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님에 대한 그림움을 노래한 시는 많이 있다. 모두 다 한 번쯤 생각해 봤음직한 소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움은 잘못 형상화하면 구태의연하거나 작품성이 떨어지기가 쉽다. 그런데 <동천>은 님에 대한 그리움을 잘 형상화한 시이다. ‘그리움’이 이렇게 새롭게 다가 올 수 있도록 형상화했다는 것은 시인의 재주가 보통이 아님을 알게 한다.
<동천>의 시간적 배경은 ‘동지 섣달’의 어느날 ‘밤’이다. ‘동천’은 ‘겨울 하늘’이다. 춥지만 맑고 깨끗하다. 그 맑고 깨끗한 하늘에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이 있다. 이러한 배경은 ‘그리움’의 대상인 님이 서러움이나 원망의 대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하늘에 있는 눈썹은 눈썹을 연상할 수 있는 ‘초생달’이나 ‘그믐달’을 비유한 것일 게다. 서정적 자아는 달을 보며 님의 고운 눈썹을 떠올리고 하늘의 달을 님의 고운 눈썹이라고 생각한다. 그 눈썹은 ‘즈문밤의 꿈’ 속에서 만난 님의 모습이다. ‘즈문’은 ‘천(千)’의 고유어이다. 그렇다면 서정적 자아가 님을 못 만난지가 ‘즈문’으로 표현될 정도로 아주 오래 되었음을 말한다. 꿈속에서나 님을 만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적 자아가 지니고 있는 님의 모습은 맑고 깨끗하다.
보편적으로 보름달을 보고 님의 얼굴을 그리는데 반하여 서정적 자아는 그믐달이나 초승달을 보면서 님의 고운 눈썹을 떠올린다. 님에 대한 원망이나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단지 달을 보면서 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릴 뿐이다. 님에 대한 생각을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다는 표현은 그냥 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보다 님을 향한 생각이 강하며 확고하다는 느낌을 준다.
님에 대한 슬픔이 감추어진 서정적 자아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추운 밤을 ‘나르는 매서운 새’만이 알 뿐이다. 그렇기에 ‘매서운 새’는 ‘고운 눈썹’으로 표현된 ‘달’이 서정적 화자의 님을 향한 마음인 줄 알고 안다는 ‘시늉을 하며’ 님의 ‘고운 눈썹(달)’을 ‘비끼어 가’는 것이다. 오늘밤도 잠 못 들고 님을 그리워하는 서정적 자아의 슬픔 마음을 자연만이 아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서정적 화자는 겉으로는 동천과 같이 차가운 척, 님을 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즈믄밤’ 동안 헤어진 님의 고운 모습을 만날 꿈을 꾼다.‘눈썹’을 ‘꿈으로 씻’는다는 것은 ‘눈물’로 씻는다는 것의 우회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매서운 새’는 상징일 가능성이 있다. ‘동지 섣달 나르는’ 그것도 달이 뜬 밤에 나는 매서운 새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매서운’을 ‘무서운’이라 하지 않은 것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매서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매섭다[--따]
〔매서워, 매서우니〕ꃰ①남이 겁을 낼 만큼 성질이나 기세 따위가 매몰차고 날카롭다. ¶그 사내는 특히 눈길이 매서워 보였다./자기들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담배를 태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던 헌병을 새파란 장교 한 사람이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었다.≪이문열, 영웅 시대≫ ②정도가 매우 심하다. ¶매서운 날씨/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배 창엔 비바람을 피하는 뜸이 있어 매서운 강바람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송기숙, 녹두 장군≫ ③비판이나 비난, 공격 따위가 이치에 맞고 날카로워 두려움을 주는 상태이다. ¶매서운 공격/그는 번번이 매서운 필봉을 드날렸다.
<동천>에서 쓰인 ‘매서운’은 ①, ②의 ‘사나운’의 의미가 아니라 ③의 의미로 쓰여 서정적 자아의 감추어진 감정을 알아차릴 정도로의 눈치나 견해가 뛰어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매서운 새’는 서정적 자아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어떤 새라도 가능하고 어떤 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서정적 자아의 마음을 알았다는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는 서정적 자아의 감정을 ‘새’로 표상되는 자연도 알고 존중하는 것임을 말한다.
<동천>은 표면적으로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며 맑고 깨끗한 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행간에는 새도 알아주는 ‘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감정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님을 기다리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매서운’ 눈을 가진 사람만이 알 수 있도록 숨겨서 표현한 것에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