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고경 상권
[부처님께서 대법고경을 말씀하시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구나! 이제 그대들을 위해 대법고경을 말해주겠다.”
그때에 허공에서 하늘과 용들이 같은 소리로 찬탄하였다.
“참으로 잘 했습니다! 가섭이여. 오늘 모든 하늘은 하늘꽃[天華]을 많이 내리고 모든 용왕은 감로수(甘露水)와 미세한 가루향을 내려 일체 중생을 안위하고 즐겁게 할 것이니, 세존께서 세우신 법의 맏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에 하늘과 용의 무리가 같은 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왕은 사위성에서
북을 치고 전라(戰蠡)를 불며
법왕은 기원(祇洹) 숲에서
커다란 법고(法鼓)를 치시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질문[問難]의 방망이로 대법고(大法鼓)를 두드려라. 여래ㆍ법왕께서 너를 위하여 말할 것이며, 천중천(天中天)께서 그대들의 의심을 해결해 줄 것이다.”
[화살을 뽑아내는 약]
그때에 부처님께서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신대방광(信大方廣)이라는 비구가 있는데, 4중(衆)이 그 이름을 들으면 탐ㆍ진ㆍ치의 화살이 모두 빠져나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섭아, 비유하자면 바사닉왕에게 상약(上藥)이라는 의원[耆婆子]이 있는 것과 같다.
만일 바사닉왕이 전쟁을 할 때에 상약에게,
‘그대는 지금 빨리 중생들을 위하여 화살을 뽑아내는 약을 가져오라’라고 말하면,
상약은 곧 소독하는 약을 갖고 온다.
왕이 그것을 전고(戰鼓)에 바른다.
약을 바르거나 훈증(薰蒸)하거나 두드리는데, 저 중생 가운데 독화살을 맞은 자는 그 북소리를 듣고나서 한 유순(由旬)이나 두 유순 사이에 화살이 모두 빠져나온다.
이와 같이 가섭아, 만일 어떤 이가 신방광(信方廣) 비구의 이름을 들으면 탐ㆍ진ㆍ치의 화살이 모두 빠져나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이 경을 계기 삼아 바른 법을 더 넓히고 그것으로써 ‘현전의 법’[現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큰 열매를 얻는 것이다.
대가섭아, 너는 잘 보아야 한다.
저 무심(無心)한 북에다 무심한 약을 바르거나 훈증하거나 두드려도 이 힘이 중생을 이롭게 한다.
하물며 저 보살마하살인 신방광비구의 이름을 듣고도 중생의 3독의 화살을 제거하지 못하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보살의 이름만 들어도 중생의 3가지 독화살을 제거할 수 있는데, 더욱이 세존의 명호와 공덕을 칭송하여 ‘나무석가모니’라 말하거나 석가모니의 명호와 공덕을 찬탄한다면 중생의 3가지 독화살을 뽑아내지 못하겠습니까?
이 대법고경을 듣고 중생을 위로하고 게송이나 구절로써 설명하여 더욱 널리 알린다면 3가지 독화살을 뽑지 못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계행이 청정한 비구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면 본원(本願)인 까닭에 일체의 부처님이 이 법을 모두 소유하시니, 이른바 짓지 않고 일으키지 않고 멸하지 않는 대법고경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너는 후생(後生)에 또한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4중(衆) 가운데 네 이름을 듣는 사람은 3가지 독화살이 모두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너는 지금 나에게 대법고경을 물어, 내가 멸도한 뒤에 세간에서 오랫동안 호지하고 설명하거라.”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를 위하여 대법고경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법고경에 대해서 조금 물어보라.”
[존재와 고락]
이때에 가섭이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의심나는 것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유(有)가 있으면 고락(苦樂)이 있고, 유가 없으면 고락이 없다’라 하셨으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유’가 없다는 것은 이른바 열반 제일의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고락을 여의면 열반 제일의 즐거움을 얻는다.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면 이것은 ‘유’이니, 만일 ‘유’가 없다면 고도 낙(樂)도 없다.
그러므로 열반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유’를 끊어야 할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의 유는 무상(無常)하며
또한 변하지 않음이 없노라
그 유가 있으면 고락이 있고
유가 없으면 고락도 없노라.
위(爲)가 없으면 고락이 없고
위가 있으면 고락이 있노라
모든 유위(有爲)를 즐거워 말고
또한 가까이 익히지 말아라.
사람이 안락을 얻으면
도리어 다시 괴로움에 떨어지며
열반에 이르지 못하면
안락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리라.
그때에 가섭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중생이 유를 행하지 않는 것이
열반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라네.
그들은 이름[名字]만을 즐거워하니
즐거움을 받는 이 없으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항상된 해탈은 이름이 아니어서
묘한 색(色)이 조용히 머무르니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들의 경계가 아니라네.
[‘색’이면서도 상주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색’이면서도 상주(常住)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이제 비유로 말해주겠다.
비유하자면 남방 마두라(摩頭邏)에서 온 선비와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묻자,
선비가 ‘마두라에서 왔소’라고 대답했는데,
그 사람이 곧 다시 묻기를,
‘마두라가 어느 쪽에 있는가’라고 하면,
그 선비는 곧 손으로 남방을 가리킬 것이다.
가섭아, 그 사람이 여기에서 믿음을 얻지 않겠느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선비가 직접 그곳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내가 보았기 때문에 너는 나를 믿을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어떤 선비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는 것과 같으니
나 또한 이와 같이
명자(名字)로 해탈을 설명하네.
비유하자면 어떤 선비가
멀리 남방에서 온 것과 같으니
나 또한 이와 같이
저 열반에서 나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