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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력입인법문경 제1권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2)]
6.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이름[名]과 차별이 없는 무명(無名)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이름과 차별이 없는 무명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름과 차별이 없는 무명의 지혜란 이른바 이름의 체가 곧 무명의 체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명의 체는 이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이름의 체는 무명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름의 체가 곧 무명이기 때문인데, 저 이름의 체가 무명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이름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나[我]와 차별이 없는 무아(無我)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나와 차별이 없는 무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와 차별이 없는 무아의 지혜란 이른바 나의 체가 곧 무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아의 체는 나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나의 체는 무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체가 곧 무아이기 때문인데, 저 나의 체가 무아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에 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인연의 화합으로 짓는 것[因緣和合作]과 차별이 없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과 차별이 없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과 차별이 없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란 이른바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가 곧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의 체는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는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는 곧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이기 때문인데,
인연 화합으로 짓는 것의 체가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인연 화합으로 짓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별상(別相)과 차별이 없는 무별상(無別相)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별상과 차별이 없는 무별상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별상과 차별이 없는 무별상의 지혜란 이른바 별상의 체가 곧 무별상의 체인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별상의 체는 별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별상의 체는 무별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별상의 체는 곧 무별상이기 때문인데, 저 별상의 체가 무별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별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문자[字]와 차별이 없는 무문자[無字]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문자와 차별이 없는 무문자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자와 차별이 없는 무문자의 지혜란 이른바 문자의 체가 곧 무문자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문자의 체는 문자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문자의 체는 무문자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문자의 체가 곧 무문자이기 때문인데, 저 문자의 체가 무문자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문자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7.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교만(憍慢)과 차별이 없는 무교만(無憍慢)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교만과 차별이 없는 무교만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만과 차별이 없는 무교만의 지혜란 이른바 교만의 체가 곧 무교만의 체인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무교만의 체는 교만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교만의 체는 무교만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교만의 체가 곧 무교만이기 때문인데, 저 교만의 체가 무교만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교만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자찬(自讚)과 차별이 없는 무자찬(無自讚)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자찬과 차별이 없는 무자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찬과 차별이 없는 무자찬의 지혜란 이른바 자찬의 체가 곧 무자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자찬의 체는 자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자찬의 체는 무자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찬의 체가 곧 무자찬이기 때문인데, 저 자찬의 체가 무자찬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에 자찬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불료의(不了義)와 차별이 없는 요의(了義)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불료의와 차별이 없는 요의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불료의와 차별이 없는 요의의 지혜란 이른바 불료의의 체가 곧 요의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요의의 체는 불료의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불료의의 체는 요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불료의의 체가 곧 요의이기 때문인데, 저 불료의의 체가 요의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요의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인법(人法)과 차별이 없는 무인법(無人法)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인법과 차별이 없는 무인법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인법과 차별이 없는 무인법의 지혜란 이른바 인법의 체가 곧 무인법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인법의 체는 인법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인법의 체는 무인법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법의 체가 곧 무인법이기 때문인데, 저 인법의 체가 무인법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무인법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견(邪見)과 차별이 없는 정견(正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견과 차별이 없는 정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견과 차별이 없는 정견의 지혜란 이른바 사견의 체가 곧 정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견의 체는 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사견의 체는 정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견의 체가 곧 정견이기 때문인데, 저 사견의 체가 정견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정견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8.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평등(無平等)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며,
남들로 하여금 무평등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평등과 차별이 없는 평등의 지혜란 이른바 무평등의 체가 곧 평등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평등의 체는 무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무평등의 체는 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평등의 체가 곧 평등이기 때문인데, 저 무평등의 체가 평등인 지혜에 의해 모든 법이 평등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변(邊)과 차별이 없는 무변(無邊)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변과 차별이 없는 무변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변과 차별이 없는 무변의 지혜란 이른바 변의 체가 곧 무변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변의 체는 변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변의 체는 무변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변의 체가 곧 무변이기 때문인데, 저 변의 체가 무변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변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알 만한 것을 아는 것[知可知]과 차별이 없는 지혜[智]로서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알 만한 것을 아는 것과 차별이 없는 지혜로서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알 만한 것을 아는 것과 차별이 없는 지혜로서의 지혜란 이른바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가 곧 지혜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혜의 체는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는 지혜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알 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가 곧 지혜의 체이기 때문인데, 저 알만한 것을 아는 것의 체가 지혜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취(取)함과 