결산할 때 쓸 시기구분이다.
연대기적인 구분을 떠나 총체적 관점에서 안무가 이숙재를 고찰하며, 필자의 주관적 선행 작업의 틀이 앞으로 안무가 이숙재를 연구하는데 작은 지침으로 쓰여 졌으면 한다.
1. 무사(舞師) 이숙재
가없는 엄격성 위로 여린 감성들을 쓸어 담으며 업보 같은 춤을 정면으로 도전, 굴복시키고 있는 여전사 이숙재는 현대 무용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운명처럼 밝아 있는 해방은 그녀의 화두였다. 1945년생 해방둥이에게 던져진 화두는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이윽고 그 화두는 ‘어떤 춤을 추어야 할까?’, ‘어떻게 안무할까?’ 로 변이된다.
그녀 춤의 상당 부분은 무게 중심을 둔 ‘한글’과 이건청과 같은 시인의 시작들, 후학들과의 아이디어 교류로 이어지는 작품들, 『남한산성』과 같은 초대작들로 이어졌고, 금년에 있을 마산 문신조각 심포지엄의 초청작 『달의사나이, 문신』에서 더욱 정교한 빛을 발할 것이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녀의 무지갯빛 상상은 짙은 미각의 작품들을 낳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베스트 안무가에 주저 없이 꼽히는 현대무용가 이숙재 선생의 춤인생 60여년은 한국 춤의 진화와 변화, 격동과 고민을 몸소 경험한 것이기에 기록적 가치를 소지하고 있고 그 경험론은 한국무용계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중요한 덕목은 공유정신이며, 춤을 자신의 전유물이 아닌 참가자 공동자산의 춤으로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그녀의 춤의 현대성은 춤에 대한 근접불가, 무한의 경외감으로 담을 쌓던 영주성을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춤 완성도를 위해서 절대 완벽성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 양면성이 밀물 현대무용단의 인기를 지속시키는 비결이다. 선생의 창조 작업에 동반하는 캐릭터 창조는 춤꾼 개개인을 캐릭터화 하는 메쏘드를 개발하게 된다.
극복의 무용계로 탈바꿈시키는 역할을 자임한 이숙재는 주눅이 들법한 외국의 무용계에서도 큼직한 상들을 차지하고 오는 후학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고 한국 창작무용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이숙재 선생이 보았던 한국무용계 풍경은 후진성을 띄었던 정치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민지의 추억과 전쟁에 스쳐간 무용계에 그녀의 운명적 역할은 지대하였다.
선생은 무용계의 자기 극복의지/자정능력의 부족, 독창적 창의력/창작무용의 느슨한 전진, 타 장르와의 활발한 크로스오버와의 배타심 혹은 경계감, 당국의 단세포적 지원책, 창작 무용의 철학접근 부재 혹은 자기 중심화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변방의 한국 무용계를 선진화시키고, 한국 무용을 수출하는데 앞장 서 왔다.
선생의 춤 작업을 보면서 우리가 안무가들을 국제적으로 키워 내지 못하면서, 이미 프로가 되어있는 스타 춤꾼이나 안무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만으로 자기 할일을 다했다는 식의 도처의 예술가들의 자기 성찰 없는 접근에 대해 이선생의 애국적 춤 작업에 대한 고마움에 새삼 경외적 존중의 서사를 올린다.
이 선생은 전후의 궁핍 속에서도 춤에 대한 낭만적 열정으로 한국 춤 문화 부흥에 이바지 해왔다. 그녀를 통한 우리 춤 보기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후학들의 열정/창의력 부족과 식민치하의 나라 잃은 한계, 특히 예술 춤에 대한 지원 미비, 경제적 궁핍으로 한류스타 최승희와 조택원을 국제적으로 홍보하고 우리의 자산으로 본격 챙기지 못한 현실을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숱한 공연예술제들과 다량의 수식적 춤을 접하면서 연대기적으로 옛 것 살리기와 실험적업들을 살펴보면 전통 춤 맥 잇기, 연락재의 연구 사업, 홍천의 최승희 춤축제, 춤전용 M극장의 최승희를 기리는 춤 공연 등이 다소 위안을 주고 있다.
이 선생의 작업이 우리 무용계에 전범(典範)이 아닐까 생각된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끼있는 젊은 무용가들을 춤 행위를 하나로 묶은 ‘M 탄츠테아터( M Tanztheater)’의 작업은 독특한 실험 장르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진주 교방굿걸리 춤 등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창작 작업을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M 극장을 통한 춤 교과서 작업이 필요하다.
대구에서 유년의 일본을 중심으로 한 2차 세계 대전의 쓸쓸한 종말을 목도하면서 전통 가치의 소중함과 한국 무용의 선진화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 겉치레를 버리고 일상의 소중함 일깨우기를 실천해온 선생은 약관의 타이틀을 계속 획득하면서 발레 전공에서 현대무용으로의 수용을 과감히 단행한다.
안무가 이숙재는 2006년 M극장을 무용전용극장으로 만들면서 젊고, 역동적인 예술, 실험 춤들을 수용하고, 격려하며 독립무용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독립된 공간에서 공연하도록 용기를 주는 피나 바우쉬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2. 이숙재의 ‘한글’ 연작 시리즈와 가변의 작품들
이숙재 교수처럼 일관되게 자신의 색깔을 갖고 창작에 몰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루할 정도의 ‘한글’ 춤 연구에 대한 집착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의 노력이 배양되어 지금에서야 잉태된 그들의 나라 사랑에 버금가는 연구의 결과이다.
세종은 이숙재에 비유되고 집현전의 새로운 집단은 밀물현대무용단이며, 그 단원들은 집현전 학사들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완전한 합일이 일궈낸 고결한 성과물이 바로 이숙재의 ‘한글’ 연작 시리즈이다.
나라의 교과서에 조차 홀대되는 국어(한글)를 춤으로 승화시키고 인접 모든 장르의 자랑거리로 만드는 작업에 기꺼이 동참한 이숙재의 ‘한글 사랑’에 대한 작업들은 혁명에 견주어지는 장대한 프로젝트이며 지속적으로 이어져야할 과제이다.
이 작업에 대해 주변 학자들과 평론가들의 논평은 ‘당연히 상찬받아야 할 춤 행위’들로 극찬에 가깝다.
또한 그녀의 기타 작품들은 창작성이 그윽한 시적 서정과, 움직임과 춤의 함수관계를 조화롭게 엮은 현대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 기운은 과거와 현재에 걸친 비극적 고독과 분절의 아픔을 겪으며 도도하게 일어서는 극복의 논리로 무장된 작품들이다.
이러한 모든 작업들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면서 극기되어 해빙무드를 맞으면서 한 차원 승화된 작품들로 여유로움을 갖는다.『새천년 꿈의 날개』,『신찬기파랑가』,『목화 희게 피는 날』,『남한산성이야기』,『Sun & Moon』등에서 보여 진 흐름들은 해탈과 달관의 경지, 혹은 여유이다.
