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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전화상송증도가사실 제3권
[原文] ‘내 일찍이 많은 겁을 지나면서 닦았으니[吾早曾經多劫修]’에서부터 ‘등한하게 서로를 속이거나 미혹케 함이 아니로다[不是等閑相誑惑]’까지
【琪注】 영가(永嘉) 스님 자신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법을 수용하여 그 자재로움을 얻은 것은 모두가 숙세(宿世)에 심은 지혜의 종성[般若種性]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등한하게 여길 일이겠는가?
일찍이 시험 삼아 의론[試論]해서 말하기를,
“불도(佛道)는 장구하고 원대하여 오랫동안 수고로움을 겪고 고통을 받아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 영가 대사는 조계(曹溪)에 가자마자 곧바로 반야를 깨달아서 문득 법을 설하여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따져 물으면,
내가 대답하기를,
“나는(영가 스님) 금생 한 세상만 닦은 것이 아니고, 나아가 3겁ㆍ4겁ㆍ5겁 동안 반야를 닦아 익힌 것이 아니다”라고 하겠으니,
이 때문에 ‘많은 겁 동안 닦는다’고 한 것이다.
이미 많은 겁 동안 닦아 익혔다면, 이것은 등한하게 그대들을 언어로써 속이거나 혹란(惑亂)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것은 등한하게 서로 속이거나 미혹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原文] 모래를 쪄서[蒸沙]
[事實] 『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 말하였다.
“가령 모래를 쪄서 훌륭한 음식[嘉饌]을 만들려고 하면, 미진겁(微塵劫)이 지난다 하더라도 뜨거운 모래라고 이름할 뿐 밥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과 같다.”
[原文] 호랑이 껍질에 양의 몸[虎皮羊質]
[事實] 양자(楊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있는데, 자기 스스로 성(姓)을 공(孔)이라 하고 자(字)를 중니(仲尼)라고 합니다.
그 문에 들어가 마루에 올라가서 책상 앞에 엎드려 그 옷을 물려받았다면 중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였다.
‘겉의 문양을 배웠다는 것은 옳다고 하겠지만, 그 본질을 배운 것은 아니니라.’
‘감히 본질을 묻겠습니다.’
‘양의 본질에 호랑이 가죽이라면 풀을 보면 기뻐하고 승냥이를 보면 싸우는데, 이는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있음을 잊었기 때문이니라.’”
[原文] ‘법의 깃발은 세우고[建法幢]’에서부터 ‘조계로다[曹溪是]’까지
【琪注】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것과 천하(天下)의 노화상(老和尙)이 세상에 나온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대법의 깃발[大法幢]을 세우고 종지(宗旨)를 수립한 것이다.
”밝고도 밝은 부처님의 칙명을 이은 것은 조계로다”한 것을 말해 보자. 조사(祖師)께서 서쪽 땅으로부터 이 땅에 이르러 6조(祖)에게까지 전했으니, 그 건립한 것이 이미 법석(法席)을 이루었다.
모든 부처님들만 숙세(宿世)에 은밀한 가피로 기별을 받아 대사(大事)를 홍포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부처님 석가여래로부터도 친히 심인(心印)을 전해 받아 조계(曹溪)에 이른 것이니,
이 때문에 ‘밝고도 밝은 부처님의 칙명을 이은 것이 조계로다[明明佛勅曹溪是]’라고 한 것이다. 법의 깃발[法幢]을 말해 보자. 깃발[幢]은 건립(建立)을 본분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법의 깃발을 건립하는 것은 실로 소소한 인연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간에 나온 것이 모두 이 때문이고,
한량없는 보살이 과위(果位)를 몸에 지니고 인지(因地)를 수행하는 것이 모두 이 때문이며,
모든 2승인(乘人)이 안으로 보살행을 함장하고 있으면서 밖으로는 성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이 때문이고,
범왕(梵王)이 앞에서 인도하고 제석(帝釋)이 뒤에서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경에서도 이 일법(一法)을 주(主)로 삼고 나머지 모든 법을 반려로 삼아서 서로 번갈아가며 건립하였다.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는 서천축(四天竺)과 이 땅에서 건립한 법당(法幢)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原文] 방양(牓樣)
[事實] 조정(祖庭)에서는 말하기를, “칭양(稱揚:칭찬)과 같다”고 하였다.
[原文] ‘총각머리를 한[髮角]’에서부터 ‘석모(席帽)를’까지
[事實] 자곡자(炙轂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석모(席帽)는 오랑캐의 옷인데 양의 가죽으로 만든다.
진(秦)ㆍ한(漢) 때에는 만(鞔)으로 고석(古席)을 만들었는데 여인들이 입기도 하였다.
사연(四緣)에 망사를 드리우고 구슬과 비취로 장식하였는데, 이것을 위모(韋帽)라고 한다.
양제(煬帝)가 강도(江都)에 행차하여 자하전(紫霞殿)에서 여인의 자태와 용모를 보려고 할 때 망사를 제거하도록 하였다…….”
『신금조양집(新金朝陽集)』에서는
“원숭이가 석모를 두른다고 시인(詩人)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단료(檀了)』에서는
“노(魯)나라 부인들이 머리를 풀어서 조문하는 것인데, 대태(臺鮐)에서 패전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면서
여기에 대해 풀이하기를,
“대태에서 패전했을 때에 집집마다 머리를 풀고 서로 조문하였는데, 족대(머리싸개)를 제거하고 머리를 묶었다”고 하였다.
『유편(類篇)』에서는,
“사(纚)는 검은 포로 머리에 두르는 것이다. 계(紒)는 길(吉)과 예(詣)의 반 절(切)이니, 머리를 묶는 것이다”고 하였다.
[原文] 팔비나타(八臂那吒)
[事實]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의 셋째 아들이다. 원오(圓悟) 스님이 말하였다.
“임제는 정법안장(正法眼藏)으로 투철히 벗어나고, 삼두육비(三頭六臂)로 분노하고 용서하며, 나타(那吒)로 곧장 깨뜨리고, 금종(金鍾)으로 느슨히 잡으며, 신통으로 유희한다.”
[原文] ‘제일 먼저 가섭이[第一迦葉]’에서부터 ‘서천축의 기록이로다[西天記]’까지
【琪注】 처음에 세존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푸른 연꽃 같은 눈[靑蓮目]을 깜박[瞬視]이자 가섭이 미소를 지었는데,
이에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하대가섭(摩揀大迦葉)에게 분부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최초의 전법(傳法)이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법등을 전하였다[首傳燈]”고 한 것이다.
“28대(代)는 서천축의 기록이다”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초조(初祖)인 가섭(迦葉)은 2조(祖)인 아난(阿難)에게 전하고,
아난은 3조인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전하고,
상나화수는 4조인 우바국다(優波麴多)에게 전하고,
우바국다는 5조인 제다가(提多迦)에게 전하고,
제다가는 6조인 미차가(彌遮迦)에게 전하고,
미차가는 7조인 바수밀(婆須密)에게 전하고,
바수밀은 8조인 불태난제(佛駄難提)에게 전하고,
불태난제는 9조인 복태밀다(伏駄密多)에게 전하고,
복태밀다는 10조인 협존자(脇尊者)에게 전하고,
협존자는 11조인 부나야사(富那夜奢)에게 전하고,
부나야사는 12조인 마명(馬鳴)에게 전하고,
마명은 13조인 가비마라(迦毘摩羅)에게 전하고,
가비마라는 14조인 용수(龍樹)에게 전하고,
용수는 15조인 가나제바(迦那提婆)에게 전하고,
가나제바는 16조인 라후라(羅睺羅)에게 전하고,
라후라는 17조인 승가난제(僧伽暖提)에게 전하고,
승가난제는 18조인 가야사다(伽野舍多)에게 전하고,
가야사다는 19조인 구마라다(鳩摩羅多)에게 전하고,
구마라다는 20조인 사야다(奢夜多)에게 전하고,
사야다는 21조인 바수반두(婆修盤頭)에게 전하고,
바수반두는 22조인 마나라(摩拏羅)에게 전하고,
마나라는 23조인 학륵나(鶴勒那)에게 전하고,
학륵나는 24조인 사자(師子)에게 전하고,
사자는 25조인 바사사다(婆舍斯多)에게 전하고,
바사사다는 26조인 불여밀다(不如蜜多)에게 전하고,
불여밀다는 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에게 전하고,
반야다라는 28조인 보리달마(菩提達摩)에게 전하였다.
이 때문에 ‘이십팔대는 서천축의 기록이다[二十八代西天記]’라고 한 것이다.
[原文] 똥 묻은 헝겊으로 옷을 만들고[糞掃爲衣]
[事實] 『부법장전(付法藏傳)』에서 말하였다.
“가섭(迦葉)은 쥐가 물어뜯고 소가 씹은 똥 묻은 헝겊으로 옷을 만들었으니,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할 줄 알아서 항상 모든 사람의 아래에 거처하였다.”
[原文] 천기를 누설하여[洩天機]
[事實] 건달바왕(乾達婆王)이 음악을 연주하여 여래에게 공양하였다.
이때 가섭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징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原文] ‘이 땅에 들어와서[入此土]’에서부터 ‘초조가 되었도다[爲初祖]’까지
【琪注】 범어(梵語)의 보리달마(菩提達磨)는 여기에서는 각법(覺法)이라고 하며, 서천축에서는 28조인데 이 땅에서는 초조(初祖)가 된다.
본래 남천축국(南天竺國)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第三子]이다.
27조(祖)를 만나자, 27조께서 그 밀적(密跡)을 알아차리고 심요(心要)를 발명(發明)하게 하고는 곧바로 수기(授記)를 주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멀리 가서 노닐지 말라. 우선 남천축에 머물러 있다가 내가 입멸한 후 67년이 되면 진단(震旦)으로 가서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키도록 하여라.
그대가 남방(南方)에 이르면 머물지 말라. 그곳에는 오직 유위(有爲)의 공업(功業)만 좋아하고 불교의 이치[佛理]는 보지 못하는 사람만 있느니라.
그대가 비록 그곳에 당도한다 해도 오랫동안 머물러서는 아니 되느니라. 나의 게송을 들으라.
길을 가다가 물을 건너서 다시 양(羊)을 만나리니,
홀로 쓸쓸히 은밀히 강을 건너네.
해 떨어지자 한 쌍의 코끼리와 말이 가련하니
두 그루의 어린 계수나무가 오래오래 번성하리라.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본국에 있을 때 지견의 힘[知見力]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여섯 종사의 법사(法師)를 논파해서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귀의하게 하였는데,
첫째는 유상종(有相宗)이고,
둘째는 무상종(無相宗)이고,
셋째는 정혜종(定慧宗)이고,
넷째는 계행종(戒行宗)이고,
다섯째는 무득종(無得宗)이고,
여섯째는 적정종(寂靜宗)이다.
이들은 각각 자기의 견해에 갇혀 있으면서 교화의 근원을 따로 전개하였는데, 마을이 번성하여 따르는 대중들이 매우 많았다.
대사가 이에 크게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저 한 사람의 삿된 스승만 해도 이미 소발자국에 고인 물에 빠져 있는데, 하물며 지리만연하게 번성해서 여섯 종파로 나누어진 경우임에랴.
내가 만약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견에 얽매이리니, 하나하나 그 종지(宗旨)를 힐난해서 각자 돌아갈 곳이 없음을 스스로 알게 한 연후에 근본을 돌이켜 깨달아 들어가게 하리라.”
대사는 학문이 삼장(三藏)을 총괄하였고 정업(定業)에 더욱 전념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대사가 남천축(南天竺)으로부터 배를 띄워 바다를 항해한 지 3년, 때는 보통(普通) 연간 8년 9월 21일에 광주(廣州)에 이르렀다.
자사(刺史)인 소앙(蕭昻)이 무제(武帝)에게 표문(表聞)을 올리니, 무제의 초청을 받아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질문하였다.
“짐이 즉위한 이래 절을 짓고 경을 베껴 쓰고 스님에게 계(戒)를 준 것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인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이것은 다만 인천(人天)의 소과(小果)라서 유루(有漏)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있다 해도 실답지는 않습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眞孔德]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청정한 지혜는 오묘하고 완전해서 그 체(體)가 저절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간법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무제가 질문하였다.
