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앞문은 열고 뒷문은 막아라
지금 많은 교회들이 VIP 정착사역에 교회의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기를 많이 잡아도 담는 그릇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고기잡이가 허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VIP가 들어오는 앞문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VIP와 소외된 성도들이 나가는 뒷문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바나바, MD, 멘토링, DNA, 알파, 새가족섬김이 사역 등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과거 대형 집회, 불신자 초청 행사 등 앞문으로 들어왔던 VIP들이 소리 소문없이 뒷문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을 방지하고, VIP를 정착시키는 좋은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대형 집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심했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집회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목할 점은 대형 집회는 앞문이 넓은 대신 뒷문도 넓다는 것입니다. 짐바브웨에서 목회를 하는 프레디 그완주라 목사는 60여 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더 많은 교인을 모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전도자 레인하르트 본케의 집회를 계획했고, 1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천막을 마련했습니다. 그 천막은 매일 가득찼고, 이 집회의 결과로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집회를 마친 후 단 한 명만이 VIP로 들어왔을 뿐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집회를 통하여 얻은 교훈은 대형 집회로 교회가 성장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도와 양육에 앞서 정착에 집중했고, 그 결과 지금은 200여 개의 교회로 구성된 큰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8. 미쳐라 지금 당장
광적인 에너지의 쏠림현상을 미침이라 한다. 미침과 쏠림에는 펀(fun)이 있다. 펀은 재미, 즐거움, 좋아함이니, 펀에 몰입하면 행복해진다. 이런 몰입과 열정을 수반하는 미침은 문명의 창조와 발전을 잉태하는 원천이다. 잘 미치면 누구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부와 명성도 덤으로 얻으니 한번 미쳐볼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에 미치고, 미치기 위해 산다. 미침도 연륜과 세태에 따라 변한다. 어릴 때는 장난감에 미치고 소꿉놀이에 미치지만 쉬 싫증을 낸다. 사춘기 때에는 호기심과 이상향에 미치고, 청년기에는 이성에 미치고 스포츠와 예능에 미치기도 한다. 장년이 되어서는 일과 돈벌이에 미친다. 노년이 되면 손자 손녀에게 미치고 아름답게 늙는 일에 미쳐간다. 하지만 노화가 진전될수록 미침은 줄어들고 열정도 식어 가니 생의 주기와 무관하지 않다.
'미쳤네, 미쳤어'란 말속엔 용광로 같은 뜨거움도 있으나, 활어 같은 신선함도 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일에 미쳐있는 자는 당당하며, 미쳐있는 자의 뒷모습 또한 아름답다. 자신의 일에 미쳐있는 직업인도, 창작에 미쳐있는 예술가도, 신소재 개발에 미쳐있는 과학자도, 불우이웃돕기에 미쳐있는 봉사자들도 모두 그러하다.
미침에는 남녀노소가 없고, 귀천이 따로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미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소질과 개성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미치는 대상과 분야가 다르고, 미치는 정도와 열정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누가 미치라고 해서 미쳐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에게 필이 꽂혀야 비로소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미치되 잘 미쳐야 한다. 잘못 미치면 패가망신 할 수도 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성이나 사행성놀이에 미쳐있으면 진로에 장애가 생기고, 화투나 마작에 미치면 노름꾼이 되고 마약이나 술에 미치면 중독자가 되어 삶이 황폐해진다.
제빵사가 빵에 미치면 맛있는 빵, 신나는 빵, 행복한 빵이 창출되고, 발레리나가 그 춤에 미치면 관객이 행복해진다. 환경미화원이 청소에 미치면 도시가 깨끗해지고, 발명가가 연구에 미치면 인류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처럼.
미치려면 가급적 한 분야에 미치는 게 좋다. 이것저것에 조금씩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인생에 있어 다양성을 맛보고 폭넓은 사유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나 달인의 경지에 오르려면 한 우물을 파는 게 좋다. 자신의 적성과 가치에 맞는 분야에 곰삭히고 정진하여 과히 미치는 경지가 되면 자신도 행복해지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행복해 진다. 마치 모나리자와 같은 명화 한 점이 인류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하듯이.
이왕에 미치려면 젊은 나이에 미치는 게 좋다. 집중력과 창발력이 왕성할 때 미치면 생산성과 지속성이 확대됨은 물론 완성도 또한 높아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수많은 직종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고 싶어 하고, 동시에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적당히 해서는 물론이고 성실하다 해도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성공하려면 미쳐야 하고, 미쳐야 행복할 수 있다. 일상을 뛰어넘어 미침의 경지에 오를 때, 가치와 신념에 몰입하고 미쳐있을 때, 어느 날 문뜩 찾아오는 성공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미침에도 금도(禁道)가 있다. 소유하기 위해 미치지 말아야 한다. 집착한 미침은 추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무엇이 되고자 미쳐서도 곤란하다. 피겨스케이팅에 미친다고 모두 김연아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성악에 미친다고 모두 조수미처럼 되는 것이 아니며, 수영에 미친다고 모두 박태환처럼 되지 않는다. 그들이 롤 모델은 될지언정 미친다 하여 동일시되지 않는다. 자신의 적성과 장기가 고려되지 않고, 가치관과 철학이 빈곤한 미침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이 언제 허물어질지 모른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꿈꿀 자유와 그 꿈에 미칠 자유를 동시에 주었다. 자유는 구가할 때 아름답다. 그러므로 박제된 자유를 거부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진(眞) 선(善) 미(美)에 온몸을 불사르듯 미쳐야 한다. 그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미쳐있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며, 그들이 내뿜는 열정적인 에너지가 지역사회와 인류문명을 진화케 한다.
