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시, 이 할머니는 곧 내 스승이다
옛날 남천축에 사하결(私呵絜)이라는 나라가 바닷가에 있었는데, 그 성은 가로 세로로 8만여 리였다.
그때 다른 나라에 아룡(阿龍)이라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난리를 만나 떠돌아 다니다가 이 나라에 와 있었다.
외로운 몸이 돌아갈 곳이 없어 구걸하여 생활하다가 어느 장자의 집에 가서 붙어 있고자 하였다.
장자의 아내가 그를 보고 사정을 물었을 때 할머니는 곤궁한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장자는 가엾이 여겨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우리집에 있으시오. 도와 드리겠소.”
할머니는 기뻐하였다.
“내게는 이 은혜를 갚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잔심부름이나 시키면 그 일이 많더라도 꺼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내 거기 머물러 있었으나 그녀는 슬프기도 하였다.
‘옛날에 여러 스님들을 공양할 때에는 마음대로 차렸지만, 지금은 갑자기 곤궁하게 되어 보시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풀지 못하겠구나.’
그러면서 서러워하였다.
마침 어떤 도인을 만나 문안을 마친 뒤에 물었다.
“별고 없으십니까[不審], 스님은 아침 공양을 마치셨습니까?”
도인은 대답하였다.
“아침에 성에 들어가 걸식하였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와 쉬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려 하였으나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여러 도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성 안에 들어가 보아서 만일 공양이 준비되면 곧 돌아와 아뢸 것이요, 되지 않더라도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여러 도인들은 그리 하라 하고, 모두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장자 부인에게 아뢰었다.
“몇천 냥의 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심부름꾼이 되어 있지마는, 내 몸을 팔아 종신토록 종이 되겠습니다. 증서라도 쓰겠습니다.”
장자 부인은 물었다.
“할머니는 지금 우리집에서 입고 먹고 하는데, 또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니, 그것을 가지고 무얼하려는 것입니까?”
“사사로이 급히 쓸데가 있는데,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장자 부인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가져가 쓰시고 때가 되거든 돌려주십시오. 증서는 가져 무엇합니까?”
할머니는 돈을 가지고 그 근처에 본래부터 아는 이를 찾아가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돈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예순 집에서 공양을 만들게 하였다.
잠깐 동안에 준비가 되어 도인들에게 가지고 갔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지마는 지극한 정성이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여러 도인들은 그 음식이 뜻밖에 나온 것을 이상히 여겨 물었다.
“할머니는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아침에 걸식할 때에는 돌아다니지 않은 마을이 없었는데, 왜 도무지 만나 볼 수 없었습니까?”
할머니는 자기 내력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나는 아무 나라 사람입니다. 집에서는 본래부터 부처님을 받들고 스님들을 공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난리를 만나 집안이 망하고 단신으로 떠돌아 다니면서 여기까지 와서, 이 나라의 어떤 장자 집에 의탁하여 심부름꾼으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 몸으로 목숨만 의지하고 있으니 돈 한 푼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까 도인님들을 보니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얽혔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는 있었지마는 원은 풀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 부인에게 말하였습니다.
‘내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조금 구해 스님들에게 공양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그리하여 하찮은 내 정성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도인들은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지극한 보시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끼리 말하였다.
“우리도 5음(陰)으로 된 몸으로써 걸식하러 다니지마는 오늘 먹은 것은 사람의 살을 먹은 것이다. 우리는 각기 뜻을 세우고 이 보시의 공을 갚아야 한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거두어 오로지 선정에 힘썼다.
그 정성이 통하여 곧 초정(初定)을 얻어 신통과 위덕은 온 나라를 진동하였다.
그리하여 나무들도 몸을 굽혀 절하는 것 같았다.
도인들은 그것을 보고 시주를 찬탄하였다.
국왕은 그 놀라운 까닭을 이상히 여기고 신하들을 불러 의논하였다.
“그 상서로운 징조를 살펴보라.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되었는가?”
신하들은 사방으로 나가 그 까닭을 살펴보았다.
성문 밖에 도인들이 모여 시주를 서로 칭찬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바로 저 때문입니다. 빨리 청하여 불러오소서.”
신하는 돌아와 왕의 명령을 전하였다.
할머니는 두려워하여 어떤 화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대답하였다.
“내 몸은 장자 부인에게 매여 있어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하는 돌아가 왕에게 그 사정을 아뢰었다.
왕은 말하였다.
“다같이 오라고 하라.”
이에 장자 부인은 왕의 명령을 듣고 곧 할머니와 함께 왕에게 나아갔다.
왕이 그 사정을 묻자, 할머니는 그 동안의 내력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말하였다.
“나는 나라의 주인으로 굉장한 부자지만 3존(尊)을 받들어 공경하지 않고 도사를 공양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이처럼 정성이 지극하다.”
왕은 이어 말하였다.
“이 할머니는 곧 내 스승이다.”
그리하여 궁전 안으로 맞아 들여 향탕(香湯)에 목욕시키고 스승의 자리에 앉혔다.
궁녀와 채녀(婇女)들이 모두 2만이었다.
그리고 왕이 몸소 계를 받아 우바새가 되자, 부인과 채녀들은 모두 우바이가 되었고, 백성들은 모두 도의 마음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