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고삐엣유웨 아흐닛꼬샤친(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를 찾아서)』
난다말라비왐사 큰스님
Ashin Nandamālābhivaṁ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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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는 것은 ‘주는 일’입니다. 내게 있는 물건에서 조금 떼어서 주는 일이 보시 선업입니다. 보시를 할 때는 나의 보시를 받는 존재가 이로움이 있기를 먼저 염두에 두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을 줄 때 ‘이 사람의 갈증이 사라지기를…’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아닌 상대방의 이로움을 위해서 할 때 매우 귀한 보시가 됩니다. 보디삿따bodhisatta(보살)들은 세 종류의 보시를 합니다.
첫 번째, 자신이 가진 물건을 다른 존재에게 나누어줍니다.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은 귀한 일로서 ‘다나 빠라미dāna-pāramī’라고 부릅니다. ‘빠라미pāramī(바라밀)’란 ‘고귀한 자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상대의 이로움과 번영을 위해서 자신의 물건을 주는 일이 ‘다나 빠라미’입니다. ‘다나 빠라미’가 무르익으면 한 단계 발전합니다. 자신 소유의 물건을 보시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주느냐 하면 자신의 신체 일부까지 줍니다. 예를 들면 피, 신장, 안구 등을 줍니다. 빠라미를 채우던 기간의 고따마 붓
다의 전신 시위왕은 자신의 눈을 보시했습니다(J499). 이처럼 자신의 신체 일부를 주는 보시를 ‘다나 우빠빠라미dāna-apāramī(보다 높은 빠라미)’라고 부릅니다. 자기 몸의 일부를 타인의 이로움을 위해 보시하는 겁니다. 이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자신의 목숨도 타인을 위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보시를 ‘다나 빠라맛타 빠라미dāna-paramattha-pāramī(가장 높은 빠라미)’라고 부릅니다.
보디삿따들은 이렇게 세 종류로 한 단계씩 올려서 보시했습니다. 유정물이든 무정물이든 보시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자기의 목숨까지 보시했습니다.
2. 알맹이와 껍데기
이쯤에서 우리 생에서의 ‘알맹이와 껍데기’를 구분해서 볼 만합니다. 무엇이 알맹이인가? 무엇이 버려야 할 껍데기인가?
내가 얻은 몸은 어머니 자궁 안에 있을 때부터 하루하루 자라서 점점 늙어갑니다. 마지막엔 아주 쇠약해집니다. 몸이라는 것은 어느 날 기능을 멈춰 버립니다. 그때 사람의 몸에서 찾을 수 있는 핵심 가치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존해 둘 만한 것이 몸에는 없습니다. 10년 사는 존재의 경우, 10년 살다가 죽으면 몸과 목숨이 분리됨과 동시에 몸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립니다. 그 사람의 수명이 60이건, 70이건, 80이건 목숨과 몸이 분리되는 즉시 그 몸에서 가져가 보존해둘 만한 것은 전혀 남지 않습니다. 모두 버려야 할 것들 뿐입니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버리지 않고 모셔둘 만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두 내다 버려야 할 것들뿐입니다. 생명이 있을 때는 가치 있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목숨과 몸이 분리되는 그 즉시 그 가치는 완전히 상실됩니다. 죽기 전에는 사랑하고 아껴주던 가족들조차도 시체가 되어 버리면 집안에 오래 두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 몸 안에 보존해 둘 만한 가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신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정신이란 금세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므로 거기서 가치를 찾아내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알맹이, 핵심이란 몸 안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신 역시도 생멸이 너무도 빨라서 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핵심가치를 얻을 수 있다면 몸 안에서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맹이와 껍데기를 구분해서 알게 되면 껍데기에 많은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알맹이를 많이 얻도록 시간을 배분할 겁니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자신이 지키는 계율과 이로운 습관들입니다. 대부분의 중생들은 이런 알맹이들은 안중에도 없고, 버려야 하는 껍데기를 수집하느라 용쓰며 삽니다. 또한 껍데기에 신경 쓰느라 많은 불선업을 짓기도 합니다. 알맹이를 채우느라 불선업을 짓게 되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껍데기인가? 무엇이 핵심인가? 이 답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답을 찾았으면 껍데기에는 신경 쓰지 말고 알맹이를 얻을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합니다. 알맹이를 모으지 못한다면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껍데기를 주워 담다 보면 알맹이를 챙길 시간은 사라집니다. 다음 생으로 갈 때는 버리고 가야 할 것들입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떠나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왓디 경vaḍḍhi-sutta(A10.74)」에서 삿다saddhā(신심), 실라sīla(계율), 수따suta(붓다의 법을 들음), 짜가cāga(보시), 빤냐paññā(지혜)가 알맹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정신에서 이 알맹이를 만들며 사는 겁니다. 알맹이를 챙길 줄 모르면 안 됩니다. 핵심을 챙기지 못하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보십시다. 나무의 알맹이는 나무둥치를 감싼 껍데기 안에 있습니다. 잎에도 없고 가지에도 없습니다. 그 둥치 안에만 있습니다. 핵심이 있는 자리를 알고 이 핵심을 가질 줄 아는 게 관건입니다. 내 몸 안에도 핵심은 없습니다. 너무나 빠른 정신 그 자체에도 없습니다. 정신을 갈고 닦아서 만들어 내는 부산물에만 핵심이 있습니다. 이 부산물을 만들 줄 알면 핵심을 얻을 겁니다. 만들 줄 모르면 핵심을 얻을 리 없습니다. 놓쳐 버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