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리문경 상권
3.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다시 묻겠으니, 원하건대 부처님께서 해설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묻고 싶은 대로 물어라.”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열반(涅槃)에 드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것이 아니고 중생들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마치 유리(琉璃)구슬이 청정하여 때가 없기에 흰 물질을 만나거나 푸르고 누렇고 붉은 물질을 만나면 이 유리구슬은 물질의 빛깔에 따르나 유리는 무심(無心)하여 다른 빛깔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문수사리여,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
혹 어떤 중생은 부처가 열반에 들어 법 바퀴 굴리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뭇 마군을 항복 시키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널리 신통을 나타내어서 대소변 보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식사하는 것을, 혹은 잠자는 것을, 혹은 다니는 것을, 혹은 웃는 것을 보기도 하여 중생들의 뜻대로 다 보니, 여래가 바로 그러하다.
문수사리여, 또다시 허공이 색(色)이 없으면서 색이 그 가운데 나타나되,
허공은 잡음[取]이 없으면서 모든 색을 잡으며,
허공은 뜻이 없으면서 생각을 내며,
허공은 처소가 없으면서도 중생들의 처소가 되며,
허공은 무너짐이 없으면서도 무너지는 것은 허공을 의지하니,
여래의 법신(法身)은 바로 더러운 몸이 아니고, 피와 살의 몸이 아니고,
바로 금강(金剛)의 몸이며, 부수어지지 않는 몸이고, 부술 수 없는 몸이고, 비유할 수 없는 몸이나 능히 일체 모든 색을 나타내니,
지혜ㆍ금강의 몸으로써 부수어지는 몸으로 나타낸다.
문수사리여, 만약에 부처가 열반에 들지 않는다면, 세간에선 부처의 이 법신이 금강이 아니기에 부수어지며, 또는 금강이기에 부수어지지 않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의 지혜 몸이 열반을 나타내 보임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고 방편으로써 일부러 열반에 드는 것을 설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열반이란 뜻이 많으니,
큰 것은 열반이 아닌데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는 것은 의식이 없는 대승(大乘) 열반으로서 이를 큰 반열반[大般涅槃]이라 하며,
작은 열반[小涅槃]이란 연각(緣覺)과 성문(聲聞)의 열반과 같은 것이다.
큰 것은 열반이 아니라는 것은 열반이란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작은 열반이란 바로 자신의 업(業)이고 다른 사람의 업이 아니니, 이 때문에 작은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열반이란 아래의 뜻이고, 내가 말하는 죽음이란 열반을 이른다.
여래는 죽지 않으니, 왜냐하면 성문도 오히려 나고 늙고 죽음이 없어서 근심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데 하물며 여래의 법신처럼 불가사의한 몸이고 나지 않는 몸이고 없어지지 않는 몸이고 사라지지 않는 몸이겠느냐.
저 오랜 수명을 지닌 천신들이 여래가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는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사모함은 반야바라밀의 인연을 심을 만하고,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인연을 심을 만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여래의 금강 몸이
오늘날 이미 파괴되었다 하면
이 몸도 오히려 파괴되거늘
하물며 힘 약한 자이겠느냐.
이것을 슬퍼하고 그리워하여
빨리 법신을 얻을지니
이 때문에 여래는
열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노라.
여래의 미묘한 법신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법이 아니고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니만큼
이 법신이야말로 부사의한 법신이네.
그 대중 가운데 대의(大意)라는 보살이 이 게송을 읊었다.
여래가 열반이 아니고
열반이 여래가 아니고
또한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아니니
있고 없는 상(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어떤 이가 모니(牟尼)께서
생사를 아주 여읨을 보면
집착하는 것 없음을 이루어
이것저것에 다 집착하지 않으리라.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여래로서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다면 어떻게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래의 중생들이 이러한 의심을 가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허공이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역시 일체 중생들의 처소가 되고,
4대(大)가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일체 중생들이 의지하는 것이 되고,
해와 달이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광명이 일체 중생들을 비추고,
수목(樹木)이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능히 중생들에게 꽃과 과일을 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어떤 마니(馬尼) 구슬이 일체 중생들의 뜻대로 되었다.
바다 속에서 생겨난 그 구슬을 당기[幢] 위에 안치하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에 따라 금ㆍ은ㆍ유리ㆍ진주 등 보물이 그 마니 구슬로부터 나와 능히 그 수명을 길이 늘이되,
마니 구슬은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중생의 뜻을 따라 줄지 않았으니,
설사 이 세간의 모든 것이 다 소멸되어 다른 곳으로 갈지라도 구슬이 만약 떨어지지 않는다면 큰 바다는 마르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여래도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되 여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래는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부처는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일체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니
이같이 여래의 부사의함을
능히 믿는 자도 역시 그러하리.
그때 문수사리가 여래를 찬탄하여 이 게송을 읊었다.
조어사[調御]ㆍ무등쌍(無等雙)의
한 길 여섯 자 몸 법신인
모든 부처님께 저는 예배하고
또 불탑(佛塔)에 예배하옵니다.
태어난 곳과 득도(得道)한 곳과
법 바퀴 굴리는 곳과 열반한 곳과
다니고 서고 앉고 누웠던
일체 모든 곳에도 다 예배하옵니다.
모든 부처님 부사의하시고
묘한 법 또한 그러하며
과보를 믿는 자라면
그도 역시 부사의할 것이며
능히 이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탄하는 자도
천만억 겁(劫)에 걸쳐
모든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여래야말로 한량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부처는 감자(甘蔗) 종성에 태어나
사라지고 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건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지옥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부처는 감자 종성에 태어나
사라지고 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건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아귀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부처는 감자 종성에 태어나
사라지고 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건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축생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