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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법집경 제1권
[공의 뜻을 잘 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空)의 뜻을 잘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내가 공하여 없음ㆍ중생이 없음ㆍ명(命)이 없음ㆍ수자(壽者)가 없음ㆍ짓는 이가 없음ㆍ태어남이 없음ㆍ없어짐이 없음ㆍ지음이 없음ㆍ가르칠 이가 없음ㆍ강성해지는 이가 없음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내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이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공이 있다면 공은 곧 유위법이니라. 그와 같이 진실로 있다면 반드시 곧 항상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만약 공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공은 곧 공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으로 저 공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내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중생이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중생은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니라.
만약 중생이 공하다면 생명을 죽이는 업(業)의 죄가 반드시 없어야 하느니라.
만약 중생이 공하지 않다면 반드시 항상해야 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중생은 항상하지도 않고 항상하지 아니함도 아니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유위(有爲)도 아니고 유위가 아닌 것도 아니니라.
이와 같은 것을 중생이 공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명(命)이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은 생기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여, 눈이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의느니라.
어찌하여 눈이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읜다고 하는가?
저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이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의느니라.
어찌하여 귀ㆍ코 따위가 공하면 나와 내 것을 여읜다고 하는가?
저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것을 명이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수자(壽者)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이란 것은 수자의 수(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5음(陰)과 18계(界)와 6입(入)이 모두 공한 것이니라.
저 5음ㆍ18계ㆍ6입을 의지하여 거짓 이름만 있는 것이 수자이니라.
거짓 이름인 까닭에 모양이 있거나 모양이 없음을 말할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수자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짓는 이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만약 공을 여읜다면 짓는 이라고 말하는 한 법도 있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짓는 이가 공하여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공은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한 법은 생기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공이 생기는 것이라면 이것은 공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공은 곧 공이 아니니라.
본래 공이 없다면 공한 법도 없느니라.
또 공이 처음으로 생긴다면 이것은 공이 아니니라.
이와 같은 것을 공하여 생김이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없어질 공이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만약 법이 생기는 것이라면 곧 없어질 수도 있다.
공한 법은 생기는 것이 아닌데 어찌 없어질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
이것을 없어질 공이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공은 지을 것이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은 다른 이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또한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니라.
5음ㆍ18계ㆍ6입 따위도 모두 공하지만 음ㆍ계ㆍ입을 의지해야만 공한 법이 있다. 이
와 같은 것을 지을 공이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가르칠 이가 없어 공함을 안다고 이르는가?
선남자여, 어떤 한 사람도 공을 가르칠 것이 없느니라. 이
와 같이 여러 가지 일들을 조작하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가르칠 이가 없어 공함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공을 강성하게 하는 것이 없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은 경계(境界)가 없으니 경계를 여의었으며 심의(心意)와 의식(意識)을 멀리 여의었느니라.
이와 같은 것을 공을 강성하게 하는 것이 없음을 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며,
공의 뜻을 잘 안다고 말하느니라.
[공이 대처할 바의 법을 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이 대처할 바의 법[空所對法]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무명법(無明法)ㆍ애법(愛法)ㆍ업법(業法)ㆍ식법(識法)ㆍ취법(取法)ㆍ견법(見法)ㆍ의법(疑法)ㆍ사취법(邪取法)ㆍ만법(慢法)ㆍ도법(掉法)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열 가지 공이 대처할 바의 법이니라.
선남자여, 무명에는 두 가지 능(能)과 네 가지 인(因)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 능(能)인가?
하나는 번뇌장(煩惱障)이고, 둘은 지장(智障)이니라.
무엇이 네 가지 인(因)인가?
욕계를 탐하는 인과 색계를 탐하는 인, 무색계를 탐하는 인, 있음이 없음을 탐하는 인이니라.
선남자여, 애(愛)에 두 가지 인과 네 가지 구함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 인인가?
하나는 가지[支]와 근본이고, 둘은 자생근본(資生根本)이니라.
무엇이 네 가지 구함인가?
