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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론(辯正論) 제1권
1. 삼교치도편(三敎治道篇) ①[2]
[공자, 나라를 보전하는 9류(流)]
공자가 말했다.
“전한(前漢)의 『예문지(藝文志)』에
‘몸을 온전히 하고 나라를 보전하는 데는 무릇 9류(流)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유류(儒流)로서 이른바 음과 양을 따르고 교화를 베풀어서 당우(唐虞)의 정치를 말하고 중니(仲尼)의 도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요,
둘째는 도류(道流)로서 이른바 약(弱)함을 지키고 스스로 낮추어서 요순(堯舜)의 읍하고 사양하는 덕을 밝히고 임금의 자리에 있어서는 정치하는 기술을 밝히고 역(易)을 받들어 겸양(謙讓)함이요,
셋째는 음양류(陰陽流)로서 이른바 하늘의 역상(歷象)을 따라 공경스럽게 농사의 시기를 가르쳐 주는 것이요,
넷째는 법류(法流)로서 이른바 상벌(賞罰)을 밝히고 법을 존중하여 예제(禮制)를 돕는 것이요,
다섯째는 명류(名流)로서 이른바 이름을 바르게 하고 여러 사람들의 말을 쫓아 일을 이룸이요,
여섯째는 묵류(墨流)로서 이른바 사당을 밝히고 제사를 근본으로 하며 늙은이를 봉양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요,
일곱째는 종횡류(縱橫流)로서 이른바 명을 받아서 전대(專對)하는 등의 권사(權事)를 함이요,
여덟째는 잡류(雜流)로서 이른바 유가와 묵가의 도리를 겸하고 명가와 법가의 가르침을 머금어서 나라의 대체를 알아 일에 통달하지 아니함이 없음이요,
아홉째는 농류(農流)로서 이른바 경상(耕桑)을 권하고 장려하여 음식물과 재화를 갖추는 것이니, 그의 도를 따르면 백성들을 편히 할 것이요, 그의 일을 행하면 국가를 이롭게 하여서 정치가 갖추어지고 백성들이 만족할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의 여러 방면으로 통한 말과 우학(右學)의 지극한 말씀이 풍우(風牛)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통인, 불교의 9류(流)]
통인이 말했다.
“하나를 보면 백 가지를 안다 하였으니, 이것을 보아 저것을 밝힘이 족하겠습니다.
다만 부처의 가르침이 깊고 넓어서 이름과 뜻이 크게 많아 총괄하여 말하면 현록(玄錄)을 모두 갖추었으나 이제 그대를 위하여 대략 대유(大猷)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상서로운 구름이 허공에 흩어지고 상서로운 연꽃이 바다에 나타남으로부터 반자교(半字敎)와 만자교(滿字敎)의 문이 훤하게 열렸고, 공(空)과 유(有)의 방책이 겸하여 드날렸으며, 비야리의 성에는 정(情)을 돌려 법에 들어오는 계책이 있었고, 영취산(靈鷲山)에는 말(末)을 섭하여 본(本)으로 돌아오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용(用)에 있어서는 물이 1천의 달을 나누는 듯하고, 체(體)에 있어서는 거울이 1만의 형체를 비추듯 합니다.
함식(含識)들의 분별을 없애고 함께 자비의 구름을 덮게 하였으니 진사(塵沙)의 부처님 국토가 다 단 이슬에 젖었었습니다.
그리고 백전(白氈)에서 광명을 거두고 제하(提河)에서 그림자를 갖춤으로부터 이에 5백 명의 아라한들이 상선(象扇)을 흔들면서 듣고 수지하였고 8만의 경전[修多羅]이 용상(龍牀)을 떨치면서 기사(器瀉)하였습니다.
구슬함의 보배 인(印)은 이미 왕궁에 넘쳤고 패다라 잎의 범문(梵文)은 도리어 해장(海藏)에 찼었습니다.
당(堂)에 오른 이가 1만으로 계산하며 다투어 신전(身田)에서 목욕하였고 담을 진 자는 백억 명이지만 다투어서 마음 나무를 열었습니다.
