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치즈(Cheese)의 향기>
치즈 / 슬라이스 치즈 / 치즈 숙성
난 나이를 제법 먹었으면서도 아이들처럼 치즈를 좋아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도 덩어리에서 잘라주는 그 지역의 특산 치즈를 맛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슬라이스(Slice) 치즈도 좋아하는데 얇은 슬라이스 치즈는 그냥 먹어도 좋고 밥숟가락 위에 얹어 먹어도 맛있다.
내가 치즈를 처음 맛본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강릉의 농고(農高) 안에 있던 관동(關東)중학교에 다녔는데 학교를 오가는 길은 도깝재를 넘어 노가니골(內谷)을 지나고 모레고개를 지나 담산리 골짜기를 통과하여 학산 3리 집까지...
대충 20리(8km) 정도는 되었던 듯싶다.
노가니골 안쪽에 자그마한 과수원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마을의 이씨네 과수원집과 사촌지간으로 노가니 과수원집 아들은 강릉중학교에 다녔지만 우리 마을로 자주 놀러오곤 해서 친구로 지냈고 나와 동갑으로 학년도 같다.
어느 봄날, 학교가 끝나고 오다가 노가니골 입구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야, ○○야, 반갑다야. 잘 있었나?”
어쩌구 인사를 나누며 둘이 오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자기 집에 들러 놀다 가라고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집에 치즈가 있는데 무척 맛있다고, 같이 먹자고 한다.
당시 부잣집으로 치부되던 그 친구 집에 대한 호기심 반, 평생 먹어보지 못하고 이야기로만 듣던 치즈를 맛볼 수 있다는 호기심 반으로 친구를 따라갔다.
골짜기 안쪽 과수원 철조망 문을 들어서니 덩그렇게 지은 일본식 2층 적산가옥(敵産家屋) 건물이 있다. 집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는데 그 친구는 가방을 내팽개치자마자 찬장을 열더니 그릇에 담긴 커다란 치즈 덩어리를 꺼낸다.
두부처럼 생긴 처음 보는 노란 덩어리가 치즈라는데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친구는 우선 숟가락으로 한쪽 구석을 뚝 잘라 자기 입속에 넣고 맛있다는 표정으로 우물거리며 다시 그만한 크기로 한쪽을 뚝 잘라 내 코앞에 내민다.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덥석 숟가락의 치즈 덩어리를 입을 벌리고 받아 물었는데.....
형언할 수 없는 역겨움으로 갑자기 속이 뒤집힌다.
꼬리꼬리한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미국 놈 옆에 가면 나던 노린내 비슷하기도 한데 또 짜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친구 녀석은 그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에 미제(美製) 과자도 있고 재미있는 미국 만화책도 있다며 자기 방으로 가자고 한다.
역겨운 치즈 덩어리를 입에 문 나는 치즈가 녹으면서 침까지 고여 흘러내릴 형편으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어 안절부절인데 친구는 눈치도 없이 종알거리며 나를 이끈다.
“치즈 맛있재?” “응, 응, 맛있네.”
나는 삼키지 못해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을 몰래 훔쳐내며 우물우물 말을 꾸며댔다.
“미안한데 집에 빨리 가야 돼. 늦게 가면 어머이한테 야단맞아....”
갑자기 내뱉는 내 말에 멀뚱히 쳐다보는 친구를 뒤로하고는 도망치듯 문을 나섰다.
서너 발자국을 서둘러 걷다가 뒤돌아보고 친구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풀 섶에 입에 문 것을 뱉어냈다.
입속에 감도는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연신 침도 뱉고 옷소매로 입가도 닦아 냈지만 좀처럼 그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보기는 좋은데 맛이 뭐이 그따구나.... 이런 거를 미국 놈들은 어떻게 맨날 먹구 사나....”
그 기억 때문인지 치즈나 버터의 향은 꽤 나이를 먹을 때까지 거부감을 지울 수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향에 사족(四足) 못쓰게 되었으니 사람의 입맛도 꽤나 간사스러운 것 같다.
※ 치즈(Cheese)와 버터(Butter)
치즈(Cheese)는 동물들의 젖으로 만드는데 보통 소젖인 우유(牛乳)로 만든다고 한다.
영양분이 매우 풍부한 우유에는 여러 가지 영양소가 들어 있는데 그중에서 단백질(蛋白質)을 걸러내어 굳힌 것이 치즈라고 하며, 비슷한 것으로 버터(Butter)도 있다.
우리가 통상 ‘빠다’라고 불렀던 버터는 우유에서 지방(脂肪)을 추출하여 굳힌 것이라고 하는데 영양분이 풍부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영양소에 차이가 있고 맛도 다르다.
또 비슷한 식품으로 마가린(Margarine)도 있는데 버터와 비슷하여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이것은 식물성 기름을 추출하여 우유와 섞어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섞으면 불포화지방산(不飽和脂肪酸)이 되는데 수소(水素)를 첨가하여 사람이 소화하기 쉽도록 포화지방산(飽和脂肪酸)으로 만들어 고체로 굳힌 것이 마가린이다.
6.25 사변 후, 미국의 후원인지, 유엔이 주도했는지, 배급(配給)이 일상화되었었는데 주로 옥수숫가루(玉粉), 밀가루 등이었고 우윳가루(粉乳)도 배급하였다. 분유(粉乳)는 냄새만 맡아도 너무 향긋했고 아이들은 손으로 집어 입에 털어 넣다 보니 온통 입가는 물론 얼굴까지 허옇게 되었지만 희희낙락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우윳가루를 벤또(도시락)에 담아 밥솥에 찌면 딱딱해졌는데 그것을 들고 이빨로 갉아먹던 기억도 있다.
이따금 어머니께서는 우윳가루에다 밀가루를 섞었는지 물을 넣어 반죽하여 밥솥에 쪄내면 한결 부드럽고 쫀득거릴뿐더러 기막히게 맛이 좋았던 기억도 있다. 아시아 민족 중에서 키가 가장 큰 우리 한민족(韓民族)..... 전쟁 이후 더욱 쑥쑥 키가 자랐는데 혹시 이 우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ㅎ
돌이켜보면 6.25사변(事變) 후 찢어지게 가난에 허덕이던 우리나라가 채 70년도 되기 전에 세계 10대 경제대국(經濟大國)으로 성장하였으니 그저 놀라울 뿐으로, 단군(하느님?)께서 우리 한민족에게 내린 은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