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택지선정
고대와 현대의 주택의 터는 도회지보다 크지 않고, 산수는 구불구불 느리고, 인가가 모여있고, 의관 문물(풍속)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므로 주택의 법격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도회의 형세를 알아야 하고, 그러나 도회의 형세를 알고 싶으면 먼저 큰 흐흠의 맥락을 살펴야 한다. 송자(宋子)는: "두 산속에 반드시 하나의 물이 있고; 두 물 속에 한 산이 있다. 물이 좌우로 나누어지면 맥은 가운데로 간다." 군, 읍, 시의 물은 옆으로 감싸듯 나가서 내렸다가 다시 오르고, 성에 있는 도시의 물은 가로로 곡자처럼 곧게 흐른다. 큰 사람이 마음속에 뚜렷하면 그 작은 사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게 되고, 만약 큰 것이 막연하고 모르면 그 작은 것도 어렴풋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택의 터는 반드시 지맥을 주택에 먼저 삼고, 갑자기 꺾어 오되, 처음부터 역행하면 비로소 도시도 같은 국면에 이른다. 원곤의(袁坤儀)는: "땅에 정이 녹으면 맺히고, 녹으면 물이 되고, 맺으면 산이 된다. "산맥은 진위가 불분명하여 알 수 없으나 계곡의 물은 맥과 함께 다니며, 물을 잘 보는 자는 반드시 산에 오르고, 산을 잘 보는 자는 물에 속하며, 산수가 의지하여 유골과 피와 같으니 어찌 산이 있어도 물이 없고 물이 있어도 산이 없겠는가? 산은 음에 속하고 물은 양에 속하며 산은 오른쪽으로 싸이고 물은 왼쪽으로 싸여 있거나 산은 왼쪽으로 싸여 있고 물은 오른쪽으로 싸여 있어 양의(兩儀)가 서로 교구하여 태극이 된다. 그러므로 도시의 형세는 반드시 반음반양일 것이며, 크게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태극을, 작게는 각각의 태극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考)의 경에 전하는 후직(종주: 주(周)의 시조, 이름은 기(棄))은 태에 거주한다.(종주: 지금의 산시성 우궁현 남서쪽, 후직의 어머니로는 태씨녀, 강원이라 불리었고, 후직이 태어나고 태태에 봉해졌다.) 좌선 양맥 우선음수로 자신진국(子申辰局)·정향(丁向)은 합법이다. 공유가 나라를 옮길때(종안: 서원 기원전 1798년 후직의 후손인 공유가 지금의 산시 구읍현 서부로 이주하여 주나라가 이때부터 흥하였다), 땅 위에 거처를 정하고, 높이 솟은 곳에서 한차례 마주보며, 그 지세가 어디에 있는지 살핀다. 맥이 머무르는 자리에서 그 근원을 얻는 것이다.
그것을 현대 언어로 번역하면.
백천으로 가서, 넓은 벌판을 관찰하다.
남강(南岡)에 올라, 도읍을 찾았다.
이곳은 넓고 넓다.
산들의 방향을 태양 그림자로 재보니,
산의 향배를 보고,
물이 오가나 구경하고,
거처를 정하다.
《시경》의 기록과 주공영락의 기록을 보면 적어도 주나라 때 선조들은 이미 건축의 입지, 획책, 설계, 조성 등의 방법을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풍수학설은 주택, 마을, 도시 등 주거환경에 대한 부지선정과 설계는 자연계의 세밀한 관찰과 실생활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풍수는 전통적인 마을, 도시 입지, 계획 및 설계에 대한 이론으로 미신적 색채를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합리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으며 1차 환경 과학이다. 음음포양(負陰抱陽), 배산면수는 풍수론에서 기지선정의 기본 격국이다. 건축의 공간구성에 관해서는 폐쇄형을 채택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얻는 데 주의를 기울여 자연산천과 건축, 녹화경관이 아름다운 배경, 돋보임, 계층, 윤곽, 차용과 대경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 풍수이론은 유(儒), 도(道), 석(釋)의 모든 가의 철학과 미학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