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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추수감사주일. 언제나 감사합니다 (27P)
손양원 목사님의 10가지 기도문
(총살 당한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여순 반란 사건 때
동인, 동신 두 아들을 공산당에게 학살 당한
손양원 목사님이
그 아들의 장례예배에서 한 감사이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3. 삼남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드립니다.
4. 또한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든,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감사합니다.
6.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7.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감사합니다.
9. 이같은 역경속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10.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천국 문을 여는 감사의 열쇠 (3P)
유대인의 제 2의 경전인 탈무드에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존경 받는 랍비 중 한 사람인 그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책을 보기 위한 등잔과 시간을 알리는 수탉, 먼 길을 위한 나귀와 토라를 가지고 갔다. 여행 중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 잠을 청하니, 모두들 거절했다. 언제나 감사만 하는 아키바는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것이야. 라며 오히려 감사하며, 마을 어귀에서 잠을 잤다.
길에서 노숙하려니 잠이 오질 않아서 토라를 읽으려고 등불을 켰으나, 바람이 불어 꺼졌다.
아키바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거야. 하고 오히려 감사했다.
다시 잠을 자려고 잠을 청했더니, 여우의 울음소리에 나귀가 놀라서 멀리 도망 갔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불평했을 텐데,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거야. 하고 오히려 감사했다.
나귀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수탉도 놀라 멀리 날아 가 버리고 말았다. 그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토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키바는 더 유익하게 해 주실 거야. 라며 오히려 감사했다.
이튿 날 아침에 날이 밝았고, 마을에 들어 가 보니 전날 밤 도적 떼가 그 마을을 습격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님은 그 위험 속에서 감사하는 아키바를 지키시려고 등불도 꺼지게 하시고, 나귀와 수탉을 멀리 달아 나게 하신 것이다.
감사하는 아키바를 구해 주신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한다. 이것이 자족하는 생활이다.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빌 4:12)고 했다. 자족이란 말은 주어진 환경에서 언제나 감사하며 만족하는 생활이다. 자족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곧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다.
살전 5:18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사업 가정 건강 즉,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환경을 초월한 감사다.
건강할 때 감사했으면, 병들어도 감사해야 한다.
순탄한 중에 감사했으면, 역경 중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풍족할 때도 감사했으면, 궁핍할 때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이런 감사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주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주 안에 있는 생활이 걱정 근심이 없는 생활이다.
찬송가 370장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이다.
(1)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 가 내 집을 풀었네
후렴: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 가리
(2)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3)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4)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 하시네
빌4:13절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는 오직 주님 한 분 밖에 없다. 주 안에 있을 때,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린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진정 행복해진다.
감사의 비결도, 자족의 비결도,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
서울 천호동교회 여성삼 담임목사(53)는 부친도 목사였으며 일연목(일치와 연합을 위한 목회자 모임)의 회원으로 은혜롭고 역동적인 교회 만들기에 앞장 서고 있다. 목회 비전을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에 두고, 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영성훈련을 강조하는 여목사는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에 대지 3만 5000평의 실촌수양관을 건축, 한국교회를 위한 영성훈련의 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47년에 창립, 54년의 역사를 가진 천호동교회는 현재 16명의 교역자와 33명의 장로, 6,500명의 성도를 가진 교회로 국내외 선교에 최우선을 두고 있다.
현재 러시아 태국 중국 볼리비아 이스라엘 네팔 뉴질랜드 캐냐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지 신학교 건축과 교회 설립에도 힘쓰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선교부장으로 개척교회과 설립에도 적극 나서고 있으며, 매년 전국교역자수련회를 개최, 목회자 연장 교육을 통한 건강한 교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여목사는 목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 있는 복음 전파와 화목한 성도의 교제에 목회의 중점을 두고, 조직적 교육과 신앙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천호동교회는 교회학교가 교육관 6층의 단독 건물을 갖고 모범적으로 운영, 많은 교회들이 탐방하고 있다.
서울신학대학원과 카나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여목사는 천호동교회를 사역하며 서울경찰청 경목, 중앙신학교 교수, 극동방송 방송설교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2.17. 설날 아침의 중보기도(gang hannah 강한나 전도사, 3P)
배종부 목사의 금, 토, <초교파연합회복성회> 안내
매주 금, 토 오후 2:00
서울 새성교회
*앞으로 <성령의군대> 지도목사인 배종부 새성교회 담임목사는 계속되는 부흥사역과 매월 1주 월 오후 2시의 <성령 컨퍼런스> 외에, 많은 분들의 기도 요청으로 금,토 <연합기적기도대성회>를 월. 화. 수 3일 간 오후 2시, 저녁 7시, 총 6회 성회로 실시합니다.