가섭 마등(迦葉摩騰)이 낙양(洛陽)에 들어오고 강승회(康僧會)가 오(吳)나라를 유람함에 이르러서 법고(法鼓) 소리가 멀리 흐르고 함께 지혜 바람의 업을 전하였으니 유(類)로써 서로 모음에 또한 9류(流)가 있어서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나타내어 9록(籙)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진전(眞詮)이요, 둘째는 권지(權旨)요, 셋째는 계품(戒品)이요, 넷째는 선문(禪門)이요, 다섯째는 주술(呪術)이요, 여섯째는 논부(論部)요, 일곱째는 주해(注解)요, 여덟째는 장소(章疏)요, 아홉째는 전기(傳記)입니다.
진전(眞詮)이라 한 것은 대개 방등(方等)의 중심이요, 모든 부처의 요관(要觀)으로서 일을 거느리지 아니함이 없고 이치를 다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그 말이 교묘하고 그 뜻이 심원하여서 10선(仙)의 심오한 행을 쌓았고 여덟 장(藏)의 현묘한 글을 거느렸기에 연각(緣覺)들이 건너가며 구하여도 헤매는 것이 바다에 떠 있는 것과 같고, 성문(聲聞)들이 듣고서는 황홀하기가 하늘을 엿보는 듯하였습니다.
이는 화엄(華嚴)의 큰 뜻이어서 견망(見網)을 찢는 큰 종(宗)이요, 삿된 군사를 깨뜨리는 요긴한 기술이요, 구슬이 흐린 물을 맑히고 약이 깊은 숲에 나타남과 같습니다.
혼미한 세상이 이미 나뉘고 하늘을 도는 취함이 갑자기 깨였고, 즐거움의 원인이 극히 찼고 항상한 과가 원만한 것은 이는 열반의 극한 뜻이어서 세 짐승이 자취를 혼동함에 1승(乘)이 고삐를 매어서 옷의 구슬이 이미 나타나고 상투의 보배가 이에 전하여졌으니 열 가지 위 없는 덕의 큰 규모요, 네 가지 안락(安樂)의 묘한 행입니다.
다보(多寶) 부처님께서 하셨던 것을 거울로 삼고 장자(長者)의 근본 마음을 깨닫는 것은 법화(法華)가 회통하여 돌아옴입니다.
이 열 가지의 여(如)를 펴서 이 네 가지의 절묘(絶妙)한 데 명합(冥合)하여서 색(色)에 나아가면서 색이 아니요, 이름을 여의어서 이름이 없습니다.
소소(昭昭)하게 여섯 가지 바라밀의 배를 띄우고 미미(瀰瀰)하게 세 가지의 공한 언덕에 오르는 것을 반야(般若)의 현묘한 칼날이라 이릅니다.
이치를 포괄하여 들면 이 네 가지에 있다 하겠습니다.
권지(權旨)라 함은 부처님[世雄]의 방편의 가르침입니다.
5탁(濁)의 무리들을 유도(誘導)해서 3승의 근기에 머물게 하여서 피곤한 무리들을 인접(引接)하여 화성(化城)을 두었으며 빈궁한 자식을 인도하려고 똥 그릇을 잡으셨습니다.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 존자가 경을 편집하였으니, 이른바 네 가지의 아함(阿含)과 8부(部)의 비유와 본생(本生)과 본사(本事)의 뜻과 관화(貫華)와 산화(散華)의 말씀들입니다.
이는 왕종(王宗)이 분판(分判)한 것이요, 안예(安叡)가 편록(編錄)한 것입니다. 산설(散說)을 반연하기 때문에 부질(部)이 더욱 많습니다.
계품(戒品)이라 함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스승이 되었고 승려들을 교훈하는 아름다운 법이 된 것입니다.
또한 나가자면 반드시 문으로 말미암아야 하고 건너가려면 꼭 배를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계품은 온갖 착함의 사다리와 터요, 5승(乘)의 다리와 발입니다.
