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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권
1.1.3. 염석가불연(念釋迎佛緣)
또 『관불삼매경』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부처님께서 부왕(父王)과 모든 대중들을 위해 『관불삼매경」을 말씀하셨다. 부처님께는 서른두 가지 상호[三十二相]와 여든 가지 좋은 모습[八十種好]이 있으며, 몸은 순금빛으로서 광명이 한량없었다.
그 때 그 자리 아래에 오백 명의 부처님의 제자[釋子]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모두 죄장(罪障)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색신(色身)이 마치 잿빛 같은 사람으로 보였고, 또 바짝 마른 바라문처럼 보였다. 그런 것을 보고 나서 울부짖으며 제 스스로 머리털을 뽑고 온몸을 땅에 던져 코에서 피까지 흘렸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로[安慰]하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울부짖지 말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해 주리라. 과거에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명호를 비바시(毗婆尸)라 하였느니라. 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상법(像法) 중에 한 장자(長者)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월덕(月德)이었느니라.
그에게는 오백 명의 제자(弟子)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총명(聰明)하고 지혜가 많아 통달하여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아버지인 장자는 삼보를 믿고 공경하면셔 여러 아들들을 위해 항상 부처님 법의 이치를 설하였다.
그러나 여러 아들들은 삿된 소견 때문에 전혀 신심이 없었다. 훗날 어느 때에 여러 아들들이 다 심한 병에 걸렸다.
아버지는 아이들의 앞에 이르러서 눈물을 흘리면서 합장하고 여러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삿된 견해로 부처님의 법을 믿지 않았다. 이제 무상(無常)의 칼이 너희들의 몸을 자르고 베거늘 그 무엇을 믿겠는가?
명호가 비바시인 불ㆍ세존이 계시니, 너희들은 그 명호를 칭송하라.〉
여러 아들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아버지의 말을 공경하였기 때문에 ‘나무불’ 하고 칭송하였다. 또 법(法)과 승(僧)을 부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칭송하고 난 뒤에 목숨을 마쳤는데, 그들은 부처님을 칭송한 까닭에 사천왕천(四天王天)에 태어났다.
천상의 수명이 다하고 나서는 이전에 삿된 소견 때문에 다시 지옥에 떨어졌는데, 옥졸(獄卒)인 나찰(羅刹)들이 뜨거운 쇠꼬쟁이로 그의 눈을 찔러 빼내었다.
이러한 고통을 받을 때에 그들은 아버지가 가르치셨던 부처님을 칭념(稱念)하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런 인연 때문에 그들은 지옥에서 나와서 인간세계에 태어났지만 가난하고 하천(下賤)하였다.
그 뒤에 식기불(式棄佛)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들은 그 때를 만났으나 다만 부처님의 이름만 듣고 부처님의 형상은 보지 못했으며, 그 뒤에 수섭불(隨葉佛)ㆍ구루진불(拘樓秦佛)ㆍ구나함불(拘那含佛)ㆍ가섭불(迦葉佛)이 나오셨으나 또한 모두 명호만 들었지 그 형상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여섯 부처님의 명호만이라도 들었기 때문에 지금 나와 함께 석종(釋種)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내 몸은 단엄하여 염부금(閻浮金)과 같은데, 너희들은 잿빛처럼 보고 바짝 마른 바라문처럼 보고 있다.
그것은 다 전세(前世)의 삿된 견해 때문에 그러한 것이니라.
‘너희들은 지금 과거 부처님의 이름과 너희들의 아버지를 칭송하고 또한 내 이름과 미륵불(彌勒佛)을 칭송하라.