<성령 컨퍼런스> 에 오시지 못하는 분들은 따로 오셔서, 성령의 말씀을 받고, 모든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13대 특별기도 ♥ 를 충분히 개인기도로 받을 수 있습니다.
1>.축복기도, 2>.신유(神癒)기도, 3>.예언기도, 4>.영분별기도, 5>.축사(逐邪)기도, 6>.방언통역기도, 7>.영적무장기도, 8>.십자가확인기도, 9>.문제해결기도, 10>.은사전이(轉移)기도, 11>.사명기도. 12>.사랑하는 사람의 중보기도 13).내적치유기도 등등...
강한나 목사의, 배종부 목사를 위한 중보기도
(2018.2.15.설날 아침, 강한나 목사의 중보기도를 소개하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이 기도는 ‘殉命의사람’, ‘성령님의侍從’ 배종부 목사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중보기도입니다. 제가 느낀 것은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 마음으로 중심을 다하여 중보기도 할 때에, 그 기도를 주님이 들으신다는 영감을 깨달았습니다.
판단하며, 상대방을 고치려 하며, 허물을 가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중보기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는 어느 사이에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만이 슬그머니 들어 와 자리를 잡습니다.
진정한 중보기도는 나의 일로 생각하고 탄원하며, 신음하며, 통곡하며 올리는 중보기도입니다.
제게 이러한 중보기도자 들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영광 돌립니다.
히스기야 왕이 생명을 연장할 때,
해시계가 뒤로 10도 물러 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을 기브온 땅에서 물리칠 때,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물고,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며,
대적을 다 물리칠 수 있도록,
태양이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 가지 않았는데~~
그런 능력과 권능을
배종부 목사에게 주신다 하시고,
엘리야 같은 종이며,
베드로가 3,000명씩 회개시킨 것처럼,
큰 스타디움 집회에서 회개와 각성이 일어 나고~~
사도 바울의 능력을 다 갖춘 종이 되며,
성경의 크게 쓰임 받은 모든 사람들처럼
배목사가 쓰임 받게 될 것이니,
지금 배목사를 위해 중보기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강한나 목사 너는 낙심하지 말고~~
지금도 예수님이 천사들을 동원해서
너의 외치는 기도가 다 상달 되게 하시고~~
배목사를 위한 네 방어 기도가 다 이루어지니,
낙심 말고 크게 외쳐,
네 손과 팔을 들어 다 대적기도 할 때에,
악한 것들은 떠나 가고 능력 만이 나타 나니,
큰 소리로 모든 귀신 들을 물리치라
하십니다~~
혹시라도 배목사가 최고의 종이 됨으로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의 자리에서 벗어 나지 않도록,
저희 부부가 늘 깨어 기도하고,
곁에서 권고 하시라고 합니다^^
며칠 전 잠에서 깨어 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배목사에게 능력ㆍ권능ㆍ물질ㆍ영권이 7배나, 70배나, 700배나
더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제가 700배나요? 하니까
‘완전한 능력이다’ 하셨습니다.
요즘 저도 겁이 나는 게
목사님 중보기도만 하면
집회 때든, 중보기도 시간이든
엄청나게 계속 선포하게 하시고,
말씀을 계속 주시는데~~
이 계집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심은 어떤 은혜입니까?
여쭤 보니까~~
너를 새성교회 중보 기도자로 보냈으니,
이제 골방기도로
기나 긴 세월 동안,
배목사님과 새성교회가 눈물로 뿌려 놓은 것
거두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사랑해요’
고백하면 눈물이 주룩 흐릅니다~~
평생을 새벽 기도 한번 안빠지고 가려고 노력하며
주님 사랑한 것 때문에,
주님은 언제나 저를 사랑 하셨습니다~~^^
요즘 저를 쓰시는 주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
1.언제나 감사합니다
욥기 2:7-13절
7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11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12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2019.11.17일 주일, 2019년 추수감사주일이 다시 왔습니다.
‘감사’는 목사인 제가 일상에서 늘 누리고 사는 축복이라, 따로 설교 주제로 삼은 적이 없음을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성도들이 정말 넘치는 성령 충만함 속에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일들이 너무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몸이 너무 피곤하고, 자꾸만 코가 막히고,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들끓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인가 보다 하고, 지나 갔습니다. 오늘에 이르니 잔 기침이 나며, 가래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하! 감기가 왔구나!”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의 변색됨이 없이 크게 설교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니, “내가 너무 건강하구나?” 하고, 오히려 감사가 나왔습니다.