차별이 없는 무취(無取)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취함과 차별이 없는 무취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취함과 차별이 없는 무취의 지혜란 이른바 취함의 체가 곧 무취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취의 체는 취함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취함의 체는 무취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취함의 체가 곧 무취이기 때문인데, 저 취함의 체가 무취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무취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수행(修行)과 차별이 없는 무수행(無修行)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수행과 차별이 없는 무수행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수행과 차별이 없는 무수행의 지혜란 이른바 수행의 체가 곧 무수행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수행의 체는 수행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수행의 체는 무수행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수행의 체가 곧 무수행이기 때문인데, 저 수행의 체가 무수행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무수행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를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9.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중도가 아닌 것[非中道]과 차별이 없는 중도(中道)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비중도와 차별이 없는 중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중도와 차별이 없는 중도의 지혜란 이른바 비중도의 체가 곧 중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중도의 체는 비중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비중도의 체는 중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중도의 체가 곧 중도이기 때문인데, 저 비중도의 체가 중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중도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비허공(非虛空)과 차별이 없는 허공(虛空)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비허공과 차별이 없는 허공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허공과 차별이 없는 허공의 지혜란 이른바 비허공의 체가 곧 허공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허공의 체는 비허공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비허공의 체는 허공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허공의 체가 곧 허공이기 때문인데, 저 비허공의 체가 허공인 지혜에 의해서 모든 법이 허공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석녀가 아닌 여자[非石女] 자식의 평등과 차별이 없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비석녀 자식의 평등과 차별이 없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석녀 자식의 평등과 차별이 없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지혜란 이른바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가 곧 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는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는 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가 곧 석녀 자식의 평등이기 때문인데, 저 비석녀 자식의 평등의 체가 석녀 자식의 평등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석녀 자식의 평등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非如陽炎]과 차별이 없는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如陽炎]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과 차별이 없는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과 차별이 없는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지혜란 이른바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가 곧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체는 곧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이며,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는 곧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의 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가 곧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저 아지랑이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의 체가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아지랑이 같다고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사견(邪見)과 차별이 없는 무사견(無邪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사견과 차별이 없는 무사견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견과 차별이 없는 무사견의 지혜란 이른바 사견의 체가 곧 무사견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사견의 체는 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사견의 체는 무사견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견의 체가 곧 무사견이기 때문인데, 저 사견의 체가 무사견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사견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10.
그리고 또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의 법이 있어서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다.
그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무명(無明)과 차별이 없는 명(明)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며,
남들로 하여금 무명과 차별이 없는 명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명과 차별이 없는 명의 지혜란 이른바 무명의 체가 곧 명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명의 체는 무명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무명의 체는 명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명의 체가 곧 명이기 때문인데, 저 무명의 체가 명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명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탐욕[食]과 차별이 없는 무탐(無貪)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탐욕과 차별이 없는 무탐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탐욕과 차별이 없는 무탐의 지혜란 이른바 탐욕의 체가 곧 무탐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탐의 체는 탐욕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탐욕의 체는 무탐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탐욕의 체가 곧 무탐이기 때문인데, 저 탐욕의 체가 무탐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탐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성냄[瞋]과 차별이 없는 무진(無瞋)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성냄과 차별이 없는 무진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냄과 차별이 없는 무진의 지혜란 이른바 성냄의 체가 곧 무진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진의 체는 성냄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성냄의 체는 무진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성냄의 체가 곧 무진이기 때문인데, 저 성냄의 체가 무진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진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어리석음[癡]과 차별이 없는 무치(無癡)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어리석음과 차별이 없는 무치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리석음과 차별이 없는 무치의 지혜란 이른바 어리석음의 체가 무치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치의 체는 어리석음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어리석음의 체는 무치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어리석음의 체가 곧 무치이기 때문인데, 저 어리석음의 체가 무치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치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보살이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미 의탁(依託)과 차별이 없는 무의탁(無依託)의 지혜를 얻어서 머물기 때문에 안온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며,
남들로 하여금 의탁과 차별이 없는 무의탁의 지혜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안위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탁과 차별이 없는 무의탁의 지혜란 이른바 의탁의 체가 곧 무의탁의 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의탁의 체는 의탁의 체와 다르지 않으며, 의탁의 체는 무의탁의 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의탁의 체가 곧 무의탁이기 때문인데, 저 의탁의 체가 무의탁인 지혜에 의하여 모든 법이 무의탁이 되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 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법을 얻기 때문에 능히 초환희지를 청정히 하여 큰 두려움 없는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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