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床異夢)
성경의 첫 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중에서도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잠자기 전 엄마가 머리 맡에서 읽어주시던 동화와도 같았다. 그런 동화가 현실이 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금세 어른이 되어 나의 아담,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결혼은 그 자체가 맥락없는 단편소설 같았기에 ‘사람이 이렇게 결혼을 할 수도 있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처음 얼굴을 봤을 때 프로포즈를 받고, 두번째 얼굴을 봤을 때 상견례를 했고, 세번째 얼굴을 봤을 땐 이미 결혼식장에 서 있었다. 또한 그렇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을 못 해 보고 결혼을 했더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은 늘 아내와 함께 복식조로 볼링대회를 나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나는 그와 댄스 스포츠를 배워 보는 게 꿈이었다. 부부끼리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강연을 함께 듣고 와서는,
“거 봐. 같이 골프 나가자니까? 거기 가면 부부끼리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고.”
라고 이야기 하는 남편에게 나는 이렇게 톡 쏘아 붙였다.
“왜 항상 당신 취미를 따라 가야 하는데? 나는 골프 싫어. 차라리 운동을 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같이 하든지!”
그렇게 우리 이야기는 합의점 없이 늘 끊임없는 평행선을 그어 나갔다. 할머니께서 물가에 가면 위험하다고 하셨다면서 수영은 절대 할 수 없단다. 그 당당한 남편의 대답에 내 머리 위로는 까마귀가 깍깍거리는 것 같다. 또 언젠가는 티브이에서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보다가,
“나도 저 집 가서 저 맛있는 것을 좀 먹어봤으면…”
하였더니, 대뜸 내게 이랬다.
“난 맛집 찾아 다니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 가더라. 왜 힘들게 그 멀리까지 그거 하나 먹겠다고 찾아가냐고.”
저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동생에게 특별히 부탁해 이연복 쉐프의 중식당을 꼭 예약해 달라 했던 것이 떠올랐다. 결국 예약을 하지 못해 그 대단한 맛을 보고 오진 못 하였지만, 언젠가는 꼭 먹고 말리라는 오기마저 생겼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워낙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눈에는 내가 그저 자기 세상 속에 불시착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 밖에도 멋부리는 것을 좋아해 여자들의 향수까지도 사 모으는 남편과 꾸미는 겉치레에는 병아리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나. 섬세한 성격에 아내에게 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꿈꾸는 남편과 그런 이벤트에 쓸데없다며 핀잔을 놓는 무뚝뚝한 나. 참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언제나 공포스럽게 나에게 오라 손짓하는 체중계가 눈에 띄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는 체중계 위에 엄지발가락을 살짝 올려놔 보았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요새 좀 찐 것 같다 생각하며 체중계 위에 올라 갔더니, 세상에나! 예전 몸무게보다 5키로가 더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방으로 들어 온 큰 딸 아이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딸래미, 이 체중계… 맞니?”
“아니, 그거 고장난 것 같던데?”
딸 아이의 대답에 안도의 숨이 다 쉬어졌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설마 그렇게나 많이 나가려고? 이거 고장나서 원래보다 많이 나가는 거구만?’
그렇게 자위를 하고나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그런데 그 때, 남편도 샤워를 하고 나서 스윽 체중계 위에 올라가 섰다.
“어? 이 체중계 고장났나?”
남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응! 그거 고장났대.”
“어쩐지! 내가 이렇게 적게 나갈리가 없는데 너무 적게 나오네."
그렇다. 남편은 나와는 반대로 요즘 살을 찌우기 위해 온갖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며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소리냐며, 이 체중계는 정상보다 더 많이 나가는 것이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순간 웃음이 히죽히죽 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흐흐흐...동상이몽이네.”
같은 침상에서 자며 다른 꿈을 꾼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모든 것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한 이불을 덮는 가시버시가 되어 사는 것, 그래서 같은 침상에서 자며 다른 꿈을 꾸는 것은 역시 신의 한수였다. 부부는 같아야 사는 것이 아니라, 달라서 살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왜 그동안 몰랐었을까?
늦은 시애틀의 밤 하늘엔 윤동주 시인이 보았을 법한 예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데, 오늘도 우리 부부는 같은 침상에서 자며 다른 꿈을 꾼다.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그러했듯이.
첫댓글 놀랍네요. 단 몇 시간만에 클릭수가 무려... 이렇게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부지런히 글 올리세요.ㅎㅎ 재미 있습니다. 동상이몽하며 사는 부부 이야기. 다들 그리 살고 있으니 공감도 높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동화(?)를 차용한 구성도 재미 있습니다.
저도 클릭수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ㅎ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오셨지? 하면서요. ^^;;
이 곳을 연습장 삼으라 하신 회장님 말에 그동안 쓴 글 몇 개를 올린 것 뿐이었는데 연습하려다 부담감만 잔뜩 얻어가는 기분입니다. 큰일이군요. ㅎㅎㅎㅎ
동상이몽... ^^ 너무 잘아는 사이라... 미소가 나오네요. 내가 문인협회 참 오랜 회원이었는데... 누구때문에 한번 들어와 보네요. ^^ 잘 읽고 갑니다.
맞습니다. 오래되신 회원. 저희 협회 첫번째 등록회원이시란 점 알고 계시나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어떤 분이신가 하고. 오래되신 회원은 휴면 처리가 되는데 아이디가 살아 있어, 그것도 궁금했습니다. ^^ 자주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