그렇게 칭송하고 나서 예배하라. 그리고 대중들과 큰 덕이 있는 여러 승가들을 향해 온몸을 땅에 딘지고 삿된 견해 때문에 지은 죄를 다 드러내 놓고 참회하라.’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참회하였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 몸의 금빛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음을 보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지금 부처님의 서른두 가지 상(相)과 여든 가지 좋은 모습과 한량 없이 많은 광명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모두 수다원을 얻고는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요구하고 다시 아라한을 증득하였다. 삼명(三明) 육통(六通)과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을 구족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도한 뒤에 만약 어느 누구든 내 이름을 칭송하거나 ‘나무제불(南無諸佛)’이라고 하면 그가 얻는 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으리라.’
또 『대비경(太悲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보아라. 여래께서 길을 가설 때에 능히 대지(大地)로 하여금 높은 곳은 낮아지게 하고 낮은 곳은 높아지게 하여 높고 낮은 모든 곳이 다 평정(平正)을 얻었느니라. 여래께서 지나가신 뒤에 대지는 다시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모든 나무와 숲들도 부처님을 향하여 기울어졌으며, 나무의 신(神)이 몸을 나타내어 머리 숙여 부처님께 예배하였었는데, 여래께서 지나가신 뒤에는 나무들도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일체의 구릉(丘陵)과 구덩이가 메꾸어졌고 변소의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막혔으며 총림(叢林)과 기와 조각 자갈들도 모두 말끔하게 치워져 평평하게 바르게 되고 깨끗해졌다. 향기가 그윽한 갖가지 꽃들이 땅에 퍼져 있어서 여래께서 그 위를 밟고 지나갔느니라.
이렇게 정(情)이 없는 모든 물질들도 오히려 모두 여래를 향해 기울어졌거늘, 더구나 정이 있는 것들이야 더욱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무슨 까닭인가?
내가 본래 보살행(菩薩行)을 수행할 때에 일체의 사람들이 처해 있는 곳에서 몸을 기울여 겸손하고 낮추어 예를 올리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었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착한 업[善業]으로써 부처를 이룩하고 난 뒤에도 유정(有情)과 무정(無情)들이 여래께서 길을 갈 때마다 몸을 기울이고 머리를 숙여 예배하지 않음이 없었느니라.
내가 본래 과거에 청정하고 미묘하며 뜻에 맞는 자산(資產)을 가지고 지극한 마음으로 손수 모든 중생들에게 베풀어 주었으니, 이러한 업보(業報) 때문에 여래가 길을 갈 때면 대지가 평평하고 바르게 되느니라.
내가 한량없이 많은 세월 동안 여러 현성(賢聖)의 처소에서 물 뿌리고 쓸어 깨끗이 하고, 또 기와 조각이나 자갈이 없게 하였기 때문에 길을 갈 때면 일찍이 도로를 청소하고 방사(房舍)의 먼지를 깨끗하게 치우느니라.
나는 평등한 마음으로써 높고 낮음이 없고 청소하여 깨끗하게 하였으며 일체의 어느 때에나 항상 보리(菩提)를 구하고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었으니,
이러한 선근(善根) 때문에 불ㆍ여래는 태어나는 세상마다 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오는 길머리가 저절로 청정해지며,
대지가 손바닥처럼 평평해지고 나아가 높이가 팔만 사천 유순(由旬)이요, 큰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깊이가 또한 그만큼(팔만 사천 유순)이나 되는 수미산왕(須彌山王)과 금강(金剛)처럼 견고하고, 높이 십육만 팔천 유순이나 되는 철위산(鐵圍山)에까지도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 몸체를 기울이고 머리를 숙여 예 올리고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그리하여 혹시라도 멀리 피하려거나 기울여 예경(禮敬)하지 않으려 하는 그런 사실은 전혀 없었느니라.’
또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하였다.
“여래는 과거에 마음이 깨끗하고 집착을 여의며 중생들을 해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발[脚足]이 더럽혀지지 않고 벌레나 개미들도 손상하지 않는다.”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여래께서 길을 다니실 때에 선을 신지 않으셨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욕심이 적게 하려고 함이요,
둘째는 발바닥에 있는 윤상(輪相)을 보이려고 함이며,
셋째는 사람들이 보고서 가뻐하게 하려고 한 까닭이다.
