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찬리 빙어는 다른 곳에서 잡히는 빙어와는 질이 틀리죠. 다른 곳에서 나는 빙어가 큰 대신 맛이 덜한 반면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빙어는 몸길이 6~7cm로 작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기로 정평이 나있어요."
이원면 건진리로부터 비포장인 때문인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덜컹거리는 진입로를 지나 도착한 장찬리에서 주민들의 빙어 자랑을 들었다. 장찬리 빙어의 오늘이 있게 된 데는 물론 장찬저수지가 있음으로 가능했다.
군내 가장 유역면적이 넓으면서도 물맑기로 유명한 장찬저수지는 지난 67년 8월 착공해 79년 12월 완공된 군내의 젖줄이다. 이 저수지를 통해 군내 각지의 534ha의 논이 용수를 공급받고 있으며 조합원수만 해도 1천3백명이다.
장찬저수지는 특히 만수면적이 37ha에 달해 57호에 달하던 수몰전 농가수가 이제는 12가구만 덩그러니 남게 한 역할을 했다. 빙어가 저수지에 방양되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 이젠 자체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주민들은 93년부터 부녀회에서 봄철에 빙어를 잡아 낙시꾼.관광객들을 상대로 약 3백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마을의 풍경이 마을주민들은 물론 출향인들의 향수를 더해주고 있는 가운데 지난 86년에 걸성된 재경 장찬향우회를 비롯한 출향인과 주민들과의 모임은 더욱 빛이난다. 93년 역시 4월에 향우회가 개최되었는데 150여명의 출향인이 찾아와 향수를 달랬다. 아마도 지금은 수몰되어 물에 잠긴 마을 풍경이 이들의 참석을 유도했을 것이다.
수몰되기 전 장찬리는 이원면내에서도 모범마을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진입로가 잘 닦여 있었고 유난히 공직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서권호 동이면 부면장, 서광춘 이원면 산업계장, 강신달 이원면 총무계장, 서종원(농촌지도소)씨, 김병현(군 산업과)씨, 서광호(읍 사회계장)씨 등이 있으며 강호준 충청양잠업협동조합장과 김현범 양잠조합 상무가 이 마을 출신이다.
또한 이종희(서울거주)씨, 이상선(서울거주)와 서도원 충북대 교수 등이 출향인으로 마을발전에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송오현(이원농협근무)씨와 김영식(이원면 건진리)씨 등도 주민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이중 이상선씨의 딸인 이규희(동국대 재학)씨가 김영삼 대통령의 야당시절부터 편지를 주고 받던 '대통령의 꼬마동지' 였음이 화제가 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도 평균 1주일에 한번꼴로 고향을 자주 다녀가는 이규희씨 가족을 맞는 주민들의 눈이 따뜻하다.
옛부터 마을주변으로 세군데의 옹기터가 있어 유명한 그릇생산지로 각광을 받아왔는데 '사기절터', '큰절골', '골안이' 등 세곳에서 만들어진 그릇은 충남 금산을 넘어다니던 통로였던 골안이에서 시장이 형성되어 매매가 되었다고 전한다. 골짜기가 깊은만큼 큰 짐승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이 생생하다. 93년 봄까지도 마을 개와 싸우다가 죽은 살쾡이의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개오지라고 불리는 표범 발자국이 눈발에 나타나는 등 주민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골안이 골짜기와 호랑이가 색시를 업어갔다는 색시골에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같은 얘기는 장찬리가 깊은 산간마을임을 간접증명하고 있다. 장찬리의 주소득원이라고 해야 벼농사를 비롯 주로 노인들이 짓는 밭농사가 전부이다. 특작물을 재배해 소득을 올리려 해도 주민들의 대다수가 노령화한데다 농산물 수송로가 확보되지 않아 어려운 형편이다.
79년 저수지 완공후 개설된 이설도로는 80년부터 주민들의 손길에 의해 보수되었을 뿐 3km 진입로가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누구하나 관심두지 않는 길로 변해 주민들의 소외 의식을 부채질하고 있다. 별다른 특산물이 없는 주민들에게 93년은 더욱 추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냉해로 인해 벼 생산량이 50%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행락철이나 낚시철이면 하루 수십대가 넘는 차량이 드나들어 쓰레기 처리에 주민들이 애를 먹고 있다.
불과 30여명만이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지만 진입로 포장과 아울러 장찬저수지 제방으로 오르는 도로도 경사가 심하고 급커브를 이루고 있어 마을의 가장 큰 숙원으로 꼽히고 있다.
마을에는 양식계가 구성되어 있으나 재정적 뒷받침이 안돼 마을 소득증대와 연관된 사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양식계에 우선적으로 제공되는 유료낚시터 임대권조차도 재정이 없어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취재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기자의 발길을 붙드는 인정어린 한마디 말이 있었다. "내년 봄쯤 한번 들려줘요. 빙어 한접시 같이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