옛날에는 비가 오면 농사를 짓고,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지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농사기술이 개발되면서 저수지를 만들어서 날이 가물어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더 발전해서 겨울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도 딸기가 나오고, 수박이 나오고, 모든 과일 채소가 나와서 1년 내내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채소농장, 곡식농장, 동물농장 등이 대규모 공장식으로 지어져, 대량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아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날이 속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기후에 전혀 제한 받지 아니하고, 일기에 제한 받지 아니하고, 1년 내내 짓는 농사를 전천후 농사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어렸을 때 ‘천수답’이라는 것이 있어서 산등성이에 있는 논은 비가 오면 농사를 짓고,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지었습니다. 또 모를 심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다 말라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밭에까지 수리 시설이 되어서 비가 오지 않아도 농사를 짓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환경이나 우리에게 오는 시련이나 역경에 영향을 입지 아니하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전천후 감사생활’이라고 말합니다. 비가 오면 감사하고, 날이 가물면 한탄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비가 와도 좋다, 가물어도 좋다, 겨울이 와도 좋다, 가을이 와도 좋다, 계절에 관계없이 어느 때든지 좋다’ 이렇게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축복,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똑같은 예수를 믿지만 즐겁게 믿는 사람이 있고, 괴롭게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늘 행복을 얻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전혀 마음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분명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예수를 믿고 늘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 감사하기를 원하느냐? 내가 늘 감사하므로, 나에게 놀라운 삶의 변화, 마음의 변화, 대인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로, 감사함으로 내 생이 행복해집니다.
두번째로, 감사하므로 내 삶의 의미가 새로워집니다. 새로운 삶의 가치가 형성됩니다.
세번째로, 감사하므로 내 인격이 높이 성숙합니다.
네번째로, 감사함으로, 모든 면에서 삶의 의미가 점점 상승합니다.
이 4가지는 감사가 주는 최대의 축복입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합니다. 감사한 만큼 우리 마음이 기쁩니다. 똑같은 부부가 살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행복합니다. 내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살 맛이 납니다. 그러나 감사를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인생은 아무 살 맛이 없습니다. 괴롭습니다. 힘듭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고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감사를 찾아 내야 됩니다.
성경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고난의 승리자를 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부자였습니다. 양이 7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백 겨리요, 암 나귀가 5백 마리인, 당시의 사회로 말하자면 대재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추앙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후덕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악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생일잔치를 할 때는 혹시나 먹고 마시면서 잘못됨이 없을까 해서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다음 날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했습니다.
욥은 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감사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잘될 때 교만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잘될 때 교만하지 아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복입니다. 부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가난할 때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잘못 될까 하여,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신명기 8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 두번째로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이 힘으로 내가 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내게 재물을 얻을 능을 주셨음이니라.”
안될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욥에게 어려운 때가 왔습니다. 재산은 일시에 없어졌습니다. 자식이 태풍으로 일시에 다 죽었습니다. 몸에 병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질그릇 조각으로 긁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악창이 온 몸에 덮쳤습니다.
아내까지도 “당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 봤자 뭐 나온 것이 있나, 그래도 온전함을 끝까지 지킬 것이냐?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하고 죽으라.” 고 하면서 욥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그 때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어찌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같이 말할 수 있느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나님께서 주신 것 하나님께서 가져 가셨는데 무슨 불평할 것이 있겠느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충격 받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기를 비웠습니다. 속에 물질로 가득 찬 사람은 물질을 잃어 버리면 죽습니다. 권력으로 가득 찬 사람은 권력을 잃어 버리면 죽습니다. 자기 속에 가득찬 것을 빼앗기면 죽습니다.
그런데 욥은 마음을 비웠습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현재 내게 있는 것으로 족하다. 알몸으로 나왔은즉 알몸으로 돌아갈지라.”
이 욥의 신앙고백이 우리 마음에도 가득 차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어 넘어질 상황에도, 욥은 일어 났습니다. 기절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이미 비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욥에게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9-11)
사단이 하나님께 참소하기를 “욥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조건이 있으니까 감사하지, 조건 없이 감사하겠습니까? 욥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의 집과, 사업과, 그의 모든 일들이 잘되니까 감사하지, 그것을 한번 쳐 보소서. 당장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욥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욥을 내리쳤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욥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기름부어 주신 것입니다.
2.가장 중요한 감사-사무엘 라이프워츠
사무엘 라이프워츠라는 변호사가 있었는데, 아주 성실하고 유능한 변호사였습니다.
