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네 개의 문장이 10행으로 배치되어 이루어진 시이다. 이 시는 시인이 27세 되던 행에 어린 자식을 잃고 쓴 시로써 자식을 잃은 비통한 심정을 읊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속에서는 서정적 자아가 대상으로 삼은 존재가 ‘늬’로 나타날 뿐, 이 ‘늬’가 시인의 자식(서정적 자아와 시인이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상을 ‘늬’라고 말한 것에서 ‘늬’는 서정적 자아와 아주 친한 친구이거나 서정적 자아보다 어린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늬’는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산새처럼 날아’ 서정적 자아의 곁을 떠난 존재이다. 이를 통하여 ‘늬’가 젊은 나이에 고통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시는 시인의 체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시인이 이 시를 쓸 즈음에 어린 자식을 잃은 개인사가 있음으로 시인의 이러한 체험이 이 시에 나타난 ‘늬’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서정적 자아는 ‘늬’를 잃은 심정을 네 개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째, 둘째, 셋째 문장은 평서형 어미 ‘~다’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차분하게 표현하고 있다. 넷째 문장은 ‘아아’의 감탄사와 문장 끝에 감탄부호 ‘!’를 붙여 감정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을 분출하는 그 순간에도 서정적 자아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비유(산새처럼 날아갔구나)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슬픈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1행의 ‘슬픈’, 8행의 ‘외로운’ 정도이다. 그것도 ‘슬픈’은 대상의 특성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슬픔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주관적인 감정을 직접노출 하지 않는 주지주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시의 시간은 ‘겨울 밤’이다.3행의 ‘언 날개’를 미루어 볼 때에 ‘겨울’이다. 날개가 얼었다는 것은 유리 밖의 세계가 추운 상태임을 알려준다. 2행의 ‘입김’도 이를 알려준다. ‘겨울’ 죽음의 의미를 지닌 계절이다. 그리고 ‘밤’도 죽음의 시간이다. ‘밤’은 ‘낮’의 반대이다. ‘낮’이 ‘생명이 활동하는 시간’, ‘산 자와 만남의 시간’이라면 ‘밤’은 이와는 반대로 ‘죽은 자의 시간’, ‘죽은 자와 만나는 시간’이다. (밤을 이렇게만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있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밤’은 ‘죽은 자’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첫째 문장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에서 ‘유리(琉璃)’는 산 자의 세계인 ‘유리’의 안과 죽은 자의 세계인 유리의 밖을 구별짓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또한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새까만 밤’(5행)을 시인의 슬프고 허전한 마음으로 본다면 ‘유리’ 밖의 세계는 시인의 마음에 자리잡은 감정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유리’에 어른거리는 ‘차고 슬픈 것’은 차고 슬픈 기억의 떠오름이다.
둘째 문장에서 ‘차고 슬픈 것’은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차고 슬픈 것’은 10행에서 ‘산새처럼 날아간’ ‘늬’다. 그러기에 새처럼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다. 대부분의 평자들이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을 입김이 유리에 닿았다가 없어져 가는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보면 하나의 모순이 발생한다. ‘입김’은 ‘차고 슬픈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찬 것을 덥게 하는 것이다. 역설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지만 10행에서 ‘차고 슬픈 것’의 원모습인 ‘늬’가 ‘새’로 비유된 것에서 표현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므로 ‘입김을 흐리우’는 행위는 유리에 어른거리는 ‘차고 슬픈 것’을 닦아 없애려는 행위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열없이’는 열이 없으니까 ‘차겁게’ 또는 ‘흥분하지 않고’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서정적 자아는 별 감정 없이 떠오른 ‘차고 슬픈’ 감정을 없애려고 유리에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린다. 그러자 ‘차고 슬픈 것’이 ‘길들은’ 새처럼 나를 아는 듯이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셋째 문장에서는 ‘차고 슬픈 것’이 ‘별’이 된다. 서정적 자아는 ‘차고 슬픈 것’을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는 행위를 반복한다. ‘새까만 밤’을 서정적 자아의 ‘어두운 마음’으로 본다면 ‘차고 슬픈 것’을 지우는 서정적 자아의 어두운 마음은 조금 ‘밀려 나’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과정에서 서정적 자아의 눈에는 ‘눈물’ 맺힌다. 서정적 자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는 것은 시에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물먹은’의 ‘물’이 ‘눈물’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눈)물먹은 별’은 서정적 자아의 슬픔의 표현인 ‘눈물’을 알아차린 별이다. 죽은 사람은 하늘에 별이 된다는 설화가 있듯이 이때의 ‘별’은 ‘늬’의 죽은 뒤의 다른 모습이다. ‘별’은 ‘승화된 영혼’이다. 6행에서 ‘별’이 ‘보석’으로 비유되었다는 것은 ‘차고 슬픈 것’의 단순한 변화는 아님을 나타내 준다. ‘긔’의 승화된 모습인 ‘별’은 서정적 자아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슬픔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눈물어린 그의 눈에 ‘반짝’이며 ‘보석처럼 박’히는 것이다.