하나는 욕애(欲愛)고, 둘은 색애(色愛)며, 셋은 색애가 없는 것이고, 넷은 애(愛)가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업(業)에는 업을 일으키는 한 가지 인과 세 가지 모습[相]과 세 가지 과보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업을 일으키는 한 가지 인인가?
마음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 모습인가?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세 가지 과보인가?
흑(黑:흑업의 준말.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나쁜 행위)은 흑의 과보, 백(白:백업의 준말.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은 백의 과보, 흑백은 흑백의 과보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식(識)인가?
여섯 가지인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따위의 식을 말하느니라.
이것을 여섯 가지 식이라고 말하느니라.
이 식에는 다시 세 가지가 있느니라.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뒤바뀐 마음이며, 둘은 뒤바뀌지 않은 마음이며, 셋은 생각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뒤바뀐 생각인가?
욕계를 생각하고, 색계를 생각하며, 무색계를 생각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뒤바뀌지 아니한 생각인가?
소승의 열반을 생각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무엇이 생각이 없는 것인가?
저 두 가지 생각을 여의는 것을 말하여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저 두 가지 생각을 여의었다고 하는가?
위가 없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취인(取因)에 네 가지가 있느니라.
욕취(欲取)와 견취(見取), 계취(戒取), 아취(我取)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견취(見取)인가?
견취에는 두 가지가 있느니라.
사지(邪智)와 견지(見智)가 그것이니라.
사지란 그릇된 견해의 지혜를 말하며,
견지란 아라한이 열반을 잘못 보고 열반을 잘못 구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을 견지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견지는 부처님께서도 꾸짖으셨다.
선남자여, 무엇이 의심[疑]인가?
의심에는 두 가지가 있느니라.
하나는 대승을 가로막는 것이고,
둘은 바른 지위를 가로막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대승을 가로막는 의심인가?
성문들의 마음은 좁고 열등하므로 두려워하여 빨리 소승보리를 증득하기를 구하느니라.
왜냐하면 저들은
‘부처의 길은 장구하고 헤아릴 수 없으니 모든 행은 얻거나 성취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성문승(聲聞乘)을 구하여 속히 모든 괴로움을 여의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생각으로 대승에서 물러나니,
이것을 대승을 가로막는 의심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정위(正位)를 가로막는 의심인가?
저러한 의심 때문에 정당한 위치를 증명해 얻지 못하고 보살의 대승지혜 지위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것을 정위를 가로막는 의심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그릇되게 취함인가?
그릇되게 취함이란 보시 따위의 모든 행에 과보가 있기를 구하여
‘나는 이와 같이 보시ㆍ지계 따위의 실천을 닦아 저 하늘 사람의 뛰어난 과보를 취하리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모든 그릇된 것을 구하는 것을 그릇되게 취함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교만[慢]인가?
높다거나 낮다거나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을 만이라고 하느니라.
저것은 나보다 낮고 나는 저것보다 높다는, 이와 같이 높거나 낮거나 이기고 지는 따위의 마음을 만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도거[掉]인가?
도거에는 두 가지가 있느니라.
하나는 번뇌를 생기게 하는 것이고,
둘은 동란(動亂)으로 번뇌가 생기는 것이니라.
망상 분별로 색을 보면 맑고 깨끗하니라. 이런 인연으로 몸ㆍ입ㆍ뜻의 업이 모두 뒤바뀌기 때문에 모든 성인께서 꾸짖은 것이니라.
어찌하여 동란인가?
동란은 저 출세간의 도(道) 가운데서도 마음을 머물게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도거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며,
공소대법을 아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공을 설할 줄 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을 설할 줄 아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파괴되지 않는 것이고,
요동하지 않는 것이며,
탐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는 것이고,
수행하지 않는 것이며 수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송사하지 않고 다투지 않는 것이며,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것이며,
모든 생멸함이 있는 모든 실천은 자성이 적멸하다는 말을 듣고인욕하는 것이며,
모든 범부는 한 법도 내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도 소멸하지 않음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세간성과 열반성 이 둘이 평등하다는 말을 듣고 의심을 내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미묘한 몸이 다함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믿고 바로 들어가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파괴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이 세간의 법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이익과 쇠망하는 따위의 일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근심과 기쁨과 칭찬과 나무람의 말을 하지 않으며,
기쁨과 슬픔과 헐뜯음과 기림이 없는 두 법이니라.