이 분의 변호를 통해 사형 구형을 받은 죄수 78명이 사형 언도를 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78명 가운데 라이프워츠 변호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그토록 많이 들어 오는데, 이 변호사 덕택에 생명을 건진 죄수들이 보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열 문둥병자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매일 아침 4Km 씩을 뛰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은 유럽 여행길에서 너무 피곤해서 뛰지 않고 늦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억지로 일어나서 뛰었는데, 그 때 어느 발 없는 노인이 창가에서 자기를 부러워 하는 모습을 발견했고, 호숫가에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산책을 하던 중년신사가 선망의 눈초리로 자기를 보는 것을 발견하고서, 자신의 게으름과 또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잊었던 일을 뉘우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감사를 해야 합니까?
풍년 주신 것, 장사가 잘 되는 것, 합격된 것, 취직된 것, 진급된 것... 물론 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감사는 이방인도 드릴 줄 아는 감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 믿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은 일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이 예배 자리에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은 물론 감사하구요.
내 주변의 사랑하는 분들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평온한 이 하루 하루의 일상의 행복을 감사해야 합니다.
점점 감사의 폭을 넓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를 표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의 삶은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 옵니다.
우리는 1년 한 해를 보내면서 가장 우리 생에 중요한 추수감사절을 맞았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우리 생의 중요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감사하는 자는 자기 존재가 영광스럽게 됩니다.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면 천해집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기억했다는 인간됨 때문에 훌륭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지성인이라 할지라도 불평하는 사람은 천해집니다. 우리가 자기 존재를 영광스럽고 위대하게 만드는 비밀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공부 많이 하고, 출세한 자식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해서 출세는 못했지만,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 부모는 자식에게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길러 가면서 어렸을 때는 인물 좋은 자식이 마음에 듭니다. 자라면서는 공부 잘하는 자식이 괜찮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자녀들이 결혼도 하고, 형편에 따라서 출세도 하는데, 마지막 늙어서 부모님 마음 속에는 그런 것이 다 의미가 없고,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효도하는 자식이 최고입니다. 그러니까 자식을 길러 가면서 효자를 길러야지, 공부 잘 하는 자식 기르려고 신경 쓰지 마십시오.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식이 최고의 자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너, 내 아들 되었으니 출세해라. 공부 잘 해서 나에게 영광 돌려라. 사업도 잘 해서 사회에서 잘 되면 좋지.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효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는 비밀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을 알아 사는 것도 아니요,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IQ가 높아야 최고였지만, 지금은 EQ가 높아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속에서 우러날 때, 우리 존재가 영광스럽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됨입니다. 사람됨이 따로 있나요? 은혜를 기억하고 사는 것이 사람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사람 중의 사람은 은혜를 은혜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면 내가 행복하게 됩니다. 감사할 때 행복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을 가졌구나!’ 그러면 감사한 마음 때문에 살았다는 것이 가슴에서 뭉클한 감격이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할 때, 감격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메말라 가는 이 세상에서, 모두 다 말라버린 인정 속에서, 감격하고 감동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복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그 마음속에 행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을지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그 순간에 ‘아,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하고 행복감이 솟아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 때부터 인생을 살 용기가 생깁니다. 창조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인생은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해 줍니다. 과거를 불평한다든지 후회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들이 다 나에게 의미를 주고, 보람을 줄 때 미래에 대한 패달을 가속화 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과거를 탄식하면 미래가 없습니다. 과거의 어떤 것도 후회하지 마십시오.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미래에 소망을 주려고 하는 예정된 코스였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저는 제 생애의 한 장면을 하나 하나 만들어 가면서 하루 한가지, 한가지 사건이 하나님의 예정된 코스였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내가 삶의 현장에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그 삶 속에서 감사를 만들어 내십시오. 감사의 보약을 만들어 내십시오. 그 때 우리의 골수가 윤택해질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때 소화가 됩니다. 부부가 살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 때, 거기에 사랑이 싹터 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한없는 영광을 돌리며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나의 것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새성가족들은 헌금생활을 잘 합니다.
매주 드리는 5대 헌금인 십일조헌금, 주정헌금, 선교헌금, 건축헌금, 일천번제감사헌금, 그리고 각종 주간의 집회들과 부흥성회 헌금, 절기헌금... 등등 정말 자랑하고 싶습니다.
큰 돈을 헌금할 경제적 부는 없지만, 정성을 다하여 헌금생활을 해 나갑니다. 진정 아름다운 신앙의 자세입니다.
“어떻게 한 주간도 빠지지 않고, 감사로 일천번제헌금을 합니까?”
“어떻게 해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까?”
