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지의 power culture interview 개그우먼 김미화
편견은 깨고 상식은 세우고 한국의 오프라윈프리 개그마님 김미화, 세상을 웃게 한다.
사람들은 기쁠 때 웃는다. 그러나 매우 기쁠 때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슬플 때 운다. 그러나 매우 슬플 때는 기가 막혀서 웃는다. 웃음과 울음은 그 속성이나 이면이 같다. 김미화, 그녀는 사람들을 웃게 하기 위해서 세상의 아픈 곳을 본다. 아픈 사람들이 웃어야 진정한 웃음이기 때문이다.
김미화는 작년부터 금년까지 큰 홍역을 치렀다. 지난 8년간 진행을 맡았던 MBC 라디오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놓았다. 한사람의 사회적인 생명이 조직의 생리에 의해서 잘린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것과 다르다.
솔직히 김미화는 무척 아팠다. 사람이 무서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순간적으로 막막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저항도 했지만 아침마다 자신의 하차를 저지하는 젊은 피디들의 눈물을 보는 것은 더 괴로웠다. 그녀는 그때 사람들이 가지는 욕심을 알아챘고 그 욕심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든 것이 끝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패배한 사람이 아니라는 스스로의 믿음으로 그 상황을 극복했다.
"내게는 가족이 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우울하면 남편도 우울하고 아이들도 우울하고 엄마도 우울하잖아요. 그들을 힘들게 할 수 없었어요."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사는 게 인생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재빨리 자신을 추슬렀다.
"돌아보니 참 감사한 일이었어요. 덕분에 집에서 쉴 수도 있고 남편과 오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동네를 돌아다닐 수도 있고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등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녀는 슬플수록 긍정의 기운이 자신을 세운 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긍정의 기운이 결국엔 자신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녀는 힘들었던 유년의 기억도 추억이 되고는 한다. 어린 시절, 폐병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해야 했던 김미화는 현실을 잊고 싶었다. 목이 마르면 기침이 더 심해지는 아버지의 입에 젖은 가제수건을 걸쳐서 물려주고 집 밖으로 나돌았던 철부지 어린 소녀는 동네에서는 이미 연예인이었다.
"나는 내가 유명한 코미디언이 될 줄 알았어요. (웃음) 우리 동네가 참 가난했거든요. 거의 다 일용직 노동자들이고 보따리 장사꾼들이니 저녁이면 모두 지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 어른들이 저녁을 먹으면 하나둘씩 동네 가운데 평상으로 와서 쉬어요. 그러면 그 어른들을 위해서 마이크를 들고 가수 이미자 흉내도 내고 코미디언 흉내도 내고 그랬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힘든 표정으로 나왔다가 재밌다고 막 웃는 거예요. 그때 참 행복했어요."
그녀를 위해서 전파사 아저씨는 마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그녀는 시간에 맞춰 동네 쉼터에 나가 재간을 피웠다. 어른들은 그런 꼬마에게 장에서 팔다 남은 자두를 주기도 하고 오이를 주기도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꼭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요."
그러니 그녀가 지금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분류되는 것에 저어한다. 누군가 자신의 사상을 말하라고 하면 상식적인 세상을 원한다고 말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상식이나 비상식에 대한 개념으로 행동하기보다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로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 그래서 그녀는 한국의 오프라윈프리가 되고 싶어 한다.
"제가 그녀의 삶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녀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오프라윈프리는 자신의 생각을 어떤 이익에 결부하여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동기를 돈에 의해서 결정하지 않고 일과 사생활에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하고 꿈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꾸준히 하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김미화는 한국의 오프라윈프리이다.
"사람들은 제게 가끔 정치적이라는 말을 해요. 김미화가 저렇게 말하는 것은 정치를 하려고 그러는 것일지 모른다고 하죠."
김미화는 시사프로그램을 8년이나 했다. 그녀가 다룬 것은 정치였지 정치인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시사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형감각이다. 그녀는 그런 자부심이 있다.
