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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녀소문경 제1권
1. 문혜품[3]
[보살이 법에 순응하여 그 법대로 실행함]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보살이 법에 순응하여 그 법대로 실행함이란 어떤 것인가?
법의 가르침에 따라 법을 생각하고 법으로 뜻을 삼고 법을 공경하고 법행(法行)을 준수하고 법을 사모하며 법의 즐거움을 즐기고 법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다.
또 법을 미묘한 영락으로 삼고, 법을 굳센 칼이나 몽둥이로 삼으며,
법의 갑옷을 입어 그 서원을 스스로 장엄하고, 법의 횃불을 밝혀 그 광명을 스스로 닦으며,
항상 법에 뜻을 두어 그 법을 자신의 뜻으로 삼고 법에서 노닐면서 모든 경전을 분별하며,
자신의 방편으로 법에 순응하여 그 법행에 노닐며,
법을 침상으로 삼고 법을 거동의 모범[威儀]으로 삼으며
법의 일을 보호하고 법을 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은 한이 없으므로 법으로 재물을 삼으며,
널리 법을 연설하여 그 법으로 변재를 장엄하고
항상 법신(法身)을 닦고 그 법으로 언사(言辭)를 삼으며
깊이 법(法)을 생각하여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행을 준수하여 빠짐없이 성취하되 법 아닌 것을 행하지 않고 항상 법주(法主)를 따르는 것이다.
[법주를 따른다는 것]
이른바 법주를 따른다는 것은,
설사 이러한 지성으로 진리를 구하더라도 불법(佛法)의 갑옷을 입고 그 불법을 옹호하는 동시에
성중(聖衆)을 공경하고 정성껏 경전을 들어 도(道)의 뜻을 즐겨 하며 뭇 착한 일을 쌓아 지진(至眞)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뜻이 본래 청정하여 아무런 집착 없이 그 순응해야 할 일을 어기지 않고 여러 성현과 착한 벗을 보고는 항상 공경하여 그 가르침을 따르며,
교만을 떠난 지극한 마음으로 법회(法會)에 참석하여 경전을 찬탄하고 법전(法典)을 사모하여 탐구하되 만족한 생각을 갖지 않으며 그 도의 뜻을 강설하매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법(經法)에 대해 스승 삼을 이가 없을 정도이며,
부처님의 인자하신 은혜 갚기를 생각하여 자신의 할 일을 끝내고는
한적한 곳에 머물러도 두려움이 없고 성현의 교훈을 저버림 없이 지족(止足)할 줄 알아 열 가지 착한 일을 따르는 것이다.
[법주에 순응함]
또 법주에 순응함이란
보시할 것을 서로 권하여 불도를 찬탄하고,
금계와 인욕을 받들어 힘을 삼고 정진을 준수하여 겁약하지 않고,
고요한 선정을 닦아 지혜에 들어가 노닐고 중생들을 진리로 교화하기 위해 방편을 나타내고,
중생을 옹호하기 위해 자비를 품고 함께 기뻐하며 보호하거나 여의는 두 가지 일을 오직 지성으로 순응한다.
낱낱 경우에 따라 착한 업을 지으며, 신통을 일으키되 올바른 법을 이용하고 노니는 처소마다 법을 베푸니,
이렇게 함으로써 네 가지 바른 뜻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네 가지 바른 노력을 평등하게 준수하고 네 가지 신족(神足)을 현재에 바로 구경(究竟)하며,
모든 감관[根]을 통달하여 그 힘을 잘 다스리고 모든 깨달음을 얻어 그 경로(經路)를 초월하며,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 그 소행을 다 관찰하여 진리의 성스러운 해탈로써 광명을 비추어 성문에게 빛을 쪼여 그들이 따르게 하고
그 본지(本地)에 따라 연각을 교화하되 대승의 덕을 찬탄하여 걸맞는 이치로써 연기의 법을 연설한다.
공(空)하여 없는 것임을 깨달아 두려움이 없고 형상 없음[無相]에 노닐어 집착이 없고 원 없음[無願]을 관찰하여 5음(陰)이 환상[幻]과 같음을 알며,
또 네 가지 원소[四大]가 허공과 같음을 관찰하고 모든 감관[入]이 본래 다 청정하여 공한 것임을 알며,
나아가서는 일곱 가지 성현의 재물[七聖財]로써 업을 삼아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六念處]을 닦고
여섯 가지 바라밀[六度無極]을 즐겨 하고 다섯 가지 눈[五眼]의 가장 청정함을 얻어 항상 스스로 보호함으로써 모든 것을 초탈하며,
도업(道業)을 잘 닦아 일체의 중생을 평등한 마음으로 제도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에 대한 일체 공덕의 법을 노래로 찬탄하는 것이다.”