그녀의 작업에 상당히 일조한 문인은 이건청 시인이다.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당선하여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움직이는 산’등의 명시를 잉태시킨 시인이다. 석탄이 왜 산소 속에서 불이되고 싶어 하는지 아는 시인 이건청은 2007년에 4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아직 왕성한 시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영원한 문학청년으로 푸른 시 밭을 일군 시인은 안무가 이숙재가 선호하는 창작창고의 지킴이 이기도 하다. 박목월 선생의 수제자로서 목월문학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는 시인으로 그의 시의 모티브는 많은 이숙재의 춤의 모티브가 되곤 했다.
2009년 이건청 시선집 ‘움직이는 산’은 이 시인이 40여 년간 쓴 600여 편 중 고른 100여 편의 시가 희망과 절규, 동경과 서정, 울분과 자연에 관한 순리들이 보석처럼 엮여져 있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이숙재 춤과 이건청 시의 함수관계를 읽을 수 있다.
가장 최근의 ‘한글’ 작품을 예로 들면, 2009년 10월 13일, 1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된 이미지 극대화에 성공한 한글 춤, 이숙재 안무, 이해준 대본의 『훈민정음 보물찾기』이다. 이 작품은 21세기의 여정으로 천지인(天地人)을 묘사해 내고 있다.
이숙재 선생의 작품에 대한 많은 관심가운데 최근의 한글 작업에 대해 피상적 관찰을 살펴보자.
「63빌딩의 높이를 넘은 이숙재(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교수) 안무의 『훈민정음 보물찾기』는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을 모티브로 하여 직관의 산물이 아니라 과학적 이미지 응축 과정을 거쳐 본격 국가 브랜드 상품의 정좌를 각인시킨 모던 댄스이다.
반개화(半開畵,미완의 그림)를 견지 ‘꿈의 알파벳’, 한글의 아름다음과 독창성, 친밀감을 고강도의 훈련과 카리스마 있는 조화로 일구어 내는 투지와 지구력이 간디의 ‘물레’를 떠올리게 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동백꽃은 빨간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안무가 이숙재는 하늘과 땅의 한글이 맞닿아 ‘하늘 문’이 열리는 시월을 칠석의 기다림으로 동일시하며 그 애착이 우주와 대지의 풍요와 평화를 가져오는 춤, ‘한글’로 창조한다. 한글 춤은 상생과 조화, 균제의 미학을 오랫동안 보여주어 왔다.
세계최고의 ‘한글 춤’은 자극의 몰약과 유사, 늘 관객을 즐거움으로 깨어있게 만들고 잠들지 못하게 한다. 그녀의 비주얼은 한글의 수묵 향 같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사운드는 음역이 넓어 동서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다.
전 방위 댄서들의 경연장 같은 불꽃 튀는 열연이 꽉 찬 독보적 ‘한글 춤’들은『훈민정음…』을 관람한 워싱턴 타임스 발행인 토마스의 말 ‘remarkable, 주목할 만한'을 뛰어 넘어 ’excellency, 빼어남으로' ‘한글 오마쥬’를 가장 잘 표현해낸다.
『훈민정음 보물찾기』는 『홀소리 닿소리,1991』이래의 엄숙을 정제한 열정, 미장 센, 철학, 조형무법으로 한글의 국·내외 사회 파급력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미몽의 어둠에서 희망까지 한글원정대의 춤은 수사가 필요 없다.
자신감에서 출발한 안무가 이숙재의 『훈민정음 보물찾기』는 전쟁에 버금가는 투쟁 끝에 얻어 낸 소중한 자원이 한글임을 밝히고 있으며, 1443년과 1446년에 이르는 조선 초 언어 혁명기의 한글 창제 이념을 충실히 실현하면서, 춤의 현대화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숙재 안무의 창작 양식 유사성은 해마다 ‘한글 춤’을 즐기는 이들에게 다시 보게끔 만드는 대하드라마와 같은 오락성과 중독성을 띄고 있다. 한글 상품의 문화상품으로서 우수성과 외국으로부터의 받고 있는 찬사는 ‘한글 춤 전용관’의 탄생을 가늠케 한다.
우리 것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한글 춤’은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중국 등의 팬들이 열광할 정도로 ‘친밀한 춤’이 되어버렸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호되어야할 한글이 왜곡되는 상황에서 안무가는 늘 고민하며 ‘한글’을 우리의 다정한 친구로 만들어 버렸다.
안무가의 배려로, 춤의 코드는 추상을 피하고 이질감과 전치로 소수의 전유물이 됨을 피한다. 이숙재의 ‘한글 춤’은 훈민정음의 ‘어린 백성’의 아픔을 해소시키기에 충분하다. 한글이란 원자재가 고급 그래픽으로 손실이 없고 덧칠되는 춤은 한글의 유화적 가치로 상승된다.
『훈민정음 보물찾기』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 혹은 미덕은 1)안무를 비롯한 스태프와 캐스트들이 서로의 직분을 안다는 것 2)유닛의 조합과 해체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 3)전통무의 장점과 보여줄 것을 과감하게 압축 현대화 하고 있는 것 4)주변 파트들과의 유기적인 관계가 춤 해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5)극사실 조명과 판타지 조명의 환상적 조화 6)한글 디자인의 국제화에 기여한 이상봉의 의상 자문 7)환상적인 음악 등이 한글 춤의 ‘진화성과 진보성’에 크게 지원되고 있다.
