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의 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열아홉 번째 시와 소설을 공모, 당선자를 발표했다. 시 당선자는 ‘오늘 아침’외 4편을 투고한 경남 거제 출신의 신호승 씨며, 소설 부문은 ‘독’ 외 1편을 응모한 권상혁 씨로 서울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가을문예는 1994년에 제정, 1995년부터 공모, 시상해 왔으며 신문사나 시, 군에서 지원하는 형태가 아닌 순수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예공모다. 시 당선 상금은 500만원, 소설 당선 상금은 1,500만원이며 지금까지 37명의 시인, 작가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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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심사평>
150여 명의 응모자 중 본심에 오른 10명의 작품을 놓고 토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 4명의 후보작을 선정했다. 신호승의 <오늘 아침>, 황순탄의 <징그러운 사과>, 명광일의 <별들이 무질서하다>, 이규의 <닭의 문>이 그것이다.
네 편의 대상작은 모두 좋은 장점과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논의를 거듭해야 했다. 그중에서 황순탄의 <징그러운 사과>는 신선한 화법과 부드러운 어조, 시적 구조와 긴장감이 탄탄해 끝까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끌었으나 그 한 편을 제외한 작품들의 수준에 편차가 커서 아깝게 낙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명광일의 <별들이 무질서하다>는 시적 리듬이나 말의 절제가 좋고 적절한 반복법을 써서 시를 끌고 가는 솜씨가 상당했으나 눈에 띠는 상투어나 관념어들이 종종 시의 활력을 막았다. 이규의 <닭의 문>은 비유를 잘 사용할 줄고, 말에 의미를 입히는 재주가 돋보였으나 대상을 노래하는 발성이 다소 산만하고 거친 게 흠으로 지적됐다.
심사위원들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대상을 새롭게 포착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상상력이 뛰어나면서도 시적 구심력을 잃지 않은 신호승의 <오늘 아침>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신호승의 새로움과 결합된 상상력이 한국시의 다채로움에 한 자리를 마련하고, 신인으로서 시의 길을 끝까지 밀고갈 수 있는 힘이 되길 빈다.
황학주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 <저녁의 연인들> <노랑꼬리 연> <某月某日의 별자리> 등이 있음.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 작품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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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심사평>
17편을 읽었다. 모두 단편이었다. 교사 화자가 많았다. 17편중 외래어 제목이 7편이었다. 패기 있다 싶으면 영락없이 미숙했고, 안정되었다 싶으면 못내 낡았다. 당선통보를 기다리는 응모자만큼 심사자도 간절해졌다.
신인응모전의 작품은 물가의 용이다. 아직 용이 아니다. 보란 듯 물을 차고 올라야 비로소 등룡이 되는 것이다. 힘찬 몸짓이 간절했던 이유다.
마지막까지 손에 남았던 작품은 <시클라멘>, <건너편>, <독>, <블루데이>였다.
<시클라멘>은 어긋난 부부 얘기를 어긋난 턱관절 질환과 줄기가 꼬이는 시클라멘 꽃으로 엮어놓았다. 어긋남과 꼬임은 현대의 지적흐름이 사유를 촉발하는 동인으로 주목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가족 혹은 부부라는 이유로 서둘러 그 어긋남과 꼬임을 눈물로 봉합 봉합해버렸으니 그 순간 귀한 사유의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건너편>은 출애굽기의 아바림산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가나안이 천국이라면 아바림산은 그 건너편이다. 아직 천국이 아닌 곳이다. 그러나 천국의 ‘건너편’이 없으면 결국 천국도 있을 수 없을 터, 그 건너편에 머무는 삶의 의미를 가만히 더듬는 솜씨가 좋다. 그러나 하나의 모티브를 가지고 이야기 구조로 엮는 방식이 익숙하다 못해 눈에 띌 만큼 도식적인데, 고질이 되지 않을까 지레 염려스럽다.
<독>은 반복되는 유산을 견디는 임신부 이야기다. 유산을 야기하는 체내의 독성. 그것의 기원을 피폭 3세인 남편과 남편이 복용하는 약물에 두려고 하나 화자의 유년의 기억이 새로운 독의 가능성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무엇이 독이 되었을까를 따져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쪽 얘기라면 화자가 당했다는 유년시절의 성폭행은 진부한 설정이 되고 만다. 이 소설에서는 뇌가 아닌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한다. 몸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누대를 거쳐도 잊히지 않는다. 체세포에 내재된 독과 싸우며 기어코 생명을 잉태하려는 화자의 애환은, 그러니까 오히려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에 가깝다. 이 작가의 안정적이면서도 내공이 만만찮아 보이는 문장은 <블루데이>에서도 여전히 이어져 안심하고 <독>을 당선작으로 민다. 이제 힘찬 몸짓으로 물을 박차고 오르길 바란다.*
구효서 소설가
1957년 인천 강화도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소설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등이 있음. 2007년 제12회 한무숙 문학상, 2008년 제16회 대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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