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불인연론 상권
3. 월애(月愛)대신이 깨쳐서 벽지불이 된 인연
바다의 조수가 기한을 넘지 않고
검정소가 꼬리를 지키다 죽나니
마치 달의 성질은 스스로 차가워
뜨겁게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근(根)을 조복한 이가
계율을 수호함도 또한 그러하니
이것을 홀로 살아가는 행이라 하네
무소의 뿔이 둘이 아닌 것처럼.
옛날의 여러 큰 스승들께서
차례차례 서로 가르친 것을
나는 옛 스승들로부터 잘 들었기에
지금 드러내어 설명하고자 한다.
과거 세상 어느 때에 월애(月愛)라고 하는 벽지불이 있었다. 그는 바가바(婆伽婆)이신 가섭불(迦葉佛) 처소에서 온갖 선근(善根)을 심고 계행(戒行)을 잘 닦았으며 항상 지혜로써 모든 음(陰)이 다 무상(無常)함을 관하였다.
하지만 그 부처님 처소에서 끝내 사문의 도과(道果)를 획득하지 못하였고, 그곳에서 목숨을 마치자 곧 천상에 태어났으며, 전생에 지은 선의 힘으로 하늘의 쾌락을 누리다가 하늘의 수명이 다한 뒤에는 도로 인간으로 내려와 첨파국(瞻婆國) 큰 장자(長者)의 집에 태어났다.
그는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깊고 반듯했으며, 항상 금계(禁戒)에 의지하여 스스로 몸을 닦았고, 그 선행(善行)을 관하는 것이 노성(老成)한 이보다 더하였고, 또한 경솔하거나 말이 많지 않았으며 성내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었다.
소유한 재물은 가난한 이에게 두루 나눠주었고, 집안이 여유가 있고 없음에 따라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었으며, 계율의 영락으로써 자기 자신을 장엄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법에 따라 집안을 다스렸으므로 그 성의 인민들은 그의 정성스럽고 근실함을 보고는 깊이 공경하고 믿으면서 스승이나 어른처럼 여겼다.
그가 장성한 나이가 되자 단정한 그 용모에 모든 처녀들이 보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모든 장사꾼들은 그의 성실함과 진실함을 보고 모두가 찾아와 의지하고 맡겼다.
그 무렵 북방의 여러 장사꾼들이 좋은 말들을 많이 타고 첨파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때 첨파국 왕이 그 말들을 모조리 계약하였는데, 그 왕은 마음이 포악하고 바른 법에 의지하지 않는 자였다.
왕은 스스로
‘나는 이제 그들의 말을 많이 계약하였다.
어떻게 하면 값을 치르지 않고 그 말들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곧 간사하며 아첨 잘하는 신하들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하였다.
간사한 신하가 왕에게 아뢰었다.
“만일 그 값을 치른다면 창고가 바닥날 것입니다.”
왕이 곧 대답하였다.
“내가 이제 만일 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나에 대한 악명이 천하에 널리 퍼져 모든 국민이 나를 싫어할 것이며, 또한 사방에서 찾아오던 장사꾼들도 끊어지게 될 것이오.”
간사한 신하가 다시 말하였다.
“왕께서 계책을 쓰신다면 재물을 들이지 않아도 그 말을 얻으실 수 있으며, 또한 왕에 대한 악명도 나오지도 않고 국민들도 싫어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왕의 나라에 있는 월애대신은 모든 사람이 깊이 믿는 자입니다.
그들이 만일 찾아와 값을 요구하면 왕께서는 그저
‘나는 월애(月愛)를 보내 당신들에 돈을 치렀다’고만 하십시오.”
당시 그 장사꾼들의 말은 일만 마리였고, 그 한 마리마다 값이 일만 금전(金錢)이었다.
“만일 왕께서 ‘월애 대신이 그 값을 치렀다’고만 말하면
나라의 인민들은 반드시 의혹을 품어 왕을 의심하거나 월애를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면 왕에 대한 악명은 분명 드러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만백성이 싫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장사꾼들이 찾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우리에게 말 값을 주십시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왕이 곧 대답하였다.
“내가 예전에 월애를 시켜 그 값을 치르지 않았던가?
어째서 재차 과도하게 그 값을 치르라고 하는가?”