혹은 때와 장소에 입각해서 일을 따르고 근기를 따라 7취(聚)의 딴 이름과 5편(篇)의 다른 뜻이 있어서 열고 닫는 말이 이미 달랐고 가볍고 무거운 모양이 같지 아니하기에 인도[天竺]의 유행은 이에 5부(部)로 나뉘었고, 중국[中華]의 전습(傳習)은 이제 네 가지가 있습니다.
가섭 존자가 그 강유(綱維)를 시작하였고, 사나굴다(闍那崛多) 존자가 그 조관(條貫)을 나누었습니다. 바른 풍속을 교훈하는 데는 이미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악을 멸하여 없애고 착함을 내는 데는 또한 계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계실 적에 교범(憍梵)으로 인하여 이루어졌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의 전수는 실로 우파리(優波離) 존자가 열었으니, 이는 3업(業)의 사신(司辰)이요, 6근(根)의 어사(御史)입니다.
선문(禪門)이라 함은 3학(學)의 마음을 닦는 기원이어서 능히 성인을 얻는 원인이 되고 가장 번뇌[漏]를 다하는 요점이 됩니다.
그러기에 성문이 참선하는 생각에 매달리면 물이 마음의 못을 맑히고, 보살이 훈수(熏修)하면 꽃이 뜻의 나무에 핍니다. 그러기에 참선이 능히 지혜를 내는 것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입니다.
4등(等)과 6통(通)이 참선하는 숲에 쉬어야 비로소 나아가고 8제(除)와 10입(入)이 선정의 굴[定窟]을 의지하여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지도론(智度論)』에
‘선정의 힘으로 지혜의 약을 복용하여서 신통을 얻고는 돌아와 중생을 화도(化導)한다. 하물며 세계를 한 털구멍에 두고 바닷물을 모아서 5미(味)를 만듦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법을 반연하고 경계를 살피는 데는 오직 고요하여야 비춘다고 함이 아마도 이를 말함이겠지요.
주술(呪術)이라 함은 중생의 죄를 소멸시키는 교훈으로서 독과 해를 없애는 방법입니다.
아만을 꺾고 흉악함을 꺾으며 위태함을 구하고 죽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요, 선제(禪提)가 귀신을 쫓고 선니(先尼)가 귀신을 경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섯 글자가 재앙을 소멸하고 7불(佛)이 목숨을 보호하니 보통을 돌려서 도에 합하고 물건을 인하여 힘씀을 이룹니다. 세상을 건지는 기술이 뉘라서 이와 같으리오.
논부(論部)라 함은 삿된 것을 꺾고 바른 것을 세우며 막힌 것을 풀고 몽롱한 것을 여는 의리의 곳간입니다.
시대는 정법에서 상법(像法)으로 옮겨 갔고, 사람은 순박한 데서 엷은 것으로 변하였기에 곧은 길은 오르기 어렵고 삿된 길은 들어가기 쉽습니다.
설산(雪山)에서 약을 캔다는 것이 독한 풀만 다투어 거두고, 깊은 물에서 구슬을 구한다는 것이 다투어 기와와 조약돌만 가지게 합니다.
그러기에 법을 통달한 성문과 선등(禪燈)을 전한 보살이 저들의 삿된 이론을 꺾고 이 바른 경을 폈으니 이에 수고래와 암고래가 이미 없어짐에 5예(翳)가 그 때문에 없어졌고, 안개가 갬에 3광(光)이 드디어 밝아진 것과 같습니다.