“어떤 것이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확연해서 성스러움이 없습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짐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무제가 깨달아서 알아차리지 못하자, 대사는 임금의 근기가 최상의 도리에 계합(戒合)하지 못함을 알고 그 달 19일에 몰래 강북(江北)으로 돌아갔다.
11월 25일에 낙양(洛陽)에 이르렀는데, 당시는 후위(後魏) 효명제(孝明帝) 대화(大和) 10년이었다.
숭산(崇山)의 소림사에 우거(寓居)하면서 면벽하고 앉아 종일토록 침묵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바로 선종의 초조(初祖)이다.
[原文] 다섯 잎사귀의 꽃[五葉花]
[事實] 『달마전법게(達磨傳法게)』에서 말하였다.
“내가 본래 이 땅에서 법을 전하여 미혹의 망정(妄情)을 구제하였으니, 꽃 한 송이에 다섯 잎사귀가 열려서 결과(結果)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
[原文] ‘6대가 의발을 전한 것은[六代傳衣]’에서부터 ‘어떻게 모두 헤아릴 수 있으리오[何窮數]’까지
【琪注】 대사가 조그만 방에 머문 지 9년이 되도록 지음(知音)을 점지하지 못했다.
그때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폭넓게 두루 통달한 인재였다.
오랫동안 이락(伊洛:이수와 낙수 지역)에 거처하면서 많은 책을 널리 보고 현묘한 이치를 훌륭하게 담론하였는데, 항상 탄식하며 말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禮)의 기술과 풍도의 규범(風規)이고, 장자와 역서(易書)는 오묘한 이치를 극진하게 추구하지는 못하였다.
요즘 듣자니 달마대사께서 소림사에 머물러 계신다고 하는데, 지인(至人)께서 가까이 계시니 현묘한 경계에 나아가리라.”
그리고는 바로 그곳으로 가서 아침저녁으로 모시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사는 항상 단정하게 앉아서 면벽한 채 듣지도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신광(神光)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도를 구하기 위해서 뼈를 두들기고 골수를 빼냈으며 피를 흘리고 배고픔을 견디었다.
또한 머리카락을 펴서 진흙을 덮었으며,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 밥이 되기도 하였다.
옛날에 뛰어났던 사람도 이와 같이 하였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 해 12월 9일 밤에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새벽에 다다르자 눈이 무릎 위까지 쌓여 있었다.
대사가 민망하게 여겨서 질문하였다.
“그대는 오랫동안 눈 속에 서 있으면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신광이 비탄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오직 원하옵건대, 화상(和尙)께서 자비(慈悲)로 감로문(甘露門)을 열어서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가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위없고 오묘한 도는 광겁(曠劫) 동안 정근(精勤)해야 하고, 난행(難行)을 능히 행해야 하며, 참지 못할 것을 참아야 하는데, 어찌 소소한 덕과 소소한 지혜, 경솔한 마음과 태만한 마음으로 진승(眞乘)을 바라고자 하는가? 부질없는 수고로움으로 쓸데없이 고초만 겪으리라.”
신광이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듣고서 몰래 날카로운 칼을 잡고 스스로 왼팔을 끊어 달마대사 앞에 내밀었다.
대사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에 도를 구할 때 법을 위해서 몸을 잊었는데, 그대가 지금 팔을 끊어서 내 앞에 내미니, 그대 또한 구할 수 있겠도다.”
그리고 드디어 이름을 혜가(慧可)로 바꾸어 주었다.
신광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신광이 말하였다.
“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대사가 말하였다.
“마음을 가져 오면 그대를 편안하게 해주겠다.”
신광이 말하였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가 말하였다.
“내가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노라.”
혜가는 바로 여기에서 깨달아 들어가 2조(祖)가 되었다.
“6대(代)가 의발을 전하였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이조(二祖)가 초조(初祖)에게서 법을 얻고 나서부터 모두 옷과 발우를 서로 전하였다.
초조는 서천축(西天竺)으로부터 의발을 동토(東土)로 전하여 신표로 삼았지만,
조계 6조에 이르러 그 도가 이미 행해지자 더 이상 의발을 전하지 않고 법(法)만을 전하였다.
달마는 혜가(慧可)에게 전하였고,
혜가는 승찬(僧璨)에게 전하였고,
승찬은 도신(道信)에게 전하였고,
도신은 홍인(弘仁)에게 전하였고,
홍인은 혜능(慧能)에게 전하였으니,
혜능이 바로 조계 6조(祖)이다.
이 도(道)가 세간에 성대하게 유행한 것을 ‘6대가 의발을 전한 것은 천하에 알려졌다[六代傳衣天下聞]’고 하였다.
이 이후에 도를 얻은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 사람이 땅에 두루하고 하늘에 편재하며, 선(禪)을 배우고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삼과 같고 좁쌀과 같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후세 사람이 도를 얻은 것을 어찌 모두 헤아릴 수 있으리오[後人得道何窮數]’라고 한 것이다.
[原文] 당겨서 일으키지 못하고[提不起]
[事實] 몽산(蒙山) 도명(道明) 선사가 노행자를 추격하여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행자는 선사가 오는 것을 보자 바로 돌 위에 의발을 던지고 말하였다.
“이 의발은 신표이니 어찌 힘으로 다툴 수 있겠는가? 그대에게 맡기니 가져 갈 테면 가져가라.”
도명 선사가 이윽고 의발을 들고자 하였으나 산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原文] ‘참됨도 설 수 없고[眞不立]’에서부터 ‘공하지 않음도 공하여라[不空空]’까지
【琪注】 참됨[眞]이 서지 않았다면 허망[妄]도 본래 공하다. 진실로 참됨과 허망은 본래 자성이 없으니, 참됨으로 인해 허망이 수립되고 허망으로 인해 참됨이 수립된다.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참됨도 단독으로는 서지 못하고, 허망도 단독으로는 성립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유(有)와 무(無)를 쌍으로 버린다는 것은 유무도 상대적으로 성립하므로 지금 유무를 쌍으로 버리면 불공(不空)도 또한 공이다.
이 때문에 ‘유무를 쌍으로 버리면 공하지 않음도 공하여라[有無雙遺不空空]’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몇 구절은 대사께서 이 법을 나타내기 위해서 진망(眞妄)과 유무(有無)의 실정(實情)을 쌍으로 집어낸 것이다.
[原文] 흰 망아지[白駒]
[事實] 회남자(淮南子)에서 말하기를,
“흰 망아지는 태양의 그림자다”라고 하였다.
[原文] ‘스무 가지 공문[二十空門]’에서부터 ‘본체가 저절로 같아라[體自同]’까지
【琪注】 스무 가지 공문은 여래께서 스무 가지 유(有)에 집착하는 견해를 타파하여 스무 가지 공(空)의 명칭을 성립시킨 것이니,
이 때문에 『대반야경(大般若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른바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승의공(勝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필경공(畢竟空)ㆍ무제공(無際空)ㆍ산공(散空)ㆍ무변이공(無變異空)ㆍ본성공(本性空)ㆍ자상공(自相空)ㆍ공상공(共相空)ㆍ일체법공(一切法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ㆍ무성공(無性空)ㆍ자성공(自性空)ㆍ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으로 비록 스무 가지 공의 명칭이 있긴 하지만 그 체(體)는 바로 한 가지 법[一法]이다.”
지금 여기에서는 법성의 이치가 스무 가지 공과 같지 않음을 밝혔다.
이 때문에 “원래 집착하지 않는다[元不着]”고 말한 것이다.
“한 가지 성품인 여래와는 본체가 저절로 같아라[一性如來體自同]”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외도(外道)의 62가지 이견(異見)을 아득히 벗어나면 곧바로 반야의 열반묘심(涅槃妙心)과 그윽하게 합치하기 때문에 ‘본체가 저절로 같아라’라고 한 것이다.
[原文] ‘마음은 뿌리이고[心是根]’에서부터 ‘거울 위의 흔적[鏡上痕]’까지
【琪注】 ‘마음이 뿌리’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뿌리는 능히 낳는 것[能生]으로 뜻을 삼는데, 진실로 이 마음이 모든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을 능히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뿌리라고 이름한 것이다.
‘법은 티끌이다’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법은 비록 만물의 괴칙(軌則)이 되어 유지시키지만 비유하면 마치 오묘한 약과 같으니,
병이 나을 때에는 약도 소용없어진다. 이 때문에 법은 티끌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법은 모두 장애[窒碍]가 있어서 사람의 마음 광명으로 하여금 번뇌를 꿰뚫지 못하게 하는데 마치 거울 위의 흔적과 같다.
이 때문에 “근(根)과 진(塵)이 상대적으로 일어나면 마음 광명이 근본으로 돌아가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가려서 장애한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原文] ‘흔적인 때가 모두 제거되면[痕垢盡除]’에서부터 ‘성품이 바로 참된 것이다[性卽眞]’까지
【琪注】 흔적인 때[垢]가 다하게 되면 심(心)과 법(法)을 쌍으로 잊어서 자연스레 마음 광명이 투탈(透脫)하여 불성을 분명하게 보게 된다.
고덕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의 가리움이라도 눈에 있으면 헛꽃이 세계에 두루하고,
한 가지 허망이 마음에 있으면 항하사가 생멸(生滅)하나,
가리움이 사라지면 헛꽃이 없어지고 허망이 소멸하면 참됨을 증득하니,
병이 나으면 약도 없어지고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과 같아라.
영단(靈丹) 한 알은 쇠를 쳐서 금으로 만든 것이고, 지극한 이치가 담긴 한 마디는 범부를 성인으로 바꾼다네.
이 때문에 ‘성품이 바로 참됨이다’고 말한 것이다.
[原文] ‘티끌 없음을[無塵]’에서부터 ‘허락하지 않는데[未許]’까지
[事實] 동산(洞山) 스님이 말하기를,
“설령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말할지라도 저 의발에 계합할 수 없다”고 하였다.
[原文] ‘말법을 한탄하고[嗟末法]’에서부터 ‘조복해 제어하기 어렵도다[難調制]’까지
【琪注】 차(嗟)는 한탄하는 말이다.
세존께서 세간에 출현하여 대법륜(大法輪)을 굴려서 유정(有情)에게 이익을 주셨는데, 정법(正法)의 기간이 천 년이고 상법(象法)의 기간이 천 년이고 말법(末法)의 기간이 만 년이다.
대사가 세간에 출현한 것은 상법의 기간에 정확히 해당하기 때문에 일찍이 이와 같이 탄식하였으니, 지금에 와서는 그것을 알 만하다.
이 때문에 ‘말법을 한탄하고 시대를 미워하나니, 중생들이 박복해서 조복해 제어하기 어렵다[嗟未法惡時世 衆生薄福難調制]’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도를 홍포하는데 대지(大旨)를 밝히지 못하고 저마다 자기 뜨락의 문[門庭]을 지키면서 서로가 견고하게 집착하니, 모두 법에 집착하는 병[法病]이다.
그러므로 다음 문장에서 알 수 있다.
[原文] 부질없이 세 가지 수레를 건립하고[空立三車]
[事實] 『법화경(法華經)』 「비유품(譬喩品)」에서 말하였다.
“이때 장자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이 집이 이미 큰 불에 타고 있으니, 나와 모든 아들이 만약 때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다. 나는 지금 방편(方便)을 마련해서 모든 아들들이 이 위험을 면하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이 각각 좋아하는 여러 가지 장난감과 기이한 물건에 마음이 쏠린 것을 알고 그들에게 알렸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은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니, 만약 갖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이러이러한 갖가지 양 수레와 사슴 수레와 소 수레가 문 밖에 있어서 가지고 놀 수 있으니, 너희들은 이 불난 집에서 어서 빨리 나오너라.
너희들이 갖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모두 주겠다.’”
[原文] 화택 밖으로[火宅外]
[事實] 『사행론(四行論)』에서 말하였다.
“삼계(三界)가 안전하지 못한 것을 비유하면 마치 불난 집[火宅]과 같다.”
[原文] 네거리[四衢]
[事實] 『화엄론』에서 말하였다.
“크고 넓은 보배 수레가 네거리에 머물러 있는데, 문수보살이 인도하고 보현보살이 부축한다.
살찌고 씩씩한 백우(白牛)는 힘이 너무나 세서 한 생각에 두루 노닐어도 말거나 펼침이 없다.