감사함으로, 일천번제헌금을 드리기를 계속하여 3개월이 되어도 별로 잘 되는 것도 없고, 감사를 했다고 은혜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1년 동안 계속합니다. 3년을 계속합니다. 10년을 계속합니다. 20년을 계속합니다.
첫 번째 일천번제가 20년 만에 끝나고, 다시 두 번째 감사함으로, 일천번제헌금을 드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그 액수도 상당히 늘어납니다.
어느 사이에, 매주 일천번제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그것이 습관이 되고, 삶이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사가 나의 삶이 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사업이 잘 됩니까?”
“네. 사업 잘 됩니다.”
목사님이 안된다는 얘기를 듣고 물었는데, ‘잘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무슨 사업이 잘 됩니까?” 했더니, “예, 저는 한가지 사업은 불경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사업은 불경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향하는 사업은 불경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은 그 여종에게 절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여종이 매주 감사하는 것을 보고, 목사님도 감사를 매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천후 감사’가 우리 속에 흘러 넘쳐서 하늘을 품에 안고 땅을 디딜 때, ‘모든 것이 은혜다, 모든 것이 감사다, 모든 것이 축복이다.’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결실의 계절에 감사를...
고향
고향과 같은 의미로 우리는 따사로운 어머니의 품,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안식과 쉼이 있는 곳 하나님 나라를 연상하게 됩니다.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느 새 어머니 품처럼 따사로움이 저며 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렇습니다. 꿈엔들 잊을 수 있겠는가?
비록 지금은 옛 모습 간 곳 없고, 흉칙한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 차 있고, 4차선 도로가 고향 앞 동네까지 뚫리고, 시에 편입된 산골 마을까지 무슨 무슨 ‘가든’ 이라는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섰으며, 논바닥을 갈아 엎은 곳에는 장급 여관과 러브호텔이 솟아 있습니다.
작가 이문열 씨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라고 전제하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 시인은 ‘고향에, 고향에 돌아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로다’ 노래한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향을 찾습니다. 명절 연휴 때면 수 천, 수 백만 명이 대 이동길에 오릅니다. 고향을 떠나 왔던 사람들이 다시 고향을 찾는 것입니다. 작년에 실망하고 돌아섰던 그 고향을 올해도 여전히 설레이는 마음으로 찾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의 고향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고향이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하나님 품인 것을 확인하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4.감옥과 수도원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은 ‘고립’이란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 미국의 데이비드 소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근본적인 차이는 단지 불평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는 차이일 뿐이다. 수감된 죄수가 수도자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감옥은 수도원으로 승화될 것이고, 반면에 수도자가 불평의 마음을 가질 때 수도원은 감옥으로 전락할 것이다.”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고립되었을 때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환경과 앞 날을 의미있게 가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에 대하여 너무 감사할 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리야 해변에서 말씀을 듣는 무리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방황한 것을 보셨습니다. 해는 지고 사람은 1만 오천 명 이상이 모여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걱정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도와 주심을 먼저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종교가 윌리엄(1686-1761)은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항상 감사한 생활을 했습니다.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에 있다.”
감사야말로 인간을 가장 쉽게 부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빵 한 조각을 받아 들고 감사를 하는 이디오피아의 노인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 일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곧 축복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즉 소년이 가진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렸더니, 1만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하는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음에 큰 것을 바라면, 큰 것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 드리는 감사는 이 세상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곧 전천후 감사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전천후 감사와 사랑의 시간입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가르쳤습니다. 크리스챤에겐 사랑의 사건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의 시간은 전천후 사랑과 밀월의 시간인 것입니다.
주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해서 유익함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환경이나 사람에 의해서 주어지거나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과 상관이 없이 속에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감사생활의 의미와 가치는 대단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말씀은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해야 할 것을 보여 주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 가운데 떨어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심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소돔 사건 속에서도, 노아 방주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계심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여 주신 말씀입니다.
(창45:5)에서는 요셉은 말씀하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출15:2)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하십니다.
5.감격스런 감사-김준곤 목사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언어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표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6.감사-우찌무라 간죠
우찌무라 간죠와 가가와 도요히꼬는 일본의 2대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일본에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이질’이라는 질병으로 뇌성마비를 얻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 우찌무라 겐죠가 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몰골이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 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성경책을 머리 맡에 펴 두고 머리를 받혀 놓고 나면 돌아 오기까지 그 장 만을 보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고린도전서 12장을 읽어 내려 가던 중이었다.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 바울은 자기처럼 눈에 박힌 가시를 제해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 고 하신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도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자판을 집어 갈 때 윙크하는 방식으로 복음적인 시를 지어 두 편을 발표하였다.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 길을 마다 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 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회고적인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 이다.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죄인도 하는 것이다. 성도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는 감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감사는 스스로 걸어 갈 힘이 없을 때,
우리를 도우실 끈이 된다.
