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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졸업 즈음 목욕탕에 취직 양정기 대표의
고향은 음식점 인근 제주시 노형 마을이다. 그곳에서 가장 가난한 집안에서 8남매 중 둘 째로 태어났다. 큰형이 중학교를 다니다 학비를 내지 못해
중퇴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사정이 이 정도였 으니 둘째였던 그를 포함해 동생들은 학업을 지속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13세의 나이에 그를 받아 준 곳이 목욕탕 이었다. 첫 직장이자 삶의 일부가 된 목욕탕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목욕탕에서 그는
청소와 심부름을 하고 한 달 2,000원가량을 받았다. 먹고 자는 것도 목욕탕에서 해결했다. 손님 등을 밀어 주면서 5원을 받기도 하고,
10원을 받기도 하면서 용돈을 벌었다. 집이 없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마당에 목욕탕은 그에게 최고의 안식처이자 삶의 현장 이었다.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목욕탕 주인이나 손님들에게 야무지다는 소리를 자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 창 공부할
시기에 목욕탕에 서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 던지 책과 공책, 가방을 사 주면서 공부를 해보라고 하 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땐 공부도 사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양대표는 그때부터 실질적인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이 없었다. 목욕탕 에서 일한 지 3~4년이 흐른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왔다. 고향에 집 한 채가 매 물로 나왔고, 그 집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 대표에게는 집을 매입할 만한 목돈이 없었다.
모아 놓은 돈과 아버지께 사드린 소를 팔아도 집값 70만 원 중 50여만 원이 부족했다. 낙담해 있는 순간도 잠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목욕탕
주인이 집을 매입하라고 부족한 돈을 선뜻 빌려주었다. 아무런 조건도 붙이지 않았고, 그의 성실한 모습만이 담보였다. “목욕탕 주인
할머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빌려주신 돈을 갚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죠. 그 돈을 2~3년 만 에 갚고 나서는 세상이 모두 내 것이 된 것처럼
기뻤어요.”
9년 전 돼지고기 구이집
오픈…
‘제2의
삶’
40대가 지나면서 그에게 갑자기 회의감이 밀려왔 다. 목욕탕에서 30년이 넘게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매일 새벽 3시부터 시작 되는 목욕탕 일이 힘에 부쳤다. 새로운 시작을 원했던 양 대표는 2~3년에 걸쳐 사업을 구상했고, 돼지고기 구이
전문 음식점을 열었다.
그는 2006년 1월 월세 50만 원에 제주시 노형동 아 파트 공사현장 근처에 있는 가게를 빌려 드럼통 8개 를 사다가
테이블을 꾸몄다. ‘돈과 사돈이라도 맺어보 자’는 뜻에서 식당 이름은 ‘돈사돈’이라 지었다. 당시 음식점 주변은 상가는 물론 아파트, 주택이
없는 허허 벌판이었기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개업 초기부터 소문을 타고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고기를 주인이 직 접 맛있게 구워주는 정성이 통한 것이다. 5년째가 됐을 때는 제주 여행객이 반드시 찾는
식당으로 알 려졌고, 제주에서는 드물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 먹 는 식당’으로 자리 잡게 됐다. 양 대표는 지금도 여전히 직접 고기를 굽는다.
직원이 15명이나 될 정도 로 성공을 거뒀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대박이 났지만 아직도 제가 부자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조 금도 변한 게
없거든요.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고, 기름 묻은 환풍기를 청소하고, 직접 고기 를 구워 손님에게 대접하고 있어요. 여행은 생각해 보
지도 못했고, 식당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랍니다.”
양 대표가 음식점으로 성공한 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 식당영업 노하우를 물어왔다. 그는 이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간 함께 일하며 노하우를 알려주고, 그중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에겐 아무 조건 없이 ‘돈사돈’이란 상호를 쓰게 했다. 가맹점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나눔의 하나란 생각에서다. 전국에 20곳이 넘는 ‘돈사돈’이 성업 중이다. 자신을 찾아온 이들을 편견 없이
대한 결과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가난이 아니라 목욕탕 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저를 ‘하찮은 존재’로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이었습니다. 저는 어렵고 배고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직업과 재산 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편견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양 대표의 우직하고 올곧은 인생과 나눔 철학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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