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우고 싶다. 나에게 맡겨 주신 이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끔 이 마음이 너무 커져 버린다. 어느 순간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맡겨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서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슬쩍 넘어가려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은 아주 은밀하여 때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다.
조흔이는 공구를 이용한 만들기를 좋아하고, 조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앉아 집중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면 자랑스러운 얼굴로 가지고 와 “엄마 나 잘했지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많이 연구했구나. 조흔이답게 독창적으로 잘 만들었다”라고 하거나 “색이랑 표정이 너무 재밌어. 조이답게 정말 잘 그렸네.”라고 대답한다. 개미 여왕을 만들었든, 강아지를 그렸든 비율이 맞는다거나 진짜 같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자신들만의 스타일이 확실하다. 아이들은 이제 잘 만들거나, 잘 그린 것이 무엇과 똑같은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이 잘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그런 좋은 은사들은 특별히 하나님이 널 위해 허락하신 거야. 그걸 소중히 여기고 잘 지켜갔으면 좋겠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때때로 엄마는 그것에 어긋나는 실수를 한다.
조흔이는 호기심이 많고, 무슨 일이든 납득이 될 때까지 질문하며, 자기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열심히 설명한다. 조흔이의 이런 면은 소통을 통해 생각의 너비를 넓히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나 집에서나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땐 그런 질문과 설명에 차근히 대꾸하며 기다려주지만, 밖에서나 집에 손님이 있을 땐 엄마는 여유를 잃고 곧잘 실수한다. 아이의 타고난 성격의 존중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혹시 조흔이가 ‘부모님 말씀에 토를 다는 아이’로 보이진 않을까 염려하며 ‘얌전하고 순종하는 아이’로 보이길 원하는 마음에 단호한 표정으로 성급히 아이의 말을 막는다. 그런 소통의 단절을 몇 번 경험한 날이면 잠들기 전까지 유독 예민해져 있는 조흔이를 보게 된다. 그제야 엄마는 ‘아차! 내가 오늘 또 여러 번 실수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에 후회한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하루 동안 있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아빠가 샤워 중일 때 아빠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다 끊기자 당황하던 조흔이가 큰 소리로 “아빠, ‘부재중’이란 분한테 전화가 2통이나 왔어요!”라고 말해 한참 웃었던 이야기,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싶대서 시켜줬더니 15분 남짓을 어색해하다 팽이 얘기가 나오자 40분을 팽이얘기만 하다 배터리가 떨어진 일, 혼자 자는 것이 무서운 조이가 오빠에게 닭싸움해줄 테니 같이 자자고 조르다 실패로 끝난 이야기. 어른들은 생각지도 못한 행동들에 절로 웃음이 난다. 문득 남편이 “여보, 천진난만이라는 말의 뜻 알아? 뜻이 너무 아름답더라.”라고 한다. 천진난만이 어떤 경우에 쓰이는지는 알지만, 정확히 무슨 뜻일까 궁금해 얼른 사전을 찾아본다. ‘아무런 꾸밈없이 말과 행동이 순수한 그대로’를 이야기하는데 ‘하늘에서 타고난 그대로 핀 꽃 같다’라는 데서 이런 뜻이 나왔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하늘에서 타고난 그대로 핀 꽃’.
나도, 아이들도 하나님이 손수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 아름다운 특성들과 차이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과 솜씨 안에서 정해졌다. 아이들을 잘 돌보고 가르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더욱 빛나도록 돕는 것은 부모의 거룩한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거기에 욕심이 더해 하나님이 만드신 고유한 특성들을 밀어내고 내가 만든 인간적인 이상형에 아이들을 맞춰 나가려는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만다. 잦은 실수를 하고, 후회를 반복하며 나의 헛된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또 비단 아이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조화로움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지 되새긴다. 서로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