"나는 전문적이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방송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코미디언이라는 자신의 직업이 장점으로 통했다고 본다. 유식한 전문인이 나와서 말하는 세상사에 대하여 그녀는 직접적으로 묻는다.
'그게 왜 그런 거지요? 그 말이 무슨 뜻이에요?'
처음 시사프로그램을 하자고 권유가 들어왔을 때 그녀는 코미디언이 무슨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겠느냐고 거절했다. 그때 그녀는 성균관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중이었다. 기획 피디는 그녀에게 사람들에게 사회복지를 실현해 주려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방송에서 더 넓게 사회복지를 말해 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여러분 용기를 내세요. 우리가 세상을 살만하게 만들어 가요.'
그녀는 코미디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처럼 시사프로에 대한 편견도 깨고 싶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재미있게 하는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몇 개월 고민하다 진행자 자리를 받아들였다.
"실제 방송을 듣고 김미화님 덕에 용기를 얻고 살아보기로 했어요,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게 방송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이었지요."
정치는 어렵다. 정치는 정치인이 한다. 경제는 더 어렵다. 경제는 경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즐긴다.
"제가 처음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은 코미디였어요."
7,80년대 먹고 사는 일이 급했던 그 시절, 사람들의 시련을 달래준 것은 코미디였다. 그런데 코미디를 통해 위안을 받은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는 저질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정면에 서고 싶었어요."
예전에 코미디 녹화는 사람들이 없는 비공개로 촬영하거나 관객을 두고 해도 위압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관객이 보고 웃는 코미디를 하자고 했다. 가짜 웃음을 방송 중간에 끼어 넣는 게 아니라 진짜 웃음을 넣고 싶었다. 관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니 냉혹한 평가와 훨씬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쓰리랑부부라는 개그 코너로 순악질여사라는 별칭을 달고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현실 코미디를 하면서 코미디가 단순히 몸으로만 한다는 인식을 버리고 서민의 마음을 말과 연기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애썼다. 그녀는 코미디가 개그로 바꾸어지는 한 차원 상승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저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작업이 즐거워요. 코미디는 저질이다, 라는 편견, 시사프로그램은 전문인이 해야 한다는 편견, 여성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이런 생각들을 깨고 싶어요."
그래서 마침내 결혼이나 남자에 대한 편견도 깰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인생에 꼭 남자가 필요한가? 남자 만나서 무슨 행복이 있겠나. 결혼, 한번으로 족하지, 남자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했어요. 그런데 다른 남자도 있데요."
그녀는 2008년 성균관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인 윤승호와 재혼한다. 가수 홍서범의 친구인 그를 만나 오빠로 허물없이 지내다가 남편이 된 것이다. 흔히 닭살 커플로 불리면서 더러 누군가는 더 살아봐라, 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애정이 식는다는 말도 또 다른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마음이 맞으면 살수록 더 정이 깊어지는 관계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편 윤승호 교수가 만든 호세윤 밴드 일로 그녀도 바쁘다. 남편은 음반 기획자로 그녀는 음반 제작자로 함께 일하면서 얼마 전 또 빈손 콘서트를 열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음악을 즐기러 오기만 하면 되는 빈손 콘서트는 부부가 좋아하는 신영복 시인의 시에서 착안을 했다.
- 빈 손
물건을 갖고 있는 손은 손이 아닙니다
더구나 일손은 아닙니다
갖고 있는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손이 자유로워집니다
빈손이 일손입니다. 그리고 돕는 손입니다 -
그녀는 자유롭고 싶고 가진 것을 나누고 싶고 누군가를 돕고 싶다. 그래서 그녀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우리 사회가 뭐든 극렬히 나뉘어져 있잖아요. 이편 아니면 저편, 그런데 사람만 두고 생각해 보자고요. 누가 크레인 위에서 일 년을 버텨요. 그 위에서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겠어요. 나는 그런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얼마 전 그녀는 부산에서 한진중공업 해고사태로 일 년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씨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들은 제가 이러면 좌파라고 말합니다."
김미화를 무슨 파로 정해 가두는 건 정말 우습다. 만약 그녀를 무슨 파로 단정하고 싶다면 난 그녀를 인파(사람파)라고 본다.
