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 상권
2. 관여래품(觀如來品)
그때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어 사자좌에 앉으시고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열여섯 여러 나라 왕들이 모두,
‘세존께서 대자비로써 널리 모두를 이롭고 안락하게 하여 주시니 우리들 여러 왕은 어떻게 나라를 보호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선남자여, 나는 지금 먼저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불과(佛果)를 지키고 십지행(十地行)을 보호하는 법을 설할 것이니, 너희들은 모두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생각하라.”
이때 대중들과 바사닉왕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다 같이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리고는 곧 한량없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보배 꽃을 흩으니, 허공에서 보배 일산으로 변하여 모든 대중을 덮어 두루하지 않는 데가 없었다.
이때 바사닉왕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무릎 꿇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하여야 불과(佛果)를 보호하고 십지행을 지키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불과를 보호하려면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일체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을 교화하되,
색의 모습[色相]을 보지 말고, 색의 여여함[色如]를 보지 말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과,
나와 남의 지견(知見)과,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과,
4섭(攝)ㆍ6도(度)ㆍ2제(諦)ㆍ4제(諦)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 등 일체의 행(行) 나아가 보살과 여래도,
이처럼 모양[相]을 보지 말 것이요, 여여함[如]도 보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곧 진실(眞實)이기 때문이니,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진제(眞際)와 같고 법성(法性)과 동등하며,
둘도 없고 다름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온(蘊)ㆍ처(處)ㆍ계(界)의 모습에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보살과 중생의 성품이 둘이 없다면 보살은 어떤 모양으로 중생을 교화합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색ㆍ상ㆍ행ㆍ식과 상ㆍ낙ㆍ아ㆍ정의 법성은 색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색 아닌 것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수ㆍ상ㆍ행ㆍ식과 상ㆍ낙ㆍ아ㆍ정도 청정함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청정하지 아니함에도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성품이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고, 세제(世諦)를 말미암기 때문이고, 3가(假)를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체 유정(有情)의 온ㆍ처ㆍ계의 법은, 복(福)이거나 복이 아니거나 움직이지 아니하는 행[不動行] 등을 지어 인과(因果)가 다 있으며[有],
삼승(三乘)의 현성이 닦은 모든 행과 나아가 부처님의 과(果)에 이르기까지 다 있다고 이름하며 62견(見)도 있다고 이름한다.
대왕이여, 만약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여 모든 법을 분별하면, 6취(趣)ㆍ4생(生)ㆍ3승(乘)의 행과(行果)에서 곧 이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은 청정하고 평등하여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데 지혜가 어떻게 비춥니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지혜로 참된 성품을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라고 비춘다.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
곧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12처(處)ㆍ18계(界)ㆍ사부(士夫)ㆍ6계(界)ㆍ12인연(因緣)ㆍ2제(諦)ㆍ4제(諦) 등의 일체가 다 공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법들은 생기자마자 소멸하고 존재하자마자 공하나니, 찰나찰나도 이와 같다.
왜냐하면 한 생각 가운데 구십찰나(九十刹那)가 있고 일찰나(一刹那)가 지나는 동안에 구백 번 생하고 멸하니,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다로써 모든 법을 비추어 보면 일체가 다 공하니,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승의공(勝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무시공(無始空)ㆍ필경공(畢竟空)ㆍ산공(散空)ㆍ본성공(本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일체법공(一切法空)ㆍ반야바라밀다공(般若波羅蜜多空)ㆍ인공(因空)ㆍ불과공(佛果空)ㆍ공공(空空)이 모두 공하기 때문이다.
모든 유위법은 법이 모인[法集] 까닭에 있고[有:존재],
수가 모인[受集] 까닭에 있고,
이름이 모인[名集] 까닭에 있고,
원인이 모인[因集] 까닭에 있고,
결과가 모인[果集] 까닭에 있고,
6취(趣)인 까닭에 있고,
십지(十地)인 까닭에 있고,
불과(佛果)인 까닭에 있으니, 일체가 다 있다.
선남자여, 만약 보살이 법의 모양[法相]에 머물러서 나라는 모습이 있고[我相] 남이라는 모습[人相]이 있고 중생(有情)의 지견(知見)이 있어 세간에 머물면 곧 보살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이 모두 다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법에서 움직이지 아니함을 얻으면,
생기지도 아니하고 멸하지도 아니하고,
모양도 없고 모양 없음도 없으니,
마땅히 견해를 일으키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법이 다 여여[如]하기 때문이요,
모든 불(佛)ㆍ법(法)ㆍ승(僧)도 여여하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지혜[聖智]가 앞에 나타나는 최초의 한 생각에 팔만 사천 바라밀다를 구족함을 환희지(歡喜地)라 하고 번뇌가 다하여 해탈하도록 실어서 운반하는 것을 승(乘)이라 하며,
움직이는 모양이 멸할 때를 금강정(金剛定)이라 하며,
체(體)와 상(相)이 평등한 것을 일체지지(一切智智)라 한다.
