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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의족경 상권
3. 수다리경(須陀利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국왕과 대신 벼슬아치들이 부처님을 극진히 공양하여 언제나 모시고 대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음식과 의복ㆍ침상ㆍ약품 등 필요한 물품을 잘 바쳤다.
이때 범지들은 그들의 강당에 모여 앉아 함께 이렇게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본래 국왕과 대신과 백성들과 벼슬아치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우리는 팽개쳐 버리고 다시는 등용을 하지 않으며 도리어 사문(沙門) 구담(瞿曇)과 그의 제자들을 섬기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함께 방법을 강구하여 구담과 그의 제자들을 패배와 절망에 빠뜨리도록 하자.”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의논을 모았다.
“이제 우리들의 무리 가운데 가장 얼굴이 단정한 여인을 뽑아서, 이 여인을 우리가 함께 죽이고 그 죽은 시체를 기수(祇樹)에 묻어 놓기로 하자.
이렇게 한 다음 사문 구담과 그의 제자들을 비방하여 나쁜 소문이 멀리 퍼지게 되면, 대우하던 이들이 그들을 멀리하여 다시는 공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담에게서 배우는 이들 모두가 의복과 음식을 얻지 못한 나머지 다 함께 우리들에게 와서 섬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세상의 존경을 받고 구담을 물리쳐 세상에 우리를 이길 상대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즉시 계획을 실행에 옮겨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好首]에게 말했다.
“너는 정녕 우리가 지금 국왕과 대신과 백성과 벼슬아치들에게 버림을 받아 다시는 등용되지도 못하여 도리어 사문 구담이 그들의 스승이 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너는 정녕 이 사실에 분개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로운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이로운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너의 목숨을 버리고 죽는 것일 뿐이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네가 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 다시는 너를 우리들 속에 넣어주지 않겠다.”
여인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괴로워한 나머지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는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에 무리들이 장하다고 하고 이 여인에게 지시했다.
“이제부터 아침 저녁으로 부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주 기수(祇樹)에서 거닐도록 하라.
그리하여 모든 백성들이 너의 이같은 행동을 보도록 한 다음 우리가 너를 죽여 기수에다 묻고서 구담으로 하여금 비방을 받게 할 것이다.”
여인은 지시를 받고 자주 사문(沙門)들이 사는 곳을 왕래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여인의 이같은 행동을 알도록 하였다.
그러자 범지들은 여인을 죽여 기수에 묻었다.
무리를 지어 왕궁의 문으로 가서 이렇게 원망하였다.
“우리들 중 이 여인이 유난히 얼굴이 단정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녀가 있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
“여인이 평소 잘 다니던 곳이 어디인가?”
범지들이 함께 대답했다.
“늘 사문 구담이 사는 곳을 왕래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이 그곳으로 가서 찾아보도록 해라.”
범지들이 왕에게 병사를 청하자, 왕이 즉시 주었다. 이렇게 하여 여인을 찾아 다니다가 기수(祇樹)에 이르러, 땅 속에서 죽은 여인의 시체를 찾아내어 평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범지들은 함께 여인의 시체를 가지고 사위국의 사방을 고을마다 다니면서 원망하는 말을 퍼뜨렸다.
“사람들은 사문인 구담 석가를 보고 늘 덕망과 계행(戒行)이 더없이 높고 크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몰래 여인과 간통하고는 죽여서 땅에 묻었단 말입니까?
이러고서 무슨 법이 있으며, 무슨 덕이 있으며, 무슨 계행이 있겠습니까?”
식사할 때가 되어 비구들이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자,
벼슬아치와 백성들이 멀리서 보고 욕하였다.
“이 사문들아, 스스로 법과 덕과 계행을 갖추었다고 말해 놓고서 너희들이 이와 같은 짓을 한단 말이냐?
무슨 선(善)이 있어서 어떻게 또 의복과 음식을 공양 받을 수 있느냐?”