이와 같은 보배 수레도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문 앞에 서서 고초를 겪을 뿐이니, 자신이 항상 그 가운데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항상 ‘나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네.”
[原文] 세 가지 재앙[三災]
[事實] 대삼재(大三災)는 물[水]ㆍ불[火]ㆍ바람[風]이고, 소삼재(小三災)는 전쟁ㆍ기근과ㆍ질병이다.
[原文] 험피(險詖)
[事實]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험피사알(險詖私謁)의 마음이 없다”고 하였는데,
주해에서는,
‘평평하지 않은 것을 험(險)이라 하고,
충성스럽지 않은 것을 피(詖)라 하고,
공적인 것을 등지는 것을 사(私)라 하고,
구해서 청하는 것을 알(謁)이라 한다’고 하였다.
[原文] ‘성인으로부터 멀어진지 오래되어[去聖遠兮]’에서부터 ‘원망과 해침이 많도다[多怨害]’까지
【琪注】 성인으로부터 멀어진지 오래되어 삿된 견해가 더욱 깊어지니, 정법(正法) 가운데서 도리어 원망과 해침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와서 이가 부러지고 독약을 마시게 된 것이다.
성사(聖師)도 오히려 그러하였거늘 하물며 인사(人師)임에랴.
모든 성인이 세간에 출현해서 자비를 흥기하고 중생을 제접하여 이롭게 하지 않음이 없는데,
마군(魔軍)은 강하고 법(法)은 약하여 성심(聖心)에 대해 그 은덕을 알지 못한다.
하물며 지금 천하가 태평한 지 오래되어서 나라의 황제와 대신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삼보(三寶)를 널리 수호하고 제방의 법석(法席)이 흥성함에랴. 출가한 사람들은 마땅히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을 일으켜서 선지식을 참방하여 생사(生死)를 결택하고 번뇌에서 벗어남을 추구하여 네 가지 은혜[四恩]에 보답함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중에 비록 불법을 배우면서도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몸이 귀한 지위에 있다 보니 숙세(宿世)에 닦은 것을 잊어버려서 불법에 대해 장애가 되는 사람도 있으며,
비록 불법을 전수해서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각각 종파(宗派)가 같지 않다고 하여 서로 공격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것은 모두가 불법 문중의 마사(魔事)이며,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통달한 사람이 아니다.
만약 본분납자(本分衲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규봉(圭峯)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종문(宗門)에는 통달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각각 자기가 익힌 것에 안주하여 소소한 것에는 통하지만 큰 것에는 막혀 있다.
자기가 품수(稟受)받은 것을 지게문과 창문[戶牖]을 삼아서 각자 열고서는 경론(經論)을 무기로 삼아 서로를 공격하고,
정(情)은 화살을 간직한 채 천변(遷變)하고,
법(法)은 인아(人我)를 쫓으면서 높고 낮음을 불러들이고,
시비(是非)가 분분해서 분명히 가릴 수 없게 한다.”
이 때문에 “마군은 강하고 법은 약하여 원망과 해를 일으킴이 많도다[魔强法弱怨害多]”고 한 것이다.
[原文] ‘여래가 설함을 듣고[聞說如來]’에서부터 ‘부수어지도록[令瓦碎]’까지
【琪注】 여래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세간에 출현하셨는데, 세간에는 마왕이 있어서 부처님과 동시에 함께하면서도 원돈법문(圓頓法門)이 있음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것을 듣고는 모두 훼방을 놓아서 없애어 부서뜨리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세상에는 대승(大乘)의 근성이 없는 사람이 있어서 깨달아 들어가는 법문을 믿지 못하니,
석가 문중에서도 몸은 출가했지만 스스로 불신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고덕은 이렇게 말하였다.
“눈에 티끌이 들어간 사람 앞에서 공중에 헛꽃이 없다고 말하지 말며,
미치광이 병에 걸린 사람 앞에서 면전(面前)에 귀신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부질없이 말한 것만 폐지당하고 불신만 받는다.
곧장 눈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면 저절로 알 것이다.”
[原文] 삼과 신[參辰]
[事實] 양자(楊子)가 말하기를,
“나는 삼(參)과 신(辰)이 서로 따르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는데,
주(注)에서는 ‘삼은 호랑이별[虎星]이고, 신은 용별[龍星]인데 함께 나타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原文] ‘업을 짓는 것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作在心殃]’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허물하지 말라[更尤人]’까지
【琪注】 세상 사람들이 짓는 한량없고 가없는 업은 모두가 허망한 마음으로 짓는 것이기 때문에 ‘짓는 것은 마음에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감득(感得)한 한량없는 고(苦)의 과보로 지옥ㆍ축생ㆍ아귀와 갖가지 형체를 받고 갖가지 괴로움을 받는다.
고덕이 말하기를,
“가죽 안장을 짊어지고 쇠로 된 재갈을 무는 것이 누구 때문에 온 것인가?
이것은 다만 옛날에 마음을 잘못 행한 것일 뿐이다”고 하였다.
그래서 재앙은 몸에 있다고 한 것이니, 이는 모두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불러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不須怨訴更尤人]”고 한 것이다.
세간의 고통은 일세(一世)에 그치지만 지옥의 고통은 다함이 없다.
검수(劍樹)ㆍ도산(刀山) 등 갖가지 종류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으며, 이곳에서 과보를 다 받으면 세계가 무너질 때에 다시 다른 국토의 지옥으로 옮겨 가서 죄의 과보를 받고, 몸은 다시 축생ㆍ나귀ㆍ말 등으로 태어난다.
이것은 모두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고 오직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을 따름이다.
[原文] ‘금으로 된 탄환[金彈]’에서부터 ‘날으는 참새[飛雀]’까지.
[事實] 『장자(莊子)』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수후(隨候)의 구슬로 천길 거리에 떨어져 있는 참새를 쏘면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귀중한 것을 사용하여 값어치 없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原文] ‘부르고 싶지 않으면[欲得不招]’에서부터 ‘올바른 법륜[正法輪]을’까지
【琪注】 법을 비방하는 죄는 소소한 허물이 아니다.
반야를 훼손한 죄업은 모두 지옥에 떨어지므로 또한 가벼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지옥은 모두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니, 바로 죄가 극히 무거운 이들이 가는 지옥[極重獄]이다. 시수(時數)가 장구하고 원대함은 모두 겁수(劫數)를 논하는 것이다.
법을 비방하는 죄보는 일정하지 않으니 자세히는 장경(藏經)에 실려 있는 것과 같아서 혹은 머리 아홉 달린 거북이가 되고 혹은 문둥병[白癩病] 등에 걸리게 된다.
진실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셔서 모두 일승(一乘)의 묘법(妙法)을 찬탄하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법을 증득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도리어 비방한다면 그 죄를 받는 것은 당연하니,
이 때문에 ‘여래의 올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라[莫謗如來正法輪]’고 한 것이다.
[原文] ‘전단림(旃檀林)’에서부터 ‘사자가 머무는구나[師子住]’까지
【琪注】 전단림은 일진의 묘한 경계[一眞妙境]를 비유한 것이다.
잡스런 나무가 없음은 소소한 근기나 방편 지위 등의 잡스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울창하고 빽빽한 숲에 잠긴다는 것을 말해보자.
울창하고 빽빽한 것은 무성하게 번성하는 모습이고, 숲에 잠긴다는 것은 그윽하고 깊숙한 모습이다.
‘사자가 머문다[師子住]’는 법성(法性)의 경계를 비유한 것이니, 오직 대승보살(大乘菩薩)만이 머무는 곳이라서 인천(人天)의 소소한 근기로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위없는 반야는 오직 상근기인 뛰어난 인재[上土]만 제접할 수 있지 중근기와 하근기는 끝내 깨달아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단림에는 잡스런 나무가 없이 울창하고 빽빽하고 숲이 깊어서 사자가 머문다[栴檀林無雜樹 鬱密森沈師子住]’고 한 것이다.
[原文] ‘경계가 고요한 숲 속[境靜林間]’에서부터 ‘모두 멀리 도망가네[皆遠去]’까지
【琪注】 함이 없는 대도[無爲大道]는 오직 대승보살만이 밟아서 실천할 수 있고, 모든 소승인(小乘人)과 권도의 지위[權位]에 있는 수행인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사자는 대승보살을 비유한 것이고,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走獸飛禽]는 인천(人天)과 2승(乘)의 소소한 근기를 비유한 것이다.
이 때문에 법화회상에서 5천 명의 비구가 자리에서 물러나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니, 일진(一眞)의 묘한 경계는 오직 상근기의 인재만이 노닐 수 있고 중ㆍ하의 부류는 끝내 모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경계가 고요한 숲 속에서 홀로 스스로 노니는데,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도망가네[境靜林間獨自遊 走獸飛禽皆遠去]’라고 한 것이다.
[原文] ‘사자의 새끼[師子兒]’에서부터 ‘크게 울부짖는도다[哮吼]’까지
【琪注】 사자새끼라고 말한 것은 보살이 초발심하였을 때 곧바로 등정각(等正覺)을 이룸을 비유한 것이다.
보살은 성문ㆍ연각과 모든 소승의 근기를 능가해서 뛰어넘기 때문에, “무리가 뒤를 따른다[衆隨後]”고 한 것이다.
세 살[三歲]은 견성한 사람이 원만하게 닦는 세 가지 법을 나타낸 것이다.
지자(智者)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공(空)은 일체법을 없애는 것이고, 가(假)는 일체법을 세우는 것이며, 중(中)은 일체법의 묘함이다.
공은 고정된 공이 아니라서 공처(空處)의 당체(當體)가 공(空)에 즉하고 가(假)에 즉하며,
가는 고정된 가가 아니라서 가처(假處)의 당체가 공에 즉하고 중(中)에 즉하며,
중은 고정된 중이 아니라서 중처(中處)의 당체가 공에 즉하고 가(假)에 즉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은 종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횡으로 있는 것도 아니며,
나란히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한 곳이 항상 셋이고 세 곳이 항상 하나이다.
그래서 “3제(諦)와 3관(觀)은 셋이면서 셋이 아니니,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므로 기탁할 곳이 없다.
3제와 3관은 이름[名]은 다르지만 체(體)는 같은 것이니,
이 때문에 능소(能所)가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고 한 것이다.
깨달은 인재는 세 가지 법을 원만하게 증득하므로 설하는 법문(法門)이 모두 중도의 실상이니,
이 때문에 “세 살에 문득 크게 울부짖을 수 있다[三歲便能大哮吼]”고 한 것이다.
[原文] ‘만약 여우가[若是野豻]’에서부터 ‘헛되이 입을 여는 것이다[虛開口]’까지
【琪注】 여우는 범부(凡夫)와 2승(乘)을 비유한 것이고, 사자는 대승보살(大乘菩薩)을 비유한 것이다. 보살 근기의 사람은 법성을 심오하게 깨달아서 초발심한 곳에서 곧바로 정각(正覺)을 이루므로 설하는 법문이 모두 본성에 부합한다. 2승(乘)과 범부와 모든 권도(權道)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불성(佛性)을 분명하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설하는 법문이 실상(實相)의 이치를 끝까지 밝히지 못한다.
비유하면 마치 백 년 묵은 여우가 헛되이 입을 열어서 끝내 이로운 바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이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原文]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서[狐假虎威]
[事實] 『사기(史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楚)나라 선왕(宣王)이 소해휼(昭奚恤)을 재상으로 삼자 모든 제후가 두려워하였다. 왕이 여러 신하에게 물었다.
“내 듣자 하니 북방에서 소해휼을 두려워한다는데 어떠하냐?”
강을(江乙)이 대답하였다.
“신(臣)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호랑이가 모든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하다가 여우를 만났는데,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을 수 없다. 천제(天帝)께서 나를 백수(百獸)의 대장으로 삼았으니, 그대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천제의 명(命)을 어기는 것이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앞서 갈 테니, 그대는 나의 뒤를 따르면서 모든 짐승이 나를 보고 도망가지 않는지를 살펴보라.’
호랑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서 여우의 뒤를 따라가는데, 모든 짐승이 보고서 달아났습니다.
호랑이는 자기를 두려워해서 도망가는 것은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原文] 비람 동산의 나무[毘藍園樹]
[事實] 『처태경(處胎經)』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처음 모태에서 나올 때 비람 동산 속에 있는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두루 일곱 걸음을 걷고는 눈으로 사방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고 하였다.”
