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기전에, 책과 모임 후기를 적는다.
이 책을 접했을 때, 시대별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민우회에서 독서모임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여성문학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해석하는 모임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모임이라 걱정도 되고, 참여자 모집부터 고생이 많았지만 성황리에 잘 끝났다 ! 독서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적어본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 아이비의 엄마는 아빠나이의 남자와 결혼하라고 재촉한다. 엄마는 왜 그런 행동을 했으며, 당시(1927년)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이비는 고향을 떠나 도시 런던에 정착한다. 샤넬에게 영감을 받아 패션디자니어를 꿈꾼다. 그런 아이비를 못마땅하며 엄마는 얼른 고향으로 돌아와 시집을 가라고 한다. 아이비는 고향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로 가서 샤넬에 취직하겠다고 말한다. 모녀사이는 급격히 악화 된다. 그 후로 아이비 엄마에 대한 언급이 없다. 1927년은 1차세계대전이 겪은 후다. 두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여성들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여성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아이비는 그 시류를 타고 런던, 파리에 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이비는 자신의 패션을 나무라는 엄마에게 샤넬의 패션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접고 이런 옷은 돈이 된다며 상황을 무마한다. 마치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딸을 나무라는 부모에게 운동의 의미를 설명하기 보단, 대충 둘러대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당시에는 여성의 옷을 꽉 조이는 코르셋이 유행했다. 샤넬은 통정장을 만들어 여성해방을 외쳤다. 아이비는 본인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당시 해방의 물결에 함께 한 인물이라 생각한다. 또한, 아이비의 엄마가 결혼을 재촉하는 이유는 본인의 노후안정을 위함이다. 당시에는 여성에 대한 복지가 부재했고, 특히 노동력이 없는 노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통로는 결혼 한 자녀였을 것이다. 오만과편견에서 리지의 엄마가 딸들의 결혼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
📍취준생 아이비와 그의 친구 헬렌
아이비는 패션디자이너로의 성공을 꿈꾸지만,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룸메이트였던 헬렌은 피에르의 누드모델을 하며 돈을 벌라고 한다. 헬렌은 성관계를 통해 남성과 사랑을 나누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마다 상대를 유혹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아이비는 절대 몸을 팔아서 돈을 벌수 없다고 한다. 아이비는 '뤽(헬렌의 애인) 앞에서 옷을 벗는게 수치스러웠던 적이 없었냐'고 묻는다. 헬렌은 '어떤 일에 경계선을 긋는 건 앞길을 막는 장벽이나 마찬가지이며, 자기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으면 뤽은 절대 그 벽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장벽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제어할 수 있는 힘' 이라고 말한다. 아이비는 '내가 금기를 정하는 주체라면, 금기를 깨뜨려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대담해질 수 있으려나?' 생각한다. 그리고 피에르의 누드모델이 된다. 1927년 당시, 여성들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조력자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것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인물을 판단할 수 없다. 헬렌은 그 당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던게 아닐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아이비는 큰 역경을 겪는다. 그 후 헬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잘 살았을거 같다.
📍피에르의 누드모델이 된 아이비/ 피에르와 해나의 변호사 가브리엘의 공통점
아이비는 파리의 여러 패션회사 뿐 아니라 백화점에서 조차 일 할수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피에르의 화실에서 누드모델을 하게 된다. 피에르는 아이비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한다. 자세를 고쳐주는 척 하다가 아이비의 가슴을 만진다. 아이비는 화를 내며,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피에르는 연신 사과하며 다시 돌아와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비는 다시 돌아왔고 피에르는 반성은 커녕 화실에 불을 지펴주지 않고 아이비에게 더 함부로 대한다. 현재 (2018년) 해나의 시점으로 돌아와서 아이비 할머니의 파리의 아파트를 알게 된 말다와 해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유부남 가브리엘이 결혼한 것을 숨기고 해나를 유혹하다 걸리게 된다. 그 후 가브리엘이 연신 사과를 한다. 그러다가 해나의 블라우스를 찢게 되고 물세례를 맞자 '나쁜년' 이라 말한다. (아마 번역은 순화된 것이고 더 심한 욕설이었을 듯) 1920년대를 살아가는 피에르와 2018년을 사는 가브리엘은 똑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왜 계속 이런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핵심적인 것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피에르는 패션잡지 기자를 소개시켜준다고 말한다. 당시(1920년)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선 남성의 조력이 필요했다는것을 알 수있다. 현실적으로 권력을 잡고있는 것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가브리엘 샤넬이나 한국의 나혜석 같은 신여성들도 중요한 순간마다 남성의 조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2023년)은 어떨까? 물론 과거보단 여성인권이 신장되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피에르, 가브리엘 두 사람 모두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다.