‘박힌다’의 ‘-히-’는 사동 또는 피동의 의미를 지닌 접미사이다. 이것은 서정적 자아가 눈물 어린 눈으로 별을 본 것이 아니라 ‘별’이 서정적 자아에게 온 것이다. ‘별’이 서정적 자아에게 자신은 ‘차고 슬픈 것’이 아니라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 밤하늘에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넷째 문장은 두 개의 문장이 연결어미 ‘-어니’로 이어져 있다. 앞 문장에서는 첫째, 둘째 문장에 나타난 서정적 자아의 ‘외로운’ 감정과 셋째문장에서 ‘늬’가 ‘차고 슬픈 것’이 아닌 ‘별’이 된 것을 안 ‘황홀한’ ‘심사’를 종합하고 있다. ‘외로운 심사’와 ‘황홀한 심사’를 한 구에 표현함으로서 표현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뒷 문장에서는 ‘늬’가 ‘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늬’가 자유로운 존재인 ‘산새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감정을 ‘아아’와 문장 끝에 붙은 감탄기호 ‘!’로 나타내고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Ⅰ>은 정지용이 죽은 자식을 잃는 슬픔을 극복하고 그와의 영원한 이별을 인식한 것을 표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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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평자들의 시 이해
조남익: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고 하염없는 부성(父性)을 불과 10행에 담은 서정시다.
이 시의 주제는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인데도, 죽은 아이를 직접 표현한 시어는 하나도 없다. ‘언 날개’, ‘물먹은 별’, ‘산새’와 같은 감각적인 사물로써 ‘죽은 아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의 절제(節制)를 보이고 있다.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슬픈(1행)’, ‘외로운 황홀한 심사’(8행) 정도인데, 이것도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1행)로 객관화되어 있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죽은 아이’와 서정적 자아(화자)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인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차단의 기능을 또한 하고 있다.
(조남익) 한국 현대시 해설 상 미래문화사
김흥규:
유리창 밖에 있는 무한한 어둠은 자식을 잃은 시인의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에 대응한다. 그는 유리창에서 쉽게 확인되듯이 이 새는 잃어버린 아이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 아이를 생각하는 슬픔을 시인은 어둠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물먹은 별’로 표현했다. 이 별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 어둠 속으로 돌아간 아이의 멀고도 그리운 모습인 동시에 ‘물먹은’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눈에 맺히는 한 방울 눈물의 반짝임과도 연상(聯想) 관계가 있다.
한국현대시를 찾아서 1992 한샘출판사.
박명용
이 시는 그가 27세 되던 해 자식을 잃고 그 비통한 심정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져 산새처럼 날아가 버린 죽은 아이의 환상이 유리창 밖에 어른거린다. 유리창을 통하여 어두운 밖을 응시하면서 느끼는 것은 밀려오는 어두움뿐이다. 그때 반짝하고 별이 눈에 박힌다. 여기서 새까만 밤은 자식을 잃은 서정적 자아의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이고, 별은 잃어버린 아이의 상징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처절한 심정을 ‘차고 슬픈 것’, ‘외로운 황홀한 심사’ 등의 표현으로 감정의 대위법을 시도하고 있다.
