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바새계경 제1권
3. 비품(悲品)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육사(六師)들은 인과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래께서는 인(因)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생인(生因)이요,
두 번째는 요인(了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생인입니까 혹은 요인입니까?”
“선남자여, 나는 중생을 위하여 혹은 한 가지 인(因)을 말하고,
혹은 두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네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다섯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여섯과 일곱 가지부터 열두 가지의 인까지 말하느니라.
한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생인이요,
두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생인과 요인이며,
세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와 업(業)과 기(器)며,
네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4대(大)이다.
다섯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5지(支)이며,
여섯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계경(契經) 중에 말한 6인(因)이며,
일곱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法華)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여덟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8지(支)이다.
아홉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대성경(大城經)』에서 설한 바와 같으며,
열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마남(摩男)우바새를 위하여 설한 것과 같으며,
열한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지인(智印)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열두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12인연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유루법(有漏法)의 무량무변한 인과, 모든 무루법(無漏法)의 무량무변한 인을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 알고자 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를 일체지(一切智)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보리심을 발하는데 혹은 생인이 있고, 혹은 요인이 있고, 혹은 생인과 요인이 있느니라.
너는 이제 마땅히 알라, 대저 생인이라고 하는 것은 곧 대비(大悲)이니라.
이 가엾어(悲)함으로 인하여 능히 발심하나니, 이러므로 비심(悲心)은 생인이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심을 닦을 수 있나이까?”
“선남자여, 지혜로운 자는 깊이 모든 중생이 생사고뇌(生死苦惱)의 큰 바다에 빠진 것을 보고 건져내고자 하나니, 이러므로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10력ㆍ4무소외ㆍ대비의 3념(念)을 지니지 못하였음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로 하여금 그런 것을 갖추게 할까 생각하나니, 이러므로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비록 원한과 삼독심이 많더라도 역시 친밀한 생각을 하나니, 이러므로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바른 길을 모르며 보이고 인도하는 것이 없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5욕(欲)의 진흙탕에 누워서 능히 나오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방일(放逸)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항상 재물과 처자 때문에 얽매이고 능히 버리고 여의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미모와 직업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악지식(惡知識)에게 미혹되어 친근한 생각을 내는 것이 6사(六師)등의 예와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생유(生有)의 계(界)에 떨어져서 모든 고뇌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즐기고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선하지 않은 악업을 지어서 많은 고과(苦果)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즐거워하고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오욕을 갈구(渴求)하는 것이 목마를 때 짠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비록 즐거움을 구하고자 하나 즐거움의 인을 짓지 못하고, 비록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으나 괴로움의 인을 잘 지으며, 천상의 낙을 받고자 하나 계행을 구족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는데 아와 아소라는 생각을 내는 것을 보고,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정해진 성품이 없어서 5유(有)에 유전(流轉)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생ㆍ노ㆍ병ㆍ사를 두려워하면서 다시 생ㆍ노ㆍ병ㆍ사의 업을 지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다시 업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애착하는 것과 이별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애착을 끊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무명(無明)의 어둠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지혜의 등불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번뇌의 불속에서 활활 타면서도 삼매 수행의 물을 구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오욕락을 위하여 한량없는 악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오욕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이를 구하는 것이 마치 굶주린 자가 독이 들어있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악한 세상에 살면서 가혹한 임금을 만나 많은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방일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8고(苦)에 유전하면서 그 괴로움의 원인을 끊어 없앨 줄을 모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굶주림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에서 자유스럽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금계(禁戒)를 위반하여 마땅히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질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색력(色力)과, 수명과 안온과, 변재에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모든 근(根)을 갖추지 못한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변두리 지방에 태어나서 선법을 닦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기근이 만연한 세상에서 몸도 수척하면서도 서로 위협하고 빼앗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칼과 군사의 위협에 처하였으면서도 다시 서로 잔혹하게 해치며 악한 마음이 더 성해져서 한량없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만나서 감로정법(甘露淨法)을 설하신 것을 듣고도 이를 받아 가지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사악(邪惡)한 벗을 믿고 마침내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많은 재보(財寶)를 가지고도 능히 희사 보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장사하여 팔고 사고 하는 것이 모두 괴로운 것임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또 중생이 부모ㆍ형제ㆍ처자ㆍ노비 권속과 친척을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땅히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처에서의 정(定)의 즐거움도 지옥의 괴로움과 같은 것이어서 모든 중생들이 함께 지녔음을 관하여, 이 때문에 가엾어 함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아직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이러한 관을 하는데 이것을 비(悲)라고 하고, 만약 도를 얻으면 곧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왜 그런가?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비록 이러한 관을 하여도 그 관이 모두 끝이 있고 중생계도 또한 끝이 있으나, 이미 도를 얻고 나면 관도 중생도 모두 끝이 없나니, 이러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가엾어 하는 마음이 흔들리므로 비(悲)라고 하고,
도를 이미 얻고 나면 흔들림이 없으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모든 중생을 능히 구제하지 못하므로 비라고 하고,
이미 도를 얻고 나면 능히 크게 구제하기 때문에 대비라고 하느니라.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지혜가 함께 행해지지 못하므로 비라고 하고,
도를 얻고 나면 지혜가 함께 행하므로 대비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로운 자는 가엾어 함을 닦나니, 비록 능히 중생의 고뇌를 끊지 못하여도 이미 한량없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육바라밀은 모두 가엾어 하는 마음으로 짓는 생인(生因)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출가한 이요,
두 번째는 재가보살이니라.
출가하여 가엾어 하는 것을 닦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로서 가엾어 함을 닦는 것은 어려우니라. 왜 그런가?
재가자는 악한 인연이 많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재가자로서 만약 가엾어 함을 닦지 않으면 우바새계(優婆塞戒)를 얻을 수 없으나,
만약 가엾어 함을 닦으면 이미 곧 얻은 것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출가한 사람은 오직 오바라밀을 구족할 수 있으나 단바라밀은 구족할 수 없다.
그런데 재가자는 능히 구족할 수 있으니, 왜 그런가?
언제든지 무엇이나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재가자는 마땅히 먼저 가엾어 함을 닦을 것이니,
만약 가엾어 함을 닦으면 이 사람은 능히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갖출 것이다.
만약 가엾어 하는 마음을 닦으면 베풀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베풀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으며,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하리니, 그러므로 온갖 선한 법은 가엾어 함이 근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이러한 가엾어 하는 마음을 닦으면 이 사람은 능히 수미산과 같은 악업을 부수고,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아뇩다라샴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이 사람이 지은 것이 적은 선업일지라도 과보로 얻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