📍말다는 왜 해나를 자신의 엄마에게 맡겼다가 데려가는 일을 반복했을까?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은 해나의 엄마 '말다'였다. 해나 입장에서 서술되는 동안 늘 말다의 생각이 궁금했다. 말다는 영국행 비행기를 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기분으로 파리에 갔을까? 등등.. 그러다가 왜 말다는 계속 해나를 맡기고 데려가는 걸 반복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4명의 모녀들을 보았을 때, 아이비와 말다, 말다의 엄마와 해나가 성향이 잘 맞는 것 같다. 아이비와 말다는 성향이 비슷하지만, 아이비는 건전한 방향으로 말다는 자기 파괴적으로 성장한 것 같다. 책에서는 말다의 엄마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 점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말다는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엄마를 찾아가지만, 엄마는 그런 말다를 받아주지 않는다. 말다가 엄마에게 해나를 계속 맡긴 이유는 '해나'가 자신과 엄마를 연결해주는 마지막 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말다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마 불안감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톰이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을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은 행복하게 꾸려야겠다고 집착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말다의 돌발행동은 엄마에게 큰 혼란이었을 것 같다. 오히려 자신과 성향이 잘 맞는 말다의 딸 해나에게 더 정이 갔을 것 같다. 말다와 해나가 각 엄마와 할머니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른 것을 보면 입체적으로 사람의 심리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이주민 아이비, 말다, 해나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이비, 말다, 해나가 이주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주민의 입장에서 쓴 책이 될 수도 있다. 아르비가 샤넬에 가서 퇴짜를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 작은 패션회사를 비롯해서 백화점에서도 일할 수 없었다. 그런 점이 아이비가 이주민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게 된다면, 이들을 이주민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며 읽기 바란다.
📍전쟁의 의미
아이비는 1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영국시골에서 벗어나 런던에 가게 된다. 만약 전쟁이 없었더라면, 시골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후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에 간다. 파리에서 아르몽을 만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을 때, 2차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 후 아르몽은 죽고 아이비는 미국으로 대피하기 위해 톰과 결혼한다. 그 이후 아이비는 평생 미국에서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하며 살게된다. 두 번의 전쟁이 개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1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사회에 대거 진출하게 되면서 인권신장을 이뤘다. 당시 유행했던 패션은 샤넬의 통정장이었다. 그 이후 2차세계전이 끝나게 되면서 다시 예전의 조신한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코르셋을 입기 시작했고, 집안에 있기 시작한다. 아이비의 인생도 이러한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파리에서 길을 잃다」 책 제목의 의미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말다와 해나는 미국 사람이다. 아이비의 고향은 영국이다. 프랑스 파리와는 아무 연이 없다. 그런데 왜 파리가 강조되었을까?
아이비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간다. 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미국행 배에 몸을 실게 된다. 그 후 톰과 결혼하여 산다. 말다와 해나가 파리의 아파트를 찾으러 갈 때, 핸드폰이 고장나서 길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후에 해나는 파리에서 길을 잃었을 때가 각자의 자아를 찾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첫걸음 이었다고 회상한다. 서로 멀어졌던 마음이 파리에서 연결된다는 점에서 제목이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이비가 꿈꾸었던 파리라는 공간에서 아이비와 아르몽의 인생을 담아 투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비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투어를 운영하는 해나가 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했다는 점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의 조력이 아닌, 여성들의 힘으로 이루어냈다는 것이 그 전 할머니들의 삶과 다르다는것을 보여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