모든 장사꾼들이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
“이 월애란 분은 실로 우리에게 말 값을 준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진실로 신용이 있으신 분이니, 차라리 신명(身命)을 버릴지언정 우리에게 값을 치렀다는 거짓말은 끝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가령 달님이 불을 뿌리고
태양이 찬 물을 뿌리고
모래를 짜서 기름을 얻고
물을 흔들어 소(酥)를 얻으며
불 속에서 연꽃이 자라게 한다 해도
저 월애로 하여금
추악한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장사꾼들은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인간 중의 하늘[人中天]이여, 만약 월애로 하여금 왕의 칙명을 확인하게 하고, 그가 우리에게 주었다고 말한다면 끝내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왕은 곧 월애를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전에 내 앞에 있을 적에 내가 그대에게 돈을 주면서 한꺼번에 상인들에게 갚으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는 왕은 곧 눈알을 굴리며 위협하면서
‘네가 나를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너를 죽이리라’고 하였다.
그때 월애대신은 스스로
‘나는 지금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 왕의 말대로 할 것인가?’라고 생각하였다. 다시
‘법신(法身)을 취하는 것이 훌륭할까, 이 몸을 취하는 것이 훌륭할까?’라고 생각하다가,
곧 스스로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몸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의 법신[戒法身]은 버리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제가 이제 스스로 생각하며
이 두 몸 가운데
어느 몸을 버려야 할까 하다가
다시 자세히 스스로 관찰하였습니다.
차라리 더러운 형상을 버릴지언정
끝내 계율은 버리지 않으리라
만일 법신을 버린다면
악명이 곧 널리 퍼지리라.
저는 여러 선량한 손들 틈에서도
저들이 이끌고 붙잡았던 손입니다
만일 제가 악한 자가 된다면
그건 저 스스로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후회의 뜨거운 불길이 마음에서 일어나고
이 더러운 몸을 버린 뒤에는
당연히 지옥으로 갈 것이니
스스로 금계(禁戒)의 행을 훼손하면
끝내 안락을 얻지 못합니다.
한 몸[一形]의 즐거움만 위하면
한량없는 몸[無量身]을 손상시키겠지만
만일 계율을 수호한다면
한량없는 몸이 안락하게 되리다.
이 때문에 저는 당연히
법신(法身)을 감싸고 보호하여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게 하나니
바른 법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당연히 거짓말을 끊어야 합니다.
월애대신은 곧 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어 저에게 성내지 마십시오.
저는 진실로 왕께서 저들에게 말 값을 주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때 왕이 곧 크게 노하여 칼을 뽑으며 말하였다.
“왜 보지 못하였느냐?”
월애대신은 스스로 그 마음을 안정시키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차라리 성법(聖法)을 위하여 죽을지언정
어리석은 짓을 하며 살지 않으리라
모든 것이 다 태어남이 있으니
죽지 않을 자 누가 있으랴?
내가 만일 이제 죽음을 당한다면
법을 위해 고의로 몸을 버리는 것
천상(天上)에 태어날 것이 분명한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하랴?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
“가령 왕이 이제 저의 몸을 베고 저미어 깨처럼 부순다 해도 수지한 금계(禁戒)를 끝내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선성의 도[仙聖道]에 머물고 있으니, 만일 이 혀로 거짓말을 한다면 제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닙니다.
제가 이제 만일 왕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한다면 나중에 지옥에 떨어져 무엇을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왕은 이때 부끄러움으로 갑절이나 더 분노하면서 훨훨 타는 불길처럼 성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월애는 그때 마음으로
‘지금이 바로 내가 선정의 마음을 일으킬 때요, 지금이 바로 내가 법을 단단히 붙잡을 때이다.
다시 어느 곳에서 법 듣기를 바라겠는가?
오늘 이 일이 곧 나를 위한 설법이다. 지금 나는 법을 위하다 목숨을 버리게 된 것이니, 지금의 왕은 나의 참되고 위대한 친구로다’ 하며 기뻐하였다.
이와 같이 법을 생각하는 순간 즉시 깨달아 벽지불이 되었다. 그는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파계한 자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것을 보고 모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고, 선을 닦는 이들을 위해서는 더욱 믿음의 행[信行]이 자라게 하였으며, 참된 말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진실한 일의 과보가 나타나게 하였다.
허공 가운데서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자, 그때 정거천(淨居天)이 그에게 법복(法服)을 바쳤다. 그는 향산(香山)으로 날아가 여러 벽지불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 위와 같은 게송을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