[原文] ‘원돈교(圓頓敎)’에서부터 ‘곧바로 따져야 한다네[直須爭]’까지
【琪注】 원(圓)은 원만한다는 뜻이고, 돈(頓)은 점차가 아니라는 뜻이고, 교(敎)는 본받는다는 뜻이다.
성인이 하근기의 말을 구비한 것은 말의 이치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뜻으로 삼는다. 원돈교는 점차(漸次)를 빌리지 않고 부처님의 경계에 뛰어 들어간다.
전(傳)에서 말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태자(太子)가 왕의 덕을 갖추고 있는 것과 같고, 가릉빈가가 모든 새의 울음소리를 뛰어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물인정(勿人情)’을 말해 보자. 물(勿)은 많다[衆]는 뜻과 같다.
일체 중생이 만약 의심하는 망정(妄情)이 있으면 곧바로 명료하게 결택할 수 없다.
이것은 세간의 학문이 아니니, 나고 죽는 일이 크기 때문에 실로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다음 문장에서 그 인과(因果)를 밝힌 것이다.
[原文] 남양의 국로[南陽國老]
[事實] 충국사(忠國師)에게 숙종 황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10신(身)을 다루는 것입니까?”
스님이 말하였다.
“단월(檀越)이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지나는 것입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과인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자기의 청정법신(淸淨法身)을 인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原文] ‘산승이 아니라[不是山僧]’에서부터 ‘단견과 상견의 구덩이에[斷常坑]’까지
【琪注】 이것은 영가(永嘉) 스님 자신이 말한 것이니,
“어찌 산승이 인아(人我)의 마음을 치달려서 드러내겠는가?
미래세에 모든 중생이 법문 중에서 발심하여 수행하다가 잘못 마음을 써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두 가지 견해에 떨어질까 몹시 염려가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사람을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구덩이라고 한 것이니, 마치 세상의 구덩이나 참호와 같다.
서천축(西天竺)의 96가지 외도(外道)가 모두 이 두 가지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있다고 하거나[有] 없다고 하는 것[無] 등을 의지한 모든 견해가 62가지를 갖춘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이다.
[原文] 계주가 허물 없음을[髻珠無搢]
[事實] 『법화경』 「안락품(安樂品)」에서 말하였다.
“문수사리여, 마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모든 병사들 중에서 큰 공을 세우는 자가 있으면 마음이 매우 기뻐서 이 믿기 어려운 구슬을 오랫동안 육계 가운데 넣어두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허망하게 주지 않고 지금 주는 것과 같으니라.
여래도 이와 마찬가지라서 삼계(三界) 중에 대법왕(大法王)이 되어서 법(法)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데, 현성군(賢聖軍)으로 오음마(五陰魔)ㆍ번뇌마(煩惱魔)ㆍ사마(死魔)와 싸우다가 대공훈(大功勳)을 세워서 삼독을 소멸시키고 삼계를 벗어나 마군의 그물을 타파하는 것을 보면, 이때 여래도 크게 기뻐하느니라.”
이 『법화경』은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게 할 수 있는데, 모든 세간에서 원망은 많고 믿기는 어려워서 앞에서는 설하지 않고 지금 설하는 것이다.
[原文] ‘비(非)ㆍ불비(不非)와’에서부터 ‘천리(千里) 만큼이나’까지
【琪注】 “비(非)ㆍ불비(不非)ㆍ시(是)ㆍ불시(不是)여”라고 한 것은 시비의 모습이 분명하여 교란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비(非)가 어찌 불비(不非)이겠는가?
비는 진실로 비(非)이다. 시(是)가 어찌 불시(不是)이겠는가?
시는 진실로 시(是)이다. 비록 그렇지만 시비(是非)는 주체가 없어서 불성을 속일 수 없고 진여(眞如)를 가두어 통제할 수 없다.
“털끝만한 차이에 천 리만큼이나 어긋난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털 중에서 긴 것을 호(毫)라고 하니, 열 개의 리(釐)가 일호(一毫)가 된다. 만약 호리만큼의 간격이 있으면 천리 만리나 어긋난다.
이 때문에 다음에 나오는 문장에서 시비(是非)의 모습을 깊이 밝혔다.
[原文] 중심에 있는 나무[中心樹子]
[事實] 현사(玄沙) 스님이 말하였다.
“마치 어떤 사람이 한 뙈기의 밭을 팔면 사방의 땅이 너에게 속하지만, 중심에 있는 나무는 오히려 나에게 속하는 것과 같다.”
[原文] ‘옳은 것은 용녀가[是則龍女]’에서부터 ‘산 채로 빠져서 추락함이다[生陷墜]’까지
【琪注】 용녀(龍女)와 선성(善星)의 이야기는 시비의 모습을 밝혀서 환하게 드러낸 것이다. 옛날 영산회상에서 한 용녀가 보배 구슬을 부처님께 바쳤다.
세존께서 이것을 받고 설법을 하셨는데, 그녀는 무생인(無生忍)을 깨닫고, 곧바로 남방에 있는 무구세계(無垢世界)로 가서 보련화(寶蓮華)에 앉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고는 명호(名號)를 화선여래(花鮮如來)라고 하였다.
“그른 것은 선성(善星)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옛날에 비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선성(善星)이었다.
『십팔향상타경(十八香象駝經)』을 얻고자 염(念)해서 몸이 살아있는 채로 지옥에 빠졌으니, 말하자면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고 설법하는 것이 도리어 비방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경책한 것이다.
[原文] ‘나는 어려서부터[吾早年來]’에서부터 ‘경론을 살펴보았도다[尋經論]’까지
【琪注】 지금 여기에서는 무상(無相)의 공(功)을 밝히기 위해서 유상(有相)의 이치를 먼저 밝혔다. 대사는 어렸을 때 모든 강사(講肆)를 편력하였는데, 천태 지자(天台智者)의 교관(敎觀)을 듣고 집성하였고, 경론(經論)을 깊이 연구하여 학문을 축적하고 널리 물었다.
선덕(先德)이 말하기를,
“오하(五夏) 이전에는 율부(律部)를 정미하게 연구하고, 다음에는 경론의 이치를 밝힌 연후에 선지식을 참방하여 생사(生死)를 결택(決擇)하는 것이 도(道)에 들어가는 순서이다”고 하였는데,
숙세(宿世)의 훈습 종자의 원력이 있지 않으면 이것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예로부터 모든 성인은 그렇게 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니, 달마조사는 삼장(三藏)을 모두 배우고 정업(定業)에 더욱 전념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는데, 후대의 학자가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서 도리어 비방을 하고 있으니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비유하면 마치 통발과 올가미로 물고기와 토끼를 잡는 것과 같으니,
이미 물고기와 토끼를 잡으면 통발과 올가미는 잊어버려야 한다.
다음 문장에서 알 수 있다.
[原文] ‘명칭과 모양을 분별함을[分別名相]’에서부터 ‘부질없이 스스로 피곤하게 되는구나[徒自困]’까지
【琪注】 경론을 배우는 것이 어찌 과실이 있겠는가?
우리 부처님ㆍ여래께서 한량없는 나라에서 금구(金口)로 설하신 것과 명자(名字)에 이르기까지 듣지를 못했는데 하물며 직접 본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가르침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가르침을 미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경전을 볼 때는 반드시 경을 보는 눈[看經眼]을 갖추어야 한다.
눈이 만약 밝지 못하면 도리어 명상(名相)에 현혹되어 심지(心地)를 궁구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많이 듣게 될 뿐[多聞]이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비록 많이 배운다 해도 탐욕을 이룰 뿐이다.
어떻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리오. 잘못하여 타향에서 비틀거리는 나그네가 되어서 본분의 가풍을 감당치 못하누나”라고 한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바다에 들어가 모래의 숫자를 세는 것과 같아서 부질없이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原文] 전후 삼삼(前後三三)
[事實] 『염송(拈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문수(文殊) 노인이 무착(無着)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서 떠나왔느냐?”
무착이 말하였다.
“남방(南方)에서 왔습니다.”
문수가 물었다.
“그곳의 불법(佛法)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느냐?”
무착이 답하였다.
“말법의 비구들이어서 계율을 받들어 지키는 이가 적습니다.”
문수가 물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느냐?”
무착이 답하였다.
“혹은 3백 명도 되고 혹은 5백 명도 됩니다.”
무착이 물었다.
“이곳의 불법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습니까?”
문수가 답하였다.
“범부와 성인이 함께 거처하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느니라.”
무착이 물었다.
“대중은 얼마나 됩니까?”
문수가 답하였다.
“앞으로도 삼삼이고 뒤로도 삼삼이니라.”
[原文] ‘도리어 여래에게 당하여[却被如來]’에서부터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有何益]’까지
[事實] 여래께서 많이 들은 인재[多聞之士]는 비록 많이 듣기는 했으나 수행해서 증득하지 못하였다고 꾸짖었다.
경에서 말하기를,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이의 보배를 세는 것과 같아서 자기에게는 반전분(半錢分)의 이익도 없다.
이미 자신의 보배가 아니라면 날이 다하도록 세어서 수량을 안다 하여도 자신이 받아 쓸 수 없으니,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아침 나절이 다하도록 약(藥)을 설명한다 해도 병이 깊어져서 스스로 곤란을 겪으니,
마치 긴 세월 동안 갈 길을 물으면서도 반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잊어버리는 그런 인재는 만나기가 어렵고,
손가락을 집착해서 달로 여기는 그런 무리는 실로 번다하다는 것이 그 의미이다.
[原文] 옷에 있는 구슬의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데[衣珠無價]
[事實] 『법화경(法華經)』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마치 빈궁한 사람의 이야기와 같다.
빈궁한 사람이 친한 벗의 집에 이르렀는데, 그 집이 큰 부자여서 온갖 반찬을 갖추어 대접하고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보배 구슬을 내의(內衣) 속에 넣어 주고서 묵묵히 떠나갔지만, 빈궁한 사람은 잠이 들어서 알지 못했다.
이 사람이 일어나서 다른 여러 나라를 다니며 유행(遊行)하면서 옷과 음식을 자기 스스로 해결하였다.
생활 수단을 마련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소소한 편리를 얻어도 만족하고 더 이상 좋은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 내의 속에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보배구슬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原文] ‘무시이래로 비틀거리며[從來蹭蹬]’에서부터 ‘풍진객(風塵客)이 되었도다’까지
【琪注】 종래(從來)라고 한 것은 시작 없는[無始] 이래를 말한다.
비틀거린다는 것[蹭蹬]은 다니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쓸데없이 다닌다는 것[虛行]은 일찍이 지위가 없어서 헛되이 다닌 것이다.
무시이래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사(生死)의 험난한 길을 지나면서 부질없이 자신만 피곤하게 하고 열반의 길[涅槃路]은 일찍이 밟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쓸데없이 다녔음을 깨닫는다’고 한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잘못하여 풍진객이 되었도다[多年枉作風塵客]”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비유하면 마치 세상 사람이 남북으로 천리 만리를 표표히 떠돌면서 고향과는 더욱 멀어지는 것이 잘못하여 풍진의 나그네가 되는 것이다.
고덕(古德)이 말하였다.
문 앞은 끝없는 길인데
누가 집에 당도한 사람인가?
[原文] 지난날의 의삼[去日衣衫]
[事實] 맹호연(孟浩然)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자애로운 어머니 손에 바늘을 들고서
유랑하는 아들의 웃옷을 만드네.
길 떠남에 임해서 촘촘히 꿰매주며
혹여 더디 올까 염려하누나.
[原文] ‘본성에 삿됨을 씨뿌리고[種性邪]’에서부터 ‘원돈법제[圓頓制]를’까지
【琪注】 이것은 삼보(三寶)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서천축(西天竺)에 96종류의 외도는 삿된 스승에게 의지해서 온갖 삿된 견해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잘못된 앎이며[錯知解]’라고 한 것이다.