고록(古錄)의 서문에 ‘지극한 성인의 법도[繩墨]를 경이라 이르고, 제자들이 경을 풀이한 것을 논이라 한다. 논이라 함은 좌구명(左丘明)이 전을 지은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가리(呵梨)는 ‘경에 만일 논이 있으면 뜻을 쉽게 이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가전연(迦旃延)이 실제(實諦)를 깊이 요달함으로써 건도(乾度)의 글을 지었고, 여러 성인들이 이름과 이치를 넉넉히 앎으로써 바사(婆沙)의 설을 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성실론(成實論)』과 『아비담론(阿毘曇論)』은 끝[鋒穎]이 정밀하니,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다 소승(小乘)의 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기[幢]를 세움에 이르러서는 마명(馬鳴)보살이 그 으뜸이라 일컬으니 바른 법의 횃불을 태웠으며, 용수(龍樹)보살이 그의 기원을 거느림에 이르러서는 『백론(百論)』으로는 외도들을 깨뜨려서 삿된 것을 가려냈고, 『중관(中觀)』으로는 안의 치우친 집착을 버렸으며, 열두 가지 현문(玄門)의 정밀함과 마하연(摩訶衍)의 크고 깊음은 아울러 큰 가르침의 재목입니다.
주해(注解)라 함은 글에 나아가 뜻을 나타내어서 진술을 하고 창작하지 않는 유(類)입니다.
아울러 상(像)을 세워서 형상을 취하고 일에 나아가 이치를 내는 것이니, 도생(道生)과 승조(僧肇)가 『정명경(淨名經:維摩經)』을 주석하고 지둔(支遁)과 육일(陸一)이 『반야경(般若經)』을 주석함과 같아서 말을 붙이는 것이 깨끗하고 뜻을 내는 것이 정확합니다.
옛적 공자[仲尼]가 죽고 나서는 은미한 말을 순자(筍子)와 맹자(孟子)에게 의탁하였고, 부처님[大覺]께서 열반하시고서는 법인(法印)을 통한 사람에게 전하여서 높은 산처럼 우러러 그쳐서 실지로 어리석은 자에게 열어 주신 것입니다.
장소(章疏)라 함은 강령(綱領)을 들고 이끌어서 남긴 것을 줍고 빠진 것을 보충하여서 1부(部)의 글과 뜻을 통하게 한 것이니, 또한 빠지고 잊은 것을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
큰 법이 처음 건너왔을 적에는 해석할 겨를이 없더니 위안(衛安)과 백원(帛遠)이 현묘한 문장을 처음 열고서는 이로부터 말자루를 다투어 도와 빙부(憑敷)의 『대품경(大品經)』과 애량(愛亮)의 『열반경(涅槃經)』과 집경(集鏡)의 『아비담론(阿毘曇論)』과 정림(靜琳)의 『성실론(成實論)』에 이르기까지 어찌 다만 말이 생략되고 뜻이 깊을 뿐이리오. 진실로 또한 뜻이 두루하고 글이 맞아서 마치 단청(丹靑)으로 모양을 그리고 수경(水鏡)으로 형상을 그린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해와 달을 달아놓은 것과 같아서 술그릇과 도마[罇俎]와 같다고 일컫기에 족합니다.
전기(傳記)라 함은 불교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마치 반고(斑固)와 사마천(司馬遷)이 기술하여 짓고, 진수(陳壽)와 범엽(范曄)이 글을 닦으며, 왕은(王隱)이 진의(晋儀)에 서문을 쓰고, 원굉(袁宏)이 한기(漢紀)를 저술함과 같은 것은 것이니, 이는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작은 기술이요, 석학(碩學)을 움직이는 기이한 재주로서 충(忠)과 효(孝)의 작은 착함이요, 사신(史臣)을 흔드는 서찰[芳翰]입니다.
하물며 3달(達)은 숨기 쉽고 8계(戒)는 생각하기 어려움이겠습니까?
탁랑(卓朗)이 그의 아름다운 소리를 오로지 하고 법개(法開)가 그의 맑은 말을 전파함이겠습니까?
백조(帛祖)는 이미 혜강(嵆康)과 완적(阮籍)에 견주겠고, 지둔(支遁)은 또한 왕필(王弼)과 하안(何晏)에게 짝하겠으니, 고일(高逸)하고 은절(隱節)한 글과 둔세(遯世)하고 유방(遊方)한 기록과 10과(科)로써 세상을 제도하는 선비와 5부(部)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어진 이들의 아름다운 덕의 형용은 간소(簡素)함이 이에 있다 하겠습니다.
