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316 샛별 |
출처: 그리움이 흐르는 하얀 강 원문보기 글쓴이: 샛별
- 현대어 풀이1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까지 가셔서 무량수불 앞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불존에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릴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을 버려 두고 사십팔대원 이루실까
- 현대어 풀이2
달님이시여 서방정토까지 가시려는가 무량수 부처님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부처님에게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옵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마흔 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
1 - 4행 : 달님에 대한 당부 - 달님에게 기원(간접 청원) 5 - 8행 : 극락왕생에 대한 간절한 염원 - 극락왕생 염원(직접 청원) 9-10행 : 소원미성취에 대한 염려 - 소원 성취에 대한 염려(청원의 심화 확대)
달님[서방정토의 사자로 여김]이시여 서방정토까지 가시려는가 (가시거든) 무량수불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불전에 우러러 두 손을 모아[기도하는 자세로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말함]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시적 화자의 간절한 소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시어]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버려두고[남겨두고] 마흔 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설의법을 통해 시적 화자의 강한 내면적 의지를 드러내고, 시상을 마무리지으면서 시적 화자의 기원이 심화, 확대되고 있고, 시적 화자는 아미타불의 중생 구원에 대한 약속을 환기시켜 간접 위협과 명령을 행하고 있다]
무량수불은 서방정토에 있는 아미타불로서, 이 부처에게 염하면 극락 세계에 간다고 했다. 원왕생가의 화자는 '달'로 하여금 서방의 극락 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도록 청원을 하고 있다. 따라서 '무량수불'은 화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이다.
정토(淨土)사상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부처와 또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거주한다는 청정한 국토. 중생이 사는 번뇌로 가득 찬 고해(苦海)인 현실세계를 예토(穢土)라고 부른 데 대한 상대어이다. 시방(十方)세계에 제불(諸佛)의 정토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1세계에 2불(佛)이 병립해서는 안 되므로 제불이 나타날 국토가 현실세계 외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논리인데, 특히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서방 극락세계, 약사불(藥師佛)의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를 정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선종(禪宗)에서는 “오직 마음이 정토요, 자신의 마음이 미타(彌陀)”라고 하여 사람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일심(一心) 외에 정토는 없다고 말한다.
달에 관련된 문학 작품은 많다. 예를 들면 고대시가인 '정읍사'에서는 남편의 안위를 돌봐주는 달로 나타나고, 향가인 '원왕생가'에서 달은 기원의 대상이며, '찬기파랑가'에서는 우러름의 대상으로, 기파랑의 인품을 '달'에 비유했으며, 이조년의 시조에서의 '달'은 봄밤의 애상적 정서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호우의 시조에서의 '달'은 서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달이며, 장만영에서의 '달·포도·잎사귀'에서는 생명력과 미적이고 애수어린 낭만적인 달이고, 나도향 '그믐달'에서의 달은 화자의 심정을 토로하는 달이며, 윤오영의 '달밤'은 고요한 밤의 정경으로서 그리고 자연과 합일하는 존재로서의 달로 나타난다.
달은 이처럼 작품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중국의 시성 '이태백'은 '달'을 건지려다가 죽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달이 얼마나 작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학적 소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달은 어두운 밤에 등장하고 그 달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광명의 달이며, 신적인 달이다. 이 달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고뇌의 바다를 밝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여기 '원왕생가'에서 광덕은 아미타불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달에게 의탁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 서정적 자아가 그리는 대상은 아미타불이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의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을 희구하고 있다. 그런데 달은 차안과 피안을 오고 갈 수 있는 불법(佛法)의 사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가슴 깊은 신앙심이 아미타불에게 전하여 지기를 달에게 기원하고 있다. 즉 달을 통해 서정적 자아의 불교적 신앙심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광덕(廣德:?~?)이 지은 10구체 향가로 광덕은 짚신을 삼아서 살았는데 아내는 분황사 종이었고 광덕의 친구 엄장은 농사를 짓고 살았다. 광덕이 죽어 서방정토로 가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를 차지하려 했다. 그러자 광덕의 아내는 광덕이 평소 정좌하고 불도를 닦으며 한번도 동침하지 않았다 하며 엄장을 꾸짖었다. 엄장은 크게 뉘우치고 원효(元曉)에게서 쟁관법(錚觀法)을 배우고 마침내 서방정토로 갔다고 한다. 이 노래는 일찍이 광덕이 부른 노래로 되어 있는데 귀족불교를 넘어서서 평민에 이르는 화엄사상이 흐르고 있다.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없이 사뢰소서"로 시작된다. 서방정토사상을 읊은 축도의 노래로, 달을 서방정토의 사자(使者)에 비유하여 불교의 신심을 노래했다. 〈삼국유사〉 권5 광덕 엄장조에 실려 전한다.