힘없이 유리창에 붙어 서서 유리창을 닦으니 유리창에는 어린 입김이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유리창에 어리었다가 힘없이 사라지는 입김을 여린 새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끝 행에 가서 죽은 아이를 산새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과 상통한다. 지우고 또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파도처럼 밀려갔다가 밀려오는데 슬픔을 머금은 별이 반짝 빛을 내며 의식을 일깨우고 보석처럼 박힌다. 아이는 별이 된 것이다. 외로운 밤 유리창을 닦는 외로운 심사는 아가의 별이라도 바라보면서 자위해 보려고 노력하는 심사이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역설구조로 처참한 심정을 강조하고 있다. (박명용 한국현대시의 해석과 감상 글벗사1994)
김태영, 정희성
이 시의 제재인 ‘유리창’은 이승과 저승의 운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교감의 매개체이기도 하여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유리창에 가까이 서서 죽은 아이를 생각하는 화자는 창 밖 어둠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 어린 생명의 모습을 한 마리의 가련한 ‘새’로 형상화하여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고 말하고 있다.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어둠’은 화자의 어둡고 허망한 마음과 조응이 되고 ‘물먹은 별’이라는 표현은 별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이 시에서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같은 관형어의 모순 어법은 독특한 표현이다. ‘외로운’ 심사는 빛나는 자식이 죽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거니와 ‘황홀한’심사는 유리창을 닦으며 보석처럼 빛나는 별에서 죽은 아이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데 기인한 것이다.(김태형, 정희성 엮음 현대시의 이해와 감상 문원각1995)
구인환
이 시는 네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개의 문장에서 평서형 어미 ‘~다’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차분하게 감상적으로 표현한 첫째, 둘째, 셋째 문장과, 감탄사와 느낌표를 사용하여 화자의 정서를 감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넷째 문장이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근거로 이 시를 크게 두 부분으로, 즉 1행에서 6행까지와 7행 이후로 나눌 수 있는바 앞부분을 전반부, 뒷부분을 후반부라 하자. 전반부에서는 시적 화자와 대상이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음에 반해 후반부에서는 화자의 대상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전반부에서 의도했던 감정의 절제가 그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제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아아!’라는 정지용의 시에서 좀체로 찾기 어려운 자기 표출도가 높은 감탄사와 느낌표(!)는 시 전반부에서 자제해 온 감정이 폭발적으로 표출되었음을 의미하는 기호들이다. 이 마지막에서 절제나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는 화자의 노력은 무너지고 격정적인 감정의 표출이 나타난다.
1행에서 무언가 유리에 어리는 것을 화자는 ‘차고 슬픈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2행, 3행에서 유리에 비치는 것을 차고 슬픈 것으로 인식한 화자는 유리창에 다가서고 유리창에 입김을 흐리운다.그 입김은 유리에 부딪쳐 마치 한 마리 작은 새가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화자가 본 것은 환각이었을 것이다. 4행, 5행, 6행에서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는 행위는 환각을 현실로 인정하는 행위이면서 대상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화자에게 있어 파닥거리는 새는 이미 환각을 넘어선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 이유는 화자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7행, 8행에서 자신의 행위를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으로 인식한 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의 행위가 환각이었음을 인식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 9행과 10행은 화자의 정서가 정점에 이르는 부분이다. 폐혈관이 찢어진 채 산새처럼 날아갔다는 것은 유리창에서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이로서 화자의 모든 환각은 끝난다. 시적 화자에게 남은 것은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 날아간 산새로 인해 생긴 슬픔이다. 이 시에 대해 정지용은 자신의 어린 자식을 잃고 그 비애의 절정에서 표현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구인환, 고교생이 알아야 할 시 신원문화사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