법왕(法王)이 궤칙(軌則)을 드리운 것을 찾아보니, 고통의 윤회를 쉬게 함이었습니다. 이미 병(病)이 1만 가지의 다름이 있기에 약이 하나만의 준칙(準則)이 없습니다. 그래서 글이 천부(天府)에 차고 게송이 용궁(龍宮)에 쌓여 있습니다. 향상(香象)의 8억이 초분(初分)을 짊어지고서도 이기지 못하였으며, 5천 명의 아라한(阿羅漢)이 흩어진 꽃을 열람하고도 두루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물며 미진수(微塵數) 티끌 같은 보축(寶軸)과 바닷물로 먹을 감아 점을 찍은 현묘한 말은 10지(地) 보살이 보고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고 8항(恒)이 보고서도 헤아리지 못하니 어찌 유교와 도교와 명가(名家)와 법가(法家)의 무리들이 성품 바다의 문을 의의(擬議)하겠습니까?”
[공자, 5성ㆍ5상]
공자(公子)가 말하였다.
“옛 철인(哲人)은 ‘글이 번거로우면 그의 요점을 잃고, 이치가 적으면 그의 실상(實相)을 잃는다’ 하였는데 이제 그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불가에서의 전지(銓旨)ㆍ선계(禪戒)의 말과 주술ㆍ전기의 경전은 스스로 한 몸의 자기를 격려하는 모범은 될지언정 오상(五常)의 나라를 경영하는 교훈은 되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모난 것을 구멍에 맞추고 둥근 것을 모난 데 맞추는 것과 같아서 비록 외형(外形)에는 아름답지만 일에는 맞지 아니합니다.
또 『서경(書經)』에는 오상의 가르침이 있으니, 이른바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입니다.
상해(傷害)하는 것을 불쌍하게 여기어 죽이지 아니함을 인이라 하고,
해로움을 막아서 음란하지 아니함을 의라 하고,
마음을 가져서 술을 금지하는 것을 예라 하고,
살핌을 맑게 하여 도적질하지 아니함을 지라 하고,
법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아니함을 신이라 합니다.
이 다섯 가지의 덕은 아주 급한 때라도 부서뜨리면 안 되고 잠깐이라도 폐지하면 안 됩니다.
임금된 자가 이를 이행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군자(君子)가 이를 받들어서 몸을 세웁니다.
사용하여 잠시도 폐지할 수 없기에 상(常)이라고 합니다.
무릇 그대가 전번에 불교를 서술한 것은 말이 완착(緩着)되고 뜻이 우원(迂遠)하여서 텅 비어 있으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섯 가지의 상(常)이라 함은
하늘에 있어서는 5위(緯)가 되고,
땅에 있어서는 5악(嶽)이 되고,
곳에 있어서는 5방(方)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5장(臟)이 되며,
사물에 있어서는 5행(行)이 됩니다.
이를 넓혀서 말하면 거느리지 아니함이 없으니 우러러 관찰하고 구부려 살핌에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통인, 성인이 덕]
이에 통인이 빙긋이 웃으며 한참 동안 있다가 천천히 비유하여 말하였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일천 금은 기울게 하기 쉽지만 한 마디 말은 내뱉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한갓 손바닥 가리키기를 소비할 뿐입니다. 그대가 밤에 놀다가 말 실수를 할 것이 두렵습니다.
억지로 비교해서 말하면 심씨(沈氏)의 『균성론(均聖論)』에
‘염제씨(炎帝氏)와 태호씨(太昊氏)의 처음에는 순방(純厖)의 시초이어서 사람이 쌀알을 먹지 않았기에 고기와 가죽이 아니고서는 연명하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성인의 덕이 은근하나 은혜가 그를 구하여 면하게 하는 데 있기에 그 신명을 북돋고자 그러한 삶의 이치를 갑자기 바꾸지 않고 이를 점차 인도하여서 그의 근원을 열어주었다.