한글 춤의 항구적 지원과 보존으로 우리 문화자산의 보물창고 ‘한글’이 해마다 더욱 사랑받기를 바란다. ‘한글 춤’ 『훈민정음 보물찾기』의 후속 작이 벌써 보고 싶다.」
1991년 10월 28일/29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제 13회 서울무용제 참가작, 『홀소리 닿소리』로 시작되었던 대표작 ‘한글’ 연작 시리즈, 『한솔이어라』(1992), 『신(新)용비어천가』(1993),『한글기행』(1994), 『한글누리』(1995), 『뿌리깊은 나무』(1996). 『세종은 오늘도 잠들지 않는다』(1997), 『한글 그 가상공간속으로』(1998), 『한글 새천년의 꿈』(1999), 『한글춤 2000』(2000), 『한글춤 새년천 꿈의 날개』(2001), 『춤추는 한글』(2002), 『한글아 놀자』(2003), 『세종은 잠들지 않는다.』(2004), 『말과 글이 춤추는 한글 대탐험- 훈민정음』(2005), 『한글 25시』(2006),『사맛디』(2007),『한글춤 2350』(2008),『훈민정음 보물찾기』,(2009)와 『세 개의 움직임에 의한 하나』(1985),『빠른 시간 속의 빈터』(1986),『갇힌 사람들의 노래』(1986),『기류』(1986),『망초 꽃 하나』(1987),『달리는 힘들』(1987),『두꺼운 정적을 깨고』(1987),『두 개의 힘』(1987),『만남을 위한 분열』(1987),『다시 하나로』(1987),『태초의 소리, 흔들리기 위하여』(1988),『얼굴 바꾸기』(1990),『침묵하는 산』(1990),『무명저고리』(1991), 『벼랑』(1991), 『내가 네게로』(1993), 『해빙』(1994),『파도』(1994),『새천년꿈의날개』(2001),『신찬기파랑가』(2007),『남한산성이야기』(2007),『Sun & Moon』(2009)등은 자강의 역사, 한글과 우주에 얽힌 철학, 우리 문학의 자존, 고독, 분절, 내공, 표변, 사랑, 희망, 굴욕, 서정과 소통의 부재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한글 연작 시리즈와는 다른 차원의 서정적 작품을 예로 들어보며 그 서정의 깊이를 살펴보자. 그 예는『남한산성이야기』가 되어도 좋고 아니면 『목화 희게 피는 날』이 되어도 좋다. 공교롭게도 김훈의 『남한산성』은 베스트 세러가 되었고, 제1회 성남국제 무용제 개막작 『남한산성이야기』는 비가 오는 가운데 공연되었지만 남한산성을 실제 무대로 쓰면서 사실감을 살린 극작효과로 최고의 성과를 이룬 작품이었다.
목화·이미지 의상사·패션 2006 그리고 춤 이란 제목으로 쓰인 『목화 희게 피는 날』에 대한 필자의 글을 예로 들어보며 서정성의 실체를 찾아보자.
「지난 12월 19일(화)과 20일(수), 동숭동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타 대극장에서 공연된 밀물현대무용단의 2006 서울시 무대지원작품 선정작 『목화 꽃 희게 피는 날, When the cottons bloom white』는 ‘목화의 과거와 오늘’ 이미지를 따스하게 연결시킨 작품이다.
3장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 ‘목화’ 스키마는 문익점을 거쳐 천과 패션으로 이어진다. ‘춤 패션을 입다.’라는 카피는 랍아트(LAP ART·Line and Point)의 핵심들인 선과 점의 목화 이미지들을 전통방식과 현대를 섞어 따스한 ‘이불의 추억’과 카튼 필드의 서정을 팝콘처럼 튀겨낸다.
하이앵글로 잡히는 무대를 익숙한 시각관습으로 보면 탱글탱글한 과실들을 익힐 햇빛이 필요한 것처럼 세기(細技)를 빛내줄 뒤 스태프들인 테크니션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일(一)자로 빨려 들어옴은 공연이 은근히 재미있다는 것을 뜻한다. 손에 꼽을 수 없는 숱한 스타들의 현란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춤 테크닉은 일반관객들을 춤 팬(dance goer)으로 만들기에 제격이고 작품은 브랜드화 될 조짐이 다분히 보인다.
이 작품의 매력은 우선 목화라는 친밀감이 있지만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듯 한 소재의 제자리 찾아 주는 작업이 설득력 있게 와 닿고 있다. 두 번째 어렵게 연습해서 쉽게 보여주는 전문 무용단의 노련함과 무엇이나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춤꾼들이 보여준 것이다.
도입부로 들어가면 의상 디자인실. 오버랩된 인터뷰 음이 현대를 알리면 디자이너(이해준)와 비서(박희진)가 가벼운 팬터마임을 보여준다. 오늘의 목화의 쓰임이 보이며 다시 천연섬유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스쳐간다. 류정재(리포터)와 허문선(모델)의 연기가 펼쳐지고 마침내 디자이너는 자연 친화적 소재로 목화를 선택하고, ‘우리민족이 목화를 얻게 되는 과정’을 패션쇼의 컨셉으로 정한다. 작업대에서 떨어진 하얀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목화/문원나라 사신익점/씨앗 세 개의 이미지화 작업과 연결된다.
신종철, 이보경, 곽지원이 각각 씨앗으로 역할 담당한 삼인무는 고난도의 테크닉 그레코로만으로 씨앗의 발화와 사멸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이중 하나의 씨앗만 살아남는다.
이 씨앗이 살아남아 실이 되고 천이 되는 과정은 김은희와 사인 무가 맡아 천을 갖고 추는 춤의 서정과 판타지를 하이 키 조명으로 극대화 한다. 신비하고 순백의 이미지는 곧장 목화로 연결된다. 디자이너 김남희 (돌실라이 대표) 패션의 아름다움이 한껏 돋보이는 장면이다.
의상을 주조로한 시각적 비주얼과 춤의 필연적 조우는 무대를 품격 있게 만들고, 안지홍의 창작곡은 대중성과 안정감을 줌으로써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역사의 한 모퉁이 구테타적 사실(史實) 하나가 남긴 깊은 철학의 정점, 문익점. 그에게서 오늘에 이르는 목화 대장정. 화학섬유는 자연 섬유를 짓밟고 혁명을 일으킨다.
이정화의 혁명군은 매캐한 포그와 공장을 상징하는 현대의 도회에서 블랙유희의 공간을 창조한다. 화학 천 의상 패션쇼는 거부 반응을 일으켜 다시 천연섬유를 찾는다. 인간의 심성마저도 바꾸어 버리는 화학섬유, 목화와의 천연덕스런 대비는 코믹을 유발한다.
우리의 무명천은 수수하지만 다시 빛을 얻는다. 테마가 있고 드라마트루기를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은 양 손에 걸려있는 목화처럼 은은한 향을 풍긴다. 몸으로 사고하는 국내 정상 밀물 단원들이 문익점 대사에게 올리는 제의(祭儀),특히 패션쇼는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다시 현대 도시 한가운데 힘을 얻은 솜 소재 개량한복은 힘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백색 충만한 『백조의 호수』를 보았고, 전통과 인접한 사물의 소리를 들었으며, 겨울 이야기의 긴 여정을 살필 수 있으며, ‘덩실 덩실, 덩 덩실’로 하나 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목화, 소박하지만 포근하고 정겨운 옷, 춤이 증명하였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새로운 춤 흐름과 춤 사람 만나기를 즐겼던 선생의 월드 투어는 그녀의 영혼의 심도를 높여 주었다. 마사 그래엄, 머스 커닝햄, 뉴욕 컨저바토리 댄스 스쿨, 프랑스 말레 댄스 스쿨, 영국 라방 센터, 일본 창작 무용 워크숍, 일본 오리다 가스고 워크숍, 뉴욕대학 워크숍, 일본 무용계 견학 및 연구, 산티아고 아밀 페스티발 『Sun & Moon』공연,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주립대학 초청공연, 우즈베키스탄 초청 공연 등에 걸쳐 있다. 아쉬운 것은 그 스펙트럼을 확장 시키지 못한 것은 예술가의 도약에 정부와 당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브레히트의 소외가 필연적 와 닿을 수밖에 없었던 선생은 연습벌레로 자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녀의 이름이 먹히는 입지를 개척했다. 선생의 춤은 댄스아스트로 톤이 유지되었지만, 시기적 무풍(舞風)과 색조는 변화를 가미 하고 있다.
