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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보삼매경 상권
3. 변화, 보는 것, 윤문을 끊다, 공의 선정, 초발심
[사리불과 보래, 다함이 없는 국토]
사리불이 보래보살에게 여쭈었다.
“어지신 분께서 오신 그곳 국토에서는 어떤 종류의 본원(本願)이 있으며, 무엇 때문에 다함이 없는 국토[無極國土]라고 말합니까?”
보래가 대답하였다.
“다함이 없는 국토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다함이 없는 국토에 계신 분들은 모두 다 보살로서 아라한이나 다른 종류의 잡된 사람들이 없으며,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일곱 가지 보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래가 말하였다.
“내가 발원한 이래로 건너야 할 곳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다함이 없는 국토에 있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법이 일어난 곳이 없으니 어찌 생각[思想]인들 있겠습니까?
모든 국토에서 서원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니 이제 또 다함이 없는 생각과 서원에 이를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지신 분께서 오실 때에 아름다운 꽃을 싸 가지고 오셨는데, 그 진기한 보배에 대해서도 또한 귀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대답하였다.
“이 꽃은 아무런 형상도 없고 다만 이것을 주(主)로 하여 죽림원에 법기(法器)로 주었을 뿐입니다.
또 사리불이여, 불상(佛像)을 보고 부처님의 도에 예를 올렸는데 위엄과 신통이 어찌 그 불상 안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비록 불상 안에 있지 않다고 해도 또한 불상을 떠난 것도 아니며, 다만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들이 위신력이 있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관찰해보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원이란 비유하면 도리천에 어떤 꽃이 있는데 그 꽃의 이름은 구기(拘耆)라 하며, 여러 하늘들은 누구든지 그 꽃을 사랑하여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보살은 법으로써 일체를 삼아서 안목(眼目)을 인도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도라는 것이 본래 다만 마음으로써 법의 그릇을 만들 뿐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마음에만 유달리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까?”
보래가 말하였다.
“마음이라는 것은 모든 법과 화합하는 것이고, 모든 법도 마음과 화합하는 것이므로 도에는 주장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으킴이 없는 것으로써 주장을 삼습니다. 그런 까닭에 법기(法器)가 되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것]
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변화를 보았습니까, 보지 못했습니까?”
“보았습니다.”
보래가 말하였다.
“변화하는 도는 어느 곳에 있으며, 또 어느 곳에서 왔고, 가게 되면 어느 곳으로 갑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변화엔 처소가 없습니다.”
보래가 말하였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변화한 것인지를 압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다만 변화가 이룩되었을 때에 그 본말(本末)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래가 말하였다.
“그런 까닭에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습니다.”
[보는 것]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것은 거꾸로[倒] 보는 것입니까? 보는 것이 없다면 어떤 것을 본다고 합니까?”
보래가 말하였다.
“모든 생각은 변화[化]와 같나니,
이것이 견(見)이 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이 변화와 같은 것이요,
미래의 법은 아무 이름도 없나니 이것을 견이라 하며,
조작함이 없는 법이요 짓지 아니한 법이니 이것을 견이라 하고, 조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름이 없는 모습을 짓나니 이것이 견이 되며,
달살아갈이 조작 없는 지음을 지으므로 이것이 견이 됩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이 견 가운데에는 왕래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보래가 말하였다.
“왕래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것이 견이 됩니다. 가령 왕래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견이 되지 못하나니 이것은 거꾸로 본 것입니다.”
[윤문(輪門)을 끊은 것]
사리불이 보래보살에게 물었다.
“윤문(輪門)을 끊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보래가 말하였다.
“살바야(薩婆若:一切智)가 이미 형상이 없는 문[無形之門]임을 보았다면 이것은 이미 윤문(輪門)을 끊은 것이며,
이미 공하여 없어져서 탈(脫)과 무탈(無脫)에 대하여 공을 이룩한 것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공하여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처소와 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작용이 근본에서 벗어났고 그 법륜이 구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담마, 새로 배우는 사람에게 이 법을 체득하게 하고 싶다]
담마보살이 보래보살에게 말했다.