7.감사-이성교
웬 말인지, 웬 은혜인지
날 구원해 주시고
당신 홀로 십자가 지셨으니
무한 감사하옵나이다.
그 사랑, 그 은혜
무엇으로 다 갚으리까
만 입이 있어도 그 고마움
다 칭송할 길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영 죽을 몸
칠흑같은 어두움에서 날 건져 주시고
살아갈 새 소망 주시니
무한 감사하옵니다.
오, 당신의 사랑
헤아릴 길 없어라
잠을 자도 감사,
일을 해도 감사,
내 일생 기도는
오직 감사 뿐입니다.
구원의 두 측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 사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난 역사적 절대사실입니다. 그것은 태양의 존재 만큼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나의 죄와 죽음을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의 의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믿으면, 나와 예수님은 일체가 됩니다. 법적으로 하나가 되고, 심리적으로 하나가 되고, 영적으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십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성령 내 성령, 예수 삶이 내 삶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미 나는 죽었다고 선언하심으로 절대 죽었고, 하나님이 다시 예수와 함께 살리심으로 중생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처럼, 나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활 환경을 갖습니다. 구원은 죽은 구원이 아니라 풍성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대적의 손에서 구속하셨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방황할 때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처절한 곤비함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응답하십니다.
고통 중에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실패했을 때 부르짖는 것입니다. 환란의 때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곧 주님은 부르짖는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한 성에 거할 수 있도록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 행하신 여호와의 사랑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맨 주먹 쥐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가정 주시고 자녀 주시고 부모님의 은혜를 받게 되고,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물질도 주셨으며, 건강도 주셨습니다. 특별히 택하시고 부르시고 주의 백성 되게 하신 것도 주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사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심으로, 모자라고 수치스러운 백성인데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들에게 기이한 일들을 보이신 것입니다. 즉, 주의 백성들을 훈련하시고, 사랑하시고, 도우신 것입니다. 각가지 기적들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신 것입니다. 또한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것입니다.
8.감사-토레이 박사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습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여 23명을 구출해 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R. A. 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 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 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단 한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의 생을 훈훈하게 지펴 주는 불씨와 같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불만이 편만한 세계는 한대지방과도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든지,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등의 따뜻한 말 한 마디는 우리네 삶의 주변을 꽃향기처럼 향기롭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내가 사랑했던 동역자들의 배신을 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요.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음으로써, 나는 더욱 더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인도하십니다.
감사는 씨앗과도 같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노래한 것 기억나십니까? 이처럼 씨앗이라고 하는 것은 시작,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눈물의 시작이고 근원이라 노래한 것은 씨앗은 가지고 있으면 그 자체 뿐이지만, 심으면 싹이 나고 꽃이 핍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지만, 그러나 사랑이 시작되면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연애할 때는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결혼을 할 때는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또 결혼을 한 후 현실에 부딪혀서 살다 보면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고,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 사람을 사랑했던가’ 하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참 이 사람을 잘 만났다 라고 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둘 중 어디에 해당되십니까?
늘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잘 준비하고 대처하면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상처도 덜 받고, 눈물도 덜 흘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가 씨앗이라고 하는 말은 감사가 모든 것의 시작,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당장은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감사가 복인지, 성공인지, 실패인지, 저주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해 보면, 감사를 믿음의 밭에 심어 보면 감사는 모든 복의 시작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차 대전으로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 독일 비행기가 영국을 폭격했습니다. 그로 인해 영국이 다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후 2차대전이 끝난 후에, 영국의 해변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꽃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그 꽃은 멀리 호주에서 나는 꽃으로 그 꽃이 바람과 물결을 타고 와서 영국의 해안에 닿게 된 것입니다. 그 때 폭격으로 해안의 땅이 뒤집어져 꽃이 필 수 있게 심기워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이, 전쟁이, 폭격이, 아픔이 꽃을 피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가리워져 있다가 어떤 사람은 고난이, 전쟁의 아픔 때문에 꽃을 피우는 인생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우리가 감사가 잘 안되기에, 하나님을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엄청난 사랑으로 용서하시며 주의 평강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요, 이 감사 계속 하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말씀으로 채워지고, 찬송으로 영광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 결실의 계절에 감사가 넘치는 삶을 재확인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9.고통 중에도 감사합시다
새로운 오늘,
오늘도 은혜의 빛 가운데서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시편 69:1-12절을 묵상해 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 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 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시69:1-3).
