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보리심론 제1권
3. 지혜와 방편(1), 바라밀다
[지혜와 방편(1)]
이 중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의 소행은 요약해서 말하면 지혜와 방편이니, 이 두 법을 감소시키지 말아야 한다.
『유마힐경(維摩詰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방편이 없으면 지혜가 묶이고, 방편이 있으면 지혜가 풀리고,
지혜가 없으면 방편이 묶이고, 지혜가 있으면 방편이 풀린다.”
또 『상두경』에서 말하였다.
“모든 보살에게는 총체적으로 간략하게 말하면 두 가지 종류의 도(道)가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도가 구족되면 모든 보살은 곧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증득할 것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지혜와 방편이다.
만약에 반야바라밀다행과 모든 바라밀다 및 사섭법 등을 여읜다면,
어떻게 능히 청정한 불국토를 장엄하여 크게 부유하여 자재할 것이며,
유정을 성숙시켜 모든 교화의 일을 지을 것이며,
널리 모든 법의 선교방편을 거두어들이겠는가?
그러므로 이 지혜와 저 방편은 전도의 성품이 없고 분별의 인(因)이 있으니, 이 인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방편이 일어난다.
마치 설한 법들이 전도됨이 없는 사유와 분별을 일으켜서 결국 능히 자신과 타인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
능히 번뇌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치 온갖 독이 주술에 의해 제거되는 것과 같다.”
또 이 경에서 말하기를,
“지혜가 방편을 거두어들이는 이것을 유분별지(有分別智)라 한다”고 하였다.
또 『신력법문경(信力法門經)』에서 말하였다.
“무엇을 선교방편이라 하는가?
일체의 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지혜라고 하는가?
일체의 법에서 선(善)을 파괴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지혜와 방편의 두 종류는 모든 경지에 두루 들어가서 어느 때나 항상 행하는 것이지 중도에 그것을 감소케 할 수 없는 것이다.
[바라밀다]
십지(十地)의 보살들은 십바라밀다를 행하고 나아가 모든 행을 널리 행하니, 『십지경』에서 자세히 설한 것과 같다.
팔지(八地)의 보살은 부처님의 위의(威儀)로부터 일어나니 지식행(止息行)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 경에서 말하였다.
“다음으로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앞서 일으킨 대원가지선근력(大願加持善根力)의 머묾에 의거해야 한다.
모든 불세존 또한 이 법문으로부터 대지혜의 원만한 작용들이 흘러나온 것이니, 이것이 곧 최상의 인문(忍門)으로서 일체의 부처님 법이 이로 말미암아 집성된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마땅히 이와 같은 지식행(止息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나니, 내[我]가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십팔불공(十八不共)의 모든 신통 등 일체 부처님의 법을 얻은 것과 같아서, 그대는 마땅히 정진을 발하고 모든 염원을 일으켜서 상응하여 행해야 함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와 같은 인문(忍門)을 버리거나 여의지 말아야 한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찌하여 모든 어리석은 범부 중생들이 갖가지 번뇌를 쌓고 갖가지 찾아 구함을 일으킴이 끊임없이 상속됨을 관찰하지 않는 것인가?
어떻게 지식(止息)의 행을 일으키고자 하는가?
또한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모든 법은 법성으로서 스스로 상주(常住)한다. 법성이 상주하므로 여래는 곧 생함이 없다.
소위 성문과 연각들이 일체의 법은 분별이 없고 생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선방편으로 세간에 출현하신 것이다.
또 선남자여, 그대는 내 몸의 무량함과 지혜의 무량함과 불국토의 무량함과 원만광명[圓光]의 무량함과 지현전문(智現前門)의 무량함과 청정의 무량함 등과 같은 모든 광대한 법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본원(本願)의 행을 타고 마땅히 항상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사념해야 곧 이와 같은 부사의한 지혜의 문을 얻을 것이다.”
『십지경』에서 말한 행상(行相)은 『유마힐경』과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 경에서 말하였다.
“묘길상이 만약 어떤 이가 여래가 설한 법을 경솔하게 비방을 했다면, 이 사람은 비록 비방하는 말을 했지만 내가 설한 것처럼 또한 청정함을 얻었으니, 이 가운데 이(理)와 사(事)는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상두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들은 보리를 위하는 까닭에 육바라밀다를 쌓아 모으느니라.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반야바라밀다는 보살의 학(學)인데 어찌 다시 나머지 바라밀다를 배우겠는가?‘라고 말하고,
혹은 어떤 이는 이미 듣고 나서 방편 등의 모든 바라밀다를 버리고자 하는 뜻을 일으키니.
미륵아, 너의 뜻은 어떠하냐?
예컨대 가시왕은 자신의 살을 취하여 비둘기를 구하였는데, 이 왕이 어리석은가?
미륵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살행을 닦을 적에 널리 육바라밀다와 상응하는 선근을 닦았는데, 응당 이익이 없는 것이냐?’
미륵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육십 겁 중에 보시 등의 모든 바라밀다를 쌓아 모았듯이, 육십 겁에 이르도록 반야바라밀다를 쌓아 모은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 가운데 행과 상응하는 지혜를 자세히 설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