“여러 새로 배우는 사람에게 제가 모두 이 법을 체득하게 하고 싶습니다.”
[보래, 공(空)의 선정[定]을 얻으려고 하면, 아홉 가지 법]
보래가 말하였다.
“공(空)의 선정[定]을 얻으려고 하면, 마땅히 아홉 가지 법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마땅히 시방세계 사람들을 다 보살이 되게 해야 하고,
둘째는 모든 악한 마음을 보거든 마음으로 하여금 끝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며,
셋째는 다섯 갈래 세계에서 수고하거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넷째 어리석은 무리가 있으면 그 가운데에서 ‘나[我]’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고,
다섯째는 모든 어둠[不明]을 보나 모두 밝아지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의 뜻이 되며,
여섯째는 지은 바 공덕이 있으면 그 공덕을 다 잃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일곱째는 시방세계의 사람들을 보면 다 평등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고,
여덟째는 현재ㆍ미래ㆍ과거의 모든 의왕(意王)이 될 만한 이를 보면 다시는 인식작용[識]에 부림을 당하지 않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되며,
아홉째는 모든 부처님 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보살의(菩薩意)에 대한 뜻을 움직여 변하지[轉] 않게 해 이것을 따라서 삼매를 속히 증득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이 선정이 됩니다.”
[미륵, 누가 아뇩다라삼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지 않았는가]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는 모임에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가 아뇩다라삼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아뇩다라삼야삼보리를 구하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 전 누타(樓陀)부처님 시절에 나는 처음 마음을 내었는데 번뇌에 덮여 큰 지혜를 증득하지 못하였고, 다만 마음을 낸 보살이라는 말만 들었느니라.
그리고 다만 공한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선지식[善師]을 얻지 못했고 구화구사라도 얻지 못했느니라.
선지식을 멀리 여의고 욕왕(欲王)에게 속임을 당하여 마음의 집착을 끊지 못하고 바라밀을 잃어버렸느니라.
그랬더니 62겁이 지난 뒤에 자연히 부처님 회상에서 법을 깨닫게 되어, 내가 인정하던 모든 의심을 끊고 문득 근본이 무(無)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어서, 곧 공 가운데 있으면서 모든 근(根)을 곧바로 단절할 수 있었느니라.
그리고 지혜의 문을 보아 문득 움직임이 없는 형상을 얻었고, 이로부터 점점 수행하여 법륜을 끊었으며, 다시금 정각(正覺)으로부터 이 삼매를 받았는데,
비록 62겁 동안 마음을 내었지만 법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었으며,
뒤에야 자연히 부처님 회상에서 법을 깨닫게 되어 문득 대수(大樹)를 얻고 비로소 처음 마음 냈던 것을 고쳤느니라.
내가 마음을 낼 때, 90억 명의 사람도 모두 함께 처음으로 마음을 내어 아뇩다라삼야삼보리를 구하게 되었느니라.”
[미륵,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법]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것에는 몇 가지 법이 있습니까?”
[아홉 가지 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홉 가지 법이 있느니라.