[법과 도에 순응하는 보살]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법에 순응하는 보살이라면
나라는 모양[我相]을 말하지 않고,
사람이란 모양[人相]을 헤아려 따지지도 않고,
또 수(壽)와 명(命)이란 모양을 헤아리지 않으며,
단견(斷見)ㆍ상견(賞見)을 비롯한 모든 존재[有]에 대한 견해[見]을 갖지 않으며,
또 어떤 변제(邊際)에 치우치거나 중간에 의지하지도 않고
친구를 좇아 다니거나 다투지 않고 화합하지 않는 것이 없는 반면
편가르는 일도 없고 뒤바뀌거나 그릇된 소견을 갖지 않으며,
모든 의심을 벗어나고 음개(陰蓋)의 온갖 장애하는 것들을 깨끗이 제거하며,
법을 어기지 않고 법을 어지럽게 하지도 않으며,
경전을 비방하지 않고 경전의 도를 경솔히 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모든 법을 구경(究竟)한다.
그리고 도에 순응하는 보살이라면
그도 역시 모든 법에 뜻을 두어 경전을 구족함으로써 그 지성스러운 말씨가 저절로 법에 순응하게 되고,
저 이학(異學)에 물들지 않아 법의 말씀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간악하고 어지럽던 일과 그릇된 행을 다 없앰은 물론 세간 사람들까지 법의 말씀에 순응하게 한다.
그 보살은 또 공(空)을 행함에 순응함으로써 아무것도 얻음이 없고 그릇된 생각과 성내거나 미워하는 법이 없고,
원 없는[無願] 가르침에 순응함으로써 삼계(三界)에 걸쳐 일체 행함이 없으면서도 간절하게 정진하여 온갖 결함과 더러움을 제거하게 되나니,
이와 같이 법에 순응하는 보살은 일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어 생(生)을 받지 않으며 본성(本性) 그대로 청정하여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
[법의 성품]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법이란 얻을 바가 없고 문자(文字)가 없고 언설(言說)이 없고 또 사장(辭章)이 없으며,
빛깔이 없어 볼 수도 없고 나아가는 처소도 없으며,
훈계하는 것도 없고 가르치는 것도 없으며,
마음과 뜻과 식별을 여의므로 아무런 때나 결함이 없고,
결함과 결점이 없으므로 모든 탐욕을 멀리하고 그윽함과 어두움이 없으므로 쌓아 모음이 없으며,
내가 없으므로 받을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으며 받을 것을 여읜다.
경계와 차별이 없으며, 시방세계의 어디에도 집착하는 곳이 없으므로 담박할 뿐이다.
그 소행의 나아가거나 물러남이 없으므로 볼 수도 없으며,
깊고도 넓은 이치를 지니되 그 깨달음에 있어서 상념(想念)이 없고 생각하고 행함이 없으므로 성현을 초월하였다.
슬기로운 자를 교화시키되 적응되거나 적응되지 않음이 없으므로 모든 것 그쳐 쉴 수 없으면서도 적응될 수 있음은 바로 진리 그대로이며,
삼세(三世)가 다 공하여서 아주 사라짐도 없고 끝내 멸망함도 없고 도로 물러나는 일도 없으며,
또 생겨남도 없고 성취함도 없고 무너져 사라짐도 없다.
또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음도 없고,
성취함이 없고 성취하지 않음도 없으며,
또 행함이 없고 보이는 바가 없으며
보이지 않음도 없고 보임을 여의지도 않으며,
또 상(相)을 이룩함도 없고 상을 이룩하지 않음도 없으므로 이것이 바로 한 가지 상인 것이다.
다시 아무런 상이 없으며 집착할 바도 없으며,
또 집착을 여의었고 집착을 여읠 것도 없으므로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내 것이라 할 것도 없으면서 누구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따르거나 지켜야 할 것도 없다.
번뇌가 없으며 짝할 것이 없고, 또 평등할 것이 없으며 평등해질 것도 없다.