고통 중에서 부르짖었던 다윗의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도 다윗의 생애 말년,
아도니아의 반역으로 인한 혼란 중에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고 보면,
다윗의 생애는 고통의 눈물로
점철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생애 초기 사울에게 쫓기던 때,
그리고 생애 중반,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한 곤경,
이제 생애 마지막 시점에까지....
누군들 고난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우리가 잘 이겨내기만 하면
고난은 도리어 우리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차이가
고난의 유무로 인한 차이였다고 하지요.
다윗은 숱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그 많은 기도와 찬양이 풍성했던데 비해,
솔로몬은 아버지가 닦아 놓은
안정된 토대 위에 있었기에 고난을 몰랐고,
자신의 힘과 지혜만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지 않아,
방종과 문란한 생활 속에서
'헛되고 헛된' 생애를 살았던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고통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를 지켜주는 사랑의 끈이 되며,
삶을 보다 진지하고 겸손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지요?
폴 브랜드 박사(Dr. Paul Brand)는
나병에 대한 권위자로 상당히 이름난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카빌(Carvill)에 있는
나병환자 재활원의 원장으로,
다음과 같은 체험으로 놀란 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출장 차 미국을 떠나 브랜드 박사는
비행기 편으로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갔습니다.
그는 영국의 몇 군데에서 일을 본 후에
여러 시간의 기차여행 끝에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호텔에서 잠자리에 들려고
신발을 벗고 양말 한 짝을 벗었는데,
발 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일이 별 것 아니겠으나,
인도에서 수많은 나병환자를 수술한 경험이 있는
세계적인 권위의 나병전문가에게는
순간적으로 심각한 의심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핀을 찾았습니다.
자리에 앉은 브랜드 박사는 핀으로
발의 복숭아 뼈 밑부분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핀을 더 깊이 찔렀습니다.
이제 찔린 부분에서는 피가 솟아났지만
그래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나병에 감염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밤이 새도록 브랜드 박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 나병환자로 살아가야 할
자기의 두려운 인생을
머리에 그려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버림 받은 자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의료진으로부터 백안시 되는 입장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고통의 밤이 지나고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아침과 같은 희망이
이제 자기 인생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핀으로 어제 찔렀던 복숭아 뼈 밑 부분을
꼭 눌러서 쑤셨습니다.
순간 그는 기절할 듯이 아파서 고함을 쳤습니다!
그 아픔, 그 고통은 정말로 축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그가 깨달은 것은,
어제 장시간의 기차 여행으로 앉아 있는 동안에,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발이 마비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로 브랜드 박사는 실수로 손가락을 칼에 베었을 때도
그 고통에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이 아파 펄쩍 펄쩍 뛰면서도
그 아픔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버섯을 잘못 먹고
온 몸을 뒤틀면서 토하는 심한 고통을 당할 때도,
그는 "하나님, 나의 고통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지금 어떤 고통으로 힘들어 하시는지요?
어쩌면 지금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요,
어느 면에서는 건강하다는 표증이 아닐까요?
고통 중에 부르짖어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서 뵈올 수 있다면
이것까지도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10.기도
하나님,
나를 이유 없이 울게 하소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죽어서는
그들의 눈물로 지내게 하소서.
-마종기-
11.생명을 먹음
나는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사는 가련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이 몸을 살리려고 남의 몸을 먹사오니,
오늘도 남의 은총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남의 목숨을 먹고 사는 우리이오니,
몸이 필요한 만큼만 먹고 살게 하소서.
너무 많이 먹어 남의 생명을 낭비하고,
내 몸을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내 몸에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알맞게 먹고 힘차게 살아
밥값,
목숨값을 하게 하소서.
생명을 먹고, 생명이 자란다.
먹고 먹히는 생명세계의 먹이사슬을 보고
다윈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생존투쟁(生存鬪爭)으로 보았다.
그런데 같은 사실을 보고도
동학의 2대 교주 최해월은 이천식천(以天食天),
'하늘로써, 하늘을 먹임'으로 보았다.
하늘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는 뭇 생명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늘을 품고 있다.
해월의 표현에 따르면, 하나님(天主)을 모시고 있다.
개체의 생명으로 보면 먹고 먹히는 관계지만,
생명 전체의 자리에서 보면
생명으로 생명을 먹여 주고,
길러 주고 살려 줌이다.