그녀의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자식을 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산 어머니, 그녀는 그런 어머니가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그런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의 삶에 가장 큰 멘토는 어머니이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에 해장국집에 어렵게 살아온 어머니였지만 어머니는 늘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근래에는 그녀에게 새로운 멘토가 되어주는 두 사람이 더 생겼다. 김미화는 지난 10월 순천에서 안철수 박경철이 함께 한 '희망공감 청춘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되어 갔다. 거기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상식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기적인 삶은 도태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순간을 잘 살아내는 것이 삶의 희망을 이어가는 길이라는 그들의 바른 생각에 공감이 갔다.
"더러 세상의 상식을 말하다 힘들 때도 있지만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코미디언으로 자리매김을 했고 사랑도 많이 받았고 정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지요. 그러니 제가 가진 것을 더 나눠야 하지 않겠어요."
행복이란 양이나 질로 누구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행복의 조건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느냐, 없느냐, 이다. 그녀는 행복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리고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마음을 열어두고 있다.
평생을 철부지로 살고 싶다는 그녀, 근엄하게 무게 잡는 어른이 되기보다 철없는 어른으로 살면서 내가 더 늙으면 뭐가 되지? 스스로 설레어 하며 살고 싶다는 그녀를 보는 내내 그녀가 쓰고 싶다는 묘비명이 떠올라 웃음이 지어진다.
'웃기고 자빠졌네.'
한동안 잘 쉬어서 5키로가 늘었다는 그녀에게 다시 살이 빠질 일이 생기려고 한다. 우리가 만난 그날, 그녀는 CBS로부터 또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 역할을 제의 받았다며 그 일로 회의를 가야한다고 했다.
오늘 내가 본 뉴스에서 그녀가 가칭이기는 하지만 김미화의 여러분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11월 7일부터 매일 오후 2시 CBS라디오에서 나오게 될 그녀의 목소리에는 또 어떤 기운이 묻어있을까? 토닥토닥 상식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북돋워 줄 거라는 기대에 나도 설레는 마음이 된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힘이 들 때면 사람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발을 통통 튀기고 웃기고 자빠졌으면 좋겠다.
글 신희지
사진 박기돈
격월간 차와문화 11-12월호 중에서
12월 17일 그녀가 지리산에 옵니다.
지리산학교 여러분! 누구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17일에 악양면 사무소 2층으로 오후3시에
오세요!
첫댓글 두분...다른듯 하면서 닮은미소가...참 아름답습니다...^^*
12월17일...
에효~~결혼 16주년에...남푠 생일까지 겹치고...한달에 한번 만나는 가족상봉에 나 가고픈 곳으로 가족들을 몰고 갈 순 없고...ㅠ.ㅠ 담날은 시엄니도 생신인데...나 좋자고...나 원하는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 없고...ㅠ.ㅠ
내가 가지고 있는것들이 아직은 많아서 이렇게 발걸음 떼기 힘든걸까요?
아~~~ 언제쯤 내 발길 가고픈대로 갈 수 있을까요??ㅠ.ㅠ
고알피엠여사님!!!
왜 고알피엠 인지...방송에서 이시인님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바쁘신 분이실지...
닮고 싶은 여성인데...저는 바쁜거는 절대로 안 닮고 싶은데 어쩌죠???^^*
피엠여사님,...사진이 아닌거같은디(넘 어리게 나왔는디)...17 일 악양은 들뜨고 즐거운날, 나는 가족들 먹거리에 숙박까지 책임져야하는 날이랍니다. 어찌 날이 겹쳐도..이리 겹칠까요?.. 모이시는 모든 분들 즐겁고, 행복 쌓고 쌓는날 보내세요~~
두분의 누님을 응원 합니다!!! 멋진 인터뷰~
그날 저는 울산 가요
ㅇ ㅎ ㅎ
목수로 일하면서..자주 집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다들 2주간은 일하고 2주 단위로 이틀 휴무를 하는데요
이날 딱!!! 입니다. 그래서 김미화님 특강에 참여 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인연 주심을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