오늘도 성공과 행복에 목말라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이여!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그대가 선택한 일과 사랑에 미치시라. 성공과 행복이 빗장을 열고 그대를 반겨 맞으리니.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22:29)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9. 모소 대나무 이야기
최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제자리에 멈춘 것 같다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별히 개척을 한 후배목사부터 개척 후 열심히 목회하는 동료나 선배목사님들과 교회 일에 열심히 충성하는 성도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합니다. ‘마치 교회성장의 한 계단을 오르는데 한 계단이 너무 길어서 이것이 올바른 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노력은 하고 있는데 결과가 막연하거나 반복적으로 변하지 않는 교회환경 때문에 무료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교회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모소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대나무를 키우는 농부들
중국 극동 지방으로 새롭게 이사를 한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서쪽 산둥성에서 와서 새로운 환경과 지역의 문화가 신비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을 무렵, 그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대나무를 키우는 농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대나무를 키울 때는 심은 대나무가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모습을 보여 농부들은 많은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농부들은 대나무에 정성껏 물을 주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자라기는커녕 싹도 틔우지 못한 대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장사꾼에게는 그들이 ‘자라지 않는 대나무를 키우는 농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커지는 의혹
또 한 해가 지났습니다. 장사꾼은 자신이 이곳에 온지 벌써 3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자라지 않는 대나무에 물을 주며 정성을 쏟고 있는 농부들을 보며 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어보아도 빙긋이 웃기만 할 뿐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으니 그저 대나무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 이곳 농부들이 무식해서 어리석게 저런 행동을 한다고 말이죠.
다시 한 해가 지났습니다. 무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의 대나무는 마치 죽지 않고 겨우 살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3cm를 자란 대나무를 여전히 농부들은 물을 주며 정성껏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장사꾼은 늘 농부들을 보면서 혀를 찼고, 농부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했습니다. 대체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
대나무의 폭풍 성장, 그 안에 숨겨진 진실
장사꾼에게 또 한 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그가 그곳에 자리 잡고 5년이 흘러서였습니다. 그 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대나무들이 갑자기 싹이 돋아났습니다. 그것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한꺼번에 말이죠. 그리고 모든 대나무가 하나도 빠짐없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무려 30cm가 넘게 자라기 시작하지요. 그렇게 6주 만에 15m이상 자라게 되고, 그 자리는 순식간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됩니다. 4년 동안 단 3cm의 성장에 불과했던 “모소 대나무”는 5년 후부터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이죠.
6주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그전 4년 동안 “모소대나무”는 땅속에 수백m에 이르는 뿌리를 뻗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부는 뿌리가 살아 있음을 알기에 계속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돌본답니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폭발적인 성장으로 대나무 숲을 이룬 것입니다.
오늘은 평범한 날일 수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날일 수 있습니다. 아니 실망스러운 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낙담하고, 포기한 순간에도 희망의 뿌리는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5년이 되던 해부터 엄청난 속도로 자라는 대나무들이 광경을 직접 본 장사꾼은 믿어지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다시 마을을 찾아가니 마을 노인이 그에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자네가 4년 동안 봤겠지만, 이 나무는 키우는 우리도 가끔 죽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가 없네. 하지만 말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성장하고 있지. 이 나무는 싹을 틔우기 전에 뿌리를 어마어마하게 뻗어서 땅속에 골고루 나가. 그래서 차곡차곡 성장에 쓸 자양분을 모으는 것이지. 그리고 싹이 돋는 그 순간부터 모아두었던 엄청난 자양분을 가지고 성장하는 거라네. 이 나무는 5년이란 시간을 그렇게 준비하는 거였어.”
‘모소 대나무’는 싹을 틔우기 전에 뿌리를 깊고 넓게 내려 자양분을 차곡차곡 모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땅 속 밑으로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렸던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고 더 크게 자라기 위해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모소대나무. 그에 비해 우리는 결과나 성과에 의존해 내면의 뿌리를 내리는 데는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우리의 모습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깊은 뿌리를 내려 더 단단히 자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모소대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배웁니다. 모소 대나무는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을 감추고 깊은 땅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인내한 것입니다. 높은 대나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농부도 매일 물을 주고 소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추수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포기하지 않고 참아낸 인내의 결과입니다.
전도는 많은 시간을 기다리며 씨를 뿌리는 과정입니다. 변변하게 이룬 것이 없지만 오늘도 복음의 씨를 뿌리며 가꾸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어느 날 땅을 열고 올라올 새순을 기대하며, 힘차게 자라갈 하나님의 사람들을 소망하며 오늘도 복음의 씨를 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