마음으로 높낮이를 두지 않으면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에 탐닉하거나 싫어하지 않게 되니,
이와 같이 세간법으로는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파괴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파괴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요동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음을 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능히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법을 버리지도 않느니라.
어떤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 곧 법이 공함을 알고 법이 공함을 보는 것이니라.
만약 이와 같이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아 마음이 요동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탐착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능히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탐하는 법도 없고 싫어하는 법도 없느니라.
어떤 법도 탐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면 곧 법이 공함을 알고 곧 법이 공함을 보는 것이니라.
만약 모든 법에 탐하고 싫어함이 생긴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안다고 하지 못하며 공을 본다고 하지 못하느니라.
만약 마음으로 법을 탐하고 싫어하지 않아 탐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무엇을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아니함도 아니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설할 수 있는 이는 법을 수행하지도 않고 법을 수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라.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어떤 법을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아니함도 아니면 곧 이 법이 공함을 아는 것이고, 곧 이 법이 공함을 보는 것이니라.
수행하지 아니함도 없이 보리도(菩提道)를 돕느니라.
이와 같이 공함을 알고 공함을 보면, 이것을 보살이 수행하지도 않고 수행하지 아니함도 아니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송사[諍]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설하는 이가 만약 중생과 더불어 송사하거나 다툰다면 곧 공함도 모르고 공함을 보지도 못하느니라.
이로써 보살이 다투는 이에게 공함을 보게 하고 알게 하기 때문에 다투는 것이 없으니, 이와 같이 송사하거나 다투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한 법도 증가함을 모르고 한 법도 감소함을 모르며, 한 법도 증가함을 보지 못하고 한 법도 감소함을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모든 법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곧 공을 모르고 공을 보지도 못하느니라.
만약 공한 줄 알고 공한 줄로 보면 곧 모든 법이 증가하고 감소함을 보지 못하니, 이것을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생멸함이 있는 모든 행은 자성이 적멸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하게 인욕하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한 법도 생겨남을 보지 못하고 한 법도 사라짐을 보지 못하니,
이것을 모든 유위의 모든 실천은 자성이 적멸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하게 인욕하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범부(凡夫)는 한 법도 내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도 소멸하지 않음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공을 능히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공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이 이는 범부고 이분은 부처님이시다’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부처님 여래와 모든 범부의 모양은 평등하느니라.
만약 범부의 법은 못나고 부처님의 법은 뛰어나다고 본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볼 수 없느니라.
만약 범부는 ‘한 법도 내지 못한다’고 들으면 곧 이것은 범부의 공이며,
만약 ‘모든 부처님은 한 법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들으면 곧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공이니라.
이와 같이 범부는 한 법도 내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 여래는 한 법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함을 듣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것을 한 법도 내지 않는 것과 한 법도 소멸되지 않음을 보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세간의 성품과 열반의 성품, 이 두 가지가 평등하다 함을 듣고 의심을 내지 않으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만약 세간의 성품을 여의고 열반의 성품이 있다고 본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볼 수 없느니라.
세간의 진여 성품과 열반의 진여 성품, 이 두 가지 법성은 오직 한 모양뿐이니,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말하는 것이니라.
만약 세간의 진여 성품과 열반의 진여 성품은 그 모양이 평등하여 높거나 낮음이 없음을 보고 의심이 생기지 않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것을 세간의 성품과 열반의 성품, 이 두 법이 평등하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하고 즐거우며 미묘한 몸이 다함이 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믿으며 바로 들어가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만약 ‘모든 부처님 여래는 모두 없어지는 몸이다’는 마음을 내면 이와 같은 보살은 공을 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여래의 몸은 진여의 공한 몸이며, 객진번뇌(客塵煩惱)나 수번뇌(隨煩惱)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항상하고 즐거우며 미묘한 몸이 다함이 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들으면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모든 부처님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미묘한 몸이 다함이 없는 법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믿으며 바로 들어가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행에 들어가면 공을 말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