이해와 감상2
신라 문무왕 때 광덕(廣德)이 지었다는 10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5 ‘광덕엄장조(廣德嚴莊條)’에 노래의 유래에 관한 배경설화와 향찰로 표기된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작자에 대해서는 광덕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나 광덕의 처, 원효, 민간 전승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수록문헌에 따르면 문무왕대에 사문(沙門)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생활에만 전념하던 광덕이 먼저 죽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이 노래의 원문과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달 속에 있는 신이나 달의 상징 또는 인격화한 형태를 숭배하거나 공경하는 것으로 달의 성스러움은 삶과 우주의 기본 리듬과 연결되어 있다. 여러 시대와 문화에 걸쳐 두루 퍼져 있는 달 숭배 현상은 풍부한 상징과 신화를 낳았다.
사람들은 달을 우주의 율동적인 생명과 관련하여 생각했고 모든 생명의 변화를 다스리는 것으로 믿었다. 달이 차고 기우는 순환과정을 보고 많은 이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올라가는 죽은 자의 땅이나 재생의 힘을 달과 연관지었다. 달이 생명의 순환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달과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하도록 했다. 달의 신화는 특히 달이 사라지는 시기를 강조한다. 달의 순환에서 3일간의 어둠과 일식은 달을 집어삼키거나 잡아먹은 다음 결국 다시 토하거나 다시 살려놓는 괴물들간의 싸움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보통 해석된다. 그믐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활동(특히 식목이나 성교)에 대해 엄격한 금기가 필요한 유해한 기간으로 해석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의례 행위의 일부로 달을 공격하는 자를 겁주어 쫓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달과 달의 순환을 인격화한 신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 원시 수렵문화에서 달은 지극히 남성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여성들은 달을 아주 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생각한 반면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의 달은 일반적으로 여성이며 식물 생장과정의 자비로운 주재자로 여겨졌다.(출처 :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제2연의 ‘불국사 언저리’ 역시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공간적인 배경이다. 다시 제3연의 ‘반쯤 가리고 가는 달’은 체념과 그리움의 서정을 재확인하는 신화적인 공간이다.
배꽃 가지
경주군 내동면(慶州郡 內東面) 그 언저리로
배꽃 가지 달이 가네.
박목월의 '달'은 배꽃과 달의 만남을 그린 작품이다. 천상의 꽃인 달과 만난 지상의 배꽃은 얼굴을 반쯤 가리고 함께 길을 간다. 잔잔한 슬픔과 밝은 생명력이 교감하는 공간의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소재로 전통적인 정서를 민요조의 운율에 담아, 서정으로 일관하는 그의 시가 여기서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문무왕때에 불도에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이 있어 퍽 친근하였다. 그들은 평소에 누구든지 먼저 극락정토에 갈때는 서로 알리기로 약속했었다. 광덕은 분황사의 서쪽(혹은 황룡사의 서거방(西去方)에 있었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에 은거하며 신을 삼아 생활하였는데, 아내가 있었다. 엄장은 남악(南岳)의 암자에서 화전을 경작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노을이 붉고 솔 그늘이 고요히 어둠에 잠기는 저녁때였다. 엄장의 집 창밖에서 '광덕은 지금 서방정토에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라.'는 소리가 났다.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구름 밖에 하늘의 풍악 소리가 들리고 땅에는 광명이 드리워 있었다. 이튿날 엄장이 광덕의 집에 가보니 그는 과연 죽어 있었다.
광덕의 아내와 함께 장의(葬儀)를 마친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합의하에 동거하게 되었는데, 저녁에 같이 자며 관계하려 하니 여자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스님이 정토(淨土)에 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또 말하기를 "광덕은 나와 10여 년을 같이 살았으나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고, 저녁마다 단정히 앉아 염불을 하고, 혹은 16관(十六觀- 중생이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해 닦는 16가지 방법)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16관에 숙달하자 달빛이 문에 들면, 그 빛을 타고 올라 앉았습니다. 정성이 이 같았으니 어찌 극락에 가지 않겠습니까?
무릇 천 리를 갈 사람은 그 첫걸음이 규범이 된다는데, 이제 스님의 관을 보니, 동쪽으로 간다 할지언정 극락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엄장은 부끄러워 물러나 원효법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간청하였다. 법사는 정관법(淨觀法- 이미 생각의 더러움을 깨끗한 몸으로 번뇌의 유혹을 끊는 것)으로 그를 유도하였다. 엄장은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한 마음으로 관을 닦으니 역시 서방정토로 가게 되었다. [출전{삼국유사} 권5, '광덕 엄장조(廣德嚴莊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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