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상권
[청정]
수보리는 부처님께 물었다.
“어떤 것을 본래 청정함이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我]가 없는 것의 근본과
수명(壽命)이 없는 것의 근본과
몸을 탐할 것이 없는 근본과
어리석음과 은애(恩愛)가 없는 근본과
‘이것은 내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하는 근본이니,
이와 같이 보살은 이 모든 근본에 있어서 청정함을 행한다.”
수보리는 또 물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청정함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짐도 없고 버림도 없는 이것을 청정하다 하며,
일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이것을 청정하다 하며,
생각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고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는 이것을 청정하다 하며,
높음도 없고 낮음도 없는 이것을 청정하다 하며,
조작이 아닌가 하면 조작 아닌 것도 아니고
어둡지 않는가 하면 밝지도 않고 번뇌가 없는가 하면
쟁란(諍亂)도 없고 해탈이 아닌가 하면 속박도 아닌 이것을 청정하다고 한다.”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는 그것을 어떻게 청정하다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수보리야, 그러한 것이 바로 청정함이다. 열반을 생각하지 않고 생사를 멀리하지도 않기 때문에 곧 청정하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저 허공을 청정하다 하지만 청정한 허공이란 것이 없는 것처럼,
이러한 행을 청정하다 함은 저 청정함을 조작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을 듣고서 겁내지 않는다면 이는 청정하다고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보리의 생각은 어떠하냐? 청정한 법이란 것이 있겠느냐?”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본래부터 이미 청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든 설법을 듣고서도 그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만 이것을 청정하다고 할 것이다.
무심(無審)한 것에 집착한다면 어찌 청정하다 하겠는가?”
수보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법계는 저절로 청정하여 평등한 것인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법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법계를 알 수 있겠는가?”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알 수 있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령 법이 앎이 있다면 곧 생기자마자 다른 법이 되니, 그가 법계를 구한들 그 법계를 또한 알지 못하는 법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설사 수보리여, 다른 법계를 아는 해탈이 없다면 그 법계를 안다는 것도 해탈할 수 없을 것이니, 이러하거늘 어떻게 법계를 분명히 안다고 하겠는가?”
그때 현자 수보리가 잠자코 대답하지 못하자, 이에 문수사리가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어째서 현자는 세존의 교훈이 있었음에도 잠자코 대답하지 않는가?”
수보리는 말하였다.
“잠자코 있는 까닭은 본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道意]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자의 변재[辯]는 한계가 있고 거리낌이 있지만 보살의 변재는 한계도 없고 거리낌도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수보리여, 법계가 어찌 한계와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법계는 한계도 없고 거리낌도 없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가령 법계가 한계도 없고 거리낌도 없다면 현자는 어째서 말이 잠잠하고 거리끼고 있습니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온 법계를 알려고 하는 이는 곧 말에 있어서 거리낌이 되지만, 만약 법계의 한량없고 다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아는 자는 그 말씀을 들으매 말에 거리끼지 않을 것입니다.”
또 물었다.
“수보리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역시 법계가 다할 수 있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다할 수 없는 법이란 넓은 문[普門]이기 때문에 법은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만약 법이 다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현자는 설법하는 데 거리낌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한계가 있는 제자인지라, 법을 강설(講說)하되 다함이 있고 거리낌이 있지만 부처님의 경계는 한량이 없으니,
그러므로 법계를 강설하되 다할 때가 없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어째서 수보리께선 법이 또 경계가 있다고 말씀합니까?
그 법에 경계를 짓는다면, 이는 법을 설함에도 분수(分數)가 있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법이 경계가 있다거나 법이 경계가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현자는 갖가지 경계를 말합니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아까 이미 ‘제자의 변재는 한계가 있고 거리낌이 있지만 보살의 변재는 한계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현자여, 어떤 것을 밝은 지혜를 얻는다고 합니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이와 같이 밝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말, 변재 지혜]
문수사리는 또 물었다.
“현자는 어째서 말이 잠잠하여 거리낌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제자로선 일체 사람들의 근본을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있을 뿐이고,
보살의 변재는 지혜가 중생들의 근본을 깨달은지라, 이 때문에 말에 거리끼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세존의 변재 지혜는 왕래하는 것이 없으니 그 지혜도 혹시 한계가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그 지혜는 거리끼는 상(相)이 없으며, 머무는 상도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가령 지혜가 거리끼는 상이 없고 머무는 상도 없다면 어째서 현자는 잠잠하고 거리끼게 되는 것입니까?”
수보리는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존자 사리불(舍利佛)을 지혜 제일이라고 칭찬하셨으니, 그 분에게 물어본다면 당신을 위해 해설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