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1권
[보시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
부처님께서는 허공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보시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네 가지 법이란,
첫째는 자신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유정이 청정한 것이고,
둘째는 유정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셋째는 보시가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회향(廻向)이 청정한 것이고,
넷째는 회향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리가 청정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보시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보살은 보시바라밀다를 청정하게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는 나가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둘째는 나의 것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셋째는 인(因)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넷째는 견해가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다섯째는 상(相)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여섯째는 이상(異相)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일곱째는 과보를 바라지 않는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고,
여덟째는 마음이 허공처럼 평등하고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보시가 청정한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보시바라밀다를 청정하게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그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한없이 닦는 것도 그러하고,
마치 허공이 너무나 넓어서 걸림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널리 회향하는 것도 그러하며,
마치 허공이 물질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물질을 버리고 보시를 닦는 것도 그러하고,
마치 허공이 아무런 느낌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느낌을 떠나서 보시를 닦는 것도 그러하며,
마치 허공이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모든 물듦을 여의고 보시를 닦는 것도 그러하고,
마치 허공이 어떤 조작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조작을 여의고 보시를 닦는 것도 그러하며,
마치 허공이 어떤 의식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의식을 여의고 보시를 닦는 것도 그러하고,
마치 허공이 모든 불국토를 두루 덮어 주는 것처럼 보살이 그 대자대비한 보시의 닦음으로 항하사 수의 불국토 유정들을 두루 덮어 주는 것도 그러하며,
마치 허공이 다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3보(寶)의 종자를 끊음 없이 보시를 회향하는 것도 그러하고,
마치 허공이 어둠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 번뇌의 어둠을 여의고 보시를 닦는 것도 그러하며,
마치 허공이 어떤 상(相)을 나타내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닦음에 있어서 그 마음이 청정한 것도 그러하고,
마치 허공이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닦음에 있어서 유정을 널리 포섭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또 허깨비가 허깨비에게 보시할 때에 마음에 분별이 없고 그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보시를 닦음도 다 허깨비와 같아서 아무런 분별이 없고 과보를 바라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보시를 닦음에 있어서, 수승한 지혜로써 하여 모든 번뇌를 버리고 방편의 지혜로써 하여 유정들을 버림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보시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니라.”
그 때에 등수(燈手)보살마하살이 그 모임에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상(相)으로 이 보시바라밀다를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상이 없이 이러한 보시바라밀다를 닦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그 일체의 법에 자신이라는 상이 없는 것은 자신이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유정(有情:중생)이라는 상이 없는 것은 유정이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법이라는 상이 없는 것은 법이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지혜라는 상이 없는 것은 지혜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마음이라는 상이 없는 것은 마음이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세간이라는 상이 없는 것은 세간이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물질[色]이라는 상이 없는 것은 물질이라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보고 듣는 상이 없는 것은 보고 듣는 상이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보살은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이 일체의 상을 벗어나 상이 없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고,
다함이 없는 지혜를 성취하여 비로소 여래의 기별(記莂)을 얻고,
보살 니야마(尼夜摩)의 지위에 머물러 보살의 물러나지 않는 인(印)으로써 그것을 맺느니라.
또 관정(灌頂)의 지위에 이르러 일체의 평등한 법을 성취함으로써 모든 유정들의 행(行)의 실상을 알게 되니,
보살은 이러한 행으로써 보시바라밀다를 닦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법을 널리 설하실 때에 그 모임에 있어서 1만 6천의 보살들이 모든 법의 성품이 허공과 같음을 보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를 닦고
보리를 구하되 과보(果報)를 바라지 않고
보시를 하고도 후회하지 않고 기뻐해야만
이것이 해탈을 얻는 미묘한 보시이니라.
지혜로운 자는 법이 허깨비와 같음을 알아
그 밖의 온갖 재보(財寶)를 탐하지 않고
몸과 목숨까지도 돌보지 않음으로써
부처님의 저 보리의 마음에 뜻을 두느니라.
평등한 보시에는 애증(愛憎)이 없고
항상 정진하여서 물러남이 없으며
모든 법을 허공과 같이 관찰함으로써
기뻐함도 없고 싫어함도 없느니라.
법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임을 알아
보리를 구하고 보시하는 것 역시 그렇게 하고
보시로 말미암아 탐욕을 내지 않으며
항상 사심(捨心)을 닦아 희론(戱論)이 없느니라.
등한 보시는 온갖 생각을 여의고
상 ㆍ중ㆍ하에 분별이 없는가 하면
뜻이 청정하여 항상 허물이 없으며
지혜로운 보시여서 바라는 것이 없느니라.
몸은 허깨비와 같아 다 덧없는 것임을 아니
재보 역시 견고하지 않아 한바탕 꿈과 같고
세간을 위해 자비를 베풂으로 말미암아
항상 보시하고 세간에 물들지 않느니라.
나 없는 보시로 번뇌를 청정하게 하고
이러한 보시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우며
어떠한 마군도 그 틈을 엿보지 못하게 하니
이러한 보시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느니라.
보시의 마음으로 10력(力)을 설하고
마땅히 청정한 계율의 행에 머무니
이로 말미암아 수행하여 정려(靜慮)와
지혜를 문득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니라.
보시와 계율이 마음과 더불어 청정하여
모든 번뇌를 태워 다시는 나지 않으며
자타(自他)가 다 이로움을 얻어
함이 없는 열반의 즐거움을 얻느니라.
보시를 닦아 탐욕을 제거함으로써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거나 집착하지 않고
유정들로 하여금 다 고뇌를 벗어나 스스로
청정한 보리의 인(因)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보시의 마음은 물러남이 없어
이로 말미암아 보살의 성품을 얻게 되고
그리고 보리의 청정한 공덕을 얻게 되니
곧 능히 한량없는 유정들을 제도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