비구들은 이러한 말을 듣고 빈 발우를 들고 성을 나와 손발을 씻고 발우를 갈무리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예배를 올리고 모두 앉지 않고 선 채로 성에서 겪은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으셨다.
제멋대로 지껄이는 망령된 말일랑 생각조차 말지니
무리지어 싸우다 화살에 맞아 고통을 참는 격일세.
무릇 착한 말이나 악한 말을 들을 적에는
비구들은 참아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러한 비방을 받는 기간은 칠 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때 유염(惟閻)이라고 하는 청신녀(淸信女)가 있었다. 그녀는 성 안에서 비구들이 걸식하러 왔다가 모두 빈 발우를 들고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몹시 측은하게 생각한 나머지 급히 기수로 가서 부처님께로 가 얼굴을 발에 대고 예배하고 부처님의 주위를 돌고는 한 쪽에 앉았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경법(經法)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유염은 경을 다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컨대 부처님과 비구들께서는 저희 집으로 가서 칠 일 동안 공양을 들도록 하십시오.”
부처님께서 묵묵히 수락하시자, 유염은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서 떠났다. 칠일 째가 되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구들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사방 마을의 거리를 다니면서 이 게송을 읊도록 해라”라고 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늘 남을 속이고 삿된 짓을 하여
자신이 하고서 하지 않았다 하네.
어리석음은 기만의 도구이니
스스로 원망하여 고통에 이르네.
수행은 이익을 얻는 도구이니
원망하는 이들은 자신만 해치네.
악한 말을 하면 머리가 잘리나니
늘 삼가하여 입을 잘 지켜라.
존경해야 할 이를 도리어 비방하여
존경받는 이가 계행이 없다 하네.
입을 따라 온갖 근심 들어오고
질투하는 마음에 뭇 사람이 불안하네.
제멋대로 속이며 남의 재물을 탐내어
힘껏 기만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네.
이러한 모든 짓을 차마 하건만
그러나 결국 보배를 잃게 될 뿐
바른 사람에게 원망을 가지니
육도 윤회에 갈 길이 한 곳뿐이네.
악을 저지르면 그곳에 이르나니
뜻과 행동이 바르지 않기 때문
아귀 지옥은 그 수가 십만이라네.
아난은 즉시 분부를 받고 비구들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사방 마을의 거리를 다니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을 읊었다.
그러나 사위국의 백성들과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석가는 실로 아무런 악한 행동이 없다.
석가에게 법을 배웠는데 끝내 삿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이때 다른 범지들은 강당에 모여 범행에 가담한 범지들을 성토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들의 소행은 탄로나고 말았다. 밖에 나도는 소문대로라면 그대들 이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을 죽이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원망한 것이 아닌가?”
대신(大臣)이 이 말을 듣고 곧 궁궐로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즉시 범지들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이 스스로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을 여럿이서 죽였는가?”
“사실입니다.”
왕은 노하여 말했다.
“그대들에게 중벌을 내리겠다.
어떻게 내 나라 안에서, 스스로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을 살해할 마음을 가졌단 말인가?”
왕은 곁에 있던 신하에게 명하여 범행에 가담한 범지들을 모두 잡아다 사위성 마을마다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이고 나라 밖으로 내쫓게 했다.
부처님께서 식사 때가 되어 비구들과 함께 발우를 들고 성으로 들어가셨다. 이때 아수리(阿須利)라고 하는 청신사(淸信士)가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즉시 달려와 예배하고는 소리 높여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사방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을 두고 마음이 매우 슬프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 들어오던 경법(經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이는 전생에 악연(惡緣)이 있었던 것일 뿐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으셨다.
말을 적게 해도 비방을 받지만
말을 많이 해도 비방을 받으며
충직한 말을 해도 비방을 받나니
세상의 악은 가리지 않고 비방하네.
과거는 지나가고 미래는 다가오며
현재 역시 실재하는 것은 아닌데
누구건 수명을 다하도록 비방을 받아
밝혀내기 어렵고 공경받기도 어렵네.