지극히 정성스러운 것도 없고 허망하지 않으며,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니고 정진도 정진 아님도 아니며,
또 어울림이 없으면서 어울림이 없지도 않고,
전정(專精)하지 않으면서 전정하지 않음도 없다.
또 명색(名色)이 없고 생멸이 없으며,
견고하지도 않고 견고하지도 않음도 없으며,
파괴함도 없고 파괴하지 않음도 없으며,
금강(金剛)의 상(相)도 아니고 파괴의 상도 아니므로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지극한 정성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 동떨어진 것도 아니며,
그 어떤 비슷한 부류나 짝할 것도 없고, 처소와 상념(想念)도 없으며,
또 이것과 저것도 없고 차등도 없고 안과 바깥이 없고 중간도 없다.
즐겨 함도 없고 피안(彼岸)을 건넘도 없으며,
본 것도 들은 것도 없고, 기억함도 없고 가르침도 없으며,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다.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형체가 없는 것도 아니며,
조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작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존재를 다 여의었으므로 이것을 법이라 한다.
이러한 법은 음성이 없으면서 음성 아닌 것이 없고 또 취합(聚合)이 없고 언설(言說)이 없으니,
보살이 법에 순응함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이 법에 순응하는 것]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언사(言辭)를 다 갖추었다면 그것이 바로 법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에 순응하는 자는 아예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깔보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배우지 못한 이라 해서 업신여기려 하지 않고 배움을 성취한 자라 해서 치우치게 공경하지도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경전을 어지럽게 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공양을 받기 위해서 도의(道義)를 설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의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경전을 함부로 여기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결코 다른 사람의 경도(經道)를 방해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끝내 모든 법에 대하여 그 법을 깨달았다는 생각으로 법을 차별하거나 나누고 헤아리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모든 법을 공한 것으로 보고 덧없는 것으로 보고 원 없는 것으로 보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법계를 파괴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근본 없는 것을 들추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참된 근본의 경지를 벗어나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성냄과 미워함에 이끌려 중생을 인도하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모든 의식[識]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계교(計較)하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법의 이치를 착란하지 않고 법의 장엄을 어기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자신의 의식[識]에 미혹하지 않고 법의 도의(道義)에 의혹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바른 뜻을 헐뜯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바른 법품(法品)을 착각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붕당(朋黨)을 조성하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연기(緣起)하는 일들을 따르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어떤 세력을 자랑하지 않고 청정한 법에 아무런 인연을 갖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인색하고 탐욕스런 번뇌의 더러움이 없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금계(禁戒)를 헐뜯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금계를 헐뜯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게으름이나 성냄과 미움, 그리고 원한을 맺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게으르고 번뇌에 물든 사람과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도(道)의 뜻을 잃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지혜의 근본을 파괴한 적이 없다.
법에 순응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법의 장단점을 논란하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이라 해서 그 사람이 설하는 경전까지 싫어하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경전을 가지고서 전적(典籍)에 이용하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율교(律敎)와 법률을 어기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일부러 그 율교와 법률을 준수하지 않아도 응함에 따라 법과 법 아닌 것을 다 분별하며,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실수하지 않고 항상 그 심념(心念)을 경전에 두며,
또 그 법에 순응하는 자는 모든 성취할 것을 파괴하지 않는다.
법에 순응하는 자는 결박을 취하지 않고 생사를 벗어나며,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언제나 함이 없는[無爲] 법을 버리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친한 벗이라든가 원수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보응(報應)의 과(果)를 무너뜨리지 않고, 죄복의 보응을 믿어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나쁜 말을 듣더라도 보복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투쟁할 결함을 구하지 않는다.
법에 순응하는 자는 함부로 입[口]을 놀리지 않고 몸과 입과 마음을 기르되, 아첨하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자신을 나타내려고 한적한 곳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공양의 이익을 탐하여 조그마한 일에 끌리지 않는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욕심이 없다면서 흉포하고 거짓된 일을 저지르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다른 사람과 자기와의 차별을 두어 불도를 연설하지 않고 불도와 반대되는 가르침을 개입시키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일곱 가지 거룩한 재물[七聖財]을 탐하거나 그것에 인색하지 않다.
또 법에 순응하는 자는 음식을 탐내 양식을 저축하지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부모와 종족을 헐뜯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비웃지 않고 자신의 공덕을 칭찬하지도 않으며,
법에 순응하는 자는 부처님의 도덕을 분별하여 한계를 두지 않고,
법에 순응하는 자는 대승을 찬탄하되 게으르거나 싫어하지 않나니,
이 모든 것이 바로 보살이 법에 순응하는 것이다.”