첫째는 대중의 모임을 멀리 여의고 항상 뜻이 적정(寂靜)한 것이고,
둘째는 선지식을 얻어 법을 받아 따르는데 잃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악지식(惡知識)을 멀리하여 섬기거나 따르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다섯 가지 일을 항상 멀리 여의는 것이니,
그 첫째는 악한 사문(沙門)이고,
둘째는 악한 바라문(婆羅門)이며,
셋째는 악한 황문(黃門)이고,
넷째는 사나운 소ㆍ사나운 말이며,
다섯째는 모진 독사와 많은 독을 가진 벌레이니,
이 다섯 가지를 마땅히 따르거나 섬기지 말아야 하느니라. 도를 증득하지 못한 사람들을 니리(泥犁)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다섯째는 처음 마음을 내어 나한과 벽지불의 마음을 구하는 사람을 마땅히 멀리하는 것이니, 마땅히 숱한 마군의 일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이고,
여섯째는 오로지 꿈속에서도 부처님께서 심오한 법 말씀하심을 보는 것이며,
일곱째는 다만 법을 위하여 마음을 내고 음식에 뜻을 두지 않는 것이고,
여덟째는 마땅히 사람들이 자주 모이기를 희망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마땅히 시방세계에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고 마땅히 삼매에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서 부처님의 자리에 앉고자 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아홉 가지 법이 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이때 6만이나 되는 애욕천자(愛欲天子)들이 모두 이 삼매를 얻었다. 그때 허공을 날아다니던 여러 하늘들이 모두 다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이 법을 듣고서 증득한다면 그 복덕은 무량할 것입니다.”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든 천자가 이 법을 듣고서 증득하여 스스로 공덕을 지니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지니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모든 천자가 지금 이 법을 들은 것은 과거세에 이미 2만 부처님을 섬겼기 때문이다.
사리(舍利)에 공양함이 수미산과 같다 해도 비록 이것의 복덕은 있을지언정 니원에 이르는 것에는 아무런 유익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이제 이 삼매를 들으면 앞에서 쌓았던 공덕은 소멸되어 무너질 것이니라.
왜냐하면 지난 세상에서 심었던 복은 모두가 나고 멸함이 있기 때문이며,
지금 이 삼매는 공으로써 존재[有]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니라.”
[미륵, 삼매는 무너지지 않는가]
미륵이 또 말하였다
“이 삼매를 들은 사람은 다음 세상에 다시는 괴멸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삼매는 끝끝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삼매는 명처(名處)도 없고, 상처(想處)도 없으며, 염처(念處)도 없고, 형처(形處)도 없으며, 식처(識處)도 없고, 위신처(威神處)도 없으며, 결행구탈처(結行求脫處)도 없느니라.
삼매는 청정(淸淨)하며,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지도 않고 저기에서 여기에 이르지도 않느니라.
상비상처(想非想處)를 소원하지도 않고, 조작함도 없으며, 변화하여 형상이 없는 처소이고, 나고 죽음도 단절되어 없고, 끊어 없어지는 처소도 아니며, 다만 이름만 있을 뿐이니라.
삼매엔 다만 메아리[響]만 있을 뿐이고, 다만 지혜를 여는 처소만 있고, 지혜는 도달하는 처소가 없느니라.
삼매엔 그릇을 만드는 처소도 없나니 그런 까닭에 무너질 수 없고 멸할 수 없느니라.
삼매엔 색처(色處)도 없고, 애욕에 대해 인식작용[識]을 짓는 처소도 없으며, 실천을 일으키는 처소도 없고, 갖가지 맛을 받아들이는 것도 없으며, 형상도 없고, 나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느니라.
생겨나는 처소도 없고, 호응[應]하는 처소도 없으며, 고요하여 움직임도 없고, 변폭도 없나니, 그러므로 삼매는 무너지지 않느니라.
만약 무너짐이 있다면 이것은 곧 크게 어리석은 근생(根生)의 문일 것이니라.
[다섯 가지 정직하지 못한 것]
또 사리불아, 다섯 가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정직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종사하지 않아야 한다.
첫째는 마땅히 두 가지 법에 머물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마땅히 법에 대하여 일으키는 바가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는 마땅히 모든 법에 대해 옳다 그르다, 없다 있다는 상[名]을 나타내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넷째는 마땅히 현재ㆍ미래ㆍ과거에 대해 보는 바가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법을 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가 되느니라.
보살로서 이 감[去]도 없고 옴[來]도 없는 법을 증득한 이는 빠르게 아뇩다라삼야삼보리를 증득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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