무용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적 선구자 역할을 해왔고 특히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한글’ 춤의 매력을 기호학적, 춤 공학적 차원의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게 부상시킨 공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한글’ 춤을 인류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선생의 노력으로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의 시야가 조금은 넓어졌다.
『말과 글이 춤추는 한글대탐험-훈민정음』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으로 나타난 <홀소리>, <닿소리>는 외래어 범람 속에서 낯설고 신기한 체험들을 경험하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오락성을 소지, 현대 춤과 한글의 만남을 댄스뮤지컬 형식으로 가져간다. 좀 더 쉽게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돋보이게 만든 작품이다.
『한글25시』 는 테제와 구성이 또렷한 작품이다. 즉 테제로 ‘태극의 원리는 한글의 원리이다. 한글 춤은 한국 춤이며 태극 춤이다. 한글은 겨레의 생명이며 태극의 자화상이다. 한글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구성은 ‘제1부 백두대간에 한글이 산다. 제2부 “안녕하세요. 한글”-한글 춤은 한국춤이다. 제3부 한글로, 태극기로 세계를 꿈꾼다.’ 로 짜여 있다.
『사맛디』 는 소통을 주제로 하여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을 재조명한다. 정치적 압력과 극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주군이 백성들을 위해 민족어 한글을 창제, 반포한다. 훈민정음 본문 중 사맛디는 소통을 지칭한다. “사맛디”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선 나눔과 참여, 전달과 공유의 민주적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3D영상, 극적요소와 대중적 음악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결합으로 형상화 되는 한글 춤 사맛디는 한글 창제의 원리인 음양오행과 태극의근본이 동일함에 착안하여, 한글과 태극의 이미지를 소통시켜 한글의 창조적 우수성과 민족의 자긍심을 다시금 일깨우고 예술로 승화된 한글과 태극의 상징을 통해 한글사랑이 곧 애국임을 느끼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한글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글춤2350』 구성은 크게 1장. ‘누구를 위한 한글인가?’ 2장. ‘신용비어천가 2008’ 2장으로 나뉜다.
1장은 한글이 외래문명의 홍수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한글은 우리나라 보물이며 자존심이다. 또한 언어는 한 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중심이다. 고로 우리는 한글을 보존해야할 의무가 있다. 2장은 입체 영상 매체를 활용한 한글자모의 움직임과 아름다운 인체의 영상을 통해 미래의 한글을 접해보는 시각에서 그려진다. 미래의 공간에서 만나는 한글의 창조적 무한 에너지를 가상공간으로의 여행을 통해 한글의 역동적 힘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10월 13일부터 14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563돌에서 한글날 경축공연 『훈민정음 보물찾기』가 공연되었다.21세기의 여정을 찾아가는 작업은 천지인의 합일과 화평에 대한 즐거운 제의가 되었다.
3. 이숙재 춤에 대한 인상
2009년 12월의 M 극장은 공연의 불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12월 22일,23일 ‘2009 M 극장 베스트 레퍼토리’전에서 장국보, 장미란, 이영일, 노해진의 작품이 공연되었고, 26일, 27일 주목할 무용수들인 이정화, 태혜신, 서경희, 윤정아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을유생(닭띠)안무가 이숙재의 혜안이 실린 공연은 가녀린 몸짓으로 피워 올리는 경건한 제의의 의미이다. 그녀의 투우(透舞)는 ‘자갈무더기 속에서도, 돌더미 속에서도, 어떤 눈길도 닿지 않아도 꽃 피어야하는 것은 꽃 핀다.’라는 라이너 쿤체의 명시를 떠올린다.
이숙재의 춤의 변주는 그 가닥에 실린 후학과 제자들의 품새가 언제라도 공연장으로 뛰쳐나와 춤을 출 것 같다. 신생 독립국에서 태어난 해방둥이, 전후세대의 전쟁의 그림자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세대, 1945년생. 이숙재의 춤 인식은 과연 무엇일까?
이숙재는 한국에서 태어난 안무가이자 춤 작가로서 저명한 문화인이자 지성인이다. 그녀의 춤 작업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춤 성장과 격동의 춤 역사를 유추해낼 수 있다. 그녀의 춤작업은 분명 민족과 예술발전에 상당히 공헌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조국에 대한 의무는 새로운 조국건설, 춤으로 피폐해진 조국을 치유하는 춤을 추는 책임감 같은 소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춤으로 새로운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춤 사랑이 가득 침전되어 있을 것이다.
섬세한 춤 언어로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로 포근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식과 성찰을 담은 생기발랄한 작품들은 태생적 야생성은 떨어지지만 후천적으로 습득한 도발적 학구열은 그녀에게 가공할 상상의 공간을 제공, 기파랑에서 세종, 오늘의 현대인에 이르는 인물을 안무케 한다.
‘목화’를 앞세운 낭만 터널은 ‘이숙재’로 시작된 담화는 피어할 것은 필연 개화함을 알린다.
그녀의 사십여 년의 춤들은 만개하여 언제라도 펼쳐지는 홍시와 같은 느긋함과 언제라도 작업에 뛰어들 기세의 단감, 이른 봄에 꽃피우는 감꽃 같은 희망의 온기로 다가온다.
이숙재의 무계(舞界)는 작은 꽃잎에서 숲을 이루는 형상에서, 작은 물방울에서 바다를 이루는 소박함, 겸손 위의 날카로운 춤 감각으로 춤은 다양하고 입체화되고 이숙재의 가슴 깊숙이 숨겨 두었던 녹색 희망이 기축년의 막바지에도 걸리고 있는 것이다.
안무가 이숙재는 아직도 청년 시절의 창작정신으로 춤의 촉감을 느끼면서 또 다른 춤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우직한 일상 속에 춤만을 생각하며, 그 테크닉을 창조하며 밸런스와 울분사이의 황금배율을 생각해 내고 있다.
무사의 춤은 갑옷이 되었고, 침범할 수 없는 성(城)이 되었다. 춤의 발전과 다양함 못지않게 이숙재는 외적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춤에 투영되는 춤 혁명의 빛깔은 번짐으로 꿋꿋이 버틸 수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늘 소박하게 보여준 무사의 현장(M 극장)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듯 한 충격 그 자체였다. 실감나는 이미지 구축은 이숙재 표 이미지를 구축하며 그녀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장르 확장의 묘미를 선사한다.
그녀의 춤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추상과 구상의 묘미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비법을 터득한 그녀의 춤은 춤을 통한 치유의 효험을 느끼게 하고 그 기운의 나눔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춤은 한 권의 철학 책 이다. 그 깊이는 느끼는 자의 몫이다.
