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무언동자경 상권
[모든 법은 모두 문자가 없고 말도 없다]
이에 무언보살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제가 의심되는 것이 있어서 이제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말씀드려 여쭙고자 하오니, 제 청을 받아 주신다면 곧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언보살에게 대답하셨다.
“무엇이든지 분명히 알지 못한 것이 있거든 마음대로 질문하여라.
여래가 낱낱이 드러내어 남아있는 의심을 없애고 너의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그때에 사리불이 무언보살에게 말하였다.
“족성자여, 그대는 말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래에게 그 이치를 질문하려고 합니까?”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일체 모든 법은 모두 문자가 없고 언사(言辭)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중생은 모두 자연 그대로로서 어떤 말의 가르침도 온갖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시여, 마음의 생각을 따라서 입으로 말하게 됩니다.
만약 생각하는 것이 없다면 말할 것이 없을 것이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두 허망하여 진실함이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질문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그 집착된 생각은 모두 존재하지 않고 문자도 없는 것이며,
그 허무하다는 것 역시 생각이 없는 것이고 또한 문자의 설명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마음먹음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제가 문자의 설명으로 드러내려고 하지만 그 문자는 어떤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거나 문자의 설명을 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닙니다.
사리불이시여, 12연기는 매우 깊고도 다다르기 어려워서 위대하고 위대하기가 이와 같으며, 모두 인연으로 생겨나는 것이니, 그것은 곧 저절로 그러해서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을 뿐입니다.
가령 스스로 그러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면 저 도는 성취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시여, 일체 모든 법은 성취할 것도 없는 인연의 일입니다.
머무는 바 없는 것에 의지하여 조작이 있고 인연의 화합을 말미암기 때문에, 그 인연은 일으켜 건립하는 것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시여, 일체 모든 법에는 다 주재자가 없습니다.
저 임금[君長]들도 무상한 주재자이어서 아무런 의지와 생각이 없지만,
자기들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함부로 날뛰고 어떤 상대하는 것을 말미암아 온갖 생각을 일으키며,
그 잘못 뒤집혀진 생각의 무더기들이 이것을 따라 생겨납니다.
그들이 만약 이 질문하는 것을 보고 묻는다면
‘생각해서 알고 있는 일체 모든 법은 생각 있고 생각 없는 것이 모두 한 가지 모습이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저렇게 물음으로서 보살은 큰 자비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시여, 제가 이 때문에 큰 자비를 일으켜 여래께 여쭙는 것일 뿐,
언어와 음성으로서 말과 언교(言敎)에 의지하여 여쭙는 것은 아니고, 큰 자비에 머무는 보살의 질문입니다.“
[큰 자비심을 일으키는 연유]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족성자여, 만약에 중생이 없고 사람도 없다면 무엇 때문에 보살이 그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시여, 설령 중생이 그들이 성취하여 다다를 도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살로서는 그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중생에게도 중생이란 집착[想]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중생들에 대해서 큰 자비를 일으키는데 있지만, 설령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자비에 반대되는 것이니, 일체의 다섯 갈래[五趣]가 모두 허깨비[幻化]와 같기 때문입니다.
아, 슬프군요. 모든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여 중생이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보살이 경전의 도를 강설하며,
나 없고 본말(本末)이 모두 공함을 알게 하기 위해 보살이 모든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이며,
파괴할 것도 없고 가진 것을 훼손하지도 않고 나[我]ㆍ사람[人]ㆍ수(壽)ㆍ명(命)이란 생각을 무너트리지 않으면서 보살이 그 큰 자비에 들어가 중생들을 이롭게 인도합니다.
진리를 드날리고 공한 현상을 분별함으로서 모든 객진(客塵)번뇌에 물들어 더럽혀진 중생들을 일체의 물질에 평등하게 들어가 노닐도록 하며,
스스로가 본래의 청정함을 관찰하게 하기 위해서 보살이 그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리불이 무언보살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족성자여, 사실 그대의 말과 같이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번 어진 이의 그 강설하는 뛰어난 말재주[辯才]를 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꺼내려 한 것이고,
앞으로는 정사(正士)께서 선설하시는 이 불가사의한 법을 받아 듣겠습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설법을 널리 유포한다면 마군들이 틈을 엿보지 못하고 여래의 법이 오래도록 존립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이 법회의 천룡ㆍ귀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다라ㆍ마후륵 등 사람인 듯하면서도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까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도법(道法)의 광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