[보살이 위의에 순응하는 것]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보살이 위의에 순응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치란 것은 명문(名聞)을 구하거나 저열한 이치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공덕의 근본을 닦고 많은 착한 이치를 쌓음으로써 그 지성(志性)이 뛰어나 올바른 도에 발심하여 공한 이치를 모으는 것이니,
보시를 하더라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 이치,
모든 중생을 안락케 하는 이치,
금계를 헐뜯지 않는 이치,
참을 수 없는 것을 다 참는 이치,
정진하여 모든 하는 일을 다 성취하는 이치,
선정으로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는 이치,
지혜로워서 주저하는 일이 없는 이치이다.
인자한 마음을 닦는 자는 중생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이치,
중생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는 자는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펼쳐내는 이치,
함께 기뻐하는 자는 법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이치,
담담한 마음을 지니는 어떠한 고락에도 흔들림이 없는 이치이다.
또 보시하는 자는 보시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이치,
중생을 즐겁게 해 주고 침해하는 마음이 없는 이치이며,
모든 것을 조성(造成)함에는 법의 원력을 일으켜야 하는 이치,
평등을 닦음에는 중생을 권유하여 대승에 뜻을 두되 네 가지 은혜로써 교화해야 하는 이치,
모든 만물은 덧없고 괴롭다는 이치, 일체의 법은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이치,
모든 번뇌가 담박해진 이치,
그러면서 모든 의식[識]에는 성스러운 지혜를 깨달아야 하는 이치이며,
모든 일을 수행함은 장엄을 갖추는 이치,
일체의 경전을 존중함은 그 보배 갈무리를 잘 보호하는 이치이며,
사람[人]과 목숨[命]에 집착하는 자에겐 법으로써 교화해야 하는 이치,
이 생각과 집착을 벗어나 통달하려는 자에겐 다함 없는 법을 설해야 하는 이치이며,
경권(經卷)을 분별하되 법을 파괴하지 않는 이치,
생각이 끊어진 경지에 수순함은 물질 없는 지혜를 얻되 뛰어난 말솜씨를 지녀 뭇 사람의 병에 따라 설법하는 이치이다.
또 보시하되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고,
계율을 지키되 바람을 다 이루며,
널리 듣되 그 들은 것을 실행하고,
공덕을 지어 모든 상(相)을 원만히 하며, 은혜를 베풀되 모든 중생의 근기를 잘 알고,
고요히 선정에 들어 마음이 짓는 일을 보호하며,
관찰하여 지혜에 통달하는 것이 이치이다.
네 가지 바른 생각이란 그 뜻을 억제하기 때문이고,
네 가지 바른 노력이란 모든 공덕의 법을 나타내기 때문이고,
신족(神足)을 갖춤이란 시방을 날아다니기 때문이고,
그 다섯 가지 감관[根]을 갖춤이란 다른 사람을 파괴하거나 헐뜯지 않기 때문이고,
다섯 가지 힘을 갖춤이란 온갖 번뇌에 시달려 어지러워지지 않기 때문이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란 일체의 법을 환히 깨달아 그 바른 길을 구하는 동시에 모든 법에 원한이 없기 때문이고,
신통을 성취함이란 그 본말(本末)을 통하여 아무런 결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법에 순응한다면 이것이 곧 법의 이치를 구경(究竟)함이며,
이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위에 순응하는 것이요,
이치에 어긋난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보살이야말로 위의에 순응하는 자라고 할 것이다.”
[보살이 이치에 순응하는 것]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뒤바뀌고 그릇된 소견을 없애는 것이 공의 이치이므로 공을 행하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요,
모든 생각[想]의 어울림과 어울리지 않음을 다 제거하는 것이 생각 없는 것[無想]이므로 생각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요,
모든 삼계의 서원을 여의는 일이 원 없는 것[無願]이므로 원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며,
온갖 조작의 행(行)을 벗어남이 행 없는 것[無行]이므로 행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다.
일체의 생멸을 끊어 버리는 것이 생멸 없는 것이므로 생멸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요,
모든 감각의 일어남을 없애는 것이 느낌 없음이므로 느낌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요
괴로움과 습기를 깨끗이 제거하여 괴로움이 다하고 성스러운 길을 실천하는 것이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므로 괴로움을 없앤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며,
모든 법에는 사람이란 생각과 목숨이라는 생각이 없으므로 나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다.