부처님께서 다니실 적엔 발이 땅에서 네 치쯤 떨어지나니, 그것에도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땅에 벌레와 개미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땅에 산 풀이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신족(神足)을 나타내려 한 까닭이요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도록 하려고 한 까닭이다.
부처님께서 땅 위를 다니실 적에 높고 낮은 곳이 모두 평평해지는데, 세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본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행하여 일제를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땅이 물 위에 있고, 물 속에 있는 귀신과 벌레와 개미 따위의 온갖 것들도 부처님의 발 밑에서 모두 안온해지려고 하는 마음과 똑같은 심정으로 뜻을 세웠다. 그런 까닭에 낮은 데는 높아지고 높은 곳은 낮아진다.
둘째는 모든 하늘과 귀신들 이 복을 짓기 위하여 부처님을 위해 땅을 청소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부처님께서 보살로 계실 적에 도로를 개통하여 편리하게 하였고 다리 [橋梁]를 놓아 사람들이 건너다니게 하였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복을 얻었다. 그리하여 높고 낮은 곳을 평평하고 바르게 하여 사람들의 마음도 또한 그렇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세존의 몸은 좋고 피부의 모습도 섬세하고 얇아서 먼지나 흙이 몸에 묻지 않는다.
비유하면 마치 연꽃 옆사귀에 티끌이나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보살이 건토산(乾土山) 속을 걸어 다니실 적엔 흙이 발에 묻지 않았으며, 남풍(嵐風:猛風ㆍ旅風)이 불어와서 토산(土山)을 깨뜨려 그 산을 흩어지게 해 먼지로 만들어도 마침내 한 티끌도 부처님의 몸에는 묻지 않았다.
또 보살이 밥을 떠서 입 안에 넣으니, 그 때에 인두(咽頭)와 후두(喉頭) 옆의 양쪽에서 감로(甘露)가 흘러 나와 모든 맛을 조화시켜 그 맛이 너무도 깨끗하였다.
그런 까닭에 맛 가운데 최상의 맛을 얻었다고 말한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장차 용(龍)이나 뱀[蛇]의 무 리에 태어나리니, 과거 세상에서부터 그 중간을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도 오히려 공경함이 없기 때문에 잡이 많고 어리석기가 그지없다.”
또 『사분율(四分律)』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장로(長老)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능히 법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요
현세(現世)에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장래에 좋은 갈래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1.1.4. 염미타불연(念彌陀佛緣)
[문] 무엇을 정토(폐上)라고 이름합니까?
[답] 세계가 맑고 깨끗한 것을 정(淨)이라고 하고, 곧 깨끗한 데 사는 것을 토(土)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섭론(攝論)』에서 말하였다.
“살고 있는 땅에 다섯 가지 혼탁함이 없으니, 그것은 마치 파리가(頗梨柯) 따위와 같다. 이것을 청정한 국토[淸淨土]라고 이름한다.”
『법화론(法華論)』에서 말하였다.
“번뇌(煩惱)가 없는 중생이 살고 있는 곳을 정토(淨土)라고 한다.”
정토도 동일한 것이 아니어서 거기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성토(法性土)이니, 진여(眞如)로써 본체를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섭론(梁攝論)』에서 말하였다.
“연화왕(蓮華王)은 정토를 의지하는 곳으로 삼나니, 비유하면 법계의 진여가 정토의 처소가 되어 그 본체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설보토(實報土)이니, 『섭론』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 가지 공(空:我空ㆍ法空)으로써 문(門)을 삼고 세 가지 혜(慧)로써 드나드는 길을 삼으며,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로 수레를 삼고, 근본의 분별 없는 지혜로써 작용[用]을 삼는다. 이것은 다 과보의 공덕에 의하여 나온 체(體)를 분별하는 것이다.