그녀가 부조리한 구역을 썰어내듯 냉철한 응시와 상상력으로 세상을 재단해 나간 뒤 총체적으로 느낀 것은 ‘짐승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구도자적인 삶’이다. 그녀의 춤은 세상을 구원하는 셈이다.
결국 이숙재는 허위의 질서에 들떠있던 사람들에게 공간을 양보해 보았고, 변화의 조짐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녹녹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작은 공간에서 거대한 흐름을 선언한 셈이다. 세상을 곱게 바꾸고 싶어 한다.
튼실한 소를 낳은 이숙재의 산고가 세상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저녁놀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의 춤들이 무리를 이뤄 평화의 춤을 추고 안락을 얻었으면 한다. 오늘도 포이동 M극장에는 열정 가득 찬 춤들이 투우들처럼 버티고 있다.
4. 밀물 현대무용단의 예술작업
1984년 창단되어 300여 편의 레퍼토리를 만들어 낸 무용단이 한국에 있을까? 척박한 춤 환경 속에서도 그 각고의 노력은 숱한 춤 작업의 현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밀물현대무용단의 또 다른 일면을 살펴본다.
85년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으로 이루어진 춤 장르별로 1회 밀물 춤판을 열었다. 그중 『세 개의 움직임에 의한 하나』와 , 87년 ‘밀물 춤판 두 번째 무대’에서 이숙재(李淑在)가 안무한 세 작품 중『망초꽃 하나』도 역시 시인 이건청의 작품이다.
「86년 작『갇힌 바람들의 노래』 도 어둠이 주제인 변주곡」이며 『기류』도 맥을 같이한다. 『흔들리기 위하여』,『흐르는 시간의 중심에서』,『우리들의 이야기』,『침묵하는 산』,『벼랑』,『내가 네게로』도 모두 이건청 시인의 작품을 무용화한 것이다.
「이숙재가 춤을 추고 이 巫世重이 연출한 『망초꽃 하나』는 새와 새장과의 뜨악한 현실을 춤으로 비유했다. 새장이 있고 (무대에는 링으로, 사각 링 속에 사슬이 있다.) 그 새장에 들지 않으려는 새(인간)가 그 새장에 들지 않으려는 새(인간)가 이숙재 자신이다.
이숙재는 새로 의인화된 코스춤 등의 이미지라든가 발광 직전의 버둥거림이 삶의 타협을 거부한 속죄양 같아 보인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향해 누가 〈어둠〉을 펼치듯,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향해 〈사람들〉이 서있는 풍경(原木場의 향혼)은 이건청 시에 나오는 낯익은 불안감이다.」
「이숙재가 춤춘 망초꽃 연기를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가 춤춘 진혼곡은 궁(宮)을 등지고 유랑을 떠나는 신분이나 위치(밑바닥 인생과 개념은 같더라도)를 느끼게 한다.『갇힌 바람들의 노래』」역시 비슷한 분위기의 춤이다. 이숙재는 『망초꽃 하나』춤을 끝으로 안무에 전념하게 된다.
87년 작 『두꺼운 정적을 깨고』, 『두개의 힘』,『만남을 위한 분열』,『다시 하나로』은 새로운 춤의 역동성과 이념의 고리를 깨고 못하고 나뉘어져 있는 현실, ‘우리’의 개념을 일깨워준 소중한 작품이었다.
88년 작 『태초의 소리』에서는 원시성 속의 가르침을 ,『흔들리기 위하여』는 다소 시니컬하게 사회를 꿰뚫어본 작품이었다.
89년 작 『젊음에게』는 젊은이들이 겪는 모든 것들을 위한 춤이었고 ,『흐르는 시간의중심에서』는 「지난 6월 공연보다 훨씬 다듬어지고, 집중감(執中感)이 있어 보였다. 그것은 안무자가 양쪽의 막을 이용해 공간을 사용한 때문이고, 젊은 춤꾼들의 춤별임에 있어서도 일사 분란했고 어느 정도 앙상블이 다져졌기 때문이었으리라.
검은 막 앞에서 아이들의 도열, 로켓 발사음과 사라지는 불빛, 무대 중앙에 모여 그것을 쳐 다보는 아이들, 유성(流星)처럼 흐트러지는 움직임-. 춤은 그레이엄적 움직임을 사용하면서 어느 측면 춤선(線)이 경쾌하고 건강했고, 춤꾼들은 마치 작은 행성들처럼 우주적 꿈의 모습을 공간에 새기려 했다.」
90년 작 『얼굴 바꾸기』,『침묵하는 산』은 세태를 풍자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거대한 사람들, 식자들의 침묵의 의미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며 묵언수행 같은 책무를 정진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예술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린 작품이다. 93년 작 『내가 네게로』로 소통과 친화력을 다룬 작품이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연 작품은 이숙재 안무의 『무명저고리』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무명 저고리와 엄마』라는 권정생의 동화를 이반이 대본을 쓴 작품이다. 남편과 육남매를 잃고 장애아들 아들 하나만을 남기고 하직한다는 동화이다.
「우선 나로서는 공연이 전체적으로 적지 않게 길고, 지루했던 것은 둘째 처 넣고서라도 (극무용적 양식은 자연 공연의 길이가 늘어나게 된다). 각 개별 장면 장면이 좀 더 그 자체로서 활기 있게 살아나 주지 못했던 것, 또 나와 같은 춤 평론가의 입장에서는 각 장면마다 보다 매혹적일 수 있는 춤이 적었던 것이 공연을 통해 아쉬웠던 점이라 할 수 있다.」
평론가 김영태는 춤의 답습과 前送이라는 글에서「재래식 극무용을 답습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춤의 사슬로 해체시키고, 그 해체시키고, 그 해체성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도 (2장의 2인무와 5장의 침묵의 연기)를 종합한 李淑在의 안무는 밀물 현대무용단의 이미지를 쇄신한 점에서 평가될만하다. 」라고 무용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한국적 전개의 진부함은 주로 연출 작업에 기인하지만 책임은 전적으로 안무가에게 있다. 미국공연에 대한 제니퍼 더닝의 기억을 더듬는다. 「『무명 저고리』의 문제점의 하나는 너무 전개가 느리다는 점이다. 그는 전쟁 그 자체 뿐 아니라 행복한 마을 정경도 지루하게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묘사만도 톨스토이의 소설보다 더 장황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숙재 밀물현대무용단은 최근 공연을 가진 단체들 중 가장 아름답게 단련된 무용수들을 갖고 있었다. 무용수들의 탄성력과 표현성은 李씨의 풍성한 무용 트레이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며 무용단의 가능성을 평가했다.