여래의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요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량겁 동안 한량없는 생사를 받음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은 모두 삿된 스승의 설법을 의지하고 원돈(圓頓) 대승보살이 설하는 것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논(論)에서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들을 수 있으면 지옥의 고통도 받겠지만, 부처님의 명호를 들을 수 없다면 한량없는 즐거움도 받지 않겠다”고 하였으니,
지난날 무량겁을 지나면서 괴로움을 받으며 생사(生死)에 유전한 것이 부처님의 명호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명호를 듣지 못한 것은 모두 삿된 스승을 만나기 때문이다.
[原文] 섭공이 그림을 좋아함[葉公好畵]도
[事實] 『사기(史記)』에서 말하였다.
“섭공(葉公)에서 섭은 봉해진 땅이고, 공의 이름은 자고(子高)이다. 그 성품이 용을 좋아하여 문과 전각과 당우(堂宇)에 모두 용의 초상을 그려 놓았다.
그러자 천룡(天龍)이 소문을 듣고 내려 와서 머리로 창문을 엿보면서 꼬리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섭공이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 도망가다가 혼백을 잃어버렸다.”
저 섭공은 진짜 용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용과 비슷한 것을 좋아한 것이다.
[原文] ‘이승은 정진하긴 하지만[二乘精進]’에서부터 ‘지혜가 없으니[無智慧]’까지
【琪注】 2승(乘) 근기의 사람은 정진 수행으로 삼계(三界)의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끊고 일곱 번 인천(人天)에 돌아오는데, 편력하는 수행법문(修行法門)이 정진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적멸주(寂滅酒)를 마시고 열반상(涅槃床)에 누워서 대비심을 일으켜 이타행(利他行)을 닦지 않고, 중생을 제접하여 이익을 주지 않으므로 이것은 도심(道心)이 없는 것이다.
“외도는 총명하지만 자혜가 없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서천축의 외도는 지극히 총명한 인재여서 사위타(四圍陀:네 가지 베다)의 전적을 외울 수 있지만 불성을 밝히지는 못하였다.
이 때문에 한산(寒山)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세간에 많이 아는 이들은
어리석게도 문장 사용함을 배울 뿐
장래에 닥칠 과보는 근심하지 않고
오직 악인(惡因)만 지을 줄 아네.
부처님을 만나도 예배할 줄 모르고
스님을 만나면 두 배나 성내는구나.
5역(逆)과 10악(惡)을 짓는 무리들
3독(毒)으로 이웃을 삼으니
죽으면 지옥으로 들어가서
벗어날 기약이 없도다.
고금(古今)의 총명한 인재들은 세상의 지혜에 부림을 당해서 반야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고덕이 말하기를,
“이백(李白)과 이사(李斯)는 문장은 뛰어나지만, 두 사람 모두 공왕(空王)의 설법을 만나지 못해서 부질없이 총명심을 얼마나 많이 자부했던가?
생사(生死)의 근원을 꿰뚫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다.
선대(先代) 성인이 자비를 드리운 것이 이와 같은데도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 것인가?
[原文] 양주(楊朱)
[事實] 조정(朝庭)에서 말하였다.
“양주가 갈림길[岐路]에서 울며 말하기를 ‘남으로 가도 되고 북으로 가도 되는구나’라고 하였다.”
[原文] ‘어리석기도 하고[亦愚癡]’에서부터 ‘실재한다는 견해를 일으키네[生實解]’까지
【琪注】 어른이 지혜가 없는 것은 우(愚)라 하고, 어린 아이가 알지 못하는 것은 해(駭)라고 한다.
“텅 빈 주먹 위에서 실재하는 견해를 일으킨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어리석은 사람과 어린 아이는 텅 빈 주먹인데도 허망하게 실제로 있다고 여긴다.
마치 누런 낙엽을 돈으로 알아서 진실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여래대사(如來大師)께서 일대장교(一大藏敎)의 문장을 설한 것이 모두 대비심과 작용 없는 묘한 지혜로 인연을 따라 교화한 것이니,
어떤 경우에는 유법(有法)을 설하고,
어떤 경우에는 공법(空法)을 설하고,
혹은 돈점(頓漸)을 설하기도 하고,
혹은 편원(偏圓)을 설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일정하지 않은 법을 설하기도 하였는데,
이 갖가지 명상(名相)을 중생들은 각각의 부류에 따라 이해한다.
모든 소승의 근기는 말을 따르다 스스로 집착을 일으켜서 불성을 보지 못하는데,
비유하면 마치 텅 빈 주먹 속에 무엇이 실제로 있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
다음 문장에서 거듭 비유로 나타낸다.
[原文] 모래를 가지고 성을 에워쌈을 배우니[沙土學圍城]
[事實] 『소아론(小兒論)』에서 말하였다.7
“공자가 길을 갈 때였는데, 어린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성을 둘러쌓고 말하기를,
‘수레가 성을 피해야 하겠습니까, 성이 수레를 피해야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웃으면서 수레를 돌려 길을 갔다.”
[原文] ‘손가락을 집착하여 달로 여겨서[執指爲月]’에서부터 ‘헛되이 괴이한 일 하는구나[虛捏怪]’까지
【琪注】 만약 손가락을 미혹하여 달로 여기면 달을 미혹한 것일 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미혹한 것이니, 손가락을 달로 안 것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수다라(修多羅)의 가르침은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니, 만약 달을 보면 달을 가리킨 것은 필경 달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니, 수다라의 가르침을 불성으로 여기면 이것은 불성을 미혹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르침도 미혹한 것이다. 교를 불성으로 여기면 그 공행(功行)을 잘못 베푼 것이다. 그러므로 중(中)과 하(下)의 근성(根性)은 대승반야(大乘般若)의 종성(種性)이 없으면 불지견(佛知見)에 깨달아 들어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병이 되는 것은 근(根)ㆍ경(境)ㆍ식(識)의 십팔계법(十八界法)에 있다.
이 때문에 “근경의 법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을 하는구나”라고 말한 것이다.
[原文] ‘한 가지 법도 볼 수 없음이[不見一法]’에서부터 ‘관자재(觀自在)라 한다네’까지
【琪注】 이 한 구절은 영가대사(永嘉大師)가 힘을 다하여 이끌어서 문전에 당도케 하였으나, 다만 발을 들어 들어가지는 못한 것이다. 옛날에 숙덕(宿德)이 있었는데, 『법화경』을 보다가 “제법(諸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다”고 한 대목에 이르자 스스로 희열을 느껴서 항상 뜻을 두어 온몸으로 궁구하였다[體究].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ㆍ어(語)ㆍ묵(默)ㆍ주(做)ㆍ작(作)과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을 놓는 거동에 이르기까지 체구(體究)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도무지 얻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중춘(仲春)의 달에 이르렀는데, 하루는 홀연히 난간에 임해서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나무 위에 있던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별안간 깨우쳐 들어가서 전에 있었던 인연(因緣)을 살펴보고 앞서 말한 게송에 연속해서 말했다.
제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이라네.
봄이 따뜻하니 백화가 붉게 피고 자고새는 버들가지에서 우는구나.
그리하여 고금 존숙(尊宿)의 설화를 살펴보고 그 뜻을 훤히 깨쳐서 스승에게 인가(印可)를 구하여 모든 곳에 응용하는 데 걸림이 없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바야흐로 이름을 관자재라 한다네[方得名爲觀自在]”라고 한 것이다.
[原文] ‘깨치면 업장이[了卽業障]’에서부터 ‘도리어 옛날의 부채를[還宿債]’까지
【琪注】 죄와 복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깨쳐서 통탈하면 걸림이 없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일으켜서 근원으로 돌아가면 시방세계가 모두 소멸된다. 하물며 죄와 복의 모습이겠는가?
이 때문에 승조(僧肇) 법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5오음의 몸은 실제로 있는 것 아니고
사대(四大)는 본래 공한 것이니
장차 하얀 칼날로 머리를 내리치더라도
마치 봄바람을 한 번 베는 것과 같도다.
그렇다면 업장(業障)은 본래 공해서 없는 것인데, 만약 깨달아 마치지 못하면 법(法)을 집착해서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인과(因果)의 법은 마치 몸과 그림자의 경우와 같아서 백천 겁의 세월이 흐른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이 맞닥뜨릴 때에 과보를 스스로 다시 받는다.
이 때문에 ‘요달하지 못하면 옛날에 묵은 부채를 다시 갚아야 한다[未了應須還宿債]’고 한 것이다.
[原文] 금장과 말ㆍ보리를[金鏘馬麥]
[事實] 『인과경(因果經)』에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수행 인지(因地)에 계실 때 바늘로 이[虱]를 찌르고 나쁜 음식을 사람에게 먹였는데, 이와 같은 인연 때문에 성도한 후에도 이 두 가지 어려운 일[難事]을 불러들인 것이다.”
[原文] ‘굶주리다가 임금의 수라상을[飢逢王饍]’에서부터 ‘어찌 나을 수 있으리오[爭得瘥]’까지
【琪注】 49년 동안 방편문(方便門)을 열어서 진실상(眞實相)을 보여주고, 갖가지 법문과 대자대비한 원력(願力)으로 중생을 제접하여 인도하였는데, 중생이 자기 스스로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세상의 굶주린 사람이 임금의 수라상을 만난 경우와 같다. 즉 앞에다 사방 일 장(丈)에 이르도록 차려놓고 물에서 나오는 것과 육지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모두 갖추어 갖가지 아름다운 맛이 있지만, 세상의 굶주린 사람은 이를 보고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감히 먹지 못한다. 또 마치 오랫동안 병들어 있던 사람이 홀연히 노의(盧醫)와 편작(扁鵲)과 같은 의왕(醫王)을 만나도 반드시 의혹을 일으켜 머뭇거리면서 미묘한 약을 먹지 않는 것과 같으니, 그렇다면 병이 나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原文] 독을 바른 북[塗毒鼓]
[事實] 『니원경(泥桓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시길, 비유하면 마치 훌륭한 의사가 모든 약을 섞어서 그 북에 발랐는데, 어떤 중생이 전투를 하다가 상처를 입었을 때 저 북소리를 들으면 일체가 다 치유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오직 명(命)이 다한 사람과 마땅히 죽어야 하는 사람은 제외되느니라. 이 마하연법(摩揀衍法)의 북소리도 마찬가지라서 일체 중생이 그 북소리를 들으면 음(婬)ㆍ노(怒)ㆍ치(癡)의 화살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보리심(菩提心)을 아직 일으키지 않은 자와 사타법(四墮法)과 무간죄(無間罪)를 범한 사람도 모두 치유가 되는데, 오직 일천제(一闡提)의 무리들은 제외된다.”
[原文] ‘욕망 속에 있으면서 참선을 행하는[在欲行禪]’에서부터 ‘끝내 무너지지 않는도다[終不壞]’까지
【琪注】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참선을 청정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반야지견(般若知見)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고덕(古德)에게 질문하였다.
“욕계에는 선(禪)이 없습니까? 대덕(大德)이 말씀하시기를 ‘선정이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라고 하셨습니다.”
고덕이 말하였다.
“사리(闍梨)야, 욕계에 선(禪)이 없다는 것만 알고 선계(禪界)에 욕심이 없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 삼계(三界)를 알고자 하느냐? 모두가 일심(一心)을 인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라.”
경(經)에서는 말하기를,
“3독(毒)을 소멸시키고 삼계를 벗어나는 것은 마군의 그물을 찢는 것이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에서 지견력(知見力)이라 말하였는데, 마음이 밝아지면 불성(佛性)을 보아서 일체처가 모두 불사(佛事)가 되는데, 무엇 때문에 욕계까지 말하겠는가?
이 때문에 ‘지견력’이라고 말한 것이다.
[原文] 화려함과 촌스러움[華野]
[事實]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기를,
“하나의 진실한 이치는 화려하든 촌스럽든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고덕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고행하는 고승이 방을 나가지 않아
소나무 대나무가 회랑(廻廊)을 덮어주지 않았네.
수행은 바위계곡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니
허망한 마음이 멸해서 다하면 크게 스스로 청량하리라.
[原文] ‘용시는 중죄를 범하고도[勇施犯重]’에서부터 ‘지금에 있도다[于今在]’까지
【琪注】 과거 아주 오랜 옛날에 한 비구가 있었는데 용시(勇施)라고 이름하였다. 홀연히 여래께서 금지(禁止)해 놓으신 계(戒)를 어기고 네 가지 중대한 근본 죄를 범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청정해지고자 해서 즉시 삼의(三衣)를 지팡이 위에 걸어 놓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하였다.