부처님께서는 아수리를 위해 경법을 말씀하시고 수달(須達)의 집으로 가셔서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으셨다.
수달은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손을 모아 말했다.
“저희들은 슬픕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 듣던 경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마치 전쟁에 나간 코끼리마냥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개의치 않는다네.
오직 마음 속으로 참고 또 참을 뿐
세상 사람들은 다들 근심에 잠겨 있네.
내 손에 아무런 상처가 없기에
손으로 독물(毒物)을 잡아도 그만
상처가 없으면 독물도 소용 없듯이
선행에는 악한 자들도 어쩔 수 없다네.
부처님께서는 수달을 위해 경을 말씀해 주신 다음 유염의 집으로 가서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으셨다. 유염은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손을 모아 말했다.
“저희들은 슬픕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 듣던 경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유염을 위해 게송을 읊으셨다.
무지한 이들이 나를 괴롭히려 하나
나의 마음 맑으니 밖에서 어찌 더럽히리.
어리석은 이는 원망하며 자신을 망치나니
바람을 향해 먼지를 던짐과 마찬가지라네.
유염은 이때 즐거운 마음으로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 음식을 공양한 다음 손을 깨끗이 씻고 아랫자리에 앉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경을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지키는 청정한 수행을 말씀하셨고 모든 도를 자세히 보여 주시고 유염의 집을 떠나셨다.
이때 사위국왕인 파사닉(波私匿)이 시종관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왕의 위의를 갖추고서 성을 나와 기수에 당도하였다. 왕은 부처님을 뵙기 위해 왔으므로 말을 타고 가지 않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갔다. 왕은 멀리서 부처님을 뵙고는 즉시 일산(日傘)을 치우고 왕관을 벗고 시종들을 물리치고 금으로 된 신발을 벗고 부처님께 다가가 예배를 올리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손을 모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은 정말 슬픕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 듣던 경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왕을 위하여 게송을 읊으셨다.
삿된 생각으로 남의 잘못만 말하지만
진리를 알고 보면 선행만을 말한다네.
입이 정직하면 점차 존귀하게 되나니
선악을 버려서 두고 근심하지 않네.
실행으로 어떻게 버려야 하는가.
세상 욕심 다 버려 대자유를 누리네.
지극한 덕을 지니고 흔들리지 않건만
욕심을 제어함에 사람들이 힐란하네.
사위국의 백성들은 모두 의아한 마음을 가졌다.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대체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나쁜 소문에 시달리는 액운을 겪는단 말인가?’
그러나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보니 매우 크고 우뚝하여 마치 뭇 별들 가운데 달이 떠 있는 것과 같기에, 감히 따지고 묻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잘 아시고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만약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묻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해 주었으리.
의심을 두면 벌써 정법의 도가 아니니
나에게 와서 배워 자신을 맑히길 바란다.
단지 세상에 구애되지 않는 것으로
늘 계행을 굳게 지킨다 스스로 말하지만
이 도법(道法)은 총명해야 믿는 법이니
화려한 행실을 드러내지 않고도 세상을 가르치네.
법은 숨김도 없고 길이 변치 않는 말이니
나를 비방해도 기쁘지도 두렵지도 않네.
스스로 행실을 봄에 삿됨이 없으니
개의치 않거늘 무엇을 성내고 기뻐하리.
나의 소유를 점차 버려서
정법을 밝혀 잘 지켜 갈지니
바른 이익을 구하면 반드시 공(空)을 얻나니
공한 법이 본해 공함을 생각한다네.
어디에고 집착이 없고 나의 소유란 없어
삼계 그 어디에도 태어남을 원치 않네.
캄캄한 어리석음을 모두 끊어 버렸거니
어찌 나의 심행(心行)에 처소가 있으리.
가진 것은 마땅히 모두 버리고서
어디에고 애착이란 없다고 말하네.
이미 애착이 없고 애착을 떠났나니
수행하여 없애고 모두 버린다네.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다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