그러기에 수인씨(燧人氏)가 불을 발명하여 날 것을 익혀 먹게 하였으니 날 것과 익혀 먹는 것이 변하여짐은 대개 불교의 시초이다’라 하였습니다.”
[군자, 3귀의ㆍ5계ㆍ10선업ㆍ6재]
군자가 말하였다.
“심씨가 학문으로는 도교와 유교를 종합하고 이치로는 유교와 불교를 겸하였으니, 이는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찌 이러한 논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까닭은 태호씨는 본래 응성(應聲)보살이고, 공자는 곧 유동(儒童)보살로서 먼저 이 나라에 돌아다니면서 방편으로 점차 교화를 행하여서 다섯 가지 탁(濁)한 것을 불쌍히 여겨 5상(常)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들은 것을 찾지 않기에 이제 그 근본을 대강 베풀겠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이루시고서 아래의 범부들을 가까이 접하려 해서 이에 소승(小乘)의 가르침을 여셨으니,
시리(尸利)로 인하여서는 세 가지의 귀의(歸依)를 말씀하셨고,
말가(末伽)로 인하여서는 다섯 가지 계(戒)를 말씀하셨으며,
가왕(迦王)을 위하여서는 열 가지의 착함을 말씀하셨고,
장자(長者)를 위하여서는 여섯 가지의 재(齋)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의 귀의로 그가 삿됨을 버리도록 권하였고,
다섯 가지의 계로 그가 악을 행함을 막았으며,
열 가지의 착함으로는 귀(貴)를 불러오게 하였고,
여섯 가지의 재로는 즐거움을 얻게 한 것입니다.
『석명(釋名)』에
‘귀의는 향(向)함이요, 계는 그치게 함이요, 착함은 아름답게 함이요, 재는 엄숙함이다’라 하였습니다.
세 가지의 귀의는 그에게 세 가지의 높은 데 귀향하게 함이요,
다섯 가지의 계는 다섯 가지의 욕심을 막아 그치게 함이요,
열 가지의 착함은 아름답게 줌을 모두 맞음이요,
여섯 가지의 재는 얼굴과 거동을 엄숙히 하여 공경함이니,
그리 되면 명기(冥祇)들이 기쁘게 모여서 징조와 경사가 진실로 흡족할 것입니다.
첫째 죽이지 아니함이요,
둘째 도적질하지 아니함이요,
셋째 사음(邪淫)하지 아니함이요,
넷째 거짓말하지 아니함이요,
다섯째 술을 마시지 아니함이
다섯 가지의 계가 됩니다.
계(戒)라 함은 금지하는 것이요, 굴레를 씌우는 것이니, 몸과 입을 다스리기를 마치 말에게 고삐를 씌우는 것과 같이 하고, 정욕(情慾)을 금지하기를 마치 원숭이에게 자물쇠를 씌우는 것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지도론(智度論)』에
‘큰 악의 병에는 계가 좋은 약이 되고,
큰 무서움에는 계가 지켜주고 보호해 줌이 되며,
죽음의 어두움에는 계가 밝은 등불이 되며,
세 가지 악한 길에는 계가 교량(橋梁)이 되며,
나고 죽음의 바다에는 계가 큰 배가 된다’ 하였습니다.
대저 죽이지 아니한다 함은 하늘을 지고 땅을 밟는 무리들과 둥근 머리와 모난 발의 무리들과 물과 육지와 산과 허공에 사는 태생(胎生)과 난생(卵生)과 습생(濕生)과 화생(化生)들, 그 종류를 말하면 무릇 네 가지의 생(生)이 있고, 하나하나의 생에 다 8만 4천 가지의 형상이 있어서 같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축생이 이에 다르고 귀하고 천함이 다르지만 엄숙하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급급하게 생을 탐하여 고통을 피하고 그의 몸을 즐기려 하고, 편안함을 구하여 그의 목숨을 기르려 하는 이 정(情)은 한 가지이고, 이 이치는 1만이 고르니, 어찌 그릇 충정(忠貞)을 해하고 함부로 순선(淳善)함을 목베겠습니까?