셋째는 사정토(事淨土)이니, 이른바 가장 절묘한 일곱 가지 보배로서 이것은 다섯 가지 티끌인 색질의 성품[色性]과 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으로 토상(土相)을 삼기 때문이다.
『섭론』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두루 비추는 광명은 일곱 가지 보배가 있는 곳이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 경계의 모습 가운데 갖가지를 사이사이에 섞어서 장엄(莊嚴)한다.”
그러므로 『정토론(淨土論)』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가지 귀중한 보배의 성품을 갖추어 묘한 장엄을 구족하였다.”
또 새로 번역된 『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에서 말하였다.
“가령 위와 같은 세계에서부터 큰 불이 일어나 타오르는 동안에 이르기까지 여래께서 그 가운데 계시면서 경행(經行)하거나 머물러 계시거나 앉거나 눕는다면 그 곳엔 저절로 여넓 가지 공덕의 물이 땅에서 솟아나게 될 것이다.”
넷째는 화정토(化淨土)이니, 이른바 부처님께서 일곱 가지 보배로 변화시키신 다섯 가지 대상경계[五塵:色ㆍ聲ㆍ否ㆍ味ㆍ觸]로 화토(化土)의 본체를 삼기 때문이다.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써 땅은 모두 유연(柔軟)해지고 언덕과 흙과 모래와 자갈과 돌도 없으며 나아가 마침내는 서방 무량수불(無量壽佛)의 극락세계와 같아진다.”
또 『대장엄론(大莊嚴論)』에서 말하였다.
“지혜의 자재(自在)함으로 말미암아 그 욕망을 따라 수정(水精)과 유리(琉璃) 따위의 청정한 세계를 나타낸다.”
또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땅을 눌러 깨끗한 등의 일들을 나타내셨다.”
또 『십지경(十地經)』에서 말하였다.
“모든 중생들이 마음 속으로 즐겨 보는 것을 따라 나타내 보이기 위한 까닭이다.”
이러한 여러 경론에서 밝힌 것들은 모두 변화에 의하여 정토를 만든 것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나타냈기 때문에 있는 것이요, 신통력을 거두었기 때문에 곧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토(化土)라고 이름한다.
[自述]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비록 정토에 네 가지가 있지만, 그러나 줄거리를 요약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보토(報土)요, 다른 하나는 화토(化士)이다.
이 두 가지는 곧 이(理)와 사(事) 두 가지 국토를 포함하고 있다.
첫 번째 보토라는 것은 이른바 불ㆍ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모든 선(善)의 본체로서 바로 무루(無漏)요, 삼계(三界)에 섭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토론』에서 말하였다.
“저 세계의 모습을 관찰하면 뛰어나기가 삼계의 도(道)보다 낫다.”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묘(妙)한 정토가 있으니 뛰어나기가 삼계를 초월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거처하사고 계신 곳은 처소가 없는 곳으로 처소를 삼고 있으므로 시방세계를 벗어나 있어서 혹은 법신(法身)에 의지하여 정토에 안주(安住)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 말하였다.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도 또한 청정한 세계가 계시는 것이 마치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국토와 같았으며, 그 미타불에게도 또한 엄정(嚴淨)하고 엄정하지 못한 세계가 있어서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았다.”
또 『열반경』에서도 말하였다.
“나는 진실로 염부제(閻浮提) 세계에 태어나지 않았다.”
또 『법화경(法華經)』의 게송에서도 말하였다.
항상 영취산(靈鷲山)에 계시거나
또는 그 밖에 다른 곳에 계시면서
중생 세계의 겁(劫)이 다하여
큰 불에 타는 것을 보신다.
나의 이 국토는 안온하고
천인(天人)들이 항상 충만하게 살며
동산이나 모든 집과 누각들은
갖가지 보배로 장엄하였다.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여래의 정토는 혹은 여래의 보관(寶冠)에 있고 혹은 귀걸이[耳璫]에 있으며, 혹은 영락(瓔珞)에 있고 혹은 의상의 무늬에 있으며, 혹은 털구멍에 있다. 이와 같이 털구멍이 이미 이 세계를 수용(受容)하였다.”