“나는 중죄를 범하였습니다. 누가 나를 참회시켜 주겠습니까?”
이와 같이 부르짖으면서 한 정사(精舍)에 이르러 존자를 만났는데, 그의 이름은 비국다라(鼻鞠多羅)라고 했다.
존자가 말하였다.
“죄의 자성(自性)을 추구해 보면 끝내 찾을 수가 없느니라.”
용시 비구가 활연히 크게 깨쳐서 10호(號)를 구족하고는 즉시 동방세계로 가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명호를 보월여래(寶月如來)라 하였으며 지금도 그곳에 있다.
이 때문에 ‘일찍이 성불하여 지금도 그곳에 있도다[早時成佛于今在]’라고 말한 것이다.
[原文] ‘사자후(師子吼)’에서부터 ‘완피달(頑皮靼)을’까지
【琪注】 모든 부처님께서 원돈(圓頓)의 대승을 자재롭고 두려움 없이 설법하심은 비유하면 마치 사자후를 할 때 두려움이 없고 자유자재한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설법이며[無畏說]”라고 한 것이다.
심차(深嗟)는 깊이 한탄하는 말이고, 몽동(懞憧)은 총명한 지혜가 아니다.
완피달(頑皮靼)은 소의 목에 있는 지극히 거칠고 두꺼운 가죽이니, 이것은 소승(小乘)의 우둔한 근기가 대승법(大乘法)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한탄하고 상심하는 말을 일으킨 것이다.
[原文] 그림이 그려진 병[畵甁]
[事實] 『출요경(出曜經)』에서 말하였다.
“남편이 그림이 그려진 좋은 병 속에 똥을 가득 담고는 그 입구를 튼튼하게 막고 향기로운 꽃가루를 바른 후에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를 매우 사랑하니, 이 병을 마치 나의 몸처럼 잡고서 놀아도 될 것이오.’
아내가 이 말을 따라서 병을 잡고 놀면서 버리거나 여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은 부인이 이 병에 애착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쳐서 깨트리니, 냄새와 더러운 것이 넘쳐흐르고 벌레들이 기어 나왔다.
남편이 잠깐 있다가 부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이 병을 가지고 놀 수 있소?’
아내가 대답하였다.
‘나는 죽을 때까지 끝내 이 깨진 병에는 다가가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이 말하였다.
‘당신은 이 일만을 보았을 뿐이오. 당신은 내 몸뚱이가 이 병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살피시오.
머리부터 발끝가지 분별하고 사유하면 서른여섯 가지 물건이 있을 뿐이니, 무엇을 탐낼 것이 있겠소?’”
[原文] 못과 쐐기를 빼고[去釘楔]
[事實] 장로(長蘆) 스님이 말하였다.
“눈 속에 못을 밀어 넣어서 머리 뒤로 쐐기를 뽑아내면, 성인의 이해[聖解]도 모두 없어지고 범부의 마음도 단박에 끊어진다.
해마다 봄이 오면 백화가 붉게 피어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도다.”
[原文] ‘중죄를 범하면……만 알 뿐[祗知犯重]’에서부터 ‘비결을 열어두었음은[開秘訣]’까지
【琪注】 앞에서 네 가지 중죄를 범하면 단지 위없는 열반묘심(涅槃妙心)을 장애하는 것만 알았을 뿐 죄의 자성(自性)이 공함은 요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사(生死)의 세계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음행[婬]과 살생[殺]이 근본이 되어 끝없이 빠져들기 때문이다.
만약 대승의 종성(種性)을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앞의 경계를 만나더라도 보리심을 일으켜서 허망함을 돌이켜 참[眞]으로 돌아가서 즉시 도에 들어갈 수 있다.
가령 선재(善財)동자가 바수밀녀(婆須密女)를 참방하였을 때,
그녀는 선재에게 말하기를,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그 이름이 탐욕의 경계를 떠난 것[離貪慾際]이며, 세상의 즐거움에 따라 그 몸을 나타낸다.
만약 어떤 중생이 잠깐 나를 보거나, 잠깐 나와 이야기하거나, 잠깐 동안 나의 손을 잡으면, 탐욕을 떠나서 모든 불국토의 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선재동자가 무염족왕(無厭足王)을 참방해서 만났는데, 한량없이 사나운 군졸들이 무기를 들고 있다가 중생이 각각 왕법(王法)을 범하면 그 머리를 자르기도 하고 그 손을 자르기도 했다.
선재가 이 광경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떻게 여기에서 법을 구하고자 하겠습니까?”
왕이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보살의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었다.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은 미래에도 편안해서 고통스럽고 괴로운 소리를 듣지 않으니, 끝내 한 마리의 모기와 한 마리의 개미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을 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 하물며 인간의 경우에서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종성(種性)을 갖춘 사람은 앞의 경계를 만나더라도 곧바로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이승과 모든 소승의 근기는 모든 율의사법(律儀事法)을 지키고 범하는 것에 막혀서 죄와 복의 성품이 공하면 불성이 밝게 나타남을 보지 못한다.
이것은 여래께서 비결을 열어 놓으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음 문장에서 음(婬)과 살(殺)의 모습을 특별히 열거하여 앞의 일을 밝힌 것이다.
[原文] ‘어떤 두 비구가[有二比丘]’에서부터 ‘죄의 결박을 증가시켰네[增罪結]’까지
【琪注】 음행과 살생을 범하는 것은 모두 근본 중죄에 해당된다.
반딧불은 소승이니, 마치 반딧불이 어둠을 깨뜨릴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옛날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산중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면서 청정한 계율을 견고하게 지켜서 범함이 없었다.
하루는 한 비구는 밖으로 나가고, 한 비구는 암자에 남아 선정(禪定)을 닦다가 홀연히 앉은 채 잠이 들었는데, 잠에 빠져 있다가 한 나무꾼 여자 때문에 몰래 청정한 계율을 범하였다.
이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는데 암자에 함께 사는 스님이 돌아오자 그에게 앞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였다.
그 스님은 노해서 즉시 나무꾼 여자를 잡아다 겁을 주려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트렸는데 죽고 말았다. 그러자 비구의 번뇌는 더욱더 증가하였다.
한 사람은 무심하게 음행을 범하였고, 한 사람은 무심하게 살생을 범하였으니, 이 두 비구는 모두 무심하게 범한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대덕(大德)인 우바리(優波離) 존자의 처소에 가서 참회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존자가 소승법(小乘法)으로 죄를 얽어매니,
그때 이 두 비구는 의심이 해결되지 않고 더욱 의혹이 일어나자 곧장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처소로 가서 참회한 뒤에 앞에서 일어났던 일을 진술하였다.
유마거사가 꾸짖어 말하기를,
“근기를 잘 살펴보고 설법하지 못하는구나.
이 두 비구는 오랫동안 대승법(大乘法)을 닦았으니, 어찌 큰 바다를 소발자국에 고인 물[牛跡]에 비길 수 있으리오.
우바리는 소승이니, 비유하면 마치 반딧불이 어둠을 깨뜨릴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우바리는 반딧불과 같아서 죄의 결박을 증가시켰다[波離螢光增罪結]’고 한 것이다.
[原文] 금으로 된 밭[金田]
[事實] 조정(祖庭)에서는 말하기를,
“황금으로 된 집은 승가람(僧家藍)의 총칭이다”고 하였다.
『현우경(賢愚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수달(須達) 장자(長者)가 정원을 사서 정사(精舍)를 짓고자 하자,
기타(祇陀) 태자(太子)가 말하였다.
‘만약 황금을 땅에 깔아서 빈틈이 없게 한다면, 그대에게 정원을 주리라.’
수달 장자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삼가 그 값대로 따르겠습니다.’
태자가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농담을 하였을 뿐이오.’
수달 장자가 말하였다.
‘태자는 허망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서 코끼리 등에 금(金)을 실어서 가져오게 했다.
80경(頃)을 잠깐 사이에 채우고자 하였으나, 약간의 땅이 조금 남았다.
수달 장자가 생각하였다.
‘어떻게 정돈해야 금이 충분해서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채울 수 있을까?’
기타 태자가 물었다.
‘귀한 것을 두는 것이 싫으신가?’
수달 장자가 대답했다.
‘아니오. 금을 어떻게 정돈하면 충분해서 부족한 곳을 보충해 채울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했었습니다.’
기타 태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대덕(大德)이시구나. 그래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보배를 가볍게 여기도록 하셨구나.’
그리하여 가져온 금만으로 땅에 가지런히 깔게 하고는 금을 더 내놓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정원의 땅은 그대의 것이지만 수목(樹木)은 나의 것이오. 내가 스스로 부처님께 올리겠으니 함께 정사(精舍)를 세웁시다’라고 하였다.”
[原文] ‘유마대사(維摩大士)’에서부터 ‘눈과 서리를 녹임과[消霜雪]’까지
【琪注】 우바리존자는 전적으로 소승의 이치로 법(法)을 섬겼기 때문에 죄를 참회하려 해도 참회할 수가 없었다.
지금 유마대사는 이치로써 자성이 공한 무상법문(無相法門)을 설하여 죄의 자성을 추궁하였으나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안과 밖의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전제(前際)로 가버린 것도 아니고, 후제(後際)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중제(中際)에 머무는 것도 아니어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제에서 추구해 보아도 끝내 얻을 수 없었다.
이때 두 비구가 홀연히 죄의 자성이 공적(空寂)함을 단박에 깨달아 요달하고는 마음이 결연해지면서 무생인(無生忍)에 머물렀다.
경에서 말하기를,
“만약 참회하고자 한다면 단정하게 않아서 실상(實相)을 염하라.
모든 죄는 서리나 이슬과도 같아서 지혜의 태양이 녹여서 없앨 수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비유하면 마치 밝은 태양이 서리나 눈을 녹이는 것과 같다[猶如赫日消霜雪]’고 한 것이다.
[原文] 기원(祇園)
[事實] 조정(祖庭)에서는 말하였다.
“중국말로는 승씨(勝氏)라고 한다.
범어로는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하는데 중국말로는 중원(衆園)이라고 하며 사찰의 통칭이다.
기타태자(祇陀太子)의 동산에 부처님의 정사(精舍)를 지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이름 붙인 것이다.”
[原文] 영운이 눈을 뜬 곳[靈雲開眼處]
[事實] 영운(靈雲) 화상이 복숭아꽃을 보고 도를 깨닫고는 즉시 게송으로 노래하였다.
30년 동안 칼을 찾는 나그네여,
그 몇 번이나 낙엽지고 새싹 돋음을 보았던가?
스스로 한 번 복숭아꽃을 본 이후로는
이제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네.
[原文] ‘불가사의[不思議]’에서부터 ‘다함이 없어라[也無極]’까지
【琪注】 불가사의하다는 것은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고 입으로도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니, 입으로 말하고자 하나 말을 잃어버리고 마음으로 생각하고자 하나 사려(思慮)를 잊어버린다.
경에서 말하기를,
“가령 사리불(舍利弗)과 같은 사람을 세간에 가득 채워서 다 함께 헤아리고 생각해도 부처님 지혜는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 이르러서 마음을 깨쳐야만 비로소 해탈의 일승(一乘)인 원돈법문(圓頓法門)을 밝혔다고 할 것이다.
이미 이 법을 증득하면 오묘한 작용이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와 같아서 다함이 없으니,
이 때문에 ‘오묘한 작용이 항하사의 모래알 수와 같아서 다함이 없어라[妙用恒沙也無極]’라고 한 것이다.
[原文] 향엄동자(香嚴童子)향엄(香嚴)은 광엄(光嚴) 동자라고 해야 한다.
[事實] 『유마경(維摩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광엄(光嚴) 동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생각해 보니, 제가 옛날 비야리성(毘耶離城)에서 나올 때 유마힐이 막 성으로 들어와서 제가 예를 올리고 물었습니다.
≺거사께서는 어디에서 오십니까?≻
유마거사가 답하였습니다.
≺나는 도량(道場)으로부터 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도량은 어느 곳입니까?≻
유마거사가 답하였습니다.