이숙재는 틀에 얽매어 움직이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전공이 발레이든 현대무용이든 혹은 고전무용 이건 간에 한국인은 결국 한국인다운 춤, 한국 사람의 정서에 맞는 춤을 출 때 비로소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과감하게 춤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홀소리 닿소리』는 91년 한국예술 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무용부문 최우수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후속편『한솔이어라』를 기획하면서 안무가 이숙재는 한글에 대한 비밀을 서서히 풀어 나아간다. 이 작품은 「우리 민족의 고유정서를 예컨대 원두막 풍경에서 벌어지는 삶의 희열, 친화력과 정서의 교감 2부에서 왜색문화 침투의 탈선이 좀먹는 부패상을 고발한다.」
또한 평론가 김태원도 「『홀소리 닿소리』는 다른 어떤 공연 측면에서보다도 인간의 신체가 주는 조형성(造形性)과 360도 회전이 가능한 싱크로 라이트와 같은 첨단적 조명을 이용, 오늘날 춤 공연의 기술력 내지는 첨단화를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반투명의 샤막, 무대 뒤에서의 조명, 그림자들의 투영, 또한 그림자들의 겹침(그것은 먹물이 번지는 듯 한 효과를 지녔다), 사각 틀의 이동장치 근 50여 분 간 계속되는 빚더미의 이동, 한글 자모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무늬의 패턴과 구음(口音), 등 실제 모든 청각적 효과 및 시각적 시너 리들이 춤의 움직임을 뒤덮고 있었다. 」라고 흥분에 가까운 상찬을 한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 등에서 코러스, 마임, 3분화된 세트 이동 같은 것도 삽입된다. 말하자면 줄거리를 쫒아 가는 극무용이라기보다 군무 중 천 속에서 우리글이 색인되듯 한글의 아름다움과 조형미를 육체라는 그릇에 담아 보는 안무자의 의도가 1회 공연 때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육체가 그릇이라면 유정재의 발랄함, 남경이의 폭발력, 이진경, 김은희의 맵시와 이해준의 성숙도는 그 값을 다하고 있다.」
1993년 봄, 무용 한국사와의 인터뷰에서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춤을 창작해서 춘 사람이 모두 현대 무용가는 아니다.”라고 하면서 “예술의 본질은 역시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무용은 고정적 테크닉에 얽매이게 되면 하나의 레퍼토리는 될지언정 그것 자체가 현대무용이 될 수 없다. 테크닉을 연습하는 건 신체를 단련하는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대학은 올바로 창작에 접근하는 원리를 터득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시인 이건청 마저도 「李淑在님은 창출해낸 무용언어로 「한글사랑」이 라는 무겁고도 자랑스러운 주제를 감동의 지평에 형상화해 보여주었습니다.」라고 한글 춤에 극찬을 한다.
안무가 이숙재는 ‘한국의 미’ 1993년 12월 김선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처럼 ‘ 감동과 경이의 율동으로 현대인의 굳은 감성을 풀어헤치는 현대무용가’이며 ‘진정한 자유인 현대무용가 ’이다. 그녀의 “햄릿의 한 대목이나 김소월의 시 한 구절처럼 우리 춤의 한 동작, 한 율동의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평생 기억되어 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새겨볼만한 구절이다.
제15회 서울무용제에서 이숙재 밀물현대무용단의 『용비어천가』가 대상 및 안무상을 차지했다. 「무용은 시각예술이기에 신체적인 율동에는 한계가 있어 시각 예술적인 차원에서 모든 면에서 종합무대 구성이 바로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철학이라고 했다. 또 안무상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작품내용이 한글을 주제로 한 것이기에 모음과 자음(홀소리 닿소리)의 율동을 글자 모양의 꼴을 바탕으로 안무를 했기 때문이라고.」라고 겸허하게 말한다.
김태원의 글에서 한글 춤이 진화하고 있다는 즐거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측면, 장면 혹은 상황들의 구축이나 전개는 『신용비어천가』가 『홀소리 닿소리』보다 더 짜임새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춤의 형식적 전개- 가령 솔로나 듀엣이나 군무-와 그것을 감싸주는 상황과 얼마나 밀착되어, 다시 그것들이 관객에게 어떻게 호소되어져 지느냐하는 것일 것이다. 장면의 절약성과 특히 유정재와 이해준을 중심으로 한 춤의 어느 때보다 돋보이고 있었다. ..중략. 이 舞踊團은 이 작품을 통해서 그간 그들의 직업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농축되고 정갈한 앙상블을 구축하고 있었고, 단원들이나 안무자나 글의 작업이 한 차원 더 승화되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관객에게 보다 쉽게 와 닿는 구체적 이미지의 삽입이 요구된다고 본다.』
1994년 봄, 당시 효성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박현옥은 ‘젊은 향기를 지닌 그대’라는 시로써 「 아침 해가 솟아 빗살사이로 불을 토하듯/그대 눈은 오묘한 신비와 진실에 불 타고 있네.‥중략‥/한발 내 딛는 걸음마다 주춧돌 되고/ 그대 뻗는 두팔이 석가래 되리니/그대 젊은 향기로 큰집 지울 때/동박새 노래 불러 모두 깨리라/‥하략‥」 밀물 즉, 안무가 이숙재의 선구자적인 면모를 간파하고 있다.
이숙재는 현대무용이 예년의 수준을 능가한 가운데 출품한 ‘제15회 서울무용제’에서 이숙재의 『신용비어천가』는 김영태의 지적처럼 「춤이 도식적 틀을 깨려는 생성과 변화의 다혈질 같은 것이 감지」된다.
이숙재는「안으로부터의 움직임-새로운 무용 창작의 방법」이라는 알마 M. 호킨스의 책을 번역 간행하면서 새로운 출구를 해답을 얻은 듯하다. 이 책에서 모티브를 삼은 방법들은 곧장 새로운 춤을 계발하는 전기를 마련하였고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또 30여년의 현대무용역사를 가진 시점에서 제14회 한국현대무용협회 회장이 되면서 행정력을 시험하게 된다. ‘94년 바뇰레 안무자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본선에서 심사하면서 한국 무용의 획일성을 무용 발전의 저해요소로 생각하게 되었다.
리바이벌된 『신용비어천가』를 김태원은 「안무자는 이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 혹은 양(陽)과 음(陰),혹은 역사의 전면과 배면 등을 상징하는 2인무 형식을 일견 군무보다 더 내세우면서, 실루엣 효과가 군무형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보다 내밀한 상징공간의 구축에 더 관심을 가졌다.」라고 평하고 있다.
‘밀물’을 일군 바람은 김영태가 지적한 바대로 「 10주년을 맞은 밀물 현대무용단은 신인들 다섯 작품으로 세모를 장식했다.(12월 28일 ~29일 국립극장 소극장) 밀물 현대 무용단 크고 작은 공연에서 이해준과 유정재는 선두를 지켜왔었다. 세모 공연을 보면서 강호심 정헌재 이은경 김은희를 발견한 것은 수확의 하나였다.」 언급된 춤꾼들을 비롯한 허문선,신종철 등 한양대 주축 단원들이다.