그러므로 『십주론(十住論)』에서 말한 내용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한 번 발을 들어 결으시면 곧 항하(恒河)의 모래알처럼 많은 삼천세계를 지나가신다.”
그 일이 이와 같나니, 화토(化士)의 처소란 다만 살고 있는 곳이 화토일 뿐이요 특별한 곳이 아니다. 다만 보토(報土)에 의하여 거친 모습[麁相]을 일으켜 혹은 시방에 통하기도 하고 혹은 그 세계에 있으면서 삼승(三乘)의 사람과 하늘 등을 인도하는 것이 아미타세존과도 같다.
그리하여 이 인계(忍界)의 범소(凡小) 중생들을 인도하여 정토의 나라에 안치하되 혹은 예토(穢土)에서 정토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마치 땅을 어루만져 정토를 나타낸 것과 같다. 비유하면 그것은 천궁(天宮)과 같으니, 그 일들이 이와 같다.
혹은 중생의 공상(共相)인 기세계(器世界)의 사이에서 종자를 감수(感受)함으로써 그 가운데에서 깨끗하고 더러운 경계를 나타내어 그 여섯 갈래 세계를 따라 각각 보는 것이 동일하지 않다.
이것은 다 바깥 명언(名言)의 훈습(熏習)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식(識)의 종자를 성취하고 기세계를 감득(感得)하여 영상(影像)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영상은 바로 본식(木識)의 상분(相分)이니 공상(共相)의 종자와 영상으로 말미암은 모습이다.
저 현상(現相)은 식(識)이 인연이 된 것이요 곧 이 공상은 내보(內報) 증상연(增上緣)의 힘을 말미암은 것이니, 이와 같이 괴로움과 즐거움을 감득하는 것이 같지 않다.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십왕(心王)보살마하살이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佛子)여,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인 석가모니불 찰토(刹土)의 일 겁(劫) 은 안락(安樂)세계 아미타불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안락세계의 일 겁은 성복당(聖服幢)세계 금강불(金剛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며,
성복당 세계의 일겁은 불퇴전음성륜(不退轉音聲輪)세계 선락광명청정개부불(善樂光明淸淨開敷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불퇴전음성륜세계의 일 겁은 이구(離垢)세계 법당불(法憧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며,
이구세계의 일 겁은 선등(善燈)세계 사자불(師子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선등세계의 일 겁은 선광명(善光明)세계 노사나장불(盧舍那藏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며,
초출(超出)세계 법광명청정개부연화불(法光明淸淨開敷蓮華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요,
초출 세계의 일 겁은 장염혜(莊嚴慧)세계 일체광명불(一切光明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이며,
장엄혜세계의 일 겁은 경광병(鏡光明)세계 각윌불(覺月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입니다.
불자들이여, 이와 같이 차례로 나아가 백만 아승기 세계에 이르기까지 최후 세계의 일 겁은 승련화(勝蓮華)세계 현수불(賢首佛) 찰토의 하루 낮 하룻밤입니다.
그리고 보현(寶賢)보살 등 여러 큰 보살들이 그 가운데 가득히 살고 있습니다.’”
또 「우바제사론(優波提舍論)』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저 세계의 모습을 보아라.
삼계의 도(道)보다 뛰어나니
구경(究竟)에는 허공처럼
넓고 또 커서 한계가 없네.
바른 도의 큰 자비는
세간을 벗어나는 선근(善根)을 내니
깨끗한 광명이 만족(滿足)하여
마치 거울이나 해ㆍ달 같구나.
[自述] 범부와 이승(二乘) 같은 이들은 예토(穢土) 가운데에서 아미타불을 뵙고 여러 보살들은 정토(淨土)에서 아미타불을 뵙는다.