≺직심(直心)이 도량이니, 허망한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남자(善男子)와 보살에 이르기까지 만약 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교화하고자 한다면, 모든 작용[小作], 하다못해 발을 드는 것과 발을 내리는 것도 모두 도량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야 불법(佛法)에 머무는 것입니다.≻’”
[原文] ‘네 가지 공양[四事供養]’에서부터 ‘또한 녹일 수 있다네[亦消得]’까지
【琪注】 법을 요달한 사람은 인천(人天)의 광대한 공양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다. 출가한 사람이 비록 몸은 출가했어도 마음이 도에 물들지 않으면, 모든 경론에서 다 말하기를 응공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도와 덕은 닦지 않고 옷과 음식만 허비하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네 가지 일은 첫째 의복(衣服)이고, 둘째 와구(臥具)이고, 셋째 음식이고, 넷째 의약(醫藥)이다.
이 네 가지 공양에 대해서 모든 교(敎)에서 말하기를,
“모두가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야만 감히 받아서 쓸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도인은 어찌 네 가지 공양에 그칠 뿐이겠는가? 설사 만 냥의 황금이라 할지라도 녹일 수가 있다.
[原文] 나귀를 먹이고 말을 먹이고[餧驢餧馬]
[事實] 『지도론(智度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지혜가 밝고 날카로워져서 보시하는 것을 분별할 수가 있다. 대비심(大悲心)으로 물건을 보시하는 것은 비록 같지만 복덕의 많고 적음은 마음에 따라서 우열이 생긴다.
가령 예를 들어 보자. 사리불이 한 발우의 밥을 부처님께 올렸는데, 부처님께서 즉시 다시 개에게 주고 사리불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에게 밥을 보시했고, 나는 개에게 밥을 보시했는데, 누가 얻은 복이 더 많으냐?’
사리불이 말하였다.
‘제가 부처님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개에게 보시한 공덕이 더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 제일인 것이 개에게 보시하는 것만 못하느니라.’
이 때문에 복의 크기는 마음을 따르지 외부의 밭[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사리불의 천만억 배라 해도 부처님의 마음에는 미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마음은 내부의 주인[內主]이고, 밭은 바깥 일[外事]이기 때문이다.”
『향산어록(香山語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행자가 스님에게 밥을 공양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행자가 접대하는 것이 쉽지 않구나.’
행자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쉽지 않습니까?’
‘비유하면 나귀를 먹이고 말을 먹이는 것과 같으니라.’”
[原文] 발우에 담으니[鉢中盛]
[事實] 불혜(佛慧) 화상이 스님의 발우를 가지고 속가 집에 당도하였는데, 선비가 말하였다.
“어떤 물건이 필요하십니까?”
스님이 말하였다.
“어떤 것이라도 관계없소.”
선비가 발우에 풀을 가득 담아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이 대답하였다.
“하나를 버려서 만 배를 얻으니 안락하고 장수하리라.”
[原文] 분골쇄신(粉骨碎身)
【琪注】 분골(粉骨)을 말해 보자. 상제(常啼)보살이 향성(香城)에서 반야를 배울 때였다.
이미 법을 얻고 나서 자기 스스로 세존께 공양할 물건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가 홀연히 성 안에 있는 부호인 장자를 만났는데, 그는 몸이 편치 못해서 사람의 골수를 약에 섞어서 먹으려 하였다. 즉시 뼈에서 골수를 꺼내어 장자에게 팔고 그 자금으로 갖가지 꽃과 향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니, 그 지극한 정성은 가히 알 만한 것이다.
쇄신(碎身)을 말해 보자.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행(因行)을 할 때 온몸을 버려서 반구(半句)의 게송을 구한 것이다--내가 과거를 억념(億念)해 보니 바라문의 신분으로 설산(雪山) 속에서 보살행을 닦았는데, 부처님께서도 세간에 출현하시지 않았고 경법(經法)도 없었다.
이때 하늘의 제석(帝釋)이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직접 시험해 보려고 했다.
그는 나찰의 형상으로 눈앞에 나타나서 즉시,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니 이것은 생멸법이다”고 하는 반구(半句)의 게송을 설하였다.
보살이 이 게송을 듣자 마음에 환희심이 일어나서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고요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나찰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물었다.
“성자께서는 어디에서 이 반구의 게송을 얻으셨습니까? 이 반구의 게송은 바로 3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증득한 법입니다.”
나찰이 답하였다.
“내가 밥을 먹지 않은지 아마 7일이 지나 마음과 말이 서로 어긋나느니라.”
이때 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성자께서 만약 저를 위해 이 게송을 모두 말씀해 주신다면, 저는 평생 동안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나찰이 대답하였다.
“배가 고파서 실로 말을 할 수가 없느니라.”
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성자께서 드시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내가 먹는 것은 오직 더운 고기이고, 내가 마시는 것은 오직 신선한 피일뿐이다.”
보살이 또 말하였다.
“성자께서 저를 위해 이 뛰어난 게송을 설해 주시면, 저는 온몸을 바쳐 성자께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이때 나찰이 즉시 게송을 읊었다.
생멸(生滅)이 멸하고 나면,
적멸이 즐거움이 되느니라.
보살이 듣고 나서 곧바로 도수(道樹)와 석벽(石壁)에 이 게송을 모두 적어 놓고 문득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몸을 아래로 던졌다. 아래로 떨어지다가 아직 땅에 닿지 않았을 때 나찰이 다시 제석(帝釋)의 모습으로 공중에서 받아다 평지에 내려놓고는 참회하면서 보살을 찬탄하였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12겁(劫)을 뛰어넘어 미륵 이전에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하였다.
이 때문에 “한 구절에서 깨달아 백억의 법문을 뛰어넘는다[一句了然超百億]”고 한 것이다.
[原文] ‘법 가운데 왕이어서[法中王]’에서부터 ‘모두 함께 증득하였네[同共證]’까지
【琪注】 왕 가운데에서 법왕(法王)의 지위는 모든 왕보다 위에 있다.
이 때문에 ‘법 가운데의 왕’이라고 한 것이다.
삼계를 높이 초월해서 방향이 없는 대방(大方)을 홀로 거닐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다[最高勝]’고 한 것이다.
나아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한량없는 부처님께서도 모두 이 법을 증득하셨고, 천하의 노숙(老宿)도 모두 이 법을 증득하였으니, 한량없는 법취(法聚)와 모든 의미의 문[義門]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경에서 말하기를,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이라야만 이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오직 부처님만이[唯佛]’라고 한 것은 석가화주(釋迦化主)이고,
‘여불(與佛)’이라고 한 것은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한 부처님과 두 부처님과 셋ㆍ넷ㆍ다섯 부처님뿐만 아니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이 법을 증득하였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시방의 여래께서 다 함께 증득한 것이다[十方如來同共證]’라고 한 것이다.
[原文] ‘내가 지금 이것을 해설하니[我今解此]’에서부터 ‘모두가 상응하네[皆相應]’까지
【琪注】 오직 이 심법(心法)만이 세간의 여의보주(如意寶珠)와 같아서 모든 공용(功用)을 갖추어 그 작용이 다함이 없다.
사조(四祖) 스님이 우두 융(牛頭融) 선사에게 말하였다.
“백천(百千)의 법문(法門)이 똑같이 마음인 방촌(方寸)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공덕이 모두 마음의 근원[心源]에 있으니, 모든 정문(定門)과 모든 혜문(慧門)과 모든 행문(行門)이 갖춰져서 신통의 오묘한 작용이 모두 너의 마음에 있느니라.
번뇌와 업장은 본래 공적(空寂)하며 모든 과보는 본래 스스로 있어서 벗어날 만한 삼계(三界)도 없고 추구할 만한 보리도 없다.
인(人)과 비인(非人)은 성상(性相)이 평등하며, 대도(大道)는 텅 비어서 사려가 끊어져 있다.
이와 같은 법을 그대가 지금 이미 얻어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부처님과 더불어 차이가 없는데다가 더 특별한 법(法)도 없느니라.
다만 마음에 맡겨 자재하면서 관행(觀行)도 일으키지 말고, 마음을 멈추지도 말며,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을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스러운 생각도 품지 말라.
그러면 탕탕(蕩蕩)하고 걸림이 없어서 임의대로 종횡하니, 모든 선법(善法)도 짓지 말고 모든 악법(惡法)도 짓지 말지어다. 걷고 머물며 앉고 눕고, 눈에 부딪쳐서 만나는 인연이 모두 부처님의 미묘한 작용이니라.”
이 때문에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가 상응한다[信受之者皆想應]’고 한 것이다.
[原文] ‘분명하고 분명하게 보면[了了見]’에서부터 ‘부처님 또한 없어라[亦無佛]’까지
【琪注】 진여(眞如)의 경계 안에는 중생과 부처의 거짓 명칭이 없고, 평등성(平等性)가운데에는 나와 남의 형상이 없다. 그렇다면 중생도 없고[無物] 사람도 없고[無人] 부처님도 없다[無佛].
그래서 『반야경(般若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선현(善現)아, 공공(空空)이 청정(淸淨)하기 때문에 색(色)이 청정하고, 색이 청정하므로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청정한 것이니라.
왜냐하면 공공이 청정한 것[空空淸淨]이든, 색이 청정한 것[色淸淨]이든, 일체지지가 청정한 것[一切智智淸淨]이든 둘이 아니니, 둘로 나누어지지 않으면 구별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이 때문에 ‘분명하고 분명하게 보면 한 물건도 없고[了了見無一物] 다른 사람도 없고 부처님도 없다[亦無人亦無佛]’고 한 것이다.
[原文] 월왕은 오나라를 기울게 할 묘책을 맡겼으니[越王任有傾吳策]
[事實] 『사기(史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범려(范鐫)는 남양(南陽) 사람이다.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섬겼는데, 몸을 고통스럽게 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구천과 깊이 모의한 지 20여년 만에 마침내 오(吳)나라를 멸망시켜서 회계(會稽)의 치욕을 갚았다.
그리고 북쪽으로 진군하여 회수(淮水)를 건너 제(齊)나라와 진(晋)나라에 임해서 중국(中國)을 호령하고 주(周)나라 왕실을 존중하였다.
구천이 패권을 잡자 범려는 상장군(上將軍)이라고 불리면서 본국으로 돌아왔다. 범려는 이른바 대명(大名) 아래서는 오랫동안 있기가 힘들다고 여겼고, 또 구천의 사람됨이 환란(患亂)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안락은 함께 누리기 어렵다고 여겼다.
그래서 구천을 하직하면서 말하였다.
‘신은 군주가 근심하는 것은 신하의 치욕이고,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옛날에 군왕께서 회계(會稽)에서 치욕을 당했는데도 제가 죽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일(즉 복수하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치욕을 이미 씻어냈으니, 신은 청하건대 회계에서 받아야 했던 벌을 따르고자 합니다.’
구천이 말하였다.
‘나는 장차 그대와 더불어서 나라를 나누어 소유하고자 하노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를 벌주리라.’
범려가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영(令)을 행하고 신은 제 뜻을 행합니다.’
그리고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끝내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구천은 회계산에 표시를 해서 범려의 봉읍(俸邑)으로 삼았다.
범려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 제(齊)를 벗어난 뒤 성명(姓名)을 바꾸어 스스로 시이자피(䲭夷子皮)라고 하였다.
[原文] 용의 굴[驪龍窟]
[事實] 설두(雪竇)스님이 말하였다.
“일면불(日面佛)ㆍ월면불(月面佛)과 오제(五帝)ㆍ삼황(三皇)은 어떤 물건인가? 20년 이래 일찍이 모진 괴로움을 맛보면서 그대를 위해 몇 번이나 창룡굴(蒼龍窟)에 내려왔던가?”
또 고덕이 말하기를,
“명월주(明月珠)를 찾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창룡굴에 내려가야 한다”고 하였다.
[原文] ‘대천 항사계[大千沙界]’에서부터 ‘번갯불 스침과 같아라[如電拂]’까지
【琪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각성(覺性) 가운데 있으니, 비유하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하나의 물거품과 같을 뿐이다.
어찌 삼천대천 항하사 세계만 물 위에 떠 있는 하나의 물거품일 뿐이겠는가?
온 시방(十方)의 허공이 각성 가운데 있는데, 마치 물 위에 있는 하나의 물거품과 같을 뿐이다.
가령 관음보살이 증득한 원통법문(圓通法門)에서는 말하기를,
“미망(迷妄)으로 인하여 허공이 있고, 그 허공에 의지해서 세계를 건립하니, 상념이 맑으면 국토가 되고 지각(知覺)은 중생이다.
