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니구타범지경 상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타(迦蘭陀)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다.
[니구타 범지가 부처님과 논쟁하려 하다]
성안에 화합(和合)이라는 한 장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식사를 마치고 왕사성에서 나와 가란타 죽림정사(竹林精舍)의 부처님 계시는 곳에 나아가 예를 올리고 가까이 뵈려고 하였다.
이때에 장자는 성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각하였다.
‘오늘은 벌써 아침이 지났으니, 부처님과 필추(苾芻)들이 각각 자기 방에 계실 것이다.
마땅히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서 예를 올리고 가까이 뵐 생각을 그만두고, 나는 지금 니구타(尼拘陀) 범지(梵志)들이 모인 곳에나 가 보리라.’
이때 그 범지들은 오담말리(烏曇末梨)라는 동산에서 둘러앉아서 높은 소리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정치론[王論]ㆍ전쟁론ㆍ도적론ㆍ의복론ㆍ음식론ㆍ부녀론ㆍ술에 대한 이야기ㆍ삿된 이야기[邪論]ㆍ번잡한 이야기 내지 바다 등 형상에 대한 논의였으니, 이러한 언론은 모두 세간에 마음이 집착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때에 니구타 범지가 멀리서 화합 장자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조용히 하라. 너희들은 소리를 조그맣게 하라.
저기 오는 이가 사문 구담(瞿曇)의 성문 제자이다. 큰 장자로서 왕사성(王舍城)에 살고 있는데, 이름은 화합이라고 한다.
저 사람은 본디 성품이 말이 적고 그가 전해 받은 것도 역시 고요한 법[寂靜]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소리를 낮추어 말을 하여라.
저 사람이 이내 알고 여기에 오느니라.”
범지 무리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잠잠하였다.
이때에 화합 장자가 니구타 범지 처소에 와서 그 모임에 도착하자, 니구타 범지가 일어나 맞이하며 기뻐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기 한쪽에 앉았다.
화합 장자는 니구타 범지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이 모임은 좀 이상한 데가 있습니다.
전에 들으니 당신들은 커다란 소리로 말한다고 하던데, 이른바 정치 이야기ㆍ전쟁 이야기 내지 바다 등을 가지고 서로 논란하니,
이러한 등의 언론(言論)은 모두 세간에 마음을 집착하는 것이요, 우리 세존(世尊)이신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께서 하시는 말과 다릅니다.
불세존께서는 넓은 들판에서 좋아하는 바를 따라 앉거나 눕거나 머무르시니, 시끄러움을 멀리 여의고 사람의 자취를 끊고 고요히 이런 모양을 지키며 몸을 한 곳에 머물러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여 오로지 한 경계에 집중하고 마땅히 행할 바에 따르십니다.”
이때에 니구타 범지는 화합 장자에게 말하였다.
“장자여, 저 사문 구담과 내가 어떻게 서로 논의[議論]하겠소?
만일 내가 무슨 일을 묻는다면, 그는 갖가지 지혜를 다 짜내어도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문 구담은 단지 빈집에만 있었으니, 그의 지혜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소?
이미 빈집에서 지혜로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넓은 들판에서 앉거나 눕거나 머무르면서 시끄러운 것을 멀리 여의고 사람의 자취를 끊고 고요히 이런 모양을 지키며, 몸을 한 곳에 머물러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여 오로지 한 경계에 집중하고 마땅히 행할 바를 따른 것이오.
장자여, 비유하자면 한쪽 눈만 있는 소를 보고 가장자리까지 두루 다니라고 하면, 그 소가 어찌 다닐 수 있겠습니까?
사문 구담도 이와 같이 빈집에만 있었으니, 그 지혜로 어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장자여, 만일에 사문 구담이 이 모임에 온다면 나는 반드시 그와 논의하여 승의(勝義)를 내세워 가지고 한 가지 문제를 꺼내어 겨루어 볼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마땅히 이길 것이고, 그는 반드시 나에게 질 것이니,
마치 빈 병을 치면 깨지기 쉬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처소에 조용히 앉으셔서 깨끗하신 천이(天耳)로써 화합 장자와 니구타 범지가 모임에 모여서 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모두 들으셨다.
부처님께서 오후에 방에서 나오셨는데, 마침 비가 개이고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점차로 선무독지(善無毒池)까지 나아가 못 기슭에 이르러 천천히 거닐고 계셨다.
그때 니구타 범지가 멀리 부처님께서 못 기슭에 계신 것을 보고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사문 구담이 지금 선무독지 기슭에서 천천히 거닐고 있으니, 혹시 여기 모임에 올지도 모른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일어나서 맞이하려느냐, 혹은 토론을 해 보겠느냐?
혹은 다만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할 것이냐, 혹은 아주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걷어서 초청하여 앉게 하려느냐?”
이러한 말을 할 적에 벌써 저절로 와서 부처님을 위하여 자리를 펴는 이가 있었다.
다시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존자 구담이 이 자리에 오시거든 그 좋아하는 대로 이 자리에 나오시게 하리라.”
이때에 부처님께서 선무독지 기슭을 거니시고 나서 니구타 범지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셨다.
니구타 범지는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그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사문 구담이 이 모임에 오면 나는 마땅히 그에게
‘당신 구담은 법률 가운데 어떤 법행(法行)으로 그 성문행(聲聞行)을 닦는 자로 하여금 안온한 경지에 이르게 하여 안의 마음을 쉬고 범행을 깨끗하게 하느냐?’고 물어보겠노라.”
이때에 부처님께서 그 모임에 도착하시니, 모든 범지 대중들은 저절로 뛸 듯이 기뻐하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였다.
니구타 범지도 합장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는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구담이시여, 당신은 모두 아는 지혜[徧知]를 갖추셨으니, 이곳이 당신이 앉을 자리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가서 앉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니구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대 앉을 자리에나 앉거라. 나를 위해 마련한 자리는 내가 알고 있으니, 내가 스스로 앉으리라.”
이때에 모든 범지 대중들은 큰 소리로 말을 하였다.
“참으로 희유하고 있기 어려운 일이다.
이 사문 구담은 지금 이 모임에서 아무도 말해 준 이가 없는데, 신통력으로 그 자리를 아시는구나.”
그때 니구타 범지도 기뻐하여 부처님과 인사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가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니구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 모임에 이르렀는데, 그대들은 무슨 말들을 하고 있었는가?”
니구타 범지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당신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나서 대중들에게 문득 말하기를
‘사문 구담이 이 모임에 오면 나는 마땅히 질문하겠다.
즉 당신 구담의 법 가운데는 어떤 법행으로써 성문행을 닦는 자로 하여금 안온한 경지에 이르게 하여 안의 마음을 쉬고 범행을 깨끗하게 하는가를 물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구담 당신이 이미 여기에 왔으니, 나는 이것을 물어보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과 토론하고 분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니구타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니구타여, 그대는 이것을 알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니라. 왜냐 하면 법이 다르고 견해도 다르며 스승도 다르고 행도 다르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다만 그대들의 교법 가운데 응하여 물어라.”
이때에 모든 범지 대중들은 큰 소리로 쑤군거렸다.
“참으로 희유하고 있기 어려운 일이다.
사문 구담은 이 묻는 말에 자기의 교리로써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남의 교법 중에서 묻는 대로 대답하겠다고 하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