무용은 아름답고 건강한 몸의 예술이자 가장 생동감 넘치는 현장예술이기에 「무용의 종합적인 대형화이다. 현대 춤의 대형화란 기피하고 있는 작업인데도 그녀의 이동식 장치와 회전조명과 함께 신체와의 기하학적인 조화를 이루며 대형화의 공허함을 채우고 있다.」
김태원은 밀물현대무용단의 단순 반복적 몸짓을 즉 테크닉 구축을 식상해 하다가 「밀물현대 무용단의 추상적 종합무용의 추구는 현대 춤의 어떤 포기된 꿈(영역)을 되살리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라고 ‘밀물’ 춤의 진전을 환영하고 있다.
평론가 장광렬은 ‘밀물’의 한글춤 아홉 번째 작품 『한글, 새 천년의 꿈』을 글자체에 견주어 비교하며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는다. 「한글의 글자꼴을 무용수들이 신체로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만큼 무용수들의 춤 대형은 거의가 기하학적이다. 이를 위해 안무가는 한글 글자체가 갖는 외형성에 안무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동안 고전체에 가까운 판각체, 정자체인 필서체, 명조체인 인서체가 만들어졌고, 이번에는 궁체를 주제로 잡았다. 안무자는 부드럽고 소박, 온화하고 경쾌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궁체에서 동작 구성의 포인트를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한글’ 춤은 모든 평론가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춤으로 성장한 셈이다.
문애령은 「1막의 끝부분과 2막의 시작부분이 집중력을 약화시키는 대목으로 보여 단막 구성이 오히려 효과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2막의 후반에서는 다시 본래의 활력과 추상적인 매력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2인무가 만들어내는 조형적인 포즈들이 도입부의 인상을 보다 강하게 각인 시키며 이 작품이 ‘한글’임을 서서히 일깨워갔다. 아울러 발레의 곡예적인 기교까지 구사하면서 춤의 활력도 만들어내는 끝 장면의 설명적인 포즈도 작품의 목적을 설명하는 효과적인 마무리였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김태원은 「 이제 이 무용단이 스스로 하나의 독자적인 기술(훈련)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따라서 이것은 우리 현대무용계 전체의 기술적 성장의 한 예로 보아도 좋을 듯싶다. 거듭 이 공연의 美德(미덕)은 어떤 문화적 메시지나 계몽성을 내세우면서도, 예술작품이 가져야 할 새로움의 태도, 무대 기술적 - 다매체적 - 실험을 결코 소홀히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그간의 노력을 인정하고 있다.
한글연작 열 번째 작품 『한글춤 2000 큰 만남을 위하여』는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진 일련의 통일정세에 대한 축하무대 이자 앞으로 다가올 남북통일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팡파르이다.…중략…화려한 조명, 잦은 철제구조물 사용, 다양한 음향효과의 배치 등 시각적, 청각적 장치들의 넘쳐 남아 자칫 순수한 몸의 움직임을 반감시키고도 남을 정도였지만 거의 완벽한 밀물 무용수 군단의 테크닉과 연기가 그 우려를 종식시킨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춤의 순수한 기능성을 강화시켜간 『한글춤 2000 큰 만남을 위하여』는 「신체성의 명징성과 그런 신체들의 기능성도 돋보이면서 춤은 매우 짙은 순수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전의 이벤트성에서 순수기능성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김태원은 평가하고 있다.
「한글자형 실험 10년일지는 소리(가야금 외)몸이 자연에서 만나고, 나레이터가 등장하며 기구가 출몰하듯(특히 신종철 어깨 위에서 꺽인 무릎이 수평으로 놓이거나 모도 이어지는 이경은의 출중한 테크닉까지) 10주년 결산 대미는 안무자가‘한글자연’을 무대에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 자연은 춤의 자연, 소리(구음)의 자연, 만남과 화해, 대자연의 서체들이었다.」
인체조형미로 표현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한글 춤 공연을 두고 성기숙은「시대적 정서와 안무자의 예술적 착상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버전으로 새롭게 재창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글 춤 첫 해 <홀소리 닿소리>에서 보여줬던 이숙재식 표현어법은 한글 춤의 원전으로서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반복 재현되어도 무방하리라 본다.」라고 연작 레퍼토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글2001 새천년 꿈의 날개』는 이미지성을 더욱 가미하게 된다. 「한정된 주제를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오랜 경륜을 통해 걸러낸 교향악적「한글 춤 코러스」의 대 연주를 지속할 것이며 성숙도를 더 높이고 더 윤나게 다듬질하여 주기를 바라면서, 다만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은 경계하고, 한편 자모의 사실적 표현보다 되도록 유희성을 살리고 직선적 도식구조보다 또 다른 새로운 구도와 비상을 향해 밀물처럼 솟아오르기 바란다.」
「움직이는 한글에서는 이 시대에 한글이 잘못 오용되고 있는 사례를 알아내면서 사실적으로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천자들이 추상적이고 메시지 전달에서도 나는 소극적이었다. 이번 작품은 보다 현실적인 소재에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 또한 더 적극적이다.」는 사실에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한글 춤 2003』은 「객석의 관객들은 한글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현 시대의 한글 상황을 무용수의 신체의 이미지로 상징적으로 보여 주면서 우리 한글의 미래를 생각해 보게 만들던 이번 공연은 각 장의 마무리 부분을 좀 더 탄탄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작품 흐름 속의 이미지들은 대단히 섬세하고 선명하게 만들어져 나갔다.」
『한글아 놀자』는 김은희ㆍ신종철ㆍ이해준의 분할 안무 작업으로 옴니버스 스타일로 이루어졌다.「이번에는 평소 집중력 있는 안무력을 보여주던 김은희는 한글창제가 이루어진 세종조의 궁정 분위기를 정중동의 미학으로 접근하면서 어떤 심원함의 분위기를 끌어내려 하였고, 신종철은 한글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미를 자신을 포함한 6인의 군무로 표현하면서 신체의 기하학적 미와 한글 글꼴의 모양새가 전연 별개의 것이 아님을, 또 춤의 연극화ㆍ문학화를 자주 시도하면서 꼴라주적 퍼포먼스를 즐기는 이해준은 포스트모던적 오늘의 문화와 한글이 어떻게 공생(共生)할 수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려 했다.…중략…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집중력 있는 장면효과들이 만들어지면서, 댄서들이 어느 때보다 강한 테크닉과 신체의 속도성ㆍ순발력을 과시하였는데, 설명성이 배제된 강한 스트레치와 완강한 추상적 동작은 이제 ‘밀물 춤미학(美學)’의 개화라 해도 좋을 것 같다. 」
한글 공연은 해외에서도 이미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동경 댄스 비엔날레 2004 그리고 한글춤 공연에서 최진용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의 말을 빌려보자. 「지난 4년 11월 15~28일, 일본 동경에 있는 아오야마 극장(아오야마 원형극장, Spiral홀)에서 열린 'Dance Biennale Tokyo 2004 -10,000 Years Odyssey' 에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아오야마 극장의 본부장인 Takaya Seiji(高谷靜治)가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직접 관람한 바 있는 "한글" 관련 작품에 매력을 느껴 초청하게 된 것이다. 만만치 않은 경비를 들여 35명의 무용단원을 초청한 것을 보면, 세이지 본부장이 밀물무용단의 한글 작품을 인상 깊게 보고 높이 평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무대를 압도하는 역동적인 에너지와 세련되고 아름다운 춤'으로 빛나는 훌륭한 무대였다며 축하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무용단은 창단 20주년을 맞아 『신 찬기파랑가』를 공연했다. 화랑 기파랑을 찬양하고 추모하는 노래이다. 성기숙은 이 작품이 ‘전통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모색’이라는 평제(評題)를 단다.