일체의 언사(言辭)와 음향(音響)에 통달함이 바로 얻을 것 없는 것이므로 얻을 것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요,
모든 행을 청정케 하는 것이 바로 성실한 진리이니, 지극히 정성스런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요,
일체 도품(道品)과 법을 준수함이 방일하지 않는 것이므로 방일 없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요,
모든 들은 것을 다 받들어 행하는 것이 신심이므로 이 신심을 준수하여 실천하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함이요,
모든 승(乘)은 다 대승을 따라야 하므로 대승을 따르는 보살이라면 곧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부처님께서 보녀에게 말씀하셨다.
“파괴할 수 없고 여러 가지의 일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한 가지 품류(品類)이거나 한 가지 맛[味]이라면 그것이 이치이고,
흔들림이 없는 동시에 또 다함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지어감[行]이 없음으로써 나는[生] 것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오는 것이 없으므로 가는 것도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나는 것이 없으므로 사라짐도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두 가지 일이 없으므로 어느 하나를 들거나 내리지도 않고 높이거나 낮추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조작하는 것이 없고 형체도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아무런 작용이 없고 그 존재[有]하는 것도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같은 형상이 없어 권교(勸敎)할 것이 없고 또 아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삼계의 더러움을 깨끗이 제거하고 3세를 평등히 관찰하여 번뇌를 아주 없앤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노닐거나 오가는 처소가 없고 또 아무런 결함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원수가 없으므로 그 행이 담박하여 마음이 번뇌에 어지럽지 않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안일하게 지내는 것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널리 펴는 것도 없고 두루 거두어들이는 것도 없이 항상 걸맞게 행한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과거ㆍ미래ㆍ현재를 다 끊어 버리고서 아첨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바른 법과 바른 법 아닌 것까지도 생각하지 않아 그 한계의 있고 없음과 덧 있고 덧없음을 다 제거하고서 평등한 지혜로 모든 것을 초월한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모든 문자(文字)를 그 음성에 따라 다 깨달아 일체의 근본이 청정하여 언사(言辭)가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뜻과 식별을 깨달아 널리 법을 설함도 없이 그대로 출가한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번뇌의 욕심과 생각 있고 생각 없음과 걸맞고 걸맞지 않음을 모두 분별하되 거기에 집착된 생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모든 법에 평등하여 여러 가지로 차별을 두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공(空)하고 상(相) 없고 원(願) 없어서 아무런 조작이 없고 형상도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으뜸가는 지성스러운 일만을 환히 깨달아 다른 것을 믿거나 다른 사람을 우러러보지도 않고 어떤 형상과 처소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모든 것을 가르치되 그 상(相)에 집착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그 상이 마치 허공 같은 고요한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고,
파괴될 수 없는 상이어서 진리 그대로 차별의 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잘 개화(開化)하는 상이어서 마치 환영[幻] 같은 자연의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고,
그 네 가지 원소까지도 법계의 상을 삼아 바깥 상으로 관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보시ㆍ지계ㆍ선정ㆍ방편을 행하되 모두 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속임과 거짓이 없는 지성을 베풂으로써 모든 행위에 아무런 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며,
금강처럼 파괴할 수 없는 견고한 상이어서 세간에 처하되 싸우는 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하는 일이 매우 착하여 궁극의 진리를 구족하는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며,
모든 것에 널리 들어가 두루 구제하되, 쌓임[陰]ㆍ덮개[蓋]의 문(門)을 향하는 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다.
모든 갈래에 평등하여 일체의 법에 들어가는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며,
평등하고도 그릇되지 않아 모든 사물을 동등하게 보아 치우치는 상이 없다면 그것이 이치이고,
선정과 지혜로 생사 없는 상에 노닐며 해탈하는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다.
성인의 상에 의지하여 어떤 지혜를 얻거나 그 가르침을 따르는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고,
그 진리대로 깨달아 발표하는 상이거나 모든 법을 평등하게 이끌어 가는 상이라면 그것이 이치이다.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그 모든 이치를 고루 다 닦고 또 이와 같이 모든 이치의 일을 해설한다면 그는 곧 일체의 뭇 이치를 분별하는 자이니,
보살이 위의를 순응함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