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서 생겨나니, 마치 바다에서 하나의 물거품이 생기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대천 항하사 세계는 바다에 떠 있는 물거품이다[大千沙界海中鳧]”고 한 것이다.
“모든 성현은 번갯불이 스치는 것과 같다[一切聖賢如電拂]”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비유하면 마치 번갯불과 부싯돌의 불이 별안간에 종적이 없어져서 끝내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반야경(般若經)』에서 말하기를,
“내공(內空)이 청정하기 때문에 색계(色界)와 안식계(眼識界)와 안촉(眼觸)과 안촉이 연(緣)이 되어 발생시키는 모든 수(受)가 청정하다.
색계(色界)에서 안촉에 이르기까지 연이 되어 일으키는 모든 수(受)가 청정하기 때문에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청정하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모든 성현은 번갯불이 스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原文] ‘가령 쇠로 된 바퀴를[假使鐵輪]’에서부터 ‘끝내 잃지 않는다[終不失]’까지
【琪注】 “가령 무쇠 바퀴를 정수리 위에서 돌린다 해도[假使鐵輪頂上旋]”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전(傳)에서 말하였다.
“이십팔 주(住)의 보살이 수행하여 힘이 있었는데, 한 마왕(魔王)이 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지위(地位)에서 물러나라. 만약 물러나지 않으면 내가 뜨거운 무쇠 바퀴를 날려 그대 정수리 위에 돌림으로서 그대의 형체를 마치 미세한 먼지처럼 부수어버리겠다.’
이때 보살은 정혜(定慧)가 완전하게 밝아서 부사의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위를 잃지 않았다.
그러자 모든 마군의 무리가 도리어 스스로 물러나고 보살의 정혜는 더욱더 밝아졌다.”
이 때문에 ‘정혜가 완전하게 밝아서 끝내 지위를 잃지 않는다[定慧圓明終不失]’고 한 것이다.
[原文] ‘해를 차갑게 하고[日可冷]’에서부터 ‘진실한 말을 파괴할 수는[壞眞說]’까지
【琪注】 해의 성품은 본래 뜨거우니, 어찌 차가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달의성품은 본래 차가우니, 어찌 뜨거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모든 마군(魔軍)은 진실한 설법을 파괴할 수 없음을 진실로 알 수 있다.
여래의 설법은 마군의 궁전을 진동시켜서 삿된 무리를 귀의케 하니, 어찌 성인의 말씀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앞에서 “해를 차갑게 할 수 있고 달을 뜨겁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아누루태(阿㝹婁駄)가 세존께 말씀드리기를,
‘달을 뜨겁게 할 수 있고 해를 차갑게 할 수 있을지언정 부처님께서 설한 4제(諦) 법문을 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제 영가(永嘉) 스님이 이것을 인용하여 모든 마군은 반야의 진실한 설법[般若眞說]을 파괴할 수 없음을 밝혔다.
[原文] 차고 기울어짐이 있으며[有盈虧]
[事實] 『경률이상(經律異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달의 성곽(城廓)은 넓이와 길이가 1,960리이고 높이도 마찬가지이니, 엄연히 정방형이지만 멀리서 보기 때문에 원형이다.
이분(二分)은 천은(天銀)이고 일분(一分)은 유리(琉璃)이다. 안과 밖이 맑게 사무쳐서 광명이 멀리 비추며 오풍(五風)에 의해 유지된다.
월왕(月王)은 사방 20리의 7보 궁전에 앉아있는데, 한량없는 천신(天神)이 밝은 빛을 내고 기악을 연주하면서 앞뒤에서 따른다. 정원과 연못 등은 감상할 만하다.
가령 도리천(忉利天)에는 이지러짐과 가득 참[虧滿]이 있다. 결(缺)은 일각(一角)이 밤이 되면서 점점 옆으로 숨는다. 이 때문에 결감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월성(月城)의 주변에 천(天)이 있는데, 그 빛깔이 정청(正靑)이고 의복도 청색이다.
소재하는 면(面)에서 청광(靑光)이 성(城)을 비추기 때문에 결감(缺減)된다.
달이 차는 것[滿]은 달의 운행이 점점 더 정(正)으로 향하는 것이고,
또 청색천(靑色天)은 15일 동안 월성(月城)으로 전입(轉入)하여 월왕(月王)과 만난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 나온다.”
[原文] ‘코끼리가 수레를 끌고 당당하게[象駕崢嶸]’에서부터 ‘수레를 막는 것을[能拒轍]’까지
【琪注】 보살이 크게 유통시키는 대승법문에 대해 모든 마군은 장애가 될 수 없다.
비유하면 마치 코끼리가 수레를 끌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 사마귀와 같은 조그만 벌레가 수레가 가는 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제(齊)나라의 장공(莊公)이 사냥을 나갔는데 사마귀가 다리를 들고 그 수레바퀴를 막으려 하자, 말을 모는 이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벌레이냐?”
마부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사마귀입니다.”
장공이 말하였다.
“저 벌레는 지극히 미미한 힘으로 큰 수레에 항거하고 있으니,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로다.”
지금 영가(永嘉) 스님은 세연(世緣)을 대략 섭렵하여 출세간의 성법(聖法)을 증명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지금 불법(佛法)이 항사계(恒沙界)에 유전하고 가르침이 용궁(龍宮)에 가득 찼다.
이때 모든 작은 성인[小聖]과 모든 마군이 어떻게 장애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누가 사마귀가 수레에 항거하는 것을 보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原文] 횃불이 그치지 않아서[爝火不停]
[事實] 『장자』에서 말하였다.
“해와 달이 나왔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다면, 빛을 내기가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原文] ‘대상은 노닐지 않고[大象不遊]’에서부터 ‘소소한 절개에[於小節]’까지
【琪注】 대승보살이 편력하는 경계와 공덕은 매우 뛰어나서 인천(人天)이 알 바가 아니고 이승(二乘)이 섭렵할 수도 없어서 법문의 우열이 같지 않다.
이것을 쉽게 밝히고자 해서 세간의 코끼리와 토끼로 비유하였으니,
큰 코끼리가 노니는 것은 오직 큰 길만이 수용할 수 있지 작은 토끼가 다니는 미미한 길로는 갈 수가 없다.
이 때문에 ‘큰 코끼리는 토끼가 다니는 길에서 놀지 않는다[大象不遊於兎逕]’고 한 것이다.
“큰 깨달음은 소소한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한 것을 말해 보자.
견성(見性)한 사람은 사상(事相)으로 검거(檢擧)할 수 없고, 계율을 지키고 범하는 것으로 구속할 수 없으니, 그 작용은 측량해서 헤아리기 어렵다.
가령 고사미(高沙彌)가 계를 받지 않고 약산(藥山) 스님이 경을 보지 않은 등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때문에 ‘큰 깨달음은 소소한 절개에 구애받지 않는다[大悟不拘於小節]’고 말한 것이다.
[原文] 편협한 소승을 꾸짖어서 꺾고[彈偏折小]
[事實]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편협한 소승을 꾸짖어서 꺾고[彈偏折小] 대승의 원교를 찬탄해서 기린다[難大褒圓].”
[原文] 얼굴을 찡그리니[效顰]
[事實] 『장자(莊子)』 「천운편(天運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회(師會)가 안연(顔淵)에게 말하기를,
‘서시(西施)가 가슴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는데, 그 마을에 사는 못생긴 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 부러워해서 가슴을 움켜쥐고 찡그렸네.
이 마을에 사는 부자는 그녀를 보자 문을 견고하게 닫고 나오지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은 그녀를 보고 처자를 인솔해서 마을을 떠났다네’라고 하였다.”
[原文] ‘관견으로 ~하지 말라[莫將管見]’에서부터 ‘그대를 위해서 결단해 주는 것이다[爲君決]’까지
【琪注】 위없는 반야는 오직 상근기(上根器)만을 제접하는 것이니, 중근기와 하근기의 사람은 끝내 명심하여 모색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삼계는 넓고 넓으며 6도(道)는 망망해서 모두 부질없이 허랑방탕하게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백천 마리의 모기와 등에를 한 그릇 가운데에 넣어두면 시끄럽고 어지럽게 울면서 배를 두드리고 미친 듯이 떠들면서 태허공이 넓고 넓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로써 모든 소승의 근기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대승의 경계에 들어갈 수 없음을 밝혔다.
지금 영가 대사는 나름대로 세상 사람의 믿음이 미치지 못해서 경솔하게 비방을 일으킬까 염려하였다.
이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붓 대롱을 통해 하늘을 보면서 자기가 보는 미세함으로 푸른 하늘의 가없음을 비방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과연 누구의 허물인가?”
“요달하지 못했으므로 지금 내가 그대를 위해 결단해 주는 것이다[未了吾今爲君決]”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이 한 구절은 일대장교(一大藏敎)에서 설명하고 주석하지 않은 것[詮注不起]이고 육대조사(六代祖師)가 찬탄해도 분수가 있는 것이다.
이로써 옛날부터 모든 성인들이 방편문(方便門)을 열어 후진(後進)을 이끌면서도 일선도(一線道)를 놓아 풍도와 규범을 대략 드러냈음을 알 수 있으니, 최후에 일언(一言)을 잘못 들지 말지어다.
[原文] 바다가 변해서 뽕나무밭이 되고[海變桑田]
[事實] 『갈홍신선전(葛洪神仙傳)』에서 마고(麻姑)가 왕방평(王方平)에게 말하였다.
“제가 선생님을 모신 이래로 동해(東海)가 세 번 뽕나무밭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 번에 봉래산에 가 보았더니 물이 얕아져서 옛날에 비해 반으로 줄었습니다.
어찌해야 장차 육지가 될 수도 있겠습니까?”
왕방평이 말하였다.
“동해에 가도 다시 먼지만 날릴 뿐이니라.”
후서(後序)
[原文] 스님의 실마리의 나머지[師之緖餘]
[事實] 『장자』 「양왕편(讓王篇)」에서 말하였다.
“도(道)의 진실[眞]로 몸을 다스리고, 그 실마리의 나머지로 국가를 다스리며, 그 쓰레기로 천하를 다스린다.”
풀이하면 실마리(緖)는 실[線]이니, 나머지를 말한다.
나는 평소에 내전(內典)을 신봉하였는데, 『남명전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일부(一部)에는 더욱 마음을 기울였다. 그러나 일에 관련해서는 근거가 있는 것이라서 의심이 없을 수 없었다.
정미년[丁未歲]을 넘기고 금성(金城)에 출진(出鎭)하였는데, 이때 참선하는 도반을 모아 놓고 서룡(瑞龍)의 선로(禪老)이신 연공(連公)께 법을 주관하여 하나하나 지적해주길 청함으로써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연공께 지남(指南)을 받은 초본(草本)을 얻어서 상자 속에 간직하고 보배롭게 여겼고, 몇 번이나 판(板)에 새겨 학자들에게 베풀고자 하였으나 우물쭈물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무신년[戊申歲]에 변한도(卞韓道)를 순행하고 대장분사(大藏分司)를 겸임하게 되자 개인적으로 다행이라 생각되어 기뻤다.
그러나 초본(草本)은 잘못된 곳도 있고 소략해서 곧바로 판각에 칼을 대지 않았다. 간사(幹事)를 맡고 있는 천단(天旦) 스님에게 부촉하여 선백(禪伯)으로 하여금 상인(上人)에게 이 초본을 올려서 교정을 받도록 한 후에 글씨 잘 쓰는 이를 모집해 쓰도록 하고 훌륭한 각수(刻手)를 골라서 새기도록 하였다.
바라는 것은 우리 진양공(晋陽公)의 수명이 우뚝 솟은 산악처럼 더해지고, 복(福)이 대륙처럼 깊이 쌓이고, 요새[塞]에서는 봉화불[狼火]이 꺼지고, 하늘에서는 불길한 혜성[攙槍]이 사라지며, 시절은 화순(和順)하고 해는 풍년이 들고, 조사의 법등(法燈)이 무궁토록 빛을 발하는 것뿐이다.
9월 상순(上旬)에 경상(慶尙) 진안동도(晋安東道) 안찰부사(按察副使) 도관랑중(都官郞中) 전광재(全光宰)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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