유영모는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속량을 얻는다는 기독교 교리를 적용해서,
"자연 생명세계는 서로 속량함으로써, 융성해진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밥으로 내어 주고,
그 밥을 먹음으로써 생명세계에 낀 때가 씻어지고,
죄가 소멸되어,
힘있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날마다 먹는 밥은
거룩하고 신령한 것이다.
남의 생명을 먹는 것이니,
고맙게 먹고, 목숨 값을 해야 하지 않을까?
12.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십시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시는
귀한 날, 복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어젠 바람 끝이 제법 쌀쌀하더니
오늘은 그 바람도 잦아,
계절을 잊은 듯 포근합니다.
지난 해 몹시도 추웠던 겨울에 비하면
올핸 겨울 같지도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덜 추워 덜 고생하고,
난방비 지출 적어진 것도 감사할 일이지요.
오늘은 시편 65편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다윗의 찬양시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고 있고(1-5절),
이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인하여 찬양하며(6-8절),
삶의 현장 속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9-13절).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조건 가운데는
상대적인 감사와 절대적인 감사의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적인 감사란 우리의 형편이나 사정이 나아진 것으로 인한 감사요,
절대적인 감사란 우리가 받는 구원으로 인한 감사로,
모든 현실적인 조건을 초월한 감사입니다.
때로 우리는 상대적인 문제에만 매여서
현실적인 조건이 조금 나아지면 감사를 드리다가도,
조금만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아니하면
쉽게 불평과 원망으로 흐르기가 일수입니다.
어느 조건하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음이 얼마나 귀한 일일까요?
순경(順境)이면 순경대로 감사하고,
역경(逆境)이면 역경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감사할 수 있는 믿음,
이것이 진정 성숙한 믿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앨런 가디너 선교사는 주님의 섬기는 동안
수많은 역경과 육신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에게 힘을 주시는 동안에는 내게 겁날 것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1851년에 남아메리카의 남단에 있는
피톤 섬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질병과 굶주림으로 57세의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그 옆에는 가디너 선교사가 기록한 선교 일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배 고픔과, 목마름과, 상처와,
외로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쓴 한 줄의 글은,
떨리는 손이었지만 똑똑히 쓰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나는 우리 하나님이 어찌나 좋으신 분인지 감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섬기다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 가면서,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남겨 놓은 글이었습니다.
-신발 한 켤레의 사랑-에서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가
"질병이나 가난이나 전쟁,
천재지변이 신의 저주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이 없는 마음이 저주이다."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막다른 한계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던
앨런 가디너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시65:11-12).
오늘도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찬송과 감사가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샬롬!
13.나의 무능과 무력함도 감사하고...
새해에는 신비의 샘인
목숨의 시간들을
헛된 욕망으로 흐리고 더럽혀서
연탄빛 폐수로 흘러보내진 않으련다
나의 삶을 감싸고 있는
신령한 은혜에 눈을 떠서
현재로부터 영원을 살며
진선미의 실재를 내 스스로 보이리라
나는 똑똑히 보아 왔노라
눈에 보이는 사물만을 받들어 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도리를 외면하던
모든 소유의 무상한 파정을!
그리고 나는 또한 보아왔노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굳게 안고
영원의 깊은 요구에 응답하는
마음 가난한 이들의 불멸의 모습을!
이제 나에게는 나의 무능과 무력도 감사하고
이 새해를 살기에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마음의 순결, 그 하나 뿐일세
- 구 상(具常) -
14.꽃샘 바람이 차가운 것도...
마음에 아픔이 잇는 이가
도리어 웃고 있을 때
사람다울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겪었던 풍상으로 인해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픔이 있기에
냉정해질 수 있고
소나무옹이 같은 응어리가 있기에
여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절대로 슬퍼할 수 없다
이는 거짓말입니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기에 성장하고
또 그러기에 대나무가 아니겠습니까
아픔은 아픔대로 있지만
가슴에 새기며
기쁨을 꽃 피우는 것입니다
꽃샘 바랑이 차가운 것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네 삶이 아픈것도
삶을 꽃 피우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용혜원-
15.마음을 바꾸는 10가지 습관
-Dr. Archibald Hart- 훌러 신학대학 교수
1)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을 보라
See the good in others
2) 당신의 실패를 용납하라
Give yourself permission to fall
3) 바른 의식을 가지라
Keep Your conscience clear
4) 스스로 정죄하지 말라
Don't punich yourself
5) 적은 축복에 가치를 두라
Value life's little blessings
6) 긍정적인 것을 극대화하라
Accentuate the positive
7) 낙관주의자가 되라
Be the right sort of optimist
8)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드리라
Accept yourself for who you are
9)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
Stay with reality
10)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간직하라
Cherish God's love and wis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