이 두 가지 설(說)에 의하면 보토(報土)는 곧 한결같이 순수하고 청정한 곳으로 향하고 응토(應土)는 더러운 것도 있고 깨끗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정토론(淨土論)에서 말하였다.
“국토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순수한 정토이니 오직 불과(佛果)만 있을 뿐이고,
둘째는 정예토(淨穢土)이니 이른바 깨끗한 것은 많고 더러운 것이 적은 것으로서 곧 팔지(八地) 이상이며,
셋째는 깨끗함과 더러움이 평등한 국토이니 이른바 초지(初地)에서 칠지(七地)까지이고,
넷째는 예정토(穢淨土)이니 이른바 더러운 것은 많고 깨끗한 것이 적은 것으로서 곧 지전(地前)의 성지(性地)이며,
다섯째는 잡예토(雜穢土)이니 이른바 성지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다섯 번째의 사람은 뒤의 한 국토만 보고 앞의 네 국토는 보지 못하며,
네 번째 사람은 뒤의 두 국토는 보지만 앞의 세 국토는 보지 못하며,
세 번째 사람은 뒤의 세 국토는 보고 앞의 두 국토는 보지 못하며,
두 번째 사람은 뒤의 네 국토는 보고 앞의 한 국토는 보지 못하며,
첫 번째 부처님께서는 위 아래 다섯 국 토를 다 알고 다 보신다.”
또 『아미타고음성왕다라니경(阿彌陀鼔音聲王陀羅尼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서방 안락 세계에 지금 부처님께서 계시니, 그 명호는 아미타이시다. 만일 사부(四部) 대중들이 그 부처님의 명호를 바르게 받아 지닐 수만 었다면 이 공덕으로써 그가 목숨을 마칠 즈음에 임박해서는 아미타불께서 곧 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에게 가서 그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가 아미타불을 보고 나서 곧 경하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깊이 생긴다면 그 공덕이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그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포태(胞胎)의 더럽고 탐욕스런 형상을 영원히 떠나 순수한 곳의 곱고 묘한 보배 연꽃 속에 화생(化生)하여 여섯 가지 신통을 갖추고 광명이 찬란하게 빚날 것이다.
아미타불께서는 성문(聲聞)들과 함께 계신다.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께서 계시는 그 나라의 이름은 청태(淸泰)라고 한다.
성왕(聖王)이 계시는 그 생은 가로와 세로가 십천 유순(由旬)이요, 그 가운데에는 찰제라(刹帝利)의 종족이 가득히 살고 있다.
아미타불 아버지의 이름은 윌상전륜성왕(月上轉輪聖王)이요, 그 어머니의 이름은 수승묘안(殊勝妙顏)이며, 그 아들의 이름은 윌명(月明)이다.
받들어 섬기는 제자의 이름은 무구칭(無垢稱)이요, 지혜 있는 제자의 이름은 현광(賢光)이 며, 신족(神足)이 있고 정근(精勤)하는 제자의 이름은 대화(大化)이다.
그 당시 마왕(魔王)의 이름은 무승(無勝)이고 제바달다(提婆達多)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적정(寂靜)이니라.’
또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맹렬한 불 속일지라도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念)하면 틀림없이 바로 지나가게 되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또 『아마타경(阿彌陀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 스님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아사세왕(阿闍世王)의 태자와 오백 장자(長者)의 아들들은 이 뒤로 무수히 많은 겁을 지나면 모두 다 틀림없이 부처가 되어 아마타부처님과 똑같이 되리라.’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이 아사세왕의 태자와 오백 장자의 아들들은 보살도(菩薩道)에 머무르면서 무앙수(無央數) 겁 동안 저마디 각각 사백억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또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에게 공양하고 있다. 아사세왕의 태자와 오백 장자의 아들들은 모두 전세(前世)의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나의 제자였었는데, 지금 다시 모여 서로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