대왕이여, 이 반야바라밀다의 문장과 구절은 백 부처님ㆍ천 부처님ㆍ백천 만억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같이 설하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하고 대천세계 일체 유정이 다 아라한과(果)를 얻게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서 한 생각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만 못하니,
하물며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여 주는 자이겠는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는 문자의 성품을 여의고 문자의 모양이 없으며,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가 공한 까닭에 보살도 공하다.
왜냐하면 십지(十地) 가운데는 지(地)마다 모두 시생(始生)ㆍ주생(住生)ㆍ종생(終生)이 있으니,
이 30생(生)이 다 공하고 일체지지도 다 공하기 때문이다.
대왕이여, 만약 보살이 경계를 보고 지혜를 보고 설함을 보고 수(受:감수)를 보면, 곧 성인의 견해가 아니고 범부(凡夫)의 견해이다.
유정의 과보는 삼계가 허망하여 욕계(欲界)의 분별로 짓는 모든 업(業)과 색계(色界)의 4정려정(靜慮定)에서 짓는 업과 무색계 4공정(空定)에서 일으키는 업 등, 3유(有)의 업과(業果) 일체가 공하며 삼계의 근본인 무명(無名)도 공하다.
성현의 지위의 모든 지(地)와 무루(無漏)와 생멸(生滅)과 삼계 가운데 남은 무명의 습기[無明習]와 변화하는 과보도 다 공하고,
등각(等覺)보살이 얻은 금강정(金剛定:금강삼매)과 이사(二死)의 인과(因果)도 공하고 일체지(一切智)도 공하며,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이신 원만한 종지(種智)와 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과 진실로 청정한 법계와 성품과 모양이 평등하게 작용하는 것도 공하다.
선남자여, 만약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익혀 설하고 듣는 자가 있다면,
비유하면 요술장이가 설한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음과 같다.
법이 법의 성품과 같아 마치 허공과 같으며 일체법도 다 같다.
대왕이여, 보살마하살은 불과(佛果)를 보호함을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바사닉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떤 모양으로 여래를 보는가?”
바사닉왕이 아뢰었다.
“몸의 실상을 보나니, 부처님도 그렇게 봅니다.
전제(前際)도 없고 후제(後際)도 없고 중제(中際)도 없어서, 삼제(三際)에 머물지 아니하고 삼제를 여의지 아니하며,
5온(蘊)에 머물지 아니하고 5온을 여의지도 아니하며,
4대(大)에 머물지 아니하고 4대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6처(處)에 머물지 아니하고 6처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3계(界)에 머물지 아니하고 3계를 여의지도 아니하며,
방향에 머물지 아니하고 방향을 여의지도 아니하며,
명(明)과 무명(無明)이 같아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아니하며,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며,
깨끗하지도 아니하고 더럽지도 아니하며,
유위(有爲)도 아니요 무위(無爲)도 아니며,
자기의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으며,
보일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으며,
베풀 것도 없고 아낄 것도 없으며,
계를 지킬 것도 아니요 범할 것도 아니며,
참을 것도 아니요 성낼 것도 아니며,
정진할 것도 아니요 게으를 것도 아니요,
적정할 것도 아니요 산란할 것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어리석음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며,
들어오는 것도 아니요 나가는 것도 아니요,
복밭[福田]도 아니요 복밭이 아님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요 모양 없는 것도 아니며,
가지는 것도 아니요 버리는 것도 아니며,
큰 것도 아니요 작은 것도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요 듣는 것도 아니며,
깨닫는 것도 아니요 아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이 사라지고 말의 길이 끊어져서 진제(眞際) 와 같고 법성(法性)과 동등하니,
저는 이러한 모양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다. 모든 부처님ㆍ여래의 힘과 두려움 없음 등의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공덕과 모든 불공법(不共法)들은 모두 다 이와 같으니,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자는 응당히 이와 같이 볼 것이며,
만약 다르게 보는 자는 삿되게 본다고 한다.”
이 법을 설할 때 한량없는 대중이 법안(法眼)이 청정해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