그 때문에 양사(良士)들은 죽게 되자 머리를 풀어뜨렸고 조동(趙同)은 죽게 되자 크게 노하여 가슴을 쳤고 북망산(北邙山) 언덕에는 원혼(怨魂)의 슬픔이 쌓였고 진(秦)나라 구덩이는 죄 없는 혹독함을 마음대로 하여 배를 타는 노래를 이미 지었고 황조(黃鳥)의 읊음이 슬픕니다.
다음에는 파천(灞川)에서 포위를 벌리고 몽택(夢澤)에 풀어주고 사로잡고 하여서 그물을 폄이 들에 뻗치고 산을 연하였으며, 불은 산고개를 쫓아 높고 낮으며, 연기는 풀을 따라 성글고 빽빽하였으며, 번개같이 달리는 매를 다투어 들고 바람을 따르듯 빠른 말을 다투어 앞서겠습니까?
원숭이는 화살을 보고 헛되이 놀라며 기러기는 활을 보고 멀리 떨어집니다. 그러니 가슴을 찢기고 겨드랑이에 사무치는 아픔과 팔꿈치를 풀고 두뇌(頭腦)를 함몰시키는 아픔이니, 어찌 홀로 자방벌레를 잃고 못을 비우겠습니까? 드디어 원숭이를 망치고 숲을 다하는 격입니다.
더구나 낚싯줄을 굽은 물가에 드리우고 갈고리를 깊은 못에 내려서 붉은 잉어를 하수에서 얻고 자색 물고기를 정곡(井谷)에서 거두어도 이들은 다 다섯 가지의 상(常)을 품수(稟受)하였으며, 함께 네 가지의 기운을 머금었고 한가지로 부처될 성품을 받았으며 한가지로 신명(神明)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 차마 고기를 산같이 벌려서 지지고 볶고 하여 비늘 달리고 깃 달린 것들의 생명을 끊고 추환(芻豢)의 무리들을 다 죽일 것이며, 염지(染指)의 자라를 굽고 여주(如朱)의 자라를 지져서 하증(何曾)의 훌륭한 반찬에 이바지하고, 누호(婁護)의 진수(珍羞)를 갖추어서 저들의 심장과 간장을 맛있게 장만하여 그의 입과 배를 채우며, 남의 살을 기쁘게 장만하여 연회를 베풀어 나의 아름다운 손님들을 즐겁게 하여 일곱 가지의 덕(德)의 광영(光榮)을 경하하고 아홉 가지 공(功)의 번성한 모임을 즐기더라도 이는 큰 자비의 본뜻을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성(至聖)이 금하신 것입니다.
물고기를 기른 장자는 꿈에 하늘 꽃을 감득하였으며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나타난다,]
개미를 구한 사미(沙彌)는 가만히 촉박한 수명을 늘리었다.
[『현우경(賢愚經)』에 나타난다.]
그래서 이에 금강(金剛)의 체를 이루고 마침내 오래 사는 원인이 되었으니,
[부처님 법을 보호한 인연으로 금강의 체를 이루고 살생을 아니한 과보로 수명을 오래 한 인이 되는 것은 『열반경(涅槃經)』과 『금광명경』 등에 보인다,]
이는 곧 숙세의 혐오를 길이 끊는 것이니 그의 덕이 첫째입니다.
도적질하지 않음을 말한 것은, 도척(盜跖)의 행동은 온 세상이 용납하지 아니하고 대들보 위의 미련함은 사람들이 다 근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머니의 행장에 한 푼의 돈이 없고 상자에는 밑천을 끊는 가난함이 있어서 드디어 삼베옷 입음도 충분하지 못하거니 갈포(葛袍)를 어찌 생각하리오.
장자는 입에 의하는 더러움을 부끄러워하고,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도판(屠販)의 수고를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니 어찌 채소를 훔치고 물고기를 도적질하며 오이를 훔치고 대추를 사사로이 하겠으며, 겸하여 승단의 물건을 훔치고 상주(常住)의 재물을 사용하겠습니까?