밀물현대무용단 창단 20주년은 시인 이건청이 쓴 글 그대로이다.
「가혹하리 만큼 가차 없는 전진, 새로운 예술미학을 향한 쉼터 없는 도전, 그리고 무대와 관객을 이어주는 다양한 방법적 제시 등 그런 것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무용단을 이뤄낸 요인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생은 한글이 지니는 그 고매한 이상과 목적만이 아니라 한글의 글자모양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무용수의 신체를 통해 조형미를 창출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글이 그냥 의미를 전달해주는 문자기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매를 통해 아름다움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증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글자의 기능성과 인간을 결합함으로써 한글의 곡진한 미학을 재발견해 보여준 예술 춤의 정화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13회를 맞는 이 대작무대는 이제 문화를 내외에 선양해야하는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자리잡아가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고, ‘한글’이라는 추상을 예술미학으로 형상화한 밀물의 대표적 레퍼토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5. 이숙재, 그녀의 춤에 대한 결어
이숙재는 인터뷰에서「안무를 한다는 일, 이것은 단순히 춤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움직임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는 일이라고, 저 우주 별들의 움직임까지 표현할 수 있는 날개를 갖추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라고 말한다.
85년 『갇힌 바람의 노래』로 안무 데뷔한 이래, 이사도라 던컨처럼 ‘춤은 시이다.’라는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서와 영화 등 인접 장르의 예술에서 무용의 모티브와 테크닉을 찾아내는 이숙재는 애착이 가는『신 용비어천가』가 모태가 된 많은 한글 춤을 개발해 왔다.
서울 유치원의 특강강사로 만난 진수방, 피난 시절 대구 초등학교에서 레슨을 받았던 만난 송범, 경북여고 고3부터 김상규 무용학원에서 학습했고, 1964년 이화여대 무용과(발레전공)에 입학, 그리고 무용과 제2회로 졸업할 때까지 수학 과정은 부럽지만 힘든 과정이었다.
고향에서의 고등학교와 대학 교편생활을 뒤로하고 미국에서의 유학결과 얻은 아이디어는 결국 ‘우리 것’에의 탐구와 공연이었다. 84년 10월 9일 하은정, 이향자, 유정재등 8명의 창단 멤버로 시작된 밀물현대무용단의 ‘한글 춤’은 91년부터 지금까지 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고, 김은희, 이해준, 신종철, 이정화, 이보경, 박희진 등 스타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한글 창제 정신과 한글에 부수된 우리의 문화적인 얼들 담은 연작 시리즈를 해마다 공연하고 있는 안무가 이숙재는 한글 춤을 국가 브랜드로 발전시킨 최초의 한국 무용가이다. 이에 걸 맞는 ‘한글 춤’에 대한 대대적 지원, 즉 춤의 레퍼토리와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글 춤은 정순영의 지적처럼 「14회의 연작을 통한‘한글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춤 영토와 기층을 확대했다.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지성 층들에게 현대 춤의 기발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과 전국을 찾아가며 보여 주었고, 외솔 문화상 같은 한글학계가 수여하는 상이 무용가에게 주어졌다. (2)문화유산을 살아 있도록 생명을 부여했는가. 어찌 보면 박물관문화를 시민문화로 살렸다. 이는 국제화. 세계화의 선봉 작업이었다. (3)한글 글꼴의 재음미와 더하기 자음과 모음의 기소 주의적 구축과 결합으로 새로운 동적문자미학을 창립했다. (4)표현방법에서 거대한 철골구조와 장치의 개발과 이동의 기, 분만 아니라 전자음악이나 특수조명, 영상처리 등 다매체적 총체적 표현방식을 성공적으로 시현했다. (5)주제성을 면면히 지키면서 현대성을 살렸고, 잘 다듬어진 춤꾼(부속의 조립)으로 단합으로 아무도 생각 못한 인체의 동미학으로 한글미학의 세계를 발명했다. (6)대중 관객의 접근성과 폭을 활짝 넓혔다. 끝으로 재미나는 비유를 들자, 초서, 행서, 해서, 궁서체 이외로 「몸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다.」
이숙재가 가장 다양성 있게 안무한 해는 2007년 이었다. 『신찬기파랑가』,『목화 희게 피는 날』,『남한산성이야기』,『사맛디』로 서사와 서정, 역사와 실험을 엮은 찬란한 한 해였다. M극장에는 여전히 실험성 짙은 인디 춤 작가들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녀는 무용수가 작품에 부합되는 창의적 개성을 살리기를 원한다.
『Sun & Moon, 일월, 2009』로 대표되는 지속적인 해외교류는 밀물현대무용단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해외개척 없이는 ‘밀물’의 지속적인 발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적 지주인 뉴욕대학 지도교수인 닥터 로우의 말처럼 그녀는 한국적 소재이지만 세계적 보편적 신체언어로 기본 테크닉의 엄격성을 주장한다.
밀물현대무용단의 자세를 다루는 항목에서 「나는 이곳에서 우리 밀물현대무용단이 시대의 요구에 걸맞은 새로운 모습을 갖추길 바란다. 세상 속 모진 바람과 거친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꿋꿋하고 뚜렷한 무용가를 만드는 일, 그게 나의 바람이다.」라고 스승의 자세를 밝힌다.
많은 제자들과 쌓아올린 수백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와 춤꾼 혹은 춤 작가들의 단편들에 대한 언급은 유보한다.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무사 이숙재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스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안무가 이숙재는 분명 분리될 수 없는 주변과 인물에 둘러 싸여 있다. 좋은 만남은 좋은 작품이 생산됨을 의미한다. 오늘도 M에서는 실험작들이 공연되고 있다. 이숙재의 혜안과 노력이 계속 진행됨을 뜻한다. 이숙재, 그녀가 있어서 우리 무용계는 시혜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