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걸레가 된 나/ 수필/ 금산
가난이 그리워 시골에서 장항선 열차 속으로 아버지와 함께 타고 올라와 기숙사 생활하며 자동차정비학원에 6개월을 다녔으나 자격증은 물 건너갔다 다닌 시간이 아까워 뿔뿔이 너는 정비공장으로 나는 버스정비로 취직을 했다 그래도 학원에 다닐 때가 좋았다 밤이면 고참이라고 술과 화투다 그 끝은 싸움이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면 또 화투다 월급날이 되면 작업복도 식당도 외상값에 빈 봉투다 그 당시 전국으로 배움이 없고 싸움꾼들만 모여든 셈이다 처음 들어가면 막내라고 기숙사청소 또는 사물함도 날근 것이다 야간에 일하고 나면 라면 당번이다 끓여서 선임들에게 받쳐야 한다. 반찬은 손가락이다 자아발전이라고는 나이 먹는 것 또는 험한 말들과 나이든 나체들 처음 볼 때는 눈동자도 숙였다 시간이 갈수록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시내버스 하체를 검사하다보면 검은 고양이가 된다. 그래서 이적한 곳은 고향 시내버스를 찾았다. 그것도 서류를 들고 사무실에 있는 담당자랄까 ‘우리 회사는 못 받아요.’ “왜! 못 받아요.” ‘삥땅을 치니까 못 받아요.’ 나는 그길로 제2의 고향으로 달려갔다. 서류를 들고 대천시내 사무실로 들어서자 반갑게 마주한 사무실 직원들 즉석에서 이뤄졌다 함께 다녔던 초등동기들 반가워 쉬는 시간에 참새가 되었다 그리고 남자차장과 조수로는 마지막 종사자다 그 시절에 버스한대에 운전기사와 차장 나는 조수였다 정비라고는 학원에서 이론과 서울 종점생활이 전부다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던 가 대천에서 논산 부여 이정표를 붙이고 “부여나 논산가유~” 5일장마다 파김치가 따로 없다 시골에서 장에 가는 이들은 닭과 나물 등, 장에서 집으로 가는 이들은 밀가루와 보리쌀 등 도마리 되는 장소에서 나의 진수잔치다 그리고 기사님께서 식성이 나하고 똑같아서 차장도 그런 어느 날인가 집이라고 찾았을 때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뇌리에 스쳤다 “야! 그것 말이다 어디 안 보이는데 가서 할 수 없냐!” 듣는 순간이랄까 서운했다 부모도 부모 나름이라고 할까 “이웃들 수군거려야! 순민이 아들 시커먼 게 버스 따라 다닌다고.” 그길로 서울행 열차를 타고 또 아사리 판으로 들어갔다 종점에서 일해 봤자 앞날이 없는 내 청춘이랄까 그렇다고 배움도 없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어느 대형정비공장 15t 검사차라고 허브 6개를 뽑았다 박으면 아침밥 먹은 배가 개구리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기술이라고 나이든 고참을 조장으로 두면 중요한 사항마다 심부름 때문에 배움은 날짜가 간다. 이론과 실물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머리를 쓴 나는 무조건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선임한테 의뢰하면 하나를 보면 열을 한다. 그런 기술을 가지고 고향 앞으로 갔다 꿈은 하나였다 중소기업체 사장된다고 판금과 도장 또는 엔진 하체정비까지 배웠다 또 용접 산소와 전기까지 지방에 있는 1급 자동차정비 공장 다. 이력서를 제출했다 서울에서 30만원 받았다고 했더니 여기는 15만원 줄 테니 일하려면 하고 그렇지 안하면 못 받는다고 했다 아쉬운 놈이 샘을 판다고 그렇게 하기로 하고 도시락도 쌓아 출근은 자전거로 다녔다 어느 날 정비하는 일행들 ‘야 왜! 충청도 말이냐!’ “고향은 여긴데 어릴 적 제2의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오늘밤 9시에 성산공원으로 나와 한판 붙자.’ “그래 알았다.” 만경도장에서 실미교육을 받았던 친구들 수배했다 몇 마디에 꼬리 내린 정비들 그 후로 나만 보면 동공이 멀리 갔다. 그와 중에 정비2급 기능시험에 합격한 나, 실기시험에 3개월만 빼달라고 정비주임한테 이야기하자 오발대발 아닌가 소리를 들은 황사장 ‘왜! 시끄러워’ 사실이야기를 드리자 ‘황주임 빼줘.’ “네 알겠습니다.” 나는 3개월의 휴가를 받아서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자격증은 아무나 따나.’ “꼭 따겠습니다.” 회사를 빠져 나오는 순간 오기가 앞섰다 그래 보란 듯이 딸 거야 집으로 돌아와 뜬눈으로 잠을 설친 후 다음날 전주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찾은 자동차정비학원 숙식을 하면서 오직 합격만을 그리면서 그 결과는 하늘이 도왔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실습과 함께 예감대로 돌아와 학원에서 동료들에게 강의를 했다 그 결과는 합격 아닌가 회사로 출근한 나에게 물어오는 동료들 자격증 여기 있습니다. 그날부터 조 기사님 이것 해줘요. 예전엔 조 씨 이것 해줘. 말이 이렇게 달랐다 그리고 듣는 귀가 아름다웠다 힘은 들어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격증 수당이라고 5천원도 받았다 그 세월은 너무나 길었다. 그것만으로 카센터와 멀다 그래서 카센터 들어가 몇 개월을 배웠다 돌아가는 것 요금을 받는 것 그렇게 출퇴근을 하면서 정비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망한다고 걱정 아닌 걱정이다 장사란 기술도 있어야지만 상술도 필요하다 그렇게 10년을 소형차부터 대형차까지 수리를 하다 보니 일손이 늘 부족했다 겨울에 난들에서 정비를 하니까 직업병인 동상이 찾아와 더는 버틸 수가 없어서 떠나야 했다 뭐든지 한때라는 생각에 미련이라고는 부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탈을 벗기 위해서 부족한 검정고시가 문학이 긴 세월을 아름답게 해줬다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없는 행복도 내가 만들어서 살아가는 삶이라야 기쁜 흔적이 아닌가 뭐든지 본인이 부족해서 또 못 봐서 그렇게 산다. 이런 환경에 책2권을 上梓했고 아들 딸 작가 도움도 이제야 행복을 느끼면서 나쁜 꿈도 없는 이 밤이 좋아서 이렇게 되돌아보는 그 시절을 돌아갑니다. 부족했던 문장도 독수리 타자가 된 2019년 8월 비오는 호박잎이 귓가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