악하게 구하면 많이 구할 수 있고 이익으로써 이익을 내지마는 일찍이 부끄러워함이 없어서 도무지 생각을 두지 아니합니다. 이는 어찌 더러움을 띄는 것이 앞에 나타날 뿐이겠습니까? 참으로 또한 후세에 재앙이 됩니다.
[『지도론』에서
‘모든 중생들은 옷과 밥으로써 스스로 살아간다. 그러니 만일 뺏고 겁탈하면 이는 생명을 겁탈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큰 성인이 자비로 불쌍히 여겨서 계율을 제정하여 막으셨으니 그의 덕이 둘째입니다.
사음(邪婬)하지 말라 함은 덕을 패하고 몸을 멸망시키는 데는 사음의 죄가 매우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비(妹妃)는 하(夏)나라를 멸망시켰고, 달후(妲后)는 은(殷)나라를 멸망시켰으며, 포사(褒姒)는 주(周)나라를 거꾸러트렸고, 여희(麗姬)는 진(晋)나라를 기울게 하였습니다. 신선은 여자를 목태우는 곤욕(困辱)을 만났고, 천묘(天廟)는 몸을 불태우는 재앙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여러 죄의 근본이요, 재앙을 얽매는 뿌리라고 말합니다. 가까이는 범천(梵天)의 세상에 어긋나고 멀리는 보리를 장애합니다. 그러기에 끊어서 행하지 아니하니 그의 덕이 셋째입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함은 술은 어지러움의 근본이니 또한 미친 약이라고도 일컬어서 두루 세 가지의 독(毒)의 허물을 일으키고 6근(根)의 틈을 모두 짓기 때문입니다.
벌거벗고 언성을 높여 부르짖으며 귀한 이나 천한 이를 다 속이고 친한 이나 멀리하는 이를 다 꾸짖습니다. 어떤 때는 말뚝같이 섰다가 어떤 때는 울기도 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은(殷)나라 임금은 소같이 마시다가 조정을 잃었고, 초(楚)나라 공자는 범같이 취하여서 덕(德)을 패하였으며, 성도(成都)에서는 여러 달 취함에 얽히었고, 중산(中山)에서는 1천 날 동안 곤히 잠을 잤습니다.
몸은 진흙과 같고 마음은 어두워 밤과 같습니다. 서른여섯 가지를 잃어서 허물과 근심이 아울러 나며[『지도론』 등에 보임], 8만 4천 가지의 진로(塵勞)가 함께 일어나서 현재에 지혜의 업(業)을 막고 장래에 우치(愚癡)의 보(報)를 얻는 데는 이 죄가 가장 깊습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 술마심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진실로 능히 계를 받들면 복을 얻음이 다함이 없습니다. 그의 덕이 넷째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 함은 입은 재화의 중매쟁이요, 혀는 싸움의 근본이라 일컫기 때문입니다.
능히 몸을 치는 도끼가 되니, 그를 여러 악의 문이라고 일컫습니다. 칼과 칼날은 목구멍 사이에서 일어나고 자기를 묶는 노와 새끼는 입술과 이 사이에 있습니다.
찬바람을 말하면 푸른 나무로 하여금 잎이 떨어지게 하고, 꽃다운 절개를 말하면 말랐던 나무로 하여금 꽃을 피게 합니다. 칭찬하고 헐뜯음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렸고 살고 죽음이 세 치도 못 되는 혀에 달렸습니다. 벗들 사이가 그로 인하여 물과 불같이 틈이 벌어지고 집안이 이 때문에 틀어지고 떠납니다.
큰 해로는 겨레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기울게 하며, 작은 허물로도 몸을 위태롭게 하고 목숨을 잃게 합니다. 미래의 무거운 과보를 부르고 현재의 깊은 원한을 맺어서 실로 네 가지 허물의 근본이요, 열 가지 악의 숲입니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코와 같은 경계를 기술하였고, 주(周)나라 종묘에는 구리로 된 사람의 명(銘)을 썼으니 복이 이보다 더함이 없습니다. 그의 덕이 다섯째입니다.”