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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의보살경 제1권
[무진의라는 이름]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에게 물었다.
“누가 그대의 이름을 무진의라고 하였습니까?”
무진의 보살이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여, 모든 법의 인연과 과보를 무진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바라건대 그대가 다함없는 법문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처음에 위없는 보리심을 낼 때부터 이미 다 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보리심을 내는 것은 번뇌를 여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발심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여타의 승(乘)을 바리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이 견고한 것은 외도나 삿된 논의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악마도 저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발심이 항상 순조로운 것은 선근을 더욱 증장시키기 때문이며,
발심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것은 함이 있는 법[有爲法]은 덧없기 때문입니다.
발심하여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도닥이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이며,
발심이 수승하고 미묘한 것은 손상됨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편안히 머무는 것은 희론(戱論)하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을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것은 비슷한 것이 없기 때문이며,
발심이 금강처럼 단단한 것은 모든 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며,
발심이 끝없는 것은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발심이 평등한 것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널리 덮어주는 것은 분별하거나 다르게 여김이 없기 때문이며,
발심이 선명한 것은 성품이 항상 깨끗하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더러움이 없는 것은 지혜가 해맑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잘 이해하는 것은 끝내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이 드넓고 쾌활한 것은 자비로움이 허공처럼 넓기 때문이며,
발심이 광대한 것은 모든 중생을 다 용납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걸림이 없음은 지혜를 통달했기 때문입니다.
발심하여 두루 이르는 것은 대비심(大悲心)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잘 이해하여 원력을 세우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귀의하는 것은 여러 부처님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며,
발심이 뛰어남은 이승(二乘)이 높이 우러르기 때문이며,
발심이 심원한 것은 중생들로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발심이 무너지지 않음은 불법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이 편안한 것은 중생들에게 모든 쾌락을 잘 주기 때문입니다.
발심이 장엄한 것은 모든 공덕을 다 성취하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잘 관찰함은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발심이 더 자라나게 하는 것은 뜻대로 베풀어 주기 때문이며,
발심이 바람과 같은 것은 계율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보리심을 내어 원수나 친한 이까지 널리 미치는 것은 인욕을 갖추기 때문이며,
발심을 파괴하기 어려움은 정진을 갖추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고요한 것은 선정을 갖추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헐뜯음이 없음은 지혜를 갖추기 때문입니다.
발심하여 바람이 없는 것은 대자심(大慈心)을 더욱더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보리심을 내어 근본에 머무르기를 굳게 함은 대비심(大悲心)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온화하고 즐거운 것은 큰 희심(喜心)을 더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은 큰 평등한 마음[捨心]을 더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책임이 중요한 것은 여러 부처님께 받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끊지 않음은 삼보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지혜를 위하여 보리심을 내니,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렇다면 마치 허공이 끝이 없는 것처럼
모든 지혜를 위해 보리심을 내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이 끝이 없습니다.”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부처님 계율을 다할 수 없음도 계율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고,
부처님 선정의 다함이 없음도 선정으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며,
부처님 지혜의 다함이 없음도 지혜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고,
부처님의 해탈이 다함이 없음도 해탈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며,
부처님 해탈지견의 다함이 없음도 해탈지견으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여래의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은 그 성품이 다 함 없으니, 이 다섯 가지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인데 어찌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래의 열 가지 힘[十力]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畏]과 열여덟 가지 같지 않은 법[十八不共法]의 다함이 없음도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기 때문에 다함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요약하여 말하자면
모든 여래가 다함이 없음은 이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고,
삼보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함이 없으며,
중생의 성품이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실다운 지혜가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으며,
중생들의 한량없는 마음과 행을 따르는 지혜가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가장 훌륭한 것에 회향함이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으며,
중생을 교화함이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다함없는 지혜는 생겨남[生]이 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으며,
성품을 여의어 생겨남이 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모든 법의 본성을 앎이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보리심을 내어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이것은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니,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아첨하지 않기 때문이고,
아첨하지 않는다는 것은 간사함이 없기 때문이며,
간사함이 없음은 잘 분별하기 때문이고,
잘 분별한다는 것은 삿된 방법으로 생활을 꾸려가지 않기 때문이며,
삿된 방법으로 생활을 꾸려가지 않는 것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늘 바르고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바르고 한결같다는 것은 그 성품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성품이 뛰어나다는 것은 깔보거나 헐뜯음이 없기 때문이며,
깔보거나 헐뜯음이 없다는 것은 모든 왜곡된 것들을 없앴기 때문이고,
모든 왜곡된 것들을 없앰은 마음의 바탕이 곧기 때문이며,
마음의 바탕이 곧다는 것은 평정(平正)에 들어가기 때문이고,
평정에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이 견고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며,
마음이 견고하고 진실하다는 것은 파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성품이 굳건하기 때문이고,
성품이 굳건하다는 것은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며,
동요되지 않는다는 것은 의지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고,
의지하는 곳이 없다는 것은 ‘나’라는 마음을 제거했기 때문이며,
‘나’라는 마음을 제거했다는 것은 상대가 없기 때문이고,
상대가 없다는 것은 비방하거나 멸시하지 않기 때문이며,
비방하거나 멸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업을 짓기 때문이고,
선업을 짓는다는 것은 꾸짖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꾸짖음이 없다는 것은 잘못이 없기 때문이고,
잘못이 없다는 것은 불타는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불타는 번뇌가 없다는 것은 성품이 진실하기 때문이고,
성품이 진실하다는 것은 헛되거나 거짓됨이 없기 때문이며,
헛되거나 거짓됨이 없다는 것은 말한 대로 행동에 옮기기 때문이고,
말한 대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일을 잘 하기 때문이며,
일을 잘한다는 것은 흠이 없기 때문이고,
흠이 없다는 것은 그릇됨이 없기 때문이며,
그릇됨이 없다는 것은 막힘이 없기 때문이고,
막힘이 없다는 것은 물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을 관찰하기 때문이고,
중생을 관찰한다는 것은 대비(大悲)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며,
대비의 뿌리가 깊다는 것은 중생을 잘 교화하되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기 때문이고,
중생을 잘 교화하되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다는 것은 자기의 안락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자기의 안락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익을 탐내지 않기 때문이고,
이익을 탐내지 않는다는 것은 애욕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애욕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고,
모든 법을 반연한다는 것은 연약함과 모자람을 관찰하기 때문이며,
연약함과 모자람을 관찰한다는 것은 중생을 보기 때문이고,
중생을 본다는 것은 항상 옹호하기 때문이며,
항상 옹호한다는 것은 귀의처가 되기 때문이고,
귀의처가 된다는 것은 번뇌에 끄달림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에 끄달림이 없다는 것은 잘 관찰하기 때문이고,
잘 관찰한다는 것은 비난하는 말이 없기 때문이며,
비난하는 말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순수하고 착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훌륭하게 청정하기 때문이며,
훌륭하게 청정하다는 것은 언제나 정진하기 때문이고,
언제나 정진 한다는 것은 안으로 청정하기 때문이며,
안으로 청정하다는 것은 항상 선명하기 때문이고,
항상 선명하다는 것은 더럽혀지거나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그 청정한 마음은 인색함을 끊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인색함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파계를 끊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파계를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성냄과 미움을 끊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성냄과 미움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게으름을 끊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게으름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어지러운 마음을 끊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어리석음을 끊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어리석음을 끊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그 청정한 마음이 이와 같이 모든 불선법(不善法)을 끊고 중생들을 선법(善法) 가운데 안주하게 하니, 그러므로 이것을 보살의 청정한 마음은 다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심행(心行)이 청정함도 다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보살이 보시를 행할 적에 일체를 다 보아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계율을 행함도 다할 수 없으니, 일체를 다 보아서 모든 금계(禁戒)를 지니고 두타(頭陀)의 바른 행으로써 위의를 범하는 것이 없으며,
보살이 인욕을 행함도 다할 수 없으니, 일체를 다 보아서 모든 중생에 대하여 마음에 미워하거나 거리낌이 없습니다.
보살이 정진을 행함도 다할 수 없으니, 일체를 다 보아서 모든 선법(善法)을 부지런히 닦으며,
보살이 선정을 행함도 다할 수 없으니, 일체를 다 보아서 모든 선정에서 그릇되거나 산란함이 없으며,
보살이 지혜를 행함도 다할 수 없으니, 일체를 다 보아서 많이 듣고 아는 것을 닦아 익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이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행하고 인욕을 행하고 정진을 행하고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행한다고 합니다.
보살이 사랑함[慈]과 가엾이 여김[悲]과 기뻐함[喜]과 버림[捨]을 행함도 다할 수 없으니,
일체를 다 보아서 이익 되게 하고 괴로움에서 건져 기뻐 날뛰게 하여 애욕과 성냄을 잘 끊어 버리므로
이것을 보살의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림이라고 합니다.
보살이 행하는 삼업(三業)은 청정하니,
몸으로 짓는 세 가지[身三]나쁜 업과 입으로 짓는 네 가지[口四]의 허물을 여의고,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意三]나쁜 업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삿된 견해를 여의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많이 들음을 닦아 익혀서 다함이 없는 것은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고,
보살이 인색함이 없음을 수행하는 것은 온갖 지혜를 모으기 때문이며,
보살이 온갖 지혜를 닦아 모으는 것은 다른 보살에게 권하여 도의 마음을 내게 하기 때문이고,
다른 보살에게 권하여 도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은 선근(善根)에 수행하여 편안히 머물기 때문이며,
선근에 수행하여 편안히 머무른다는 것은 최상의 보리도(菩提道)에 나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최상의 보리도를 원한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을 거두어 갖기 때문이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거두어 갖는다는 것은 네 가지 일[四事]을 거두어 갖기 때문이며,
보살이 네 가지 일을 거두어 가짐[四事攝:四攝法]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죄를 참회하기 때문이고,
보살이 참회하는 법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악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보살이 모든 악을 드러냄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공덕을 회향하기 때문이고,
보살이 모든 공덕을 회향한다는 것은 한량없는 진귀한 보배를 모으기 때문입니다.
한량없는 진귀한 보배를 모으는 것은 모든 부처님께 권청(勸請)하기 때문이고,
모든 부처님께 권청하는 것은 모든 법을 거두어 갖기 때문이며,
모든 법을 거두어 갖는 것은 보살의 법을 행하기 때문이고,
보살의 법을 행하는 것은 중생을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위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갖가지 장엄을 굳게 지녀 버리지 않기 때문이고,
이 여러 장엄을 굳게 지녀 버